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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난 삶 2009. 9. 11.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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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며 즐기는 노년

경향신문 | 입력 2009.08.09  




스톡홀름 닐손의 행복

지난 6월2일 스웨덴 '밍크 실버타운'을 찾았다. 스톡홀름시 나카구(區) 구역 주택가 한가운데였다. 한국이었다면 주택가 중심에 노인들이 모여 사는 '실버타운'이 가능했을까. 특히 실버타운이 위치한 나카구의 집값은 스톡홀름 상위 20% 안에 드는 지역이다. 실버타운 인접지역에 살고 있는 가이드에게 "동네에 실버타운이 있으면 주민들이 반대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실버타운이 들어와도 우리가 피해를 입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런 일은 없다"고 했다.

실버타운에 들어서자 싱그러운 꽃과 나무들로 가득한 정원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한눈에 봐도 매일같이 정성스러운 사람의 손길을 받은 모양새였다. 이곳에 살면서 입주자 대표를 맡고 있는 비욘 닐손(75)이 정원을 쳐다보며 말했다.

"날씨가 화창하면 정원에 나와서 꽃과 나무를 가꾸면서 이야기를 해요. 이거 전부 우리가 직접 가꾼 거예요."

건물 두 동으로 이루어진 '밍크 실버타운'은 스웨덴의 주택공사가 지어 55세 이상 시민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한 소형 아파트다. 활동하는 데 불편이 없는 비교적 건강한 노인들이 살고 있다. 닐손은 5년 전 실버타운의 50㎡(15평) 아파트를 구입해 이사왔다. 동거녀와 자식들이 있지만 같이 살지는 않는다. "혼자 단독주택에 사는 게 더 편할 텐데 왜 실버타운으로 들어왔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닐손은 "외로워서"라고 말했다.

"혼자 살다보니까 이야기 나눌 사람도 없고 고독하더군요. 그러나 여기는 또래 친구들이 많아 외롭지 않아요. 함께 어울리다보면 하루가 정말 빨리 지나갑니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것도 마음에 들어요."

서울 종로구 박선호씨의 우울

6월16일 서울 종로구 돈의동. 박선호씨(가명·71)는 고불고불한 골목길을 따라 서울 종로구의 쪽방으로 향하며 기자에게 몇번이나 신신당부했다.

"나 한 명 겨우 누워서 잘 수 있는 방이에요. 웃으면 안됩니다. 이렇게 산다고 웃으면 안돼…."

3.3㎡(1평) 남짓한 비좁은 공간에서 박씨는 힘겹게 더운 여름을 맞이하고 있었다. 박씨는 "주전자로 물을 끓이면 방 전체가 찜통처럼 더워져 차 한 잔 준비하지 못했다"며 미안해했다. 엉거주춤 서 있는 기자에게 앉을 자리를 권하며 박씨가 말했다.

"이렇게 사는 꼴 아무한테도 보여주기는 싫지. 왜 취재와도 괜찮느냐고 했냐면, 외로워서 그래. 나이 먹으니까 가장 치명적인 적(敵)이 외로움이야. 내가 말이 많지? 오늘 이렇게 이야기 하고 가면 앞으로 1주일은 우울해하지 않고 버틸 수 있어."

박씨와 같이 우울하게 노년을 보내고 있는 또 다른 노인들이 넘쳐나고 있는 한국. 국민건강보험공단 산하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은 "매년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노인들이 늘고 있고,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노인들도 증가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70대 이상 우울증 진료 환자는 7만8291명으로 전년도에 비해 11% 이상 증가했다. 65세 이상 노인 자살률(인구 10만명 당 자살자)도 1998년 38.0명에서 2007년 73.6명으로 2배 가까이 늘어났다.

닐손의 짧은 하루

훼테판 양로원에서 생활하고 있는 프리스크(왼쪽)와 그녀를 돌보는 양로원 원장 필리포빅. 프리스크는 거동이 불편해 양로원에서 직원들의 24시간 보살핌을 받고 있다. 방값과 식비는 두 자녀가, 수발비용은 국가가 지불한다. 기타 생활비는 연금으로 해결한다.닐손은 실버타운에서 취미 활동을 하는 방들을 하나 하나 보여주었다. 가장 먼저 간 곳은 통유리를 통해 환한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큰 식당이었다.

"이곳에서 한달에 2~3번 다 같이 모여 만찬을 즐기면서 공연을 보거나 강의를 들어요. 강의 주제는 다양한데 최근에는 기후 변화에 대한 강의를 들었어요. 그 방면의 전문가를 초청하는거죠. 저는 사실 강의보다는 공연을 더 좋아해요. 그래서 음악가나 배우들이 와서 공연할 때를 더 기다리죠." 닐손이 웃으며 말했다.

다양한 취미 활동은 그들이 얼마나 즐겁게 노후를 보내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날이 추워져 바깥 활동이 힘들면 여자들은 주로 '베틀이 있는 방'에 모여 다양한 용도의 천을 짜고, 남자들은 주로 각종 공구들이 구비되어 있는 방에서 가구를 만든다. 베틀실에서 할아버지들이 천을 잡아주고, 그것을 풀고 있는 할머니들의 모습은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점심을 먹고 나면 오후에는 미니 도서관에 모여 책을 읽거나 휴게실에서 함께 텔레비전을 보며 이야기를 나눈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휴식을 취하는 방의 선반에는 다양한 보드게임을 할 수 있는 게임판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닐손의 50㎡(15평) 아파트에는 침실과 널찍한 거실, 주방과 화장실, 베란다가 오밀조밀 들어서 있었다. 그의 거실 벽면은 딸들의 사진과 손자·손녀들의 사진으로 가득했고, 인테리어들은 꽤 세련되어 보였다. 거실에 있는 오디오에서 조용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왔다.

요리를 즐겨하는 닐손이 특히 좋아하는 공간은 주방이다. 진한 빨간색의 커튼, 검정 줄무늬의 벽은 서로 잘 어우러져 정열적인 느낌을 냈다. "주방이 예쁘다"는 말에 닐손은 흡족해했다.

"내 솜씨는 아니에요. 바이올리니스트인 딸이 꾸며주고 간 겁니다."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일과를 설명해줄 수 있느냐는 물음에 닐손은 간단하게 답하기 어렵다는 듯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어갔다.

"하루에 너무 많은 일들을 하니까 설명하기 쉽지 않네요. 음악도 듣고, 날씨가 좋으면 시내에 나가서 영화를 보고, 클럽 같은 데 가서 술마시며 춤도 춰요. 카페에 가서 커피도 마시고, 이 앞에 있는 쇼핑몰에 가보셨어요? 거기 돌아다니면서 쇼핑하는 것도 좋아해요. 요즘엔 낚시에 취미를 붙여서 바닷가에 나가서 청어를 많이 잡아와요. 제가 요리해서 먹기도 하고 많이 잡으면 이웃집에도 나눠줍니다. 인터넷도 하고…. 여기 사는 친구들과 게임도 해요."

닐손에게서 느껴지는 에너지는 흔히 연상되는 '노인'의 이미지와 거리가 멀었다. 노쇠, 병약함보다는 활력과 건강함이, 수동성보다는 능동적인 느낌이 더 강했다.

박씨의 긴 하루

박씨의 하루 가운데 유일한 즐거움은 아침에 복지관에서 배달해주는 도시락이다. 그나마도 배달 시간이 매일 조금씩 늦어지고 있어 아침마다 마음이 상한다.

"하루에 제대로된 식사 그거 한번 먹는거야. 아침에 눈뜨자마자 도시락 올 시간을 계속 기다리지. 오늘 아침처럼 오전 11시 넘어서 가져오면 먹어도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아. 너무 배고파서 허기져 있으니까 물 말아서 허겁지겁 먹어버려."

박씨는 퇴행성 관절염을 앓고 있어 걷는 게 편치 않다. 지팡이를 짚고 겨우 걷는다. 다리가 불편한 그는 하루 대부분을 쪽방에서 보낸다. 오전은 배달올 도시락을 기다리며 버틴다. 그 도시락을 먹고난 후부터 그의 힘겨운 하루 보내기가 시작된다. 박씨는 손때 묻은 성경책을 내보이며 말했다.

"이걸 내가 이 쪽방으로 들어온 이후 읽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약 500번을 읽었어. 이거 보여요? 내가 읽을 때마다 점으로 찍어서 표시한거야."

도시락이 배달되지 않는 주말은 지옥같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어두컴컴한 쪽방. 우울한 기운을 이겨내지 못할 때는 고혈압 때문에 자제하고 있던 술을 잔뜩 마시고 취해버린다. 술 기운에 의지해 도시락이 오는 월요일 아침까지 버티는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방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책꽂이가 눈에 들어왔다. 기자의 눈길을 따라 고개를 돌리던 박씨가 말을 이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게 책 읽는 겁니다. 다 읽고 나면 인상 깊은 구절 적어놓고, 다른 사람들에게 선물해주고 그래. 그 다음 좋아하는 게 클래식 음악 듣는 거야. 오페라 보는 것도 좋아해."

박씨를 돌봐주고 있는 복지관에서는 가끔씩 박씨에게 연극표와 클래식 음악 공연 표를 가져다준다. 박씨는 "내 인생이 더 연극 같기 때문에 연극은 시시하고, 클래식 음악 공연은 좋아하기 때문에 꼭 찾아가서 본다"고 했다.

박씨가 클래식 음악 공연을 보러 가기 위한 여정은 힘겹지만, 그래도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기어코 가고야 만다. 그것은 매일 쪽방에 갇혀있다시피하는 생활에 활력을 가져다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클래식 음악 연주를 듣고 오면 "가슴이 촉촉해진다"고 했다. "예술의전당에서 공연을 하는 날에는 힘들게 지하철 3호선을 타고 남부터미널역에서 내립니다. 그러면 그 지하철 역에서 예술의전당까지 거리가 650m야. 왕복이면 얼마야. 1300m지? 마을버스비 아끼려고 이 다리로 예술의전당까지 걸어가. 그날 공연을 상상해보면서 걷는거지. 아낀 버스비에 돈 좀 더 보태서 공연 팸플릿을 사서 봐. 연주자가 누구인지 정도는 알고 있는 게 음악을 듣는 사람의 예의라고 생각하거든"

노후 준비는 젊은 시절 열심히 일한 게 전부

닐손과 박씨는 모두 70대. 그러나 그들의 생활은 천양지차다. 닐손은 돈 걱정 없이 취미 생활을 하면서 여생을 즐기고 있지만 박씨는 자존심을 팔아 "도와달라"고 요청하지 않으면 하루 끼니 챙겨먹는 것조차 힘겹다. 박씨의 방 한구석에는 햇반 다섯개가 쌓여 있었다. 박씨는 햇반을 가리키며 "비상식량"이라고 말했다.

"복지관에서 다 먹고 나면 연락하라고 하거든. 그런데 매일 부탁하고, 손내미는 게 쉽지 않아. 내가 아껴 먹는 게 마음이 훨씬 편해. 주위에서 '할아버지는 자존심 때문에 안된다'고 뭐라고 하는데 나도 지키고 싶은 게 있지."

한국에서는 궁핍한 노후를 보내는 사람들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다. 자업자득 아니냐는 것이다. 젊은 시절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하지 않은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닐손의 '편안한 노후'는 젊을 때 치밀하고 악착같이 대비한 결과가 결코 아니다. 나이를 먹으면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것일 뿐이다. 돈이 많지 않아도, 몸이 아프거나 불편해도 예외는 없다.

닐손은 은퇴하기 전까지 용접기능공으로 일했다. 30년 넘게 건축 현장을 누볐다. 닐손은 "많은 돈을 번 건 아니었지만 두 아이를 키우고 생활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65살에 은퇴했다. 미래를 위한 저축은 따로 하지 않았다. 그가 노후를 위해 한 일은 그저 묵묵히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한 것, 그게 전부다.

그는 현재 월 1만1000크로나(약 181만9400원)의 연금을 받아 생활하고 있다. 이 돈에서 월 4500크로나를 현재 살고 있는 실버단지내 아파트 상환금으로 내고 나머지 돈으로 부족함 없이 살아간다.

"도심 실버타운서 요리·쇼핑… 하루가 짧아요" 스웨덴 독거노인

박씨는 자신의 젊은 시절에 대해 "앞만 보고 달린 시절"이라고 표현했다. 박씨는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유명 사립대를 졸업했다. 졸업 후에 당시에는 '생산'보다는 '유통' 쪽이 더 돈이 되겠다 싶어 유통관련 사업을 시작했다. 잘나갈 때는 전국에 6개 지사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제품 수입을 위해 독일과 미국 등으로 해외 출장을 다닐 때만 해도 이런 인생은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위기는 1997년 2월 회사 문을 닫으면서 한꺼번에 몰려왔다.

"외환 위기가 닥치기 전부터, 사업하는 사람들은 이미 그 징후를 감지하고 있었어. 곪아가고 있던 때지. 점점 유통쪽도 경쟁이 치열해지고 수익이 많이 안 나면서 다른 사업을 시작하려고 문을 닫았어. 그때 가족들하고 또 큰 문제가 생겨서 그때 이후로 나는 주욱 혼자야. 가족 이야기는 묻지 말아. 다른 사람에게 한번도 이야기 한 적 없어"

이후에 가족들과 등 돌리고 혼자 살면서 오토바이 서류 택배 사업을 시작했지만 연이은 오토바이 사고로 사업을 접어야 했다. 추락하는 박씨의 인생에 날개는 없었다. 잇단 사업 실패로 가진 돈도 떨어지면서 여관을 전전하다가 급기야는 현재 살고 있는 쪽방으로 흘러들어 왔다. 박씨는 자식들이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 수급자 자격이 안된다. 대신 주위 사람들의 '온정'에 기대어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처음 쪽방에 들어올 때는 돈이 조금 있어서 스스로 쪽방 월세를 해결했지만, 지금은 그 돈마저 떨어져 월세 24만원을 박씨를 후원해주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서 내고 있다.

"왜 수급자 기준을 '결과'만 가지고 따지는지 모르겠어. 자식이 있어도 부양하기 힘든 경우가 있는데 말야. 어떤 부모가 자식이 어렵게 겨우 겨우 살아가는데 거기에 짐이 되겠어. 차라리 나와서 고생하더라도 이렇게 사는 걸 택하지."

박씨는 자신의 인생이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모른다. '업보'라고 생각하려고 아무리 잘못했던 일을 떠올려봐도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고 한다. 일요일마다 교회에 나가서 눈물을 쏟으며 하늘에 묻고 또 물었다.

"원망스러운거지. 도대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기에 이렇게 됐을까. 한 순간에 내리막길을 탔어. 아무리 생각해봐도 모르겠어. 왜 이렇게 된 건지, 아무리 물어보고, 물어보고 되짚어봐도 모르겠어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으면 옆에 있던 사람이 몰래 휴지를 놓고 가고 그랬어. 그러면 마음이 좀 괜찮아지기도 했지. 지금은 다리가 아파서 교회도 못나가."

열심히 살았지만, 나를 돌보기도 힘들어

박씨는 궁핍과 질병의 이중고를 겪고 있다. 류마티스에 퇴행성 관절염으로 발가락이 점점 오그라들고 있다. 걷는 것조차 힘든 박씨에게 혼자 생활하는 삶은 쉬운 게 하나도 없다. 손가락도 저리고 힘이 없다. 얼마 전에는 단 하나 있던 머그컵마저 깨뜨려 커피를 타마시며 느꼈던 '행복'을 잃었다. 복지관에서 쌀을 받는다고 해도 혼자 쌀 씻는 것조차 힘겨워 이내 밥짓는 것을 포기하고 만다. 박씨에게 '스웨덴의 노후복지'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는 "그런 꿈 같은 이야기는 바라지도 않는다"며 "수급자가 돼서 월 얼마 정도만 받아도 좋겠다"고 했다.

아무리 '꿈 같은 이야기'라지만 상상해볼 수는 있다. 만약 박씨가 스웨덴에서 살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박씨는 당장 사회보장 사무소로부터 세금 5%를 제한 최저보장연금 6795크로나(약 111만 9000원)를 매월 받을 수 있다. 박씨를 부양할 자식이 있다는 것은 별개다. 박씨가 사업을 하면서 세금을 냈던 게 인정되면 받을 수 있는 연금이 더 높아질 수 있다. 박씨는 혼자서 생활하기에는 관절염으로 불편함이 많기 때문에 공립 양로원에서 생활할 확률이 높다. 공립 양로원 집세와 식비로 약 5600크로나(약 91만 8792원)를 내고 나머지는 생활비로 쓰면 된다. 만약 남은 돈으로 생활이 힘들면 기초자치단체가 공공부조로 보충해준다. 또한 활동하는 데 장애가 있기 때문에 수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수발 비용 역시 기초자치단체가 지급한다.

지난 6월4일 박씨처럼 몸이 불편한 노인들이 모여 살고 있는 스웨덴 스톡홀름시 나카구에 위치한 훼테판 공립 양로원을 찾았다. 공립기관이기 때문에 세금으로 운영된다. 이곳에 살고 있는 노인들은 집세와 식비를 지불한다. 양로원이 그들의 수발비용과 인건비, 각종 공과금을 집세 수입과 같이 계산해 지방정부에 청구하면 지방정부가 필요한 운영비를 지급하는 형식이다.

훼테판 양로원은 경치 좋은 호수와 숲에 둘러싸여 있었다. 스웨덴에서는 주로 장애인들이나 노인들을 위한 시설 기관은 그린벨트 인접 지역과 같이 경치 좋은 곳에 위치한다.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공기좋은 주변 지역을 편하게 산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배려다. 훼테판 양로원은 총 57개의 소형 아파트 형태로 이루어져 있어 이 시설에 들어온 노인들이 각자의 방에서 생활한다. 이들을 돌보는 직원들은 24시간 배치되어 있다. 치매 노인들이 있는 곳에는 치매노인 1명당 간호사 1명이 1 대 1로 배정돼 있다.

양로원의 카리나 필리포빅 원장은 "귀여운 할머니 한분을 만나보자"며 2층의 한 방으로 기자를 안내했다. 이 방의 주인은 섀스틴 프리스크. 97살의 나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곱고 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는 백발의 할머니였다. 15년 전에 남편과 사별하고 재가복지사의 도움을 받으며 혼자 살았지만, 넘어져서 대퇴부가 골절된 이후 이 양로원에 들어왔다. 프리스크는 "이곳의 생활이 무척 마음에 든다"고 했다.

"나이 들면 밤에 화장실을 많이 가요. 혼자 살 때는 재가복지사가 낮에 와서 도와줬는데 혼자 있는 밤이 되면 화장실 가는 것도 막막하거든요. 이곳에는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도와줄 사람이 있어서 안전해요. 여기 들어오니까 친구들도 있고, 주말이면 딸들과 손자·손녀, 증손자들이 놀러와서 예쁜 꽃들로 방 장식도 해주고 가요."

프리스크의 방은 프리스크 생활에 맞게 설계돼 있다. 양로원 직원들이 프리스크를 쉽게 이동시킬 수 있도록 침대에 공중 이동식 장치를 설치했다. 화장실도 프리스크가 사용하기 쉽게 장애인 화장실처럼 곳곳에 안전바를 설치했다. 프리스크가 휠체어를 타고 다니기 때문에 50㎡(15평)의 공간에는 턱이 없다. 만약 프리스크가 돌발적으로 쓰러지거나 넘어지면 자동 경보가 울린다.

스웨덴 나카구의 구청 직원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스웨덴은 몸이 건강하든, 불편하든 '살려고 하는 의지'만 있으면 누구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나라입니다."

프리스크가 생활하고 있는 방은 불편함 없이 생활할 수 있도록 맞춤 설계된 듯한 환상적인 시설이었다. 이런 곳에서 생활하려면 도대체 얼마가 드는 걸까. 아무리 시설이 좋아도 돈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림의 떡'이 아닐까. 플리포빅 원장이 답했다.

"돈이 있고, 없고는 중요하지 않아요. 어떤 노인이 여기에 들어오겠다는 신청을 하면 그 사람에 대한 기본 정보 파악을 하죠. 이곳 방값을 감당할 만한 돈이 있는지에 대해서도요. 본인이 경제적 능력이 있거나 자식들이 지불할 능력이 되면 그렇게 해요. 그럴 형편이 안되는 노인은 집값을 보조 받을 수 있어요. 그와 반대로 경제적 여유가 있는 분들은 나라에서 대주는 간호비까지 자신이 지불해요."

프리스크의 경우에는 두 자녀가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 방값과 식비로 월 6000크로나(약 99만4019원)를 지불하고 있다. 수발 비용은 국가가 지불한다. 다른 기타 생활비는 그녀의 연금으로 해결한다. 결혼하기 전에 잠깐 식품점에서 일했던 게 전부인 프리스크는 최저연금 6795크로나를 받는다.

프리스크는 "나는 이제 돈관리 할 능력이 안되기 때문에 은행과 자식들에게 맡겼다"고 했다. 그녀가 하루에 가장 집중할 때는 이곳에 살고 있는 다른 노인들과 빙고게임을 할 때다.

"움직이고, 많이 생각하는 건 이제 너무 힘들어요. 바깥 활동도 어려워서 산책도 가끔씩 겨우 할 수 있어요. 그래서 가장 좋아하는 일이 많은 힘이 들어가지 않는 빙고게임이죠."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필리포빅 원장이 갑자기 "인근 유치원에서 유치원생들이 공연하러 왔으니 같이 1층으로 내려가자"고 했다.

오전 11시. 훼테판 양로원 1층 식당에 휠체어를 탄 할머니·할아버지들이 속속 모여 들었다. 서로 키가 엇비슷한 8명의 귀여운 유치원 생들이 수줍은 듯 저마다 땅을 쳐다보며, 허공을 바라보며 서 있다. 기타 반주가 흘러나오자 열심히 율동을 하며 노래를 하기 시작한다.

한 곡 한 곡이 끝날 때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마치 자신의 손자·손녀인 듯 애정이 듬뿍 담긴 눈빛으로 열렬하게 박수를 보냈다. 옆에서 유치원생들이 부르는 노래 가사를 통역해주던 가이드가 귓가에 속삭였다. "나이 먹어서 병들고 힘들면 딱 이곳, 이 자리에 와 있었으면 좋겠다 싶죠?"

세금 잘 내야 좋은 사회 만들어

국가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사각지대에 살고 있는 박씨가 상황이 나빠질 때마다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이 없었다면 그의 인생은 어떻게 흘러갔을지 모른다.

"아파도 견디다보면 어느날 뭐 봉사하는 의사들이 방문하고 그래. 내가 고혈압이 있거든. 의사가 진찰하고 약주면, 그 약 먹지. 평소에는 나쁘면 나빠지는 대로 좋으면 좋아지는 대로 두는거야"

그러나 6월2일 나카 노인전문병원에서 만난 메르타 요한슨(88)의 삶은 박씨와 다르다. 그녀는 현재 병원에서 심장병으로 치료 받다가 유방암까지 발견되면서 방사선 치료를 받고 있다. 그녀는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를 "성인이 돼서 직장을 구할 때까지"라고 답했다.

"시골의 가난한 집에서 9남매의 넷째로 태어났어요. 원래 14남매인데 5명은 낳자마자 죽었어요. 형제가 많으니까 아무래도 집안 형편이 더 어려워졌죠. 18살 때 독립해서 스톡홀름 시내로 왔어요. 일하며 돈벌기 시작하면서 형편이 조금씩 괜찮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제일 먼저 시작했던 일이 가정 도우미 일이었어요. 그 집에 들어가서 먹고 자고 생활하면서 그 집 일 도와주는 일이었죠."

가정도우미로 일하던 중 요한슨은 중간에 재가복지사로 직업을 바꿨다. 몸이 불편한 노인들 집에 가서 매일 장봐주고 청소 해주고 빨래도 해주는 일이었다.

"돈버는 일이기도 했지만 의미있는 일이기도 했어요.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즐겁잖아요. 내가 맡은 할머니 모시고 공기 좋은 곳으로 산책도 나가고, 쾌적하게 지내시라고 청소도 말끔하게 해요. 재미있는 이야기도 해드려요. 할머니들이 즐거워하면 보람을 느끼면서 더 열심히 일했던 기억이 납니다."

"힘들게 일해서 번 돈인데 많은 돈을 세금으로 내는 게 아깝지 않았냐"는 질문에 요한슨의 눈빛이 차가워진다.

"그런 생각은 하면 안돼요. 젊었을 때는 내가 재가복지사로 일하며 노인들을 도왔지만, 지금은 내가 그 수발을 받는 늙은이가 됐잖아요. 젊을 땐 내가 세금을 냈지만 지금은 연금을 받고, 이렇게 수발까지 받고 있잖아요. 내가 죽을 때까지 치료비는 공짜죠. 물론 젊을 때 이렇게 혜택을 입을 생각을 하고 세금을 낸 건 아닙니다. 그러나 늙으면서 세금을 잘 내야 사회가 잘 유지된다는 걸 알았어요."

< 스톡홀름(스웨덴) | 유희진기자 worldhj@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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