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요한복음의 저자에 대해서

거듭난 삶 2019. 4. 25.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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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의 저작문제

 

 

요한복음은 누구의 ()인지,

언제 집필되었는지,

이는 성서학상의 문제이다.

 

요한복음이라고 있음으로 사도 요한이 것이라고 하는데,

이는 교회의 전설에 의해 그렇게 말하는 것으로서,

근세의 성서학자는 쉽게 설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실로 요한복음의 저작문제는 이것을 성서 연구의 결판(climax; 극점 the turning point)이라고 수가 있다.

 

여기에 요한복음은 사도 요한의 작이 아니라는 서군 있는가 하면,

이에 대하여 요한복음은 사도 요한의 작이라고 하는 동군이 있는 것이다.

 

교회의 선교사에 의해 그리스도교를 배운 우리나라(일본) 그리스도 신자의 눈으로 ,

요한복음은 사도 요한의 작이 아니라고 하는 성서학자가 있다는 것을 들으면,

아주 이상하게 생각되지만, 그래도 사실은 그러한 것이다.

 

요한복음의 요한설을 주장하는 서군 중에,

고니시유끼나가, 오오다니 요시다까, 우끼다 히데이에 등이 아니고,

근세 성서학자 중에 쟁쟁한 평판 있는 효장(veteran general) 있는 것이다.

 

중에, 근세 성서학의 원조로 불리는 튀빙겐 대학의 신학교수

페르디난도 크리스천 바우르(Ferdinand Christian Baur바우르) 있다.

 

그는 과학계에 있어서 다윈(8 352역주) 가지는 (차지하는) 지위를

신학계에 있어서 가지는 자이다.

 

1835(45)년에 그의 대저 '사도바울' 출간되어 신학계는 진동했던 것이다.

 

교회의 감독과 목사는 말한다. 바우르의 학설은 이미 파기되었다고.

옳다, 일부분은 이미 파기되었음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근본은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다윈 출현 없이 오늘의 과학이 없었듯,

우바르가 나오지 않고서 오늘의 성서 연구는 없었던 것이다.

 

바우르의 학설을 그대로 받고 받지 않는 것은 각자의 자유이다.

하지만 바우르 사람에 대하여 누구나가 존경을 하지 않을 없다.

 

교회의 선교사가 성서학계의 위인을 우리에게 소개하지 않는 것은,

그들의 편협에 의한 것이 아니면, 그들의 무학에 의한다고 하지 않을 없다.

 

그런데 신학계의 혁명자는 대담하게 또는 명백하게

요한복음의 비요한설을 주창 것이다.

 

바우르에 이어서 카임(Theodor Keim카임) 있었다.

 

카임의 (저서) '나사렛의 예수'라고 하면,

19세기에 있어서 출간된 최대의 그리스도 전이다.

 

박식경건, 세계에 관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은 ()이다.

그리고 카임도 역시 스승 바우르와 함께 요한복음의 비요한 설을 말한 것이다.

사람 있고 있음으로서 서군의 위력은 업신여길 없음을 안다.

 

기타에 바이제커(Weizsacker) 있다.

숄텐(Scholten) 있다.

홀츠만(Holtzmann) 있다.

르낭(9 10역주) 있다.

사바띠에(Sabatier) 있다.

하제(Hase) 있다.

 

모두가 1류의 성서학자이다.

그리고 그들은 (pen) 모아 요한복음의 비요한설을 주창하는 것이다.

 

우리들은 이른바 정통교회(orthodot) 선교사에 따라,

서군 신통할 없고, 비요한설 취할 못된다고 말해서는 된다.

 

일개인의 보는 바로서 한다면,

만약 학식으로서 한다면 우세는 서군에 있고 동군에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동군에 교회의 후원 있음에 대하여 서군에 이것 없을 아니라,

도리어 반대 있음에 비추어 ,

서군의 세력이 더욱 존경해야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실로 동군에게 교회의 후원 있음은 약점이라고 하지 않을 없다.

 

교회에 권력 있고 금력 있다.

찬성을 얻어, 권력아종의 혐의를 받지 않을 없다.

 

그러므로 공평한 학자가 기피해야 것은 교회(교권) 찬성이다.

그는 교회를 떠나서 그의 학구에 종사해야 것이다.

 

특히 그가 말하는 학설이 불행하게도 교회에 부합하는 경우에 있어서 그러한 것이다.

교회는 학문의 유혹자이다.

거기 사로잡힌바 , 학문의 독립을 유지하기에 아주 곤란하다.

 

하지만 요한복음의 요한설을 유지하는바 반드시 교회의 고용인은 아니다.

 

세상에는 순수한 학문의 입장에서 요한복음의 요한설을 주창하는 자가 적지 않은 것이다.

 

특히 유니테리안(2 78역주)주의의 학자로서 주장을 이가 있음은 주의해야 사실이다.

 

미국은 학자의 빈곤한 나라인데, 하지만

 

에즈라 애버트는 세계적인 성서학자였다.

그는 유니테리안주의(Uniterianism) 사람으로 하버드대학의 교수였다.

그리고 사람이 요한복음 요한설의 열령한 주창자였던 것이다(그의 저작 The Authorship of the Fourth Gospel 참조).

 

유니테리안이었던 그는 교회에 (신경을 써야 ) 염려는 없었다.

그의 신앙으로서는 요한설 이야말로 가장 알맞은 것이었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는 공평한 학자로서, 요한복음의 요한 저작설을 굳게 취했던 것이다.

 

영국에 있어서도 역시 유니테리안주의의 석학

제임즈 드러먼드(James Drummond),

요한복음의 요한 저작설을 주창했다.

 

그와 아울러 옥스퍼드 대학 교수 월리엄 샌더이(9 28샌디 참조) 창도가 있다.

 

유럽대륙에 있어서는 루타르트(Luthardt), 바이슐라크(Bey schlag), 에발트(10 99역주), 분젠(Bunsen), 네안더(2 172역주), 게스(Gess), 고데(Godet), 슐라터(Schlather)등의 웅장은 모두 동군에 가담하는 것으로서, 해박한 지식과 심원한 신앙으로서 요한복음 요한설을 유지하는 것이다.

 

요한설 반드시 교회가 요구하는 신앙개조의 하나는 아니다.

여기에 역시 깊고 견고한 논거가 있다.

 

우리들은 이단으로써 요한설의 대해서는 됨과 동시에 미신이라고 하면서 요한설을 배척해서는 되는 것이다.

 

여기에 승패가 아직 결정되지 않은 성서학상의 중대 사항이 있다.

우리들은 허심침착 그리스도적 학자의 태도로서 논전의 경과를 목격함과 동시에,

각자 상응의 신앙과 지식으로서,

동서 어느 것이라고,

  지지하는 기치를 선명히 해야 것이다.

 

* 내촌감삼의 요한복음주석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