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車 공모에 당선… 배곯던 탈북 소년, 푸드트럭 사장 됐다
조선일보
입력 : 2016.05.31 04:05
[탈북민과 함께 '통일 사다리' 놓자] [2] 창업 돕는 기업·단체들
지난 26일 오후 경기도 과천 경마공원(렛츠런파크 서울) 주차장. 10여명의 사람들이 토스트를 파는 트럭 앞에 서서 "대박 하나 주세요" "여기 열정 세 개요"라고 외쳤다. '대박'과 '열정'은 이 트럭에서 파는 토스트 이름이다. 떡갈비가 들어간 '대박'은 4000원, 햄·치즈를 넣은 '열정'은 3000원이다. 메뉴판에는 '파이팅(2500원)'도 있었다.
이 트럭 안에서 바쁘게 손을 놀리는 박영호(27) 사장은 탈북민이다. 함경북도 무산 출신인 박씨는 열두 살 때인 2001년 영양실조로 죽을 뻔한 상태에서 형의 등에 업혀 탈북했다. 이후 중국·태국을 거쳐 2002년 한국에 도착했다. 굶주림을 면하려고 한국에 온 지 14년 만에 '푸드트럭 사장'이 된 것이다.이미지 크게보기지난 26일 경기도 과천 경마공원 주차장에서 푸드트럭을 운영하는 탈북민 박영호 사장(오른쪽)이 왼 주먹을 치켜들고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박씨는 현대차그룹과 한국마사회의 탈북민 지원 프로그램 덕분에 푸드트럭 창업에 성공했다. /이태경 기자
- '청년상회' 박영호씨
현대車, 1t트럭 주고 자금 지원…
마사회는 경마장 앞 공간 내줘
탈북청년 1명 등 직원 2명 고용
"사회서 받은 은혜 갚아나갈 것"박씨는 "무일푼 탈북 청년이 창업의 꿈을 이룬 것은 현대차그룹과 한국마사회의 도움이 컸다"며 "대기업과 공공 기관의 지원을 받은 나는 진짜 행운아"라고 말했다. 박씨는 지난 2012년 서강대에 진학한 이후 푸드트럭 사업을 주목했다. 당시 동·서독 통일 과정을 체험하기 위해 1주일간 독일을 여행하면서 푸드트럭을 처음 본 것이 계기가 됐다. 그는 "작은 트럭인데 손님 주문이 끊이지 않았어요. 저거다 싶었죠. 작은 돈으로도 창업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고 했다.
독일에서 돌아온 박씨는 토스트·커피 만드는 법, 회계 등을 공부하며 창업을 준비했다. 그러나 돈이 문제였다. 고민하던 박씨는 작년 8월 '탈북민 푸드트럭 사업'을 공모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통일부가 아이디어를 내고, 현대차그룹이 차량과 자금, 마사회가 경마장 앞에 장소를 지원하는 사업이었다. 박씨는 경마장 주변의 시간대별 유동 인구까지 조사한 창업 제안서를 준비했다. 그는 면접에서 "가장 준비가 철저한 지원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올 1월 현대차그룹은 '기프트카 사업'의 일환으로 탈북민 2명(박씨와 김경빈씨)에게 푸드트럭을 한 대씩 무상 제공했다. 2011년 시작된 기프트카 사업은 경제·사회적 이유로 어려움을 겪은 이웃에게 자동차와 창업 자금을 지원하는 현대차의 사회 공헌 프로그램이다. 지금까지 199대를 지원했다. 올해 선발된 탈북민 2명은 개조한 1t 화물차와 차량 세금·보험료 300만원, 창업 자금 500만원을 받았다.
현대차는 이들에게 2박 3일간의 창업 교육과 두 차례의 컨설팅도 제공했다. 어호선 현대차그룹 홍보과장은 "사회 공헌과 통일 대비 차원에서 탈북민의 정착 지원 사업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사회는 경마장에서 유동 인구가 가장 많은 매표소 앞 주차장을 영업장소로 내놨다. 장소는 2년간 제공된다. 이후에는 성공 방정식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 현대차그룹의 경우 2010년부터 지금까지 탈북민 정착 사업에 약 40억원을 지원했다. 연간 100명의 탈북자에게 승강기 관리, 봉제 등 전문 직업 교육을 실시한다.
탈북민 푸드트럭은 경마 경기가 열리는 금·토·일에만 영업을 한다. 주말에는 매출이 150만원을 넘긴다고 한다. 박씨가 월급을 주는 직원도 탈북 청년 1명을 포함해 2명이다. 영양실조로 두만강을 건넜던 '탈북 소년'이 월 매출 수백만원을 올리는 '남한 사장님'이 된 셈이다.
박씨의 푸드트럭에는 '청년상회'라는 간판이 걸려 있다. 그는 "단순히 음식만 파는 트럭이 아니라 청년의 소중한 꿈을 키워가는 점포라는 의미"라고 했다. 토스트 이름을 '대박·열정·파이팅'으로 지은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박씨는 "청년의 열정과 희망을 전달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의 꿈은 푸드트럭을 10대, 100대로 늘려 탈북민 일자리 창출을 돕는 것이다. 박씨는 "빈손이던 제가 자립한 건 푸드트럭 지원 사업 덕분"이라며 "우리 사회로부터 받은 은혜를 앞으로 갚아나가는 것이 새로운 목표"라고 말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평택 땅값 부르는 게 값 (0) | 2016.06.24 |
---|---|
딸과 떨어져 살게 해주세요 (0) | 2016.06.15 |
“한번 안아주십시오” (0) | 2016.05.28 |
기내에서 난동 부린 40대 한국인 치과의사 (0) | 2016.04.26 |
탈북인이 보는 통일논리 (0) | 2016.03.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