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거듭난 삶 2019. 8. 3.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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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목자 2

 

: [ 10:11-2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2) 삯꾼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헤치느니라

13) 달아나는 것은 저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아보지 아니함이나

14)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16)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터이니 저희도 음성을 듣고 무리가 되어 목자에게 있으리라

17)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18)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계명은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19) 말씀을 인하여 유대인 중에 다시 분쟁이 일어나니

20) 중에 많은 사람이 말하되 저가 귀신 들려 미쳤거늘 어찌하여 말을 듣느냐 하며

21) 혹은 말하되 말은 귀신 들린 자의 말이 아니라 귀신이 소경의 눈을 뜨게 있느냐 하더라.

 

 

 

[ 10:11-13]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2) 삯꾼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헤치느니라

13) 달아나는 것은 저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아보지 아니함이나 -

 

"선한 목자" 대하여는, 구약에도 많이 예언하였으니,

대상11:2; 23; 40:11; 34:23; 11 등이다.

 

이상의 구절들을 보면,

여호와 자신이 바로 하나님 백성의 선한 목자라고 했으니,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신 예언들은 성취되었다.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고 하였는데, 그것이 무슨 뜻인가?

 

헹스텐벌키(Hengstenberg),

말이 양을 위하여 목숨을 대속물(代贖物) 주실 것을 가리켰다고 한다.

 

( 10:45 인자의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20:28 인자가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그리스도께서 말씀을 하실 때에, 53:10 염두에 두셨을 것이다.

 

( 53:10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날은 것이요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고데이(F.Godet)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말씀이,

다른 이의 요구에 응하여 생명을 내어 놓음, 혹은 바침,

혹은 희생함을 가리킨다고 하였다.

 

 

 

[ 10:14-15]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

 

여기 목자와 양이 서로 안다는 것은 어떤 지식을 말함인가?

 

예수님이 그의 백성() 아신다는 것은,

그들이 선택되어 그의 것이 되었기 때문에 그가 그들을 아신다는 뜻이다.

 

( 16:5 고라와 모든 무리에게 말하여 가로되 아침에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속한 자가 누구인지 거룩한 자가 누구인지 보이시고 자를 자기에게 가까이 나아오게 하시되 그가 택하신 자를 자기에게 가까이 나아오게 하시리니;

 

딤후 2:19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

 

그것은 그의 전지(全知) 성품에 의한 것이다.

그리고 그의 백성이 그를 안다는 것은 성령에 의하여 성립된다.

이것은, 성부자(聖父子) 서로 아심과 같이 신령하고 정확하다.

 

그러므로 지식은 인간의 자율적인 지식이 아니다.

 

11:27 하반에 말하기를,

 

"아들과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하였다.

 

 

 

[ 10:16]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터이니 저희도 음성을 듣고 무리가 되어 목자에게 있으리라 -

 

이것은 이방 선교에 대한 예수님의 사명을 가리킨다.

이방 선교에 대하여는 벌써 구약에 많이 예언되었다.

 

* 참조 : 49:1-13, 52:13-15, 53:10-12; 4:2; 8:23; 8:11.

 

선한 목자 되시는 예수님께서

백성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죽으심으로만

이런 놀라운 선교가 시작되겠으므로,

그의 목숨 버리신다는 말씀이 구절 앞뒤에 배치되어 있다.

 

뱅겔(Bengel),

하나님 백성의 통일성을 위하여 아름다운 목자도 (예수님)이심을,

구절이 지적한다는 의미로 말하였다.

 

 

 

[ 10:17-18]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18)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계명은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이는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계명은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

 

점에 있어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신 이유가

그의 목숨 버리심과 다시 사심에 있다는 것을 주목한다.

 

예수님은 영원하신 성자(聖者)이시니 존재론적으로

영원토록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신다.

 

(5:20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아들에게 보이시고 그보다 일을 보이사 너희로 기이히 여기게 하시리라).

 

그러나 그가 인성(人性) 입으시고 세상에 오시는 때에

구속 사업의 사명을 받으셨으므로,

그의 사명에 순종하신(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심) 만큼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신 방면도 있다.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 그가 목숨을 버리시는 것과 다시 사시는 것이

순연히 독자적(獨自的) 의지(意志) 순종하심이라는 것을 가리킨다.

 

특히 위의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사실을 역설(力說)한다.

 

여기 말씀은,

하나님 아버지도 예수님의 생명 버리심을 강요하시지 않는다는 뜻을 포함한다.

, 하나님 아버지도 성자(聖子) 생명을 빼앗을 처지에 계시지 않다는 말이다.

그는 순연히 자유 의지로써 마음으로 순종하신 뿐이다.

 

"계명"이란 말은 하나님 앞에서 받으신 사명을 의미한다.

 

 

 

[ 10:19-21] 말씀을 인하여 유대인 중에 다시 분쟁이 일어나니

20) 중에 많은 사람이 말하되 저가 귀신 들려 미쳤거늘 어찌하여 말을 듣느냐 하며

21) 혹은 말하되 말은 귀신 들린 자의 말이 아니라 귀신이 소경의 눈을 뜨게 있느냐 하더라. -

 

예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듣는 자들이 편으로 갈렸다.

언제나 진리는 세상에서 전적으로 환영 받지 못한다.

 

이유는,

세상에는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 있는 반면에

마귀에게 속한 자도 있기 때문이다.

 

(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머리를 상하게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것이니라 하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