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거듭난 삶 2019. 8. 30.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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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탄과 위자(慰藉)

 

요한복음 14 1-3 :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나를 믿으라

2)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마태복음 2 18절은 예언자 예레미야의 말을 인용해 말하기를

 

'탄식하고 슬퍼하고, 크게 신음하는 소리가 라마에서 들려왔다. 라헬이 자식을 탄식하며, 자식들이 없으므로 위로를 얻지 하더라'.

 

이것은 어머니가 자식을 잃은 때의 비탄의 소리이다.

 

'탄식 하며 슬퍼하고, 크게 신음하는 소리'로서,

 

세상에 이에 지나는 비탄의 소리는 없는 것이다.

 

' 아들이 없으므로 위로를 얻지 하더라' 한다.

 

우주만물 무엇도 그녀를 위로하기에 족하지 못한 것이다.

 

비탄의 , 비통의 , 이것을 맛보고서

비로소 '인생의 탄식' 무엇인지 아는 것이다.

 

그리고 경우에 있어서 어머니를 위로하기에 족한 유일사가 있다.

아들을 소생시켜 다시 이것을 그녀의 손에 건네주는 일이다.

 

예수께서 야이로의 딸을 소생시켜 이를 양친의 손에 주었듯이,

죽은 자에게 다시 생명을 불어넣어

이것을 모친의 품에 돌려주는 일이다.

 

이것을 행할 있다면 그녀를 위로할 수가 있다.

이것을 않고서 세계를 그녀에게 준대도,

상한 그녀의 마음을 고칠 수는 없다.

그리고 이러한 경우에 있어서,

성서는,

옳다, 다만 성서만이, 그녀를 위로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요한복음 14 1-3절에 실은 예수의 말씀이다.


'너희는 근심(탄식소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라. 아버지의 집에는 거할 많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미리 너희에게 이것을 알렸을 것이다. 내가, 너희 위해 있을 곳을 예비하면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리라. 내가 있는 곳에 너희를 있게 하렴에서이다'라고.

 

실로 깊은 강한 말씀이다.

 

하나님의 아들의 말씀에 의해 오늘까지 헤아릴 없는 사람이

비탄의 극에 있어서 위로 받은 것이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탄식하며 심란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라.

 

그리스도를 믿으라.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에게 은애의 정을 주어,

그를 고칠 없는 경우에 떨어뜨려 그것으로 만족(tranquillity)하시는 이는 아니다.

 

비통 있는 곳에는 위자(慰藉) 있다.

아들을 잃은 어머니까지 위로할 있는 길은 마련되어 있다.

 

라헬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를 얻지 못하더라고 해야 것은 아니다.

위로를 얻음의 길은 사람에 의하지 않고 하나님에 의해 예비 되었다.

 

그녀는 마음에 탄식하며 심란해져서는 된다.

하나님을 믿을 것이다.

보내신 그리스도를 믿을 것이다.


' 아버지의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 하신다.

 

천부에게 또한 가족을 수용하기 위한 집이 있다.

(home) 있다.

 

그것은 채의 집은 아니다.

하늘의 본집이다.

하늘의 나라이다.

넓은 아름다운 별세계이다.

그리고 안에 많은 거처가 있다.

초라한 집이 아니다.

장대한 저택이다.

 

지상에 있어서는 귀족이라든가 부호가 쓰고 있는 같은 저택이다.

더구나 그것도 많이 있다고 한다.

주택이 바닥난 오늘 ,

누가 천국의 상태를 듣고서 마음 끌리지 않을 있으랴!

 

천국에는 집이 얼마든지 있다고 한다.

그것으로써 복음이다.

 

천국은

소수의 의인선인, 성인결사, 교계의 명사만이 가는 곳은 아니다.

 

거기에는 광대한 저택이 허다하게 있다고 한다.

 

그러면 우리도 또한 있는 희망이 있다.

없는 소아는 기꺼이 영접될 것이 틀림없다.

 

천국에 들어갈 있는 자는

사람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다수 있음에 틀림없다.

 

그리스도는 말씀하셨다.

 

' 아버지의 집에는 거할 곳이 많다'.


아버지는 자식 위해 집에 많은 거처를 건축하셨다.

그리고 그들을 영접하기 위해 준비가 필요하다.

 

죄에서 나고 죄에서 자란 사람은

누구나 태어난 대로 거룩한 아버지의 집에 수는 없다.

 

이에 있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우리들의 죄를 지시고,

이것을 십자가의 피로 깨끗이 하여,

 

'우리를 위하여 앞서 거기에 들어가심'(히브리서6:20) 필요가 있는 것이다.

 

예수는 구속된 사람의 대표자로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

우리들이 이에 들어가기 위한 길을 여시고,

동시에 우리들에게 이에 들어감의 자격을 예비하셨다.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에 의해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는 준비가 결여됨 없이 예비 되었다.

 

겸비하여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

이제 그곳에 성부의 가족의 사람으로 되는 길과 자격이 예비 되었다.

 

예수는 우리들의 선구로서 그곳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거기서 그저 우리를 기다리시는 아니다.

준비가 후에는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할 것이다'라고 하셨다.

 

이렇게 하여 그리스도교에도 불교에 있어서와 같이 내영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의 영에 이종이 있다.

 

하나는 재림의 때의 내영이다.


'그때, 살아남은 우리들은 그와 함께 구름에 싸여, 공중에서 주를 뵈옵게 것이다'(데살로니가전서 4:17)라고 있는 내영이다.

 

2, 각인 죽어 육을 떠나 영계에 들어가는 때의 내영이다.

 

이것은, 사후의 실험에 속하는 까닭에

방법 상태에 대해서 우리들은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내영이 있는 그것은,

죽음의 자리에 임석하여 번이고 실견 일이다.

 

사자는 어떤 이에게 영접되어 생자를 작별하고 가는 상태를 보인다.

 

혹은 손을 뻗쳐 어떤 이의 손에 맡기는 ,

혹은 '이제는 갑니다' 하여,

분명히 고별의 말을 한다.

 

신자는 혼자 쓸쓸히 알지 못하는 나라에 가는 것은 아니다.

죽음의 강을 건너는 ,

 

어떤 이가 그를 영접하여,

그의 손을 잡고 그의 걸음을 도와서,

저편에도 도섭하는 듯이 보인다.

 

'내가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할 것이다'라는 예수의 말씀은,

 

아무런 실험에 비추어 없는 말은 아니다.

아버지의 (home) 많은 거할 곳이 있다.

이에 들어갈 준비가 되었다.

그리고 이에 들어가게 하려는 주님 자신의 출영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렇듯 분명히 말씀하신 이는 거짓하실 없는 성실하신 하나님이시다.

 

'너희는, 일에 관하여 하나님을 믿으라. 나를 믿으라' 예수는 말씀하셨다.

 

그러면 우리들은 믿어야 것이다.

 

* 참조 (요한복음 14:1이하 하나님을 믿으니 나를 믿으라).

 

믿고 견디기 어려운 비탄을 벗어나야 것이다.

애아(愛兒) 아버지의 손에 건네 드린 것이다.

거기서 그는 손에 있는 것보다 훨씬 안전한 것이다.

 

라헬은 자식을 잃었다.

그러나 자식은 망한 것은 아니다.

하늘 아버지의 홈에 영접되어, 많은 주거 중에,

쉬는, 자유스러운 생애를 계속하는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그가 그녀의 손에 주어지는 때가 도래하는 것이다.

그것도 불안하기 그지없는 눈물의 골짜기에 있어서는 아니다.

 

아버지의 집에 있어서이다.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렴에서 이다'라고 예수는 말씀하셨다.

 

내촌감삼의 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