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거듭난 삶 2019. 8. 6.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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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이 예수를 돌로 치려하다

 

: [ 10:30-41]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31) 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32)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선한 일로 너희에게 보였거늘 중에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 하느냐

33)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선한 일로 말미암아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신성모독으로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율법에 기록된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35)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36)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신성모독이라 하느냐

37) 만일 내가 아버지의 일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38)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시니

39) 그들이 다시 예수를 잡고자 하였으나 손에서 벗어나 나가시니라

40) 다시 요단 저편 요한이 처음으로 침례 베풀던 곳에 가사 거기 거하시니

41) 많은 사람이 왔다가 말하되 요한은 아무 표적도 행하지 아니하였으나 요한이 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은 참이라 하더라

42) 그리하여 거기서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으니라.

 

 

[ 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

 

28절에서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예수님의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다 하였다.

이유로서 29-30 말씀이 나왔다.

 

그들을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지 못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손에서 빼앗지 못한다는 것과 같다.

이유는, 아버지와 아들 예수님은 일체이시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심은,

 

본질적으로 그가 아버지로 더불어 일체로서 영원하신 하나님 아들이시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그는 아버지의 계시자(啓示者)로서 세상에 보내심을 받아 아버지의 뜻을 완전히 순종하시는 것인 만큼,

그의 모든 행동은 곧바로 아버지의 행동과 완전히 일체(一體)였다.

 

 

 

[ 10:31-32] 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32)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선한 일로 너희에게 보였거늘 중에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 하느냐 -

 

유대인들은 자칭 경건하다고 하며,

거짓 선지자를 돌로 치라는 성경 말씀( 13:5) 실행한다는 의미에서 이런 악행을 연출하였다.

 

( 13:5 그런 선지자나 꾸는 자는 죽이라 이는 그가 너희에게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며 되었던 집에서 속량하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하게 하려 하며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행하라 명령하신 도에서 너를 꾀어내려고 말하였음이라 너는 이같이 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할지니라)

 

그러나 예수님은 담대히 답변하신다.

답변은, 유대인들의 완강한 불신앙을 지적하신 것이니, , 그들이 너무도 하나님의 계시(啓示) 몰라본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시가 어떻게 완전하고 철저함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은 말씀들이 보여준다. ,

 

"아버지께로 말미암아",

"여러가지 선한 ",

"너희에게 보였거늘"이란 말씀들이다.

 

(1) "아버지께로 말미암아" 말은, 그의 하신 () 하나님께서 그를 보내신 사실이 증명될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것을 알아보지 못했으니 그들의 불신앙은 현저하다.

 

(2) 아니라, 선한 일이 가지만 아니고 여러 가지였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불신앙 하였다.

 

(3) 아니라, 그런 선한 일들을 그들에게 밝히 보였으되 그들은 불신앙 하였다.

 

"보였거늘"이란 말의 헬라 원어는, 모든 사람이 있도록 공중 앞에서 행한 것을 가리킨다.

 

이렇게 밝히 보여주었으되, 그들은 강팍하여 아직도 믿지 않았다.

 

 

 

[ 10:33]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선한 일로 말미암아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신성모독으로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 -

 

유대인들의 불신앙의 철면피는 저렇게 두텁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대적하면서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듯이 자처한다.

 

, 그들이 하나님께 특별히 충성하는 듯이, 예수님의 발표하신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 말씀을 책잡아

 

그것이 "참람" 말이라고 한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진리와 시실에 근거한 여부는 알아보지 않고 먼저 정죄한다. 그것은 그들의 교만과 편견과 시기에서 나온 행동이다.

 

 

 

[ 10:34-3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율법에 기록된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35)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36)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신성모독이라 하느냐 -

 

여기 "율법"이란 말은 82:6 가리킨다.

 

( 82:6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였으나)

 

시편을 율법이라고 하였는가?

그것은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 모세의 율법이 구약의 처음부분에 있는 것만큼,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이 구약 전체의 이름을 "율법"이라고 하는 풍속이 있었다.

 

* 참조 ( 12:34 이에 무리가 대답하되 우리는 율법에서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신다 함을 들었거늘 너는 어찌하여 인자가 들려야 하리라 하느냐 인자는 누구냐,

 

15:25 그러나 이는 그들의 율법에 기록된 그들이 이유 없이 나를 미워하였다 말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3:19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고전 14:21 율법에 기록된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방언을 말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그들이 여전히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82:6에는 재판장들을 가리켜 "신들"이라고 하였는데,

그것은, 재판장들이 () 시키심을 받아 재판을 대행(代行)한다는 의미에서 그렇다는 말이고, 그들 자신이 영원한 신들이라고 함은 아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의 신격(神格)이나 신자격(神子格) 주장의 정당성을 시구에 두셨다.

 

그것은 얼른 보아 예수님도 인간으로서 신의 시키시는 일을 맡은 의미의 하나님 아들이고,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 아들(Ontological Sonship) 아님을 증거하시는 같이 보인다.

 

그러나 시구에 근거한 예수님의 논증의 귀결은, 추론의 등위적이론(等位的理論=Analogical argument) 아니고 강이유 결론(a fortiori)이니,

, 보통 인간들도 신의 시키심을 받은 자라면, 본질에 있어서는 () 아니로되

 

그들을 "신들"이라,

또는 "자존자의 아들들"( 82:6)이라고 하였거든,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영원하신 하나님 아들이야 말할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결론이다.

 

 

 

[ 10:37-38] 만일 내가 아버지의 일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38)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시니 -

 

여기 " 아버지의 "이란 말은

 

그가 행하신 이적들을 가리킨다.

그는, 그의 이적 행하신 사실을 불신앙자들 앞에 도전적으로 내세우신다.

 

그것은, 이적들의 역사성과 진실성에 대하여 천하가 공인한 사실을 지적함이다.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이적들은,

어떤 구석에서 되어진 것이 아니고 대중이 주목하는 공석에서 되었으며,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같은 강퍅한 교권자들이 끈질기게 책잡으려는 무서운 눈초리 앞에서 성립된 일들이다.

 

" 일은 믿으라." - 이것은, 그의 행하신 이적들이 초자연적이고, 사람으로는 없는 것이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 안에 계신 표적인 사실을 믿으라는 뜻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다 함은,

하나님께서 땅에 있는 그의 기관(organ)이라고 있는 인간성(예수님)에게 하늘의 모든 부요(富嶢) 충만히 전달시킨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아버지(하나님) 안에" 계신다 함은,

 

그리스도께서 전적으로 자기를 포기 하시므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부요에서 모든 것을 가져오심을 가리킨다. (Godet).

 

예수님의 이적은, 저렇게 땅에 계시면서 하늘에 계시는 오묘를 보여준다.

 

(3:13 하늘에서 내려온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그것은 내세(來世) 하늘과 땅의 영광을 예표하는 것이다.

 

바빙크(Bavinck) 말하기를,

 "내세는 하늘과 땅으로 완성되는 것이니 거기 () 거한다. 때에는 이적과 자연이 하나가 된다. 때에는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가 하나가 된다"라고 하였다.

(Geref. Dog. Uitgave van J.H Kok Te Kampen 1928, Vol I, p.311).

 

 

 

[ 10:39] 그들이 다시 예수를 잡고자 하였으나 손에서 벗어나 나가시니라 -

 

아직도 때가 이르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므로 원수들이 그를 해하지 못하였다.

 

 

 

[ 10:40-41] 다시 요단 저편 요한이 처음으로 침례 베풀던 곳에 가사 거기 거하시니

41) 많은 사람이 왔다가 말하되 요한은 아무 표적도 행하지 아니하였으나 요한이 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은 참이라 하더라 -

 

예수님은, 불신 유대인들의 핍박을 받아 예루살렘에서 떠나 요단강 저편으로 가셨다. 그곳은 물론 적막한 땅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곳에도 대중으로 하여금 그를 따르게 하셨다.

 

그들이 예수님을 믿은 이유는,

침례 요한의 이적(침례 요한은 이적을 행치 않았음) 까닭이 아니고

그의 증거한 (그의 메시야 증거) 참된 까닭이었다.

말의 진실성은 이렇게 귀하다.

 

 

[ 10:42] 그리하여 거기서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으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