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거듭난 삶 2019. 3. 25.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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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를 알자

 

: [ 13:12-14]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14)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 13: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 '깊고'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에콰센'

'진전되었다', '많이 지났다' 의미를 갖는

'프로코프토' 부정 과거 시제로서 '밤이 많이 지났다' 의미도 포함되지만,

 

'이미 밤이 지났다' 의미가 더욱 많이 내포되어 있다.

 

그리고 낮이 '가까왔으니'(엥기켄) 완료형으로 '이미 있다' 의미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천국 선포를 시점에서

이미 하나님 나라가 왔다(엥기켄) 사실에 비추어 ,

이러한 해석이 더욱 타당하다.

 

한편 '' 현세상이라면 '' 구원이 있는 천국을 가리킨다.

 

본문은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말미암는 신천신지(新天新地) 가까왔음을 말해주는데

종말의 가까움에 관한 바울의 표현에 대해 독자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 임하지 않느냐 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우리는 이것에 대해서 가지를 생각해야 한다.

 

(1) 바울의 '가까움' 대한 강조를 인간들이 계산하는 연대기적 의미에서가 아니라 '예언적 전망'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

 

이것은 마치 베드로가 '주님께는 하루가 같고 년이 하루 같다'(벧후 3:8) 말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있다.

 

(2) 바울의 '가까움' 대한 강조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주목해야 한다.

그것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감옷을 입자" 결론으로 향하고 있다.

 

이는 현재적 경건의 삶을 촉구하는 것이다.

지금은 이미 빛이 왔기 때문에 낮의 세력이 성도들에게 임하였으나

실제로는 밤이다.

 

성도들은 여전히 악한 세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 16:8 주인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지혜로움이니라).

 

따라서 지금 절실히 요청되는 것은 죄의 세력에 대한 전투적인 삶이다.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 - 바울은 낮과 밤에 다른 옷을 입는 것에 착안하여

지금 벗어버려야 것과 새로 입어야 것을 말하고 있다.

 

본문은 어두움으로 상징되는 죄악

사단의 일과 빛으로 상징되는 하나님의 일의 대비로 보아야 것이다.

 

어두움을 악한 세력으로,

빛을 선한 세력으로 대비시키는 것은

당시에 일반화된 관행이었으므로 독자들은 이것의 의미를 이해할 있었을 것이다.

 

가령 쿰란 문서에 의하면 사람들은 부류로 나누인다.

 

부류는 어두움의 사자에 의해 지배를 받고,

다른 부류는 빛의 왕자에 의해 지배를 받는다.

 

그러다가 말세에는 이들 세력이 싸움을 벌이게 되는데

그것을 가리켜 '빛의 아들들과 어두움의 아들들의 전쟁'이라고 한다(Vermes).

 

바울은 전쟁용사의 무장(武裝) 대해서 6:13-17 자세히 기록한 있는데,

 

( 6:13-17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15)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 모든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구절의 '갑옷' 성도의 전투적인 삶을 보여준다.

 

성도들은 비록 어두움의 세상과 접하며 살지만,

성도의 실체는 낮의 자녀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싸움이 수반되는 것이 필연적이다.

 

하지만 성도의 싸움은 승리가 보장된 것이므로

주의 강림으로 드러날 영광과 변화될 삶을 기대하며 살아간다.

 

(고후 3:18 우리가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4:14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니).

 

 

 

[ 13: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

 

'낮에와 같이'라는 표현은 지금이 밤이라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바울이 분명하게 말하는 것은

성도들이 실제로 낮에 살고 있다고 여기고 생활하라는 것이다.

 

'방탕과 술취함', '음란과 호색, '쟁투와 시기' 나열되고 있는데

이러한 행위들은 단정히 행하는 것과 상반된다.

 

이러한 무절제한 성적인 방탕과 시기로 인한 싸움은

죄된 속성에서 비롯된 것이고 이러한 속성을 이겨내지 못하면

파멸의 길로 수밖에 없다.

 

한편 바울이 본서를 쓰고 있던 고린도 교회는

이러한 분위기에 쉽게 접할 있는 곳이었다(Harrison).

 

 

 

[ 13:14]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예수 그리스도로 입고 - 구절은 신자의 전신 갑주( 6:13-17) 요약적으로 명제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칼빈(Calvin) 본문을 가리켜 '영의 권능으로 강하여지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함으로써 모든 성결의 의무를 감당할 있도록

준비된 상태를 뜻한다' 하였다.

 

그리스도로 더불어 입는다는 말은

침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참여한 됨을 의미한다.

 

(6:1-10 그런즉 우리가 무슨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2) 그럴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가운데 살리요

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줄을 믿노니

9)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10)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 한글 킹제임스 성경에서는 본문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입고 정욕을 채우기 위하여

육신을 위해 계획하지 말라"라고 번역하고 있다.

 

여기서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은 육신의 자체를 금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욕을 추구하기 위해 몸을 내어두지 말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육신에 관한한 모든 것이 악하다고 하는 의미가 전혀 없다.

다만 그것이 정욕을 충족시키려는 것으로 움직여질 죄악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