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접전
성 경: [삿 20:17-23] 베냐민 자손 외에 이스라엘 사람의 칼을 빼는 자의 수는 사십만 명이니 다 전사라
18) 이스라엘 자손이 일어나 벧엘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묻자와 가로되 우리 중에 누가 먼저 올라가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유다가 먼저 일지니라
19) 이스라엘 자손이 아침에 일어나 기브아를 대하여 진을 치니라
20) 이스라엘 사람들이 나가서 항오를 벌이고 거기서 그들과 싸우고자 하매
21) 베냐민 자손이 기브아에서 나와서 당일에 이스라엘 사람 이만 이천을 땅에 엎드러뜨렸으나
22) 이스라엘 사람들이 스스로 용기를 내어 첫날 항오를 벌였던 곳에 다시 항오를 벌이니라
23) 이스라엘 자손이 올라가서 여호와 앞에서 저물도록 울며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내가 다시 나아가서 나의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올라가서 치라 하시니라.
[삿 20:17] 베냐민 자손 외에 이스라엘 사람의 칼을 빼는 자의 수는 사십만 명이니 다 전사라
▶ 이스라엘 사람의 칼을 빼는 자의 수는 사십만 명이니 - 이 수효는 이미 2절에서 언급했었다. 한편 본 구절에서는
베냐민 지파 이스라엘 사람중
칼을 빼는 자의 수효가 40만 명이라고 했는데
21:9에 따르면 여기에는 길르앗 야베스의 군대가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나와 있다.
(21:9 백성을 계수할 때에 야베스 길르앗 거민이 하나도 거기 없음을 보았음이라)
아무튼 광야에서 전체 이스라엘 백성들을 계수할 때
1차는 601,730명이었던 것과 비교해 볼 때
(민 26:51 이스라엘 자손의 계수함을 입은 자가 육십만 일천칠백삼십 명이었더라)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 이외의 거의 모든 이스라엘 배경이
베냐민과의 전쟁에 참여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당시 내전(內戰)의 심각도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여실히 보여 준다.
[삿 20:18] 이스라엘 자손이 일어나 벧엘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묻자와 가로되 우리 중에 누가 먼저 올라가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유다가 먼저 일지니라
▶ 벧엘에 올라가서 - 이스라엘 자손들은 베냐민 지파와 전쟁을 하기 전에
누가 먼저 베냐민 지파와 싸울 것인지를 하나님께 묻기 위해 벧엘로 올라갔다.
이는 비록 형식적이나마 아직도 백성들 사이에 존재하고 있던
여호와 신앙을 보여 준다.
이스라엘이 이방인들의 압제하에 시달릴 때마다
여호와 하나님을 찾을 수 있었던 것도
그나마 이처럼 여호와 신앙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3:8-9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팔 년을 섬겼더니
9)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그는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
4:1-3 에훗의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매
2) 여호와께서 하솔에 도읍한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 그들을 파셨는데 그 군대 장관은 이방 하로셋에 거하는 시스라요
3) 야빈 왕은 철병거 구백 승이 있어서 이십 년 동안 이스라엘 자손을 심히 학대한고로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6:7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을 인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은고로)
한편 여기서 '벧엘'의 문자적인 뜻은 '하나님의 집'이다.
따라서 라틴 벌겟(Vulgate)역과 KJV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벧엘로 올라간 것이 아니라
'실로에 있는 하나님의 집'으로 올라갔다고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집'을 표현할 때는
'벧하엘로힘'으로 기록하며
'벧엘'은 항상 지명을 나타낸다(Pulpit Conmmentary).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올라간 곳은 실로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벧엘이었던 것으로 보인다(Keil).
아마 이들이 벧엘로 간 것은
실로보다 벧엘이 기브아에서 훨씬 더 가깝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당시 벧엘에는 산당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거리상으로 벧엘은 실로와 기브아의 중간 지점에 위치해 있고
벧엘에서 기브아까지는 약 15km 정도이다.
아무튼 이스라엘 역사상 벧엘이 종교적 구심적으로 주목을 받게 된 것도
아마 이때부터일 것이다.
(25-26절 베냐민도 그 이튿날에 기브아에서 그들을 치러 나와서 다시 이스라엘 자손 일만 팔천을 땅에 엎드러뜨렸으니 다 칼을 빼는 자였더라
26) 이에 온 이스라엘 자손 모든 백성이 올라가서 벧엘에 이르러 울며 거기서 여호와 앞에 앉고 그 날이 저물도록 금식하고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리고;
삼상 10:3 네가 거기서 더 나아가서 다볼 상수리나무에 이르면 거기서 하나님께 뵈려고 벧엘로 올라가는 세 사람이 너와 만나리니 하나는 염소 새끼 셋을 이끌었고 하나는 떡 세덩이를 가졌고 하나는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가진 자라;
왕상 12:28-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 신이라 하고
29)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30) 이 일이 죄가 되었으니 이는 백성들이 단까지 가서 그 하나에게 숭배함이더라
31) 저가 또 산당들을 짓고 레위 자손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고
32) 팔월 곧 그 달 십오일로 절기를 정하여 유다의 절기와 비슷하게 하고 단에 올라가되 벧엘에서 그와 같이 행하여 그 만든 송아지에게 제사를 드렸으며 그 지은 산당의 제사장은 벧엘에서 세웠더라
33) 저가 자기 마음대로 정한 달 곧 팔월 십오일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절기로 정하고 벧엘에 쌓은 단에 올라가서 분향하였더라
13:1-5 때에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으로 인하여 유다에서부터 벧엘에 이르니 마침 여로보암이 단 곁에 서서 분향하는지라
2) 하나님의 사람이 단을 향하여 여호와의 말씀으로 외쳐 가로되 단아 단아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하는 아들을 낳으리니 저가 네 위에 분향하는 산당 제사장을 네 위에 제사할 것이요 또 사람의 뼈를 네 위에 사르리라 하셨느니라 하고
3) 그 날에 저가 예조를 들어 가로되 이는 여호와의 말씀하신 예조라 단이 갈라지며 그 위에 있는 재가 쏟아지리라 하매
4) 여로보암 왕이 하나님의 사람의 벧엘에 있는 단을 향하여 외쳐 말함을 들을 때에 단에서 손을 펴며 저를 잡으라 하더라 저를 향하여 편 손이 말라 다시 거두지 못하며
5) 하나님의 사람의 여호와의 말씀으로 보인 예조대로 단이 갈라지며 재가 단에서 쏟아진지라;
왕하 2:3 벧엘에 있는 선지자의 생도들이 엘리사에게로 나아와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날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취하실 줄을 아나이까 가로되 나도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물론 과거에 아브라함이 이곳에서 처음 제단을 쌓았고,
(창 12:8 거기서 벧엘 동편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는 벧엘이요 동은 아이라 그가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야곱이 사닥다리를 오르락 내리락하는 천사를 보기도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의를 지닌 사건이었을 뿐이다.
(창 28:10-22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11) 한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곳의 한 돌을 취하여 베개하고 거기 누워 자더니
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하고
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16) 야곱이 잠이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17) 이에 두려워하여 가로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18)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19)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본 이름은 루스더라
20) 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21)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 하나님께 묻자와 가로되 - 전쟁 전에 하나님께 묻는 행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관례적인 것이다.
(1:1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우리 중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사람과 싸우리이까).
즉 그들은 대적과 싸움에 있어서
항상 하나님께서 지시해 주시는 방법대로 수행하기 위해
먼저 하나님의 뜻을 물었던 것이다.
(수 5:13-15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웠을 때에 눈을 들어 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 섰는지라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그에게 묻되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대적을 위하느냐
14) 그가 가로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 장관으로 이제 왔느니라 여호수아가 땅에 엎드려 절하고 가로되 나의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15) 여호와의 군대 장관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베냐민 지파를 가나안 족속과 동일한 대적으로 취급하였을 뿐
한 형제로 여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즉 그들은 한 형제의 범죄에 대해 진정한 회개를 기대하기 보다는
마치 이방인과 싸우는 것처럼 승리만을 기원하였던 것이다.
이스라엘이 베냐민과의 첫 번째 전쟁에서 크게 패하게 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19-23절 이스라엘 자손이 아침에 일어나 기브아를 대하여 진을 치니라
20) 이스라엘 사람들이 나가서 항오를 벌이고 거기서 그들과 싸우고자 하매
21) 베냐민 자손이 기브아에서 나와서 당일에 이스라엘 사람 이만 이천을 땅에 엎드러뜨렸으나
22) 이스라엘 사람들이 스스로 용기를 내어 첫날 항오를 벌였던 곳에 다시 항오를 벌이니라
23) 이스라엘 자손이 올라가서 여호와 앞에서 저물도록 울며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내가 다시 나아가서 나의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올라가서 치라 하시니라)
▶ 유다가 먼저일지니라 -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질문에 대하여
이같이 답변하신 것은 분명 이스라엘 내에서 차지하고 있던
유다 지파의 지도자적 위치 때문이었을 것이다.
(창 49:8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비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삿 20:19-20] 이스라엘 자손이 아침에 일어나 기브아를 대하여 진을 치니라
20) 이스라엘 사람들이 나가서 항오를 벌이고 거기서 그들과 싸우고자 하매
▶ 나가서 항오를 벌이고 - 여기서 '항오를 벌이고'에 해당되는 원어
'와야아르쿠'는 '병력을 배치하다'라는 뜻의 '아라크'에서 유래한 것으로,
일반적으로 가장자리를 향하여 선 전투 대형을 가리킨다(Cassel).
그런데 이와 같이 적을 포위하여 섬멸하는 전투 대형을 취할 때에는
반드시 병력의 수효나 전투력에 있어서 상대편보다 막강히 우세하여야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 연맹군은 베냐민 지파의 병력에 대한
정확한 파악이나 분명한 작전도 없이 무턱대고 베냐민 군을 포위하여 공격하려 하였다.
그것은 아마 전체 지파를 통솔할 뚜렷한 지도자가 없었던 탓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도 그들이 교만에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삿 20:21] 베냐민 자손이 기브아에서 나와서 당일에 이스라엘 사람 이만 이천을 땅에 엎드러뜨렸으나
▶ 기브아에서 나와서 당일에 이스라엘 사람 이만 이천을 땅에 엎드러뜨렸으나 -
부주의하고 오만했던 이스라엘 연맹군은
기브아 용사들이 매복해 있는 줄도 모르고 무작정 기브아 성읍을 포위하려다가
이처럼 베냐민군대의 갑작스런 공격에 큰 참패를 당하고
병력 22,000명을 잃고 말았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 연맹군이 패하게 된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크게 다음과 같이 집약할 수 있다.
(1) 이스라엘의 연맹 세력은 하나님의 심판 도구로 사용되었기는 하지만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될 죄악을 자체 내에 지니고 있었다.
* 참조 : (19:1-21:25).
즉 그들은 동족상잔의 엄청난 비극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통감하고 회개했어야 옳았음에도 불구하고
베냐민 지파에 대해 일방적으로 심판관으로서의 자세만을 취하는
교만과 우(愚)를 범했으며,
그로 인해 하나님의 경고를 받게 되었던 것이다.
(2) 베냐민 군사들은 그 전쟁에 패하는 것이
곧 멸망일 수 밖에 없다고 하는 강한 위기 의식 속에서
결사적으로 전투에 임했을 것이다.
반면에 연맹군은 수효만 믿고 방심하였거나,
막상 싸움에 임하여서는 서로 타지파의 눈치를 보며
꽁무니를 빼는 소극적 자세를 취했을 것이다.
[삿 20:22-23] 이스라엘 사람들이 스스로 용기를 내어 첫날 항오를 벌였던 곳에 다시 항오를 벌이니라
23) 이스라엘 자손이 올라가서 여호와 앞에서 저물도록 울며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내가 다시 나아가서 나의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올라가서 치라 하시니라.
혹자는 23절과 22절의 순서가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Hervey).
그러나 고대 히브리어 사본들은
모두 본문과 동일한 순서로 두 절을 배열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주장은 근거가 없다(Goslinga).
한편 22절의 '첫날 항오를 벌였던 곳에 다시 항오를 벌였다'는 기록은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묻기 이전에(23절)
싸움부터 먼저 벌인 것을 가리키는 것처럼 오해하게 만든다.
때문에 이스라엘이 실제로 처음 전쟁이 끝 난후(19-21절)
다음날에도 연거푸 전쟁을 수행했다고 해석하는 주석가도 있다(Cassel).
그러나 22절은 이스라엘이 재차 전쟁을 수행한 것이 아니라
전투 형태만 다시 갖춘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나서 이스라엘은 실제적인 싸움을 하기 전에
여호와 앞에서 울며 다시 베냐민과 싸워야 하는지를 물었던 것이다.
▶ 스스로 용기를 내어 - 즉 어떻게 해서든 첫날의 패배를 만회해 보려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음을 굳게 다져 먹은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저들은 아직까지 근본적인 패배의 원인을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이후 전투에서도 패배할 수 밖에 없었다.
(24-25 그 이튿날에 이스라엘 자손이 베냐민 자손을 치러 나아가매
25) 베냐민도 그 이튿날에 기브아에서 그들을 치러 나와서 다시 이스라엘 자손 일만 팔천을 땅에 엎드러뜨렸으니 다 칼을 빼는 자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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