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거듭난 삶 2019. 8. 5. 00:24
728x90

 

 

 

멸망치 않는 영원한 생명

 

: [ 10:22-29]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23) 예수께서 성전 솔로몬 행각에서 거니시니

24) 유대인들이 에워싸고 이르되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 하나이까 그리스도이면 밝히 말씀하소서 하니

2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거늘

26) 너희가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27) 양은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들을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29) 그들을 주신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없느니라.

 

 

 

[ 10:22-23]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23) 예수께서 성전 솔로몬 행각에서 거니시니 -

 

"수전절", 유다의 매코비가 성전을 중수(重修) 뒤에 그것을 기념하는 절일을 정했는데, 그것을 말함이다.(매코비 4:51, .메코비 10:5-8).

이날은 12 25일이다.

 

"솔로몬 행각", 비를 피하기 위하여 시설한 현관과 같은 것을 가리킨다.

팔레스틴에는 12월이 우기(雨期)이므로 예수님께서 때에 솔로몬 행각에 다니신 듯하다.

 

 

 

[ 10:24] 유대인들이 에워싸고 이르되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 하나이까 그리스도이면 밝히 말씀하소서 하니 -

 

주님께서는 자기가 메시야이신 사실을 직설(直說)하심보다,

흔히 비유적으로 하시고 밝히 말씀하시지 않았다.

 

그가 그렇게 하신 이유는, 민중의 메시야 관념이 그릇되어서 정치적 메시야를 기대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때에 유대인들은 예수님더러 그의 메시야이신 여부를 "밝히 말하시오"라고 한다.

 

 

 

[10:2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거늘 -

 

말씀에는, 예수님의 메시야격에 대한 가지 증거가 나타났다.

 

(1) 그의 말씀의 증거는 언제나 흔들리지 않음.

예수님의 말씀은, 신자들이 등한히 해도 언제나 살아 역사(役事)한다.

그의 말씀을 오해하고 선전하는 자들이 많아도 그의 말씀은 그대로 살아 있다.

아니라, 그의 말씀을 반대하는 자들이 많아도 그의 말씀은 계속 살아 있다.

 

그것이 그렇게 되는 이유는, 그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24:35에는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였고,

 

8:51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예수님의 말씀은 이렇게 권위 있고 진실하다.

 

(2) 예수님의 행하는 일들이 그를 증거함.

예수님의 일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그의 이적들을 가리킨다.

 

현대인은, 기독교에서 이적 요소를 제외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기독교는 이적으로 종교인데 거기서 이적을 제외하고 믿으려고 하는 것은,

돌집에서 돌을 모두 뽑아 버리고 남은 데서 살아 보려는 것과 같은 어리석음이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해야 것은, 그리스도의 이적은

구원사적(救援史的) 진실과 구속적인 사랑을

성립 요소로 한다는 것이다.

 

메시야께서 이런 권능을 행하시리라는 것은 구약에 예언되어 있는데

 

( 29:18 날에 듣는 사람이 책의 말을 들을 것이며 어둡고 캄캄한 데에서 맹인의 눈이 것이며,

 

35:5-6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6)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것이며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그것들이, 과연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졌다.

그것을 가리켜 구원사적 이적이고 한다.

 

이것을 보고도 믿지 않음은 메시야를 보고도 믿지 않는 죄악이다.

 

 

 

[10:26] 너희가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 전에 먼저 하나님이 우리를 아셨다.

 

(벧전 1:2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 그가 우리를 택한 백성으로 삼으셨으므로, 우리가 그를 믿게 것이다.

 

""이란 말은 택한 백성을 비유한다.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믿게 증거들은 많이 나타났다.

증거들은 하나님의 진실성에 의하여 완전하게 나타났다.

 

기독교는 이렇게 가장 믿을만하게 유일하고도 진정한 종교이다.

그래도 믿지 못하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은 쌀이 가득한 창고 안에서 굶어 죽는 자들과 같고,

앞에서 말라 죽는 자들과 같다.

 

결국 그들은 영생의 복을 받도록 택함이 되지 못한 자들이다.

 

 

 

[ 10:27] 양은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구절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택한 백성) 성질이 어떠함을 밝혀준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음성(하나님 말씀) 알아듣고 따른다(닮는다) 것이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음성을 안다는 것은 그리스도에게 대한 그들의 편애(偏愛) 아니고,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먼저 택하신 사실에서 일어난 반응이다.

 

그것은, "나는 저희를 알며" 말씀이 밝혀 준다.

 

 

 

[10:28-29]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들을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29) 그들을 주신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없느니라 -

 

구절들은, 그리스도의 자의 행복에 대하여 말한다.

행복은 그들이 영생을 받음이다.

 

아무도 그들의 받은 영생을 빼앗지 못한다.

이유는, 만유보다 크신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지키시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목적은,

그의 자들, , 참된 신자들로 하여금

받는 구원의 불변성을 알고 안전감을 느끼게 하려는 것이다.

 

그의 자들은 힘있는 원수들에게 둘러 싸였고,

그들 자체는 심히 연약하다.

 

그러나 그들의 의뢰한 자가 그들의 의탁한 것을 날까지 능히 지키실 줄을 그들은 확신한다.

 

(딤후 1:12 이로 말미암아 내가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하나님의 떼인 교회는,

악한 것들이 가득한 세상에 놓여 있어도 근심할 없다.

 

악한 것들도 하나님의 주권에 복속하지 않을 없다.

28 상반 말씀은, 7-10절의 사상과 연락하고 나온다.

 

, 구절은, 그리스도께서 백성에게 영생을 주신다고 하는 사상을 재음미한다.

 

"주노니"라는 말은 현재 동사로서, 현대시 , 신약 시대에 세계적으로 신자들에게 영생 주시는 운동이 시작됨을 염두에 말이다. (E.Smilde, Leven in de Johanneische Geschriften, p.111).

 

그리고 28 하반(29절도 참조)

 

"저희를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말씀은, 11-18절의 사상을 재음미한다.

 

그리스도께서 양들을 위하여

원수들(도적, 강도 같은 자들) 싸워 이기시므로, 양들은 영원토록 안전하다.

 

"저희를 주신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문구에 대하여,

 

문구의 의미가 양들(신자들) 그리스도에게 주신 하나님이 만유보다 위대하시다는 뜻이겠다.

 

그러나 스밀데(Smilde) 문구를 우리 한역의 각주(脚註) 같이 번역하여,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만물보다 크매"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는, "주신 "이란 말이 신자들을 총칭한 것이라고 하며,

 

말하기를, "신자들은 시간 세계에서나 영원한 세계에서나 하나님의 은혜로운 역사의 대상이고 그리스도의 소유니만큼, 만물보다 크다고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자들이다. 그들은 원칙에 있어서는 벌써 세상을 이긴 자들이다. 그들 하나라도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다"라고 하였다.

(Leven in de Johanneische Goschriften, p. 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