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하지만 삯군은 목자가 아니다. 양은 그의 것이 아니므로, 그는

거듭난 삶 2019. 8. 4.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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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의 차별

 

요한복음 10 11-13

 

'나는 선한 목자이다.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

12) 하지만 삯군은 목자가 아니다. 양은 그의 것이 아니므로, 그는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도망쳐 버린다. 이리는, 이들(양떼) 잡아 흩어 버린다.

13) 그것은(삯군이 도망쳐 버리는 것은), 그는 삯군이어서, 양을 돌아보지 않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10;11-13, 일본어역)

 

 

선한 목자란 누구인가?

 

선한 목자란 반드시 목양술에 숙련한 자는 아니다.

넓게 양에 대하여 알고, 많이 양에 대하여 말하는 자는 아니다.

 

선한 목자란 양을 사랑하는 자이다.

경우에 의해서는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자이다.

자기보다 양을 사랑하는 자이다.

자기 본위의 사람이 아니라 본위의 사람이다.

 

이에 반하여 악한 목자란,

양을 본위로 하지 않고서 자기를 본위로 하는 자이다.

그는 목축학을 배운 농학자일 찌도 모른다.

목양술에 있어서는 천하 1로서 불리 우는 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양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그는 악한 목자이다.

그는 자기의 이익 위해 양을 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리가 와서 몸에 위해를 가하려 하는 있으면. 그는 양을 버리고 도망쳐 버리는 것이다.

그는 실로 목양자의 이름마저 가질 자격이 없는 자이다.

그는 다만 고용된 사람이다.

임금(賃金) 위해 고용되어 양을 지키는 것이다.

양을 사랑하여 이를 치는(기르는)것은 아니다.

 

임금 탐내 이것을 지키는데 지나지 않는다.

 

목자의 선악은 한가지로서 정해지는 것이다.

자기보다도 양을 사랑하는 , 이것이 선한 목자이다.

 

양보다도 자기를 사랑하는 , 이것이 악한 목자이다.

 

학력, 기예, 재능 등은 물을 아니다.

어찌 다만 목자뿐이랴 이다.

 

선한 의사란 누구인가?

 

선한 의사란 반드시 의학의 심오함(profundity) 연구(investigate) 자가 아니다.

치료의 술에 능한 자는 아니다.

 

선한 의사란 환자를 사랑하는 자이다.

환자의 이익과 행복을 1위에 두고,

자기 이익은 이것을 2 또는 3위에 두는 자이다.

 

자기에게 맡겨진 환자를 고칠 있을 것인가?

자기의 이익도 명예도 조금도 이를 돌보지 않는 자이다.

 

이에 반하여 악한 의사란 환자보다도 자기를 사랑하는 자이다.

환자의 치유되는 보다도 자기의 병원이 번영하는 ,

자신의 주머니가 두둑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에게 학식 있는 것은 그것으로서 그를 선한 의사로 하기에 족하지 못하다.

그의 의술로서 만약 부자와 귀족 위해서만 베푸는 것이라면,

그는 대의가 아니라 용의(quack, 돌팔이 의사)이다.

자기의 배를 불리기 위해서만 애쓰는 악한 의사이다.

 

의사의 선악은 목자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학력, 기술, 재능 등으로서 정해야 아니다.

선한 목사란 누구이며 악한 목사란 누구인가?

 

깊이 신학을 연구하고,

널리 성서를 통달하며,

거기에 인심수람(gras ping) 술에 능한 반드시 선한 목사는 아니다.

 

선한 목사란,

자기보다도,

자기 교회보다도,

자기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 신자를 사랑하는 자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신자 위해 생명을 버리는 자이다.

자기본위 또는 교회 본위가 아니라 신자 본위의 사람이다.

이에 반하여, 악한 목사는 신자보다도 자기를 사랑하는 자이다.

 

신학도,

철학도,

웅변도,

문제도 모두 이는 자기와 자기 교회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사람이 구원되거나 멸망되는 것은 그가 깊이 관여하는 바는 아니다.

그는 다만 자기(세력 기타) 사람에게 뻗치려 한다.

자기를 확대하려 한다.

그의 학식은 다만 이것을 행하는 기관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신자 위해 자기를 잃으려 하지 않는다.

자기 위해 신자를 쓰려(이용하려)한다.

이같이 하여,

그에게 모든 소양과 재능 있음으로써,

그는 악한 목사이다.

사람의 선악은 모두 이같이 하여 정할 수가 있다.

 

선한 관리는 자기보다도 자기에게 맡겨진 직무를 사랑하는 자이다.

악한 관리는 반대인 것으로서, 직무보다도 봉급을 사랑하는 것이다.

 

선한 은행가는 먼저 제일로 주주와 예금자의 이익을 도모하고,

자기의 이익은 이를 다음에 두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악한 은행가는 주주와 예금자의 이익을 두고서 이를 돌보지 않고,

다만 오로지 자기의 지위를 이용하여 자기의 이익만을 도모하고자 한다.

 

선한 상인은 고객의 이익을 먼저하고 자기의 이익을 뒤로 한다.

악한 상인은 반대인 것으로서, 그의 염두에 고객의 이익 없는 것이다.

 

선한 변호사는 소송의뢰인을 사랑하고 그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을 1목적으로 한다. 악한 변호사는 이익 많은 편에 가세하고, 의뢰인의 권리는 이것을 안중에 두지 않는다.

 

선한 촌장은 자기보다도 마을을 사랑하고,

악한 촌장은, 자기 이익 위해 마을을 희생시키는데 주저치 않는다.

 

기타 모두 마찬가지이다.

 

선은 타를 사랑하는 일로서,

악은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다.

 

선악의 차별은 달리 없다. 일목요연하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시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이다.


' 외에 선한 이가 없다. 하나님이시라'(누가복음18;19).


그는 일광(日光) 선한 자에게도 악한 자에게도 비추시고,

비를 의인에게도 불의한 자에게도 내려주신다.

 

(마태복음 5;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사람 위해 자기를 버리신 분이시다.

외아들까지도 주시는 정도로 세상을 사랑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 되는 것은 다른 아니다.

그의 온전하심 같은 온전해 지는 일이다.

 

그가 선하신 같이 선해지는 일이다.

 

, 사랑, 희생, 위해 자기를 잃어버리는 ,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다.

마음을 얻어 우리들은 하나님의 자녀로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 신자로 되는 것이다.

 

침례를 받고 교회에 들어가 모든 의식에 참여했다고 해도,

하나님의 마음을 자기 마음으로 하지 못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는 아니다.

물론 그리스도 신자는 아닌 것이다.

하나님께서 특히 선하신 분인데 대하여 악마는 특히 악한 자이다.

 

주기도의 절에

 

'우리를 시험에 조우케 마옵시고 악에서 구출하옵소서.라고 있음은

 

악한 자의 손에서 구출하옵소서 뜻으로서,

악마를 가리켜 말한 것이다.

 

마태복음 13장의 가라지 비유에 라고 있고,

 

'악귀' - (마태복음13;19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마음에 뿌리는 것을 빼앗나니 이는 길가에 뿌리운 자요. 한글개역)

 

'악마'라고 있음은,

 

(13;39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한글개역)

 

단지 '악한 ' 역해야 말인 것으로, 물론 악마를 가리켜 말한 것이다.

 

에베소서 6 16절에

 

' 외에 신앙의 방패를 가지라. 방패로써 남김없이 악한 자의 불화살을 꺼버릴 있을 것이다'(일본역)라고 있는

 

'악한 ', 말할 것도 없이 악마를 가리켜 말한 것이다.

 

요한1 2 13 14절에

 

'악한 자에게 이기는' 이란,

'악마(마귀)에게 이김' 뜻이다.

 

악마, 이는 악한자라는 뜻이다.

 

하나님이 선한 자이신데 대하여 악마는 악한 자이다.

하나님이 타자중심인데 대하여 악마는 자기중심이다.

 

하나님은 자기를 사람에게 주려 하시고,

악마는 사람을 자기 위해 이용하고자 한다.


'인자가 것은 사람을 사역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도리어 사람에게 쓰이고 많은 사람을 대신하여 목숨을 주어 대속이 되기 위해서이다'(마태복음 20:28.일본어역)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마음이며 하나님의 마음이다.

 

이에 반하여

 

'너는, 엎드려 나를 경배하라. 그리하면 모든 (세계의 제국과 영화와) 모두 네게 것이다'(마태복음 4;9.일본어역)라는 것은 악마의 정신이다.

 

'나를 배우고(본받아) 주라' 것은 하나님의 가르치신 바이다.

 

'나를 본받아 얻으라' 것은 악마의 말하는 바이다.

 

그러므로 선한 목자란 다른 아니다.

하나님께 배워(본받아) 양을 사랑하는 자이다.

 

이에 반하여 악한 목자란 다른 아니다.

악마에게 배워(본받아) 양을 치는 (기르는)자이다.

 

선한 의사는 하나님의 마음으로서 환자에 대하는 ,

악한 의사란 악마의 마음으로서 환자를 취급하는 자이다.

 

하나님의 마음으로서 신자를 인도하는 , 사람이 선한 목사이다.

악마의 마음으로서 목회의 직에 있는 , 사람이 악한 목사이다.

 

하나님의 마음으로서 상업에 종사하면 선한 상인이고

악마의 마음으로서 하면 악한 상인이다.

 

기타 모두가 그러한 것이다.

직업의 여하에 의하지 않고,

지식 재능의 여하에 의하지 않는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대로,

 

'모두 좋은 나무는 선한 열매를 맺고, 악한 나무는 악한 열매를 맺는다'(마태복음 7:17.일본어역)이다.

 

선한 () 목자로 하면 선한 목자가 되고,

의사로 하면 선한 의사가 되고,

목사로 하면 선한 목사가 되고,

상인으로 하면 선한 상인이 되고,

촌장으로 하면 선한 촌장이 된다.

 

이에 반하여 () 자는,

이것을 무엇으로 대도 악한 자이다.

의사, 목사, 악전도사, 악상인, 법률가, 촌장,

이는 모두 악마의 화신이다.

자기의 이익을 제일의 목적으로서 하여 타인에 임하는 자이다.

 

선악의 차별은 이같이 명백하다.

 

하지만 선을 택하기는 어렵고 악을 택하기에는 쉬운 있다.

 

실로 선한 되고자 하면

우리들은 예수와 한가지로 십자가를 각오하지 않으면 된다.

 

세상은 선을 환영하고 악을 배척하는 가고 생각할 정반대가 사실이다.

악마에게 속은 세상은 무엇보다도 속기를 좋아한다.

 

간악한 세상에 있어서는,

선한 목자는 악한 목자의 박해하는 바로 되고,

선한 의사는 악한 의사의 싫어 배척하는바 되고,

선한 목사는 악한 목사의 미워하는바 또는 죽이는 바로 된다.

 

세상의 선을 생각하여 세상에 미움 받는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지만,

그러나 그것이 세상의 세상 까닭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세상에 있어서 하나님을 따라 선한 되고자 하면

기방(slander), 배척, 박해를 각오하지 않으면 된다.

 

선한 자의 모범이신 예수를 십자가에 박은 세상은

지금도 모든 선한 자를 박해하여 마지않는다.

 

선한 의사도, 선한 대언인도, 선한 상인도, 선한 농부도,

선한 목사도 전도사도 물론, 무릇 하나님의 선하심 같이 선해지고자 하면,

세상과 세상의 교회의 증오, 배척, 박해를 면하려 해도 면할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세계의 기초가 놓이기 전부터 십자가에 박히신 이로써,

 

(계시록 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땅에 사는 자들은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세상의 끝까지 죽임 당하시는 이시다.

그리고 우리들이 그에게 배워 의자(義者) 되고자 ,

우리들 각자의 지위에 있어서 그리스도로서의 운명에 조위치 않을 없다.

 

각오 없이,

그리스도 또는 선자(善者) 되고자 해도 없는 것이다.

고난은 반드시 선에 수반하여 온다.

그러나 선은 선으로서 이외의 것은 아니다.

 

선은 미이다. 쾌이다. 평화이다. 환희이다.

선에 사람의 칭찬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가납이 있다.

 

우리들 일단 선의 미를 맛보고서 죽는데도 이것과 떠날 수는 없다.

인생 최대행복은 이것이다.

 

그리스도를 본받아 자기를 남에게 주는 일이다.

 

악마가 전하는 자기 확대의 길은 이는 허위이다.

영구히 그치는 없는 눈물의 생이다.

이익인 듯이 보이나 실은 손실의 가장 것이다.

 

*내촌감삼의 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