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거듭난 삶 2019. 6. 4.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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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자기 증거

 

: [ 3:9-15]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가로되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있나이까

10)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

11)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 아는 것을 말하고 것을 증거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 증거를 받지 아니하는도다

12)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13) 하늘에서 내려온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 3:9]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가로되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있나이까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있나이까 - 회의심(懷疑心) 나타내는 질문인지 아니면 보다 정확한 설명을 요구하는 간청인지 명확치는 않다.

 

아무튼 니고데모는 그러한 사건이 어떻지 경험될 있는지 알고 싶었을 것이다.

4절에서 니고데모는 예수께서 말씀하신 중생의 교훈이 '어떻게' 가능하냐고 하는 가능성 자체를 놓고 의문을 제기하였다.

 

반면 본절에서는 일단 가능성만은 인정한 상태에서 방법을 보다 구체적으로 알고자 하여 재차 '어떻게'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유대교에서 이러한 영적 거듭남을 강조하지는 않았지만 36:25-28 등에서는

 

( 36:25-28 영을 너희 속에 두고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것이며

27)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28) 내가 너희 열조에게 땅에 너희가 거하여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예수께서 말씀하신 거듭남과 중생의 원리가 나타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유대교의 간과(看過) 무시 때문에 니고데모는 예수로부터 책망을 받게 된다.

 

(10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

 

사실 니고데모와 같은 바리새인들은 하나의 고정 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들은 혈통상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하나님의 언약에 따라

 

( 17:1-8 아브람의 구십구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2) 내가 언약을 나와 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 하시니

3) 아브람이 엎드린대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가라사대

4) 내가 너와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지라

5) 이제 후로는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

6) 내가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니 나라들이 네게로 좇아 일어나며 열왕이 네게로 좇아 나리라

7) 내가 언약을 나와 너와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8) 내가 너와 후손에게 너의 우거하는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자연히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생각하였으므로, 거듭남에 대한 예수의 교훈을 지극히 생소하다고 여긴 것이다.

 

 

 

[ 3:10]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 우선 예수는 니고데모 개인의 영적 무지를 지적하시고 이어 바리새인들을 위시한 유대인들을 책망 하신다.

 

(11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 아는 것을 말하고 것을 증거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 증거를 받지 아니하는도다).

 

니고데모가 이스라엘의 지도자 층에서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없지만 헬라어 본문에 `'라는 정관사가 사용된 것으로 보아 그는 분명히 중요한 인물이었던 같다.

 

쇠트겐(Schottgen) 뤼케(Lucke) 여기서 사용된 `관사' 산헤드린의 의장 또는 특별한 위치에 있는 현자(賢者) 어떤 특수한 직책을 가리키는 것은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니고데모는 바리새파요, 율법학자요, 산헤드린 의회원으로서 백성들에게 널리 알려진 그리고 공식적인 선생의 위치에 있던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예수께서는 니고데모 자신이 성령의 의미와 위로부터 태어난다고 하는 말의 의미를 구약성경의 연구를 통해 알고 있어야만 했다고 하는 점을 칭호(이스라엘의 선생) 사용하여 상기시켜 주었을 것이다. (Farrar).

 

더구나 니고데모 자신은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 진리와 거짓을 가리고 판별해 내는 일을 맡고 있던 산헤드린의 회원이었기 때문이다.

 

 

 

[ 3:11]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 아는 것을 말하고 것을 증거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 증거를 받지 아니하는도다

 

우리 - 이들이 누구를 뜻하는가에 대해서 여러 학자들의 견해가 있다.

 

(1) 메이어 (Meyer), 주님께서 단순히 자기 자신만을 가리켜 `권위의 복수'(pluralis majestaticus) `경어적 복수' 사용한 것이라고 하였으며,

(2) 바이스(Weiss) 루타르트(Luthardt) `그리스도와 침례 요한',

(3) 벤겔(Bengel) 스티어(Stier) `삼위 일체로서의 그리스도',

(4) 루터(Luther) `그리스도와 선지자들 전체',

(5) 고데(Godet) 웨스트콧(Westcott) 행스텐베르그(Hengstenberg) 등은 `예수와 그의 제자들' 가리키는 말이라고 주장하는데

 

이중 번째와 다섯 번째 주장이 가장 설득력 있는 같다.

 

아는 것을 말하고 - 니고데모를 비롯한 영으로 거듭나지 못한 자들이 알지 못하는 성령의 역사와 활동을 가리킨다.

 

너희 - 니고데모를 위시해서 예수가 행한 표적에 의해 영향을 받았으나, 예수를 믿는 신앙에까지는 이르지 못한 무지한 유대인들을 가리킨다.

 

증거를 받지 아니하는도다 - 오랜 세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지자와 구약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교훈을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예수 당시의 유대 사람들 역시 예수의 교훈을 결코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어두움은 빛을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1:5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여기서 예수는 영생에 관한 자신의 가르침이 단순한 추상적 지식이나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 엄연한 진리임을 분명히 하고서 이를 선포적 차원에서 증거하고 있다.

 

기실 이러한 신령한 지식은 성령의 조명을 통한 믿음의 눈으로만 감지할 있는 비밀에 속한 것이라 하겠다.

 

 

 

[ 3:12]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 , 예수께서 자연 현상인 땅의 일을 예로 들어 설명해 주어도 이해하지 못한 다면

 

`하늘 ' 영적 실재를 직접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 자명하다는 말씀이다.

 

 

 

[ 3:13] 하늘에서 내려온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하늘에 올라간 - 직역하면 말은 `하늘에 계신 ' 뜻이다.

 

구절은 상반절의 의미를 이어 받아서

 

`하늘에서 내려온 인자(人者) 외에는' 누구도

 

하늘에 있는 자가 없기 때문에 하늘 일을 말할 있는 분은 인자 자신뿐이라고 하는 자기 증거가 된다.

 

물론 구약의 인물 에녹( 5:24) 엘리야(왕하 2:9-11) 승천(昇天)했다는 기사가 나오지만,

 

그들은 땅에 살던 자로 하늘에 올라갔으나 그리스도는 하늘에 계시던 자로 땅으로 내려와 하늘의 일을 말씀하셨다는 점에서 확연히 구분된다.

 

여기서 우리는 성육신하신 예수의 인성과 신성에 관한 신학적 의미를 상고해 있다.

 

본절에서 `하늘에서 내려온 ' `인자' 그리고 `하늘에 올가간 ' 모두 동격이다.

 

다시 말해서 인자(人者) 계신 예수는 원래 하늘에 계셨던 성자(聖子) 하나님으로서 인간구원과 창조를 위해 땅에 오신 것이다.

 

따라서 예수는 일체의 모든 인간과는 근본적으로 구별된 분이다.

 

바울의 말대로 사람들은 모두 땅에서 났고 흙에 속한 자이지만

 

(고전 15:47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예수는 영원 전부터 하늘에 계신 분이다. 이러한 성육신의 신비 또한 인간의 유한한 이성(理性)으로서는 도무지 설명할 없는 비밀이다.

 

 

 

[ 3: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같이 인자도 들려야 - 예수는 21:4-9 내용을 들어 자신의 구속 사업 하늘의 일을 설명하셨다.

 

( 21:4-9 백성이 호르 산에서 진행하여 홍해 길로 좇아 에돔 땅을 둘러 행하려 하였다가 길로 인하여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5)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 이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박한 식물을 싫어하노라 하매

6)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7)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하므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9)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생활 가운데서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다가 불뱀에 물려 죽게 되었으나 모세가 장대 위에 매달아 놓은 놋뱀을 쳐다본 사람은 살아날 있게 사건이 있었다.

 

사건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것과 십자가의 예수를 바라보고 믿는 자는 구원을 얻게 것임을 예표(豫標)하는 것이다.

 

이는 놋뱀 자체가 어떤 치유의 능력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님에게로 이끌므로써 구원을 받게 하였던 것이다.

 

유대 학자들은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성경을 공부하거나 오경뿐만 아니라 구약성경 전체의 말씀을 외우는 이로 보내었으므로, 니고데모는 오경에서 인용한 말씀의 내용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특히 뱀은 마귀 또는 사단이라고 불리는 ` ' 상징하며,

 

( 20:2 용을 잡으니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 동안 결박하여)

 

본절의 구리 뱀은 사단의 세력을 없애기 위해 십자가상에서 대속의 죽음을 당한 예수의 회생을 예표한다.

 

따라서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리 뱀을 쳐다봄으로써 그들의 죄악과 그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진노를 깨닫고 회개해야 했던 것이다.

 

한편 `들려야' 아람어 `제캅' 해당하는 말로 추측되기도 하는데 아람어는 `들어 올리다' 혹은 `교수대에 처형되다' 의미가 있다.

 

따라서 말에는

 

(1) 십자가에 달리심

 

(8:28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인자를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12:2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2) 승천하실 영광 속에서 들어 올려지실 .

 

( 2:33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5:31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

 

2: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등의 가지 뜻이 내포되어 있으며, 문맥상으로 직접적으로는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가리킨다.

 

 

 

[ 3:15]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 예수의 십자가 희생의 목적을 설명하는 본절은 구원론(救援論) 핵심을 간파하고 있다.

 

본절에 나오는 `영생' 본서 전체에 걸쳐 요한이 중점적으로 부각시키는 주제이며, 영생에 이르기 위한 기본 전제로서 예수께 대한 믿음이 지적 되고 있는 것이다.

 

`저를 믿는 ' 예수의 대속하심을 받아들이고 예수와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사는 자를 뜻한다.

 

특히 `믿는'에는 신앙의 행위가 계속적이어야 함을 강조한다.

 

영생 - 요한의 애용어(愛用語)로서 문자적으로는 `영원의 생명' 또는 ` 세대의 생명' 의미이다.

 

요한이 사용한 영생은 공관복음서의 하나님 나라와 마찬가지로 종말론적인 요소와 하나님의 현재적인 선물이라고 하는 요소를 모두 담고 있다.

 

한편 요한은 `생명' `영생'이라는 말을 상호 교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그외 복음서에서 생명은 19, 영생은 17 나온다.

 

17:3 의하면 영생이란 예수 그리스도 인간에게 보내신 하나님의 사자를 통해 유일하신 하나님을 아는 것이며,

 

(17:3 영생은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14:6 의하면 영생은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요, 살아있는 길이신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교제이다.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자가 없느니라)

 

이러한 앎과 교제는 현재 땅에서 시작되지만 완성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처소에서 이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