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여러 번 들어본 말이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는 나라를 ‘씹는’ 게 일상사가 돼버렸다. 과연 그럴까? 정말 한국은 형편 없는 나라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반대로 ‘한국은 대단한 나라’다. 이념갈등, 지역분열, 빈부격차 등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문제는 어느 나라나 갖고 있는 골칫거리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우리에겐 다른 나라에선 찾아볼 수 없는 좋은 점들이 적지 않다. 세계 최고 수준의 상품과 서비스, 그리고 편리한 법과 제도가 수두룩한데도 우리는 이를 사실대로 보지도, 느끼지도 못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자기비하 풍조 때문이다.
주간조선은 ‘언제까지 이럴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 광복 및 정부수립 후 60여년간 우리 한국인이 이룩한 업적을 분야별로 나눠 살펴보는 특집을 마련했다. 대부분 해외에서는 높이 평가하고 있는데도 우리만 모르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겨온 것들이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를 지배해온 기본 관념이 ‘자기 학대’였다면 이제부터는 ‘자랑스러운 한국인(Proud Korean)’으로 바꿔야 한다. 주간조선은 앞으로도 우리 사회를 보다 정확히 설명하고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위한 기획을 해나갈 계획이다. 지난 60여년간 대한민국이 이룩한 업적은 수없이 많다. 이들 업적을 압축하면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함께 달성한 것’으로 귀결된다. 2차대전 후 지구상에 수많은 신생국가가 출현했지만 경제성장과 민주화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은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2차대전 후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룬 나라로 독일과 일본도 빠지지 않고 거론되지만 이들 나라는 경우가 다르다. 독일과 일본은 2차대전 전부터 강대국이었는 데다 각각 마샬플랜과 한국전쟁이라는 특수(特需)에 힘입어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짧은 시간에 고도성장을 달성했다. 이들 나라 입장에서 보면 고도성장은 부흥(復興)인 셈이다.
반면 대한민국은 달랐다. 지구상에서 가장 악질적인 제국주의 국가였던 일본의 식민지로 가혹한 수탈을 당했던 데다 식민지배에서 벗어나자마자 남북으로 분단됐고 1950년에는 2차대전 후 최대 전쟁인 한국전쟁까지 발발해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었다.
그랬던 나라가 지금은 세계 15위의 경제규모를 가진 나라로 우뚝 솟아 있다. 그것도 최근 수년간 랭킹이 뒷걸음질쳤는데도 이 정도다. 민주화는 또 어떤가? 언론의 자유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미국과 유럽 못지않다. 집회와 시위의 자유 또한 세계적 수준이다.
TV·에어컨·휴대전화·IT… ‘세계 1위’의 나라
수출의 질은 더 좋다. 반도체, 전자, 자동차, 철강, 조선 등 주요 제조업 분야에서 골고루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한국은 세계 2위 국가인 일본과 주요 분야에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치열한 경쟁을 보이고 있는 유일한 신흥국가이기도 하다.
세계적인 기업도 속속 들어서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세계 무대에서 가장 극적인 광경의 하나로 소니(SONY)의 몰락을 들 수 있다. 영원할 것 같았던 ‘세계 최고의 가전왕국’ 소니를 몰락시킨 주인공은 한국기업 삼성전자다. 삼성 휴대전화는 세계 2위까지 올라섰고 1위 등극도 시간문제로 간주된다. TV도 삼성전자가 3년째 세계 1위를 고수하고 있다. LG전자의 에어컨은 10년째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다.
굴러다니는 광고판인 자동차 부문에서의 선전(善戰)도 눈부시다. 현대·기아차는 올해 상반기 세계 판매 순위에서 처음으로 4위에 올랐다. 소비재는 아니지만 포스코도 세계적인 철강회사의 반열에 올라 있다.
한국은 세계적인 IT(정보기술)강국이기도 하다. 한국은 인터넷보급률과 속도에서 세계 1위 국가다. 적극적인 소비자가 많고 상호 의견교환이 활발해 한국은 세계 최고의 테스트 마켓으로 떠오르고 있다. 수준 높은 한국 소비자 밑에서 단련된 한국기업들은 높은 경쟁력을 바탕으로 국내 시장을 철통같이 방어하고 있다. 월마트, 까르푸, 네슬레, P&G 등 세계적 소비재 기업들이 한국시장에서 고배를 마신 것이 단적인 예다. 할리우드 영화가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개봉하는 것은 이제 당연한 일로 치부되고 있다. 올해 칠레의 한 와인업체는 한국시장을 겨냥한 신제품을 내놓기도 했다. 과거에는 “일본에서 통하면 세계에서 통한다”였던 것이 지금은 “한국에서 통해야 세계에서 통한다”가 됐다.
IMF·글로벌 금융위기 비켜! 위기에 강한 나라
강인한 회복력도 한국경제의 특장(特長)이다. IMF 외환위기도 한국이 가장 먼저 극복했다. 한국은 과감한 구조조정과 IT 투자 등을 통해 경제를 빨리 회복시켰다. 특히 IMF 때 전 국민이 동참한 ‘금 모으기 운동’은 세계적으로 찬탄의 대상이 됐다.
지난해 9월 전세계를 강타한 글로벌 경제위기도 한국이 가장 먼저 극복했다. 한국은 수출 의존도가 높아 경제 회복이 상대적으로 늦어질 것으로 예견됐으나 이번에도 보란 듯이 위기를 이겨내고 있다. 최근 몇 달 사이에 한국의 경이로운 회복력을 평가하는 외신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한강의 기적’을 더 돋보이게 하는 것이 민주화다. 1980년대 초반까지 경제성장에 주력했던 한국인들은 1987년 6·10항쟁을 계기로 민주화에도 눈길을 돌리게 된다. 한국인들은 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군사정권을 종식시키고 대한민국을 완전한 민주국가로 진입시킨다.
문민지배로의 전환 이후 여야 정권 교체도 평화적으로 이뤄졌다. 정세가 불안할 때마다 간간이 나돌았던 ‘군부쿠데타설’은 이제 과거 이야기가 됐다. 쿠데타 위험 제로 국가가 된 것이다.
가장 무서운 법은 국민정서법… 여론이 강한 나라
대한민국은 위정자들이 여론을 극도로 존중할 수밖에 없는 나라다. 우스갯소리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무서운 법은 국민정서법”이라는 말도 있다. 한국에선 그 누구도 여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한국에서 여론을 무시한 위정자들은 예외 없이 불행한 말로를 걸었다. 보급률 100%에 가까운 인터넷은 여론의 힘을 극대화하고 있다. 국가기밀에 해당하는 정보들도 인터넷에 여과 없이 뜨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영국이 300년 걸린 일을 30년에 이룬 ‘기적의 나라’
한국이 이룩한 ‘경제성장과 민주화의 기적’의 바탕에는 교육이 있었다. 한국인의 교육열은 자타 공인하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입시지옥과 엄청난 사교육비 등으로 한국의 교육은 국내에선 늘 비판의 대상이지만 해외에서는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한국의 사교육은 효율성 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이 거의 해마다 공교육 제도를 바꾼 것도 국내에선 비판의 대상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만큼 국가 발전 열망이 강하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올 들어 수차례 “한국의 교육을 본받아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최근 ‘대한민국의 기적’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이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다. 지난 8월 초 한국을 방문한 존 던컨 미 UCLA 한국학연구소장은 한국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영국이 300년 걸린 걸 한국은 30년 사이에 이뤘다”며 “경제성장뿐만 아니라 민주화를 쟁취해냈고 교육 분야도 많은 성장이 있었으니 한국은 스스로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는 “선진국치고 부정적인 자기인식을 하는 나라는 하나도 없다”며 “신생국가에서 이만한 발전을 이룬 대한민국은 칭찬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나라이니 국민 스스로 자부심을 가져야 하고 교과서에도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