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거듭난 삶 2019. 4. 7.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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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선교관

 

: [ 15:14-15]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

15) 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로 인하여 더욱 담대히 대강 너희에게 썼노니

 

 

 

[ 15:14]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

 

 

형제들아 - 바울은 로마 교인들에게 부드럽고 다정한 호칭을 사용하여 친밀감을 형성하고 있다.

 

용어는 본서에서 자주 쓰는 표현으로 로마 교인을 향한 애정어린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

 

*참조 : (1:13;7:1; 8:12; 10:1; 16:17)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 당시 로마의 성도들에게 약간의 불화와 갈등은 있었지만(14) 전체적으로 로마 교회는 신앙의 성숙한 면모가 가득했다.

 

'가득하고'(메스토이) 충분히 가득찼다는 말로서 1:29에서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찼다는 말을 했을 때도 사용된 단어다.

 

(1:29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 하는 자요)

 

'선함' 헬라어는 '아가도쉬네스' 여기서는 선천적 기질로서의 '선함, 착함' 아니라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인해 속에서 드러나는 '새사람의 인격의 덕성 도덕적인 성숙함' 의미한다.

 

'모든 지식'(파세스 그노세오스) 로마의 성도들이 배울 것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기독교 신앙에 대한 이해로서(J. Murray)

저희에게 필요한 구원의 지식이 있어서 안전하고 확실하게 일을 진행할 있다는 뜻이다(Lenski).

 

나아가 고전 8:1, 7, 10, 11에서도 언급되고 있는 '그노시스'라는 단어는

 

(고전 8:1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7 그러나 지식은 사람마다 가지지 못하여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악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10-11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어찌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11) 그러면 지식으로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구원에 관한 지식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대한 통찰과 이해를 나타내므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오해했지만

 

로마의 성도들은 바울이 지금 말하고 있는 하나님의 언약의 내용과 계획을 이해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Dunn).

 

(고후 2:14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4:6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10:5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 로마의 성도들이 갖춘 성숙한 신앙의 다른 면을 말하고 있다.

 

'서로'(알렐루스) 약한 자들과 강한 자들 유대인 신자들과 이방인 신자들을 가리킨다.

 

저희가 이렇게 서로 권할 있었던 것은 그들에게 선한 마음과 충분한 지식이 있어서

저희 믿음과 생활에 필요한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울이 아직 방문하지 않은 로마 교회는 목회자들이 있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들은 항상 피차 권면하여 진리에서 이탈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 가운데 거할 있었던 것이다.

 

(살전 5:11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같이 하라).

 

 

나도 확신하노라 - 헬라어 성경에는 재귀 대명사 '아우토스' 삽입되어 ' 자신도 확신하노라' 기록되어 있다.

 

이는 가지 뜻으로 해석할 있다.

 

(1) 다른 사람의 객관적인 증거와 평가를 떠나서 바울 자신의 깊은 확신을 강조하는 표현이다(Meyer, Dunn).

 

(2) 어떤 객관적인 자료에 근거해서 확증하고 확신한다는 표현이다(E.F. Harrison).

 

우리는 여기서 위의 견해가 작용한 가운데서 바울이 로마 교회에 대한 확신을 선언했다고 보아도 크게 잘못됨은 없겠으나, 번째 견해가 자연스런 해석이라 있겠다.

 

왜냐하면 '확신하노라'(페페이스마이) 수동 완료형이므로 자신의 추측에서 라기 보다는

로마 교회의 사정을 있는 어떤 근거에 의해서 확신했다고 보아야 것이다.

 

바울의 이러한 선언이 믿을 만한 증거에 바탕을 확신이 아니라면

이것은 마음에 없는 칭찬을 감추기 위한 과장된 말에 불과한 것이다.

 

 

 

[ 15:15] 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로 인하여 더욱 담대히 대강 너희에게 썼노니

 

 

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에파나밈네스콘) 쓰지 않은 용어로 신약성경에서 본절에만 나오는데 뜻은 '어떤 교리를 반복한다' 의미이다.

 

그들이 알지 못한 어떤 새로운 것을 가르친다는 뜻이 아니고 이미 알고 있는

복음의 진리를 회상시킨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바울은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라고 했을까?

이유는 다음과 같이 생각해 있다.

 

(1) 복음의 원리와 명령을 안다고 하면서도 그들의 행함에 부족함이 있는 것을 보고 그것을 굳건히 세우기 위해서다.

물론 성숙한 신앙적 면모를 갖춘 로마 교회였지만 온전함에 이른 것이 아니었기에

바울은 다시 한번 진리를 일깨워 주어 로마 교회를 튼튼하게 세우려고 하였을 것이다.

 

(2) 이미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이는 수신자들의 신앙의 질을 존중해 주는 예의 바른 태도이다(Dunn).

 

(3) 또한 여기서 가르친다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구태여 '생각나게 하려고' 용어를 것은 바울의 신앙 인격의 겸손한 표현법이다(Hendriksen).

이는 형제를 권면할 때에 상대의 인격을 존중해 주는 모범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인하여 - 로마의 성도들과 마찬가지로 바울에게 있어서도 하나님의 은혜는 특별한 의미와 감회를 주는 것이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 카린 도데이산 모이 휘포 데우)

가지로 해석될 있다.

 

(1) 그리스도 안에서 만세 전에 택정함을 입은 것을 말한다.

 

( 1:3-6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주시되

4)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오직 하나님의 일반적인 주권으로 선택함을 받은 것을 바울은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라고 노래했다.

 

(2)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으로 인해 구원함을 받은 것을 하나님의 크신 은혜라고 강조했다.

( 2: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8 너희가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지난 무지 가운데 있을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핍박하고 믿는 자를 멸절(滅絶)시키려 했던 악한 자신을 부활하신 주님께서 다메섹 도상에서 친히 만나 주심으로 자기를 불러 회개시키고 구원해 주신 사건을 그는 평생 감격하며 하나님의 크신 은혜라고 찬송했다.

 

바울 사도는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대적했던 자신이 구원을 받은 것이

하나님의 측량할 없는 은혜라고 그의 서신 곳곳에서 고백하고 있다.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되었느니라;

 

2:11-14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12)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세상 정욕을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세상에 살고

13)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2:9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간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3) 사도적인 직분과 사역에 관련된 고백으로서 바울은 자기의 사도 직분을 하나님이 주신 은혜라고 말한다.

 

( 9:15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사람은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고전 15:9-11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

10) 그러나 나의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11) 그러므로 내나 저희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

 

3:7-9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

8)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작은 나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9)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딤전 1:12-13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13)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교회와 믿는 자를 핍박하여 주님을 대적했던 죄인 중에 괴수인 자신을 불러, 구원해 주실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이방인의 사도' 삼아주신 것이야말로 은혜 중의 은혜라고 간증하는 것이다.

 

( 1:1 예수 그리스도의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5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

 

1:1 사람들에게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죽은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바울은,

 

15 그러나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2:9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나와 바나바에게 교제의 악수를 하였으니 이는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저희는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이중 본문에서 말하는 은혜는 문맥상 번째 견해가 가장 타당한 듯하다.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예수께서 부르시고 세우신 사도적인 직분과 사역을 뜻한다(Murray, Dunn).

 

 

더욱 담대히 - 말은 비교적인 의미가 내포된 부사로서 바울 사도의 다른 서신보다도 본서를 '더욱 담대한 마음으로' 썼음을 나타낸다.

 

(12: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바울은 자신이 로마 교회를 세우지 않았고 또한 남의 위에 건축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있었으나 하나님께서 은혜로 택정하시고 이방인의 사도라는 막중한 사명을 맡겨 주심을 생각할 그들을 권면할 자격을 찾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대담하게' 말할 있었다.

 

 

대강(아포 메루스) - 이는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1) '부분적으로', 혹은 '어떤 곳에는'이라고 해석될 있다(Meyer).

(2) '다소', 또는 '어느 정도'라고 해석될 있다(Murray, Godet).

 

여기서 우리는 번째 해석을 취한다 해도 크게 틀렸다고는 없겠으나,

번째 견해를 취함이 적절한 해석이라 하겠다.

 

왜냐하면 앞에서 말한 '더욱 담대히' 말은 (1)번의 해석과 연결시킬 비교적인 의미가 선명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 '어느곳에서는 내가 대담하게 썼다' 자연스럽게 연결시킬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어느 곳에서'(부분적으로) 아래의 경우 등을 있다(Meyer).

 

(6:12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노릇 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19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12: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13:3 관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13-14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14)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14:3-4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못하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저를 받으셨음이니라

4) 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뇨 섰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주인에게 있으매 저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저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니라,

10 네가 어찌하여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13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판단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으로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을 주의하라,

15 만일 식물을 인하여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치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식물로 망케 하지 말라,

20 식물을 인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말라 만물이 정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하니라)

 

 

위와 같은 구절들에서 바울은 더욱 담대한 권면을 하고 있다.

 

썼노니(에그랖사) - 말은 '과거에 ~ 했다' 단순 과거형 동사로서 바울 사도가 이제까지 로마서를 사실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