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

거듭난 삶 2016. 7. 4. 19:31
728x90

천재 비올리스트의 이유 있는 '기부 플랜'

  • 입력 : 2016.07.04 13:37

[더 나은 미래: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 인터뷰()]
 

지난 10일 오전 1130분 서울 삼성동 테헤란로. 국제구호기구 옥스팜과 이탈리안 셰프 샘킴이 함께하는 '푸드트럭' 현장에 앞치마를 둘러맨 '천재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Richard Yongjae oneill·38)이 깜짝 등장했다. 오닐은 샘킴이 직접 만든 파스타를 사람들에게 나눠주며 세계의 가난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1990년대와 비교해 세계의 빈곤 인구는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10억 명 가까이 가난으로 고통받고 있어요(UN새천년개발목표보고서, 2015). 한국은 전 세계가 놀랄 만큼 멋진 일을 해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앞으로 더 대단한 일을 할 수 있을 거라 믿어요."

말을 마친 오닐이 비올라를 켜자, 북적이던 테헤란로가 일순간 쥐죽은 듯 고요해졌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가 중 한 명인 바흐의 곡과, 한국의 동요 '섬집아기'가 빌딩숲 사이로 울려 퍼졌다.

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606/29/2016062902617_0.jpg"초등학교 4학년 때쯤 태어나서 처음으로 요양원(Nursing home)에 봉사활동을 갔어요. 제 조악한 연주를 듣고 기뻐하는 분들의 표정을 보면서 처음 알았죠. '나눔은 어려운 게 아니구나!' 제 인생을 바꾼 기억 중 하나에요." 인터뷰를 마친 오닐이 자신의 비올라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 /박정현 사진작가·옥스팜코리아

음악가 최고의 영예로 불리는 '에버리 피셔(Avery Fis her)' 수상, 미국 UCLA 최연소 음악교수(2007~2016)이자 줄리어드 음악대학원 최초로 아티스트 디플로마(Artist Diploma·전문연주자 과정) 전액 장학금을 받은 비올리스트. '세상 모든 사람은 선하다'는 믿음으로 오늘도 자신을 낮추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남자. 리처드 용재 오닐의 삶과 음악, 나눔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오늘 푸드트럭 현장을 방문한 시민 중 50여분이 정기후원 약정서에 사인했대요. 정말 놀랍고 멋진 일이죠? 이렇게 좋은 날, 좋은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나눔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다니. 전 정말 행운아인 것 같아요."

오닐을 다시 만난 것은 저녁 8시가 다 된 시각이었다. 푸드트럭을 마치자마자 일정 하나를 더 소화한 후, 인터뷰 장소에 도착했지만 조금도 힘든 기색이 없었다. 한여름 날씨에 점심식사까지 미뤄가며 350여명에게 일일이 파스타를 건네고, 야외에서 공연까지 한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모습이었다. "일정이 고되지 않았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앞에 놓인 물잔에 마시던 커피를 조금 섞었다.

"이 정도…. 이런 색깔의 물이었어요. 상상이 되세요? 이렇게 오염된 물이라도 얻기 위해 매일 30㎞ 넘게 걸어야 하는 삶 말이에요. 제가 갔던 케냐의 투르카나(Turkana) 지역은 모든 생활용수를 고인 물로 사용하기 때문에 수인성 전염병이 창궐해 있었어요. 영양이 부족하고, 충분한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없는 아이들에게 설사는 죽음과 연결되는 위협이었죠. 그들의 고통에 비하면 오늘 제가 한 일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힘들다고도 할 수 없어요."

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606/29/2016062902617_1.jpg케냐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리처드 용재 오닐, 아래사진은 봉사활동에 같이 참여한 샘킴(오른쪽)과 같이 사진촬영을 하고 있는 리처드 용재 오닐. /옥스팜코리아 제공

오닐은 지난해 4월 옥스팜과 함께 케냐 북부의 투르카나 지역을 방문했다. 투르카나에는 아프리카 최대 난민촌인 카쿠마 난민촌이 자리 잡고 있다. 콩고·남수단·우간다 등 인근 국가에서 발생한 난민 20만명이 이곳에 체류 중이다. 난민촌 인근 마을에서 머무른 일주일은 그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케냐에서 로키차라는 여성을 만났어요. 얼마 전 아이를 잃었다고 했죠. 울지도, 불평하지도 않고 담담하게 사실을 얘기하는 그 모습이…. (침묵) 전 로키차가 어떤 심정일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어요. 남편은 도시에서 일을 하느라 며칠 씩 집을 비우기 때문에 그녀 혼자 남아 다섯 아이를 돌봐야 해요. 사람들 앞에서 음악을 하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건 그들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정말 최소한의 일이에요. 우리는 모두 '하나의 인류(One race)'니까요. 당연한 책임이죠."

그가 케냐를 후원하는 데 샘킴은 든든한 동료다. 샘킴은 오닐이 비올라를 연주할 때마다 휴대폰 카메라를 켤 만큼 그의 열렬한 팬이기도 하다. 오닐에게도 샘킴은 최고의 파스타를 만드는 셰프이자 존경스러운 친구다. 지난해 MBC 글로벌 나눔 프로젝트 '러브챌린지'에 함께 출연하며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은 이제 서로의 나눔 활동을 독려하고 있다.

"샘은 (나눔에) 강한 전략을 갖고 참여하는 사람이에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모으고, 그들이 가난을 해결하는 데 관심을 갖게 할 수 있는지 알죠. 푸드트럭도 샘의 아이디어예요. 그거 아세요? 샘에게는 정말 귀여운 아들이 있어요. 바쁜 와중에 짬이 나면 잠시라도 사랑스러운 가족과 함께 있고 싶을 거예요. 하지만 샘은 자신의 시간과 재능을 기꺼이 사람들과 나누고 있죠. 샘은 그동안 17개 지역에서 5000명이 넘는 사람에게 요리를 대접했어요. 후원자도 많이 모았죠. 전 그를 정말 존중해요. 그런 사람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게 영광이에요."

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606/29/2016062902617_2.jpg케냐 투르카나 지역을 방문한 오닐이 아이들을 위해 비올라를 연주하고 있다. 케냐 국민 중 100만명 이상은 제대로 된 상수시설을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옥스팜코리아 제공

사랑으로 성장한 천재 비올리스트 "나눔은 나의 책임"

그는 "내게 어머니를 돌볼 책임이 있듯, 우리에게는 모두 세상의 가난을 함께 해결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오닐에게 '어머니'라는 말의 무게는 특별하다. 그의 어머니 이복순 여사는 지적장애인으로 한국전쟁 당시 부모를 잃고, 아일랜드계 미국인 오닐 부부에게 입양됐다. 어머니는 미혼모로 아들 리처드를 낳았고, 육아가 어려운 어머니를 대신해 조부모가 그를 보살폈다. 할머니는 아흔이 넘는 나이까지 직접 차를 운전해 오닐을 레슨에 데려다 줄 만큼 지극정성으로 손자를 길렀다.

"저희 어머니는 미국인에게 입양됐어요. 그건 제가 어려운 사람을 당연히 도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데 엄청난 영향을 줬죠. 특히 할머니는 일요일에 교회에 가는 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전부가 아니라는 걸 늘 몸소 보여주셨어요. 아무리 조그만 게 생겨도 이웃들과 나누는 분이셨죠. 제 첫 나눔에 대한 기억도, 할머니가 푸드뱅크(여유 음식을 기탁 받아 필요한 사람에게 무료로 나눠주는 복지시설)에서 큰 냄비에 수프를 끓이던 모습이에요."

그의 나눔에 영향을 준 사람들은 조부모뿐만이 아니다. 가난한 집안 형편으로 레슨비를 마련할 수 없었던 오닐을 위해 교회 사람들은 기꺼이 주머니를 열었다. 그가 처음으로 가졌던 성인용 바이올린은 스승에게 선물로 받은 것이다.

물론 그가 만난 모든 사람이 친절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내 삶이 쉬웠다고 말하고 싶진 않다"며 유년시절을 회상했다. 하지만 그는 상처에 집중하는 대신 자신이 받은 것에 감사하고, 그것을 나누는 삶을 택했다. 오닐의 어린 시절은 그야말로 거절을 모르는 '예스맨'이었다.

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606/29/2016062902617_3.jpg리처드 용재 오닐. /조선일보 DB

"12살 때쯤이었을 거예요. 코인 세탁소에 가던 길이었는데 길에서 어떤 여자 분이 제게 '돈을 달라'고 하셔서 '' 하고 빨래할 돈을 드렸어요. 그때 옆에 있던 친구가 '리처드, 너 왜 그래?' 엄청 뭐라고 하더라고요. '저분이 돈을 달라고 해서 드렸어' 라고 했더니 '넌 진짜 이상한 애다'라고 하지 뭐예요(웃음). 근데 전 항상 그랬거든요. 친구들은 '남의 부탁을 너무 쉽게 들어주는 게 리처드의 가장 큰 단점'이라고 했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니까 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조금 후회가 되는 일이기도 해요. '단지 돈을 드리는 게 그 여자 분을 정말 돕는 일이었을까' 생각이 들어서요."

여러 번의 나눔이 준 교훈일까. 그의 선행에는 깊이가 있다. '좋은 일처럼 보여도 우리가 모르는 트릭(trick)이 있다' '선행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 '가난을 비롯한 모든 문제는 유기적이다' 등등 인터뷰를 하는 내내 그의 말에서는 나눔에 대한 통찰력을 읽을 수 있었다.

"나눔에도 계속 발전이 필요해요. 구시대적인 방법으로는 고질적인 문제를 극복할 수 없죠. 생존을 위해 생필품을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가난의 고리를 끊을 수 없는 것 처럼요. 겉에서는 알 수 없는 비밀스러운 문제도 너무 많고요. 특히 많은 지원에서 여성은 여전히 소외당하고 있어요. 여러분이 나눔을 실천할 때 그 방법을 함께 고민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사회 시스템을 바꾸고, 인프라를 만들고, 교육을 개선하는 NGO와 함께 일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下편에 계속>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이 거리 한복판에서 연주하게 된 이유. /Oxfam Korea 유튜브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