에덴골

권세 있는 새 교훈

거듭난 삶 2016. 3. 6. 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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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세 있는 교훈

 

1:23-27 마침 저희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질러 가로되 24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25 예수께서 꾸짖어 가라사대 잠잠하고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26 더러운 귀신이 사람으로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27 놀라 서로 물어 가로되 이는 어찜이뇨 권세 있는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을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28 예수의 소문이 갈릴리 사방에 퍼지더라.

 

참조 : ( 43:18-21)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19) 보라 내가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20) 장차 들짐승 시랑과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들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백성, 나의 택한 자로 마시게 것임이라

21)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예수님은 세상에 계실 동안 귀신의 사역을 용납지 않으시고 보는데로 꾸짖으시고 추방하며 조금도 타협을 허락지 않으셨습니다.

 

어느 가버나움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시며 귀신을 내어 쫓았을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을 권세 있는 교훈이라고 놀랐습니다. 그러면 과연 권세있는 교훈은 오늘날의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오늘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하여 권세있는 교훈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1. 권세있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본문에 의하면 예수께서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잠잠하고 사람에게 나오라 하시니, 더러운 귀신이 사람으로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놀라 서로 물어 가로되 어찜이뇨 권세있는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을 명한즉 순종하는도다"하였습니다.

 

구약의 율법과 선지자들은 죄를 책망하고 심판하며 죄의 문제를 다루었지만 신약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인류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고 병들게 하며 모든 불행과 파괴의 원인이 되는 마귀와 하수인인 귀신들을 추방함으로써 하나님의 나라를 임하게 하였습니다.

 

때문에 예수님께서 귀신의 정체를 폭로하고 더러운 귀신을 추방하자 사람들은

 

"이는 어찜이뇨 권세있는 교훈이로다"하고 놀랐던 것입니다.

 

따라서 권세있는 교훈이란 인류를 구원하시는 은혜의 복음으로서 죄를 책망하는 대신 죄를 주님이 대신 담당하시므로 인류의 죄를 사하시고 사탄의 권세에서 해방되는 자유를 주신 교훈입니다.

 

 

(1) 사함에 있습니다.

 

구약의 속죄는 죄를 없이할 없었습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속죄제를 드렸는데 이것은 인간의 생명을 대신할 없었으며 다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죄를 덮어둘 뿐이었습니다.

 

성경은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하지 못함이라"하였습니다( 10:4).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17:11) 함과 같이 아무리 인간의 생명이 죄로 말미암아 부패되었다 하더라도 동물의 생명이 인간의 생명을 대신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의 능력에 의하여 처녀 마리아에게서 죄없는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대신 죽으시고, 심판 받으시고, 저주 받으시고, 버림 받으시고, 고난을 받으시고, 지옥의 음부에 내려 가셔서 사망의 고통을 받으시고, 그리고 마귀의 권세를 물리치시고, 무덤을 열고 3 만에 부활하심으로, 인류의 죄를 없이 하시고 용서와 자유를 주셨습니다.

 

성서는, "염소와 송아지는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9:12) 가르쳐 줍니다.

 

그러므로 권세있는 교훈의 이유는 우리의 혈통 속에 흐르는 죄를 없이하고 죄로 말미암아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인류의 죄를 사하고 용서와 자유를 주시고자 함입니다.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하노라"( 2:10)

 

여러분,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습니다. 아담의 혈통을 가지고 태어난 인간은 속에 죄가 흐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 "불과 유황이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니라"( 21:8)

 

여러분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였습니까? 성서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 1:9)라고 하였습니다.

 

 

(2) 아들의 권세를 얻게하기 위함입니다.

 

사람들이 마음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자신의 생명을 드리고 나의 생명의 구주와 하나님으로 영접하면 모든 원죄와 자범죄에서 용서받을 아니라 자식이 아버지의 혈통을 이어받게 되듯이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하여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갖게 됩니다.

 

성경은, "아들이 있는 자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는 생명이 없느니라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하려 함이라"( 1:12)

 

"영접하는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12)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아들의 권세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아담의 혈통에서 , 육으로 모든 사람은 죄인이고, 죄의 삯은 사망이며, 마귀는 사망권세를 가지고 왕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 2:14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마귀를 없이 하시며).

 

그래서 성경은 마귀를 세상 임금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 16: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다시 말하면 세상에 속한 사람치고 마귀권세를 이길 있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의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사람은 자신이 죄의 유혹을 허락하지 않는 죄와 세상 유혹과 모든 마귀의 역사로부터 승리하는 자가 됩니다.

 

성경은,

 

"하나님께로서 난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요일 5:45)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맞아들일 때부터 차츰 세상친구가 줄어들고, 영화관 출입이 줄고, 저속한 말을 삼가하며, 세상의 오락과 멀어지고, 고스톱, 도박 등의 생활을 끊고, 떳떳지 못한 인간관계를 정리하고, 자신에게 변화가 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반면에 성경을 사랑하고 기도하는 즐거움을 알게 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생명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아들의 권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어찌하든지 세상의 향락과 쾌락으로 채워보려고 모든 방법을 동원하지만,

 

바로의 술객들의 지팡이를 모세의 지팡이가 삼켜버렸듯이 세상 능력은 성도에게 있는 내적능력을 이겨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요일 4:4)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왕이 신하를 불러서 이제부터 당신은 암행어사요, 전국을 순회하면서 민심을 살펴 비리를 알아보고 적절히 조치하여 보고토록 하라 임무를 주었다면 그는 암행어사의 권세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시고 하나님의 자녀 권세를 주셨습니다.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16:33)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4:7)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10:13)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 나으리라"( 16:18)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28:18) 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께로서 보냄을 받은 자임을 기억하십시요. 하나님의 명을 받았음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안에 거하시고 위하여 역사하심을 기억하십시요. 여러분을 당할 있는 세상의 권세가 결단코 없는 것입니다.

 

3. 그러면 아들의 권세를 어떻게 사용할 있습니까?

 

비록 암행어사의 권세를 받았다 해도 권세를 행사할 있는 능력을 받지 못한다면 무용지물이 되어버리고 것입니다.

 

이와같이 아들의 권세가 있다 하여도 권세를 행사함에 있어서는 순간 순간 하나님의 능력으로 지지받지 않으면 안됩니다.

 

마가복음 9장에 의하면 벙어리 되고 귀먹고 귀신들린 아이를 가진 부모가 제자들에게 귀신을 쫓아 것을 부탁하였으나 제자들은 역부족이였습니다.

 

아이의 부모는 다시 주님께 사실을 고하고 쫓아줄 것을 간청하자 주님께서 고쳐주신 일이 있습니다. 모습을 제자들은 주님께 묻습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라고 하는 질문에

 

기도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없느니라"( 9:29) 대답하셨습니다.

 

이로 보건데 권세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순간 받는 것이지만 권세를 행사하는 능력은 기도로써 계속적인 하나님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기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뜻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나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는 것입니다.

 

성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요일 5:14) 하였고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5:16) 하였습니다.

 

엘리야가 갈멜산상에서 7 기도하였던 것도 하나님의 지지를 받기 위함이요(왕상 18:3638).

 

문둥병 환자가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있나이다"( 1:40) 것도 하나님의 지지를 받기 위한 것이고,

 

초대교회 때에 주의 제자들이 곳에 모여 기도한 것도 하나님의 가운데서 하나님의 지지를 받기 위함이었습니다.

 

( 4:28-31)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성에 모였나이다

29) 주여 이제도 저희의 위협함을 하감하옵시고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시며

30)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그리하여 하나님의 능력은 보좌로부터 권능의 발전소에서 성도의 기도라는 전선을 통하여 계속적으로 부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계속적인 하나님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쉬지말고 기도하고

주의 뜻을 따라 하면,

권세와 능력있는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오신 것은 죄와 세상과 마귀의 노릇하는 인류에게 권세있는 교훈을 주심으로 여러분과 나에게 자유를 주시고자 함입니다.

 

사함을 받으셨습니까? 아들의 권세가 무엇인지 깨달으셨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제 일어나십시오.

 

날마다 그를 믿는 믿음과 기도로 복음을 전파하며 병든 자를 고치며 귀신을 쫓고 어둠의 권세를 몰아내는 약속있는 믿음 생활을 하십시요. 샬롬!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19 보라 내가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43:18-19)

 

 

예화)

스위스의 노인이 80세를 맞게 되었습니다. 노인은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면서 그가 평생을 어떻게 살아왔나하는 생각을 시간으로 계산해서 통계표를 내보았습니다. 그가 살아온 평생은 대개 이렇게 소비되었습니다.

 

잠을 자는데 26 노동에 21,

식사에 6, 남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 기다리는데 무려 5,

쓸데없이 걱정하는데 5, 수염 깎고 세면하는 일에 228,

아이들과 대화하고 노는 것에 26, 넥타이 메는데 18, 담배 불을

이는데 12 소모된 것을 계산했답니다.

 

그런데 그가 마음속에 행복을 누렸던 가장 기쁜 시간들은 겨우 46시간에 불과했다는 것입니다.

 

노인의 시간표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나게 해줍니다.

 

바울은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5:16, 17) 촉구하였습니다.

 

보통 신년 설교에 인용하게 되는 말씀입니다마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본문을 의지하여

 

"보라 내가 일을 행하리니"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 합니다.

 

 

1. 과거에 얽매이지 말라고 하십니다.

 

성경에서 '옛적 '이란 출애굽의 사건을 말하고 '이전 '이란 하나님께서 지적한 그들의 죄악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비참한 노예상태에서 구원하셨습니다. 기둥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시고, 홍해와 요단강을 육지같이 건너게 하시고, 가나안 7족속을 물리치게 하셔서 약속의 가나안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원망하고 불평하였으며 금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님을 떠났으며 모세와 아론을 거스려 하나님을 대적하였고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도 우상숭배에 빠졌고(왕상 17:8-15)

 

제사장의 어른들과 백성들도 타락하였으며(왕하 36:14-16)

 

무죄한자의 피를 흘려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였습니다(왕하 24:4).

 

 

그러므로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말씀은,

 

(1)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과거의 잘못에 얽매이지 말라는 뜻입니다.

 

염려한다고 키를 한자나 더할 있습니까? 지나간 죄를 회개하는 것은 좋은 일이나 자책감에 시달려 전진할 없다면 그것 또한 유익된 일이 아닙니다.

 

성서는,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12:1)라고 하였습니다.

 

애굽을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과거의 생각과 꿈과 애착을 버리지 못하여 광야에서 시체가 되었고( 16:3),

 

롯의 아내는 소돔성에 대한 인정, 애정, 쾌락, 집착을 버리지 못하여 뒤돌아 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었습니다.

 

본문 ( 43:25)절은 " 나는 나를 위하여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2) 과거의 영광에 집착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주의 기적과 이사를 보았습니다. 주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과거의 영광에 빠져서 전진할 없다면 잘못입니다.

 

과거에 살던 , 과거에 은혜 받고 믿은 일만 자랑하고 현재에 머물러 있다면 발전할 없습니다.

 

그러므로

 

( 17: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일을 한것뿐이라 할지니라)

 

말씀처럼 공로는 하나님께 돌리고 과거의 회상에 빠져서는 것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과거의 영광에 집착하지 마십시요. 미래에 소망을 기대하십시오. 그리하여 하나님이 제시하시는 놀라운 비젼을 기대하며 사십시다.

 

 

2. 하나님의 일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알듯이 북조 이스라엘은 앗수리아의 살만에셀 3세에 의하여 망하였고, 남조 유다는 바벨론의 느브갓네살왕에 의하여 몰락하였습니다.

 

43:18-19절에 기록한 이란 파사왕 고레스에 의하여 바벨론 포로에서 팔레스타인 고향 땅으로 귀환하게 됨을 말합니다.

 

역사가 요셉푸스에 의하면 고레스는 당시 150 전에 자신의 이름과 자신의 사명에 대하여 예언된 이사야서를 읽고 충격을 받아, 거기에 기록된 바를 성취하기 위하여 진지한 욕망과 열망에 사로잡혔다 합니다.

 

실제로 고레스는 성전재건과 예루살렘 재건을 허락하고 격려하였으며

 

(대하 36:22-23 바사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바사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저가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가로되

23) 바사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너희 중에 무릇 백성 자는 올라갈지어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솔로몬 성전에서 탈취해온 , , 기명과 5만명 가량의 유대인을 스룹바벨과 예수아의 지휘아래 팔레스타인으로 귀환토록 조치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일을 행하리니"하는 말씀은

 

과거 애굽의 구원에만 머무르지 말고 바벨론의 구원을 바라보라는 것이요, 바벨론의 구원에만 머무르지 말고,

 

장차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시는 만민의 구원과 장차 완성될 구원을 바라보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쫓아가노라"( 3:13)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과거에 빠지는 생활이 아닙니다. 현재에 머물지 않습니다. 알파와 오매가 되시는 주님께서 제시해 놓으신 영원한 목표를 향하여 전진하는 삶인 것입니다.

 

마태복음 24장과 17장에 의하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집짓고 사고 팔고"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이것은 그리스도 없는 육신적인 삶의 반복과 타락과 무의미성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시간개념은 주기적으로 반복되는(cyclical) 시간이 아니고 일직선상의(lindar) 시간들입니다.

 

여러분은 믿는다고 하면서 그리스도가 없는 것처럼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아니면 구원받은 이후 어느 점에서 머무르고 있지 않습니까?

 

히브리 기자는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라"( 12:2)하였습니다.

 

먼저 그리스도와 함께 하십시오.

그리고 그가 예비하신 구원의 길을 계속 전진 하십시오.

 

특별히 심판과 상급의 주님을 바라 보십시오.

재림의 주님을 바라 보십시오.

주께서는 여러분에게 일을 나타내 주실 것입니다.

 

 

3. 하나님의 기대에 맞는 삶을 살도록 하여야 합니다.

 

43:21절에 "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라

 

말씀은 하나님의 기대에 맞는 삶을 살아가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기대에 맞는 삶은 어떤 것입니까?

 

(1) 믿음으로 사는 삶입니다.

 

감각과 환경과 이성을 따라 사느냐?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믿음으로 사느냐?

 

이것이 신앙인의 갈등이요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기대에 맞는 삶은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1:17) 함과 같이 믿음으로 사는 삶입니다.

 

엘리야는 "바알이 하나님이면 바알을 섬기고 여호와가 하나님이면 여호와를 섬기라 너희가 사이에서 어느 때까지 머뭇거리겠느냐?"하고 선택을 촉구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없습니다.

 

( 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2) 부르심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는 삶입니다.

 

여기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쫓아가노라"( 3:13)

 

쫓아가다자기를 찾는 자들 뜻은 미국에서 그레이하운드 경주를 참관한 적이 있었는데. 사냥개가 먹이를 향하여 쏜살같이, 맹렬하게 달려가는 모습으로 설명을 대신합니다.

 

 

 

성경은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8:11)하였고,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가 되라"(고전 15:38)하였습니다.

 

 

(3) 열매맺고 영광 돌리는 생활입니다.

 

전도의 열매( 1:8),

성령과 사랑의 열매( 5:22),

기도 응답의 열매( 15:7),

선한 봉사의 열매( 19:16, 2:10, 25),

감사와 찬양의 열매( 2:7, 13:15) 있습니다.

오늘 ( 43:21) 본문은 "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함이라"하였습니다.

 

매일리 씨는 새해 기도를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나의 생각을 주님께 두게 하소서.

나의 충동은 주님을 예배하게 하소서

나의 언어는 주님을 노래하게 하시고

나의 행위는 기도로써 주님 전에 무릎꿇게 하소서.

 

 

과거의 영광에 빠지지 마십시요. 현재에 머물지 말고 말씀과 성령이 이끄는데로 하나님의 일을 바라 보십시오.

 

믿음으로 살고, 부르심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고, 열매맺어 하나님의 기대에 맞는 삶을 살도록 힘쓰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아니 당신을 위하여 일을 나타낼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믿음의 축복들이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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