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철수
성 경: [삼상 29:6-11] 아기스가 다윗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 네가 정직하여 내게 온 날부터 오늘까지 네게 악이 있음을 보지 못하였으니 나와 함께 군중에 출입하는 것이 나의 소견에는 좋으나 장관들이 너를 좋아하지 아니하니
7) 너는 돌이켜 평안히 가서 블레셋 사람의 장관들에게 거슬려 보이게 말라
8) 다윗이 아기스에게 이르되 내가 무엇을 하였나이까 내가 당신의 앞에 오늘까지 있는 동안에 당신이 종에게서 무엇을 보셨기에 나로 가서 내 주 왕의 원수와 싸우지 못하게 하시나이까
9) 아기스가 다윗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내 목전에 하나님의 사자 같이 선한 것을 내가 아나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은 말하기를 그가 우리와 함께 전장에 올라가지 못하리라 하니
10) 그런즉 너는 너와 함께 온 네 주의 신하들로 더불어 새벽에 일어나라 너희는 새벽에 일어나서 밝거든 곧 떠나라
11) 이에 다윗이 자기 사람들로 더불어 일찍이 아침에 일어나서 떠나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돌아가고 블레셋 사람은 이스르엘로 올라 가니라.
[삼상 29:6] 아기스가 다윗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 네가 정직하여 내게 온 날부터 오늘까지 네게 악이 있음을 보지 못하였으니 나와 함께 군중에 출입하는 것이 나의 소견에는 좋으나 장관들이 너를 좋아하지 아니하니
▶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 - 자신의 말의 신실성(信實性)을 강조적으로 표현하는
히브리적 맹세의 한 방식이다.
(26:10 다윗이 또 이르되, 주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거니와 주께서 그를 치시리니 그의 날이 이르러서 죽거나 혹은 그가 싸움터에 내려가서 멸망하리라).
그러나 여기에 언급되는 아기스의 이 맹세는,
그가 히브리인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었음을 시사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아기스는 신실한 맹세를 하고자 할 때,
히브리인들은 바로 이같이 맹세한다는 것을 다윗으로부터 배운 후,
이제 오히려 그는 자신의 심경을
진지하게 표출하는 이 마당에서 도로 다윗에게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 네가 정직하여 - '정직하여'(야솨르)는 어떠한 악의(惡意)나
사심(私心)없이 곧고 바르게 행동하는 것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 형용사이다.
(출 15:26 이르시되, 네가 주 네 하나님의 음성에 부지런히 귀를 기울이고 그의 눈앞에서 옳은 것을 행하며 그의 명령들을 귀담아 듣고 그의 모든 법규를 지키면 내가 이집트 사람들에게 내린 이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를 치유하는 주니라, 하시니라;
신 12:28 내가 네게 명령하는 이 모든 말을 듣고 지키라. 이로써 네가 주 네 하나님의 눈앞에서 선하고 올바른 것을 행하면 너와 네 뒤를 이을 네 자손들이 영원토록 잘되리라;
수 9:25 보소서, 이제 우리가 당신의 손에 있으니 당신이 보기에 좋고 옳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고 행하소서, 하므로).
▶ 네게 악이 있음을 보지 못하였으니 - '네가 정직하여'와 동일한 의미이다.
아기스는 이같은 동의어를 반복 언급함으로써
다윗의 의로움을 강조적으로 칭찬하고 있다.
한편 아기스의 이러한 말을 통해
우리는 당시 이방 사회에 거주하던 다윗이
어떠한 생활을 하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즉 비록 이방 땅으로 피신하는 실수를 저지르기는 했으나,
다윗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답게 신중하게 생활했다.
이 사실은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성경적 삶의 원리를 일깨워 준다.
(1) 성도의 어느 곳에 처하든지
정직하고 진실한 삶으로써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
(마 5:13-16 너희는 땅의 소금이로되 만일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것을 짜게 하리요? 그 뒤에는 그것이 아무 쓸모없으므로 버려져서 사람들의 발밑에 밟힐 뿐이니라.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니 산 위에 세운 도시가 숨겨지지 못하리라.
15) 또 사람들이 등잔불을 켜서 통 밑에 두지 아니하고 등잔대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그것이 집 안의 모든 사람에게 빛을 주느니라.
16) 이와 같이 너희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선한 행위를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2) 하나님을 믿지 않고, 또한 까다롭게 대하는 상전들에게도
성도는 하나님을 섬기듯 진실하게 봉사해야 한다.
(벧전 2:18 종들아, 모든 두려움으로 너희 주인들에게 복종하되 선하고 부드러운 자들에게뿐만 아니라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이처럼 언제 어느 곳에서든지 실천적 삶으로써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자가 산 믿음을 소유한 자요,
(약 2:26 영이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위 없는 믿음도 죽었느니라),
하나님과 사람에게 칭찬을 받는 자이다.
(롬 14:18 이것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서 받아 주시며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느니라).
▶ 군중(마하네) - 군대의 진영 혹은 진지(陣地)를 가리킨다.
(4:3 백성이 진영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이르되, 주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오늘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치셨느냐? 우리가 실로에서 주의 언약 궤를 우리에게로 가져오고 그것이 우리 가운데 올 때에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게 하자, 하니라;
13:17 노략하는 자들이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에서 세 무리로 나와 한 무리는 오브라로 가는 길 쪽으로 돌아서서 수알 땅에 이르렀고;
17:1 이제 블레셋 사람들이 싸우기 위해 자기들의 군대를 함께 모으고 유다에 속한 소고에 함께 모여 소고와 아세가 사이에 있는 에베스담밈에 진을 치매).
[삼상 29:7] 너는 돌이켜 평안히 가서 블레셋 사람의 장관들에게 거슬려 보이게 말라
▶ 너는 돌이켜 평안히 가서 - 사실 이 같은 아기스의 명령은,
다윗에게는 매우 기다려지던 바였다.
사실 다윗은 그때 블레셋 군대와 합세하여
자신의 동족 이스라엘과 절대로 싸우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어떻게 해서든지 그 전투에 참여치 않으려 노력했었다.
(28:2 다윗이 아기스에게 이르되, 당신의 종이 행할 수 있는 일을 당신이 반드시 아시리이다, 하니 아기스가 다윗에게 이르되, 그런 까닭에 내가 너를 영원토록 내 머리 지키는 자로 삼으리라, 하니라).
그러므로 그때 다윗을 시글락으로 되돌려 보내기 위하여
이같은 말을 하는 가드 왕 아기스는
다윗에 대하여 대단히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겠지만,
그 당사자인 다윗은 하나님의 섭리에 감사하였을 것이고,
내심으로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 장관들에게 거슬려 보이게 말라 – 문자적으로는
'장관들의 눈에 악함이 보이지 않도록'이란 뜻이다.
이러한 당부는 아기스가 다윗을 앞으로도 계속 자신의 '사역자'로
삼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었음을 시사해 준다.
즉 만일 다윗이 다른 블레셋 방백들에 의하여
더 이상 눈 밖에 나게 된다면, 아기스도 다윗을
계속 자신의 휘하에 두고 싶더라도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삼상 29:8] 다윗이 아기스에게 이르되 내가 무엇을 하였나이까 내가 당신의 앞에 오늘까지 있는 동안에 당신이 종에게서 무엇을 보셨기에 나로 가서 내 주 왕의 원수와 싸우지 못하게 하시나이까
본 구절에 나타난 바 다윗의 이 항변은
분명히 그의 양심에 반(反)하는 것이었다.
사실 다윗은 앞으로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야 하는 입장에서,
이스라엘과 전투를 할 수도 없었고,
또한 전투를 하고 싶은 마음도 결코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이같은 거짓된 말을 한 까닭은,
(1) 블레셋 방백들의 의심으로부터 자신을 변호하고,
(2) 또한 아기스가 한 말의 진실성을 시험해 보기 위함이었다(Keil).
만일 그때 다윗이 잠잠히 있었다면,
아기스는 다윗을 고소한 다른 방백들의 말을
참말로 받아들였을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4-5절 블레셋 사람들의 통치자들이 그에게 노하니라. 블레셋 사람들의 통치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이 자를 돌려보내어 그가 왕이 그를 위해 정해 준 그의 처소로 다시 가게 하소서. 그가 우리와 함께 싸움터에 내려가게 하지 말지니 그가 싸움터에서 우리의 대적이 될까 염려하나이다. 그가 무엇으로 자기 주인과 화해하리이까? 이 사람들의 머리가 아니니이까?
5) 그들이 춤추며 서로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수천이요, 다윗은 수만이로다, 하던 자가 이 다윗이 아니니이까? 하니라)
▶ 내 주 왕의 원수 - 여기서 '내 주'는 다윗의 의도를 따른다면,
사울을 가리킬 것이 분명하다(McCarter).
이처럼 다윗은 '내 주 왕'을 내심 사울에게 적용시켰지만,
아기스는 다윗의 교묘한 말투에 의하여 '내 주 왕'을
자신에 대한 명칭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다윗은 이같은 말투를 사용함으로써,
아기스가 자신에 대하여 일말의 의심도 품지 못하도록 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양심에 대해서도 가책이 없도록 하려고 하였다.
한편 여기서 다윗이 특별히 '내 주'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블레셋의 다른 방백들이 사울을 다윗의 '주'로 말했던 것에
항의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4절 블레셋 사람들의 통치자들이 그에게 노하니라. 블레셋 사람들의 통치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이 자를 돌려보내어 그가 왕이 그를 위해 정해 준 그의 처소로 다시 가게 하소서. 그가 우리와 함께 싸움터에 내려가게 하지 말지니 그가 싸움터에서 우리의 대적이 될까 염려하나이다. 그가 무엇으로 자기 주인과 화해하리이까? 이 사람들의 머리가 아니니이까?)
아무튼 다윗의 이같은 말투는
상대를 속이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명예스럽지 못한 테크닉'(word-play)이라 볼 수 있다.
[삼상 29:9] 아기스가 다윗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내 목전에 하나님의 사자 같이 선한 것을 내가 아나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은 말하기를 그가 우리와 함께 전장에 올라가지 못하리라 하니
▶ 하나님의 사자 같이 선한 - 여기서 '하나님의 사자'는
'하나님의 천사'를 의미하는데,
아기스의 이같은 표현은 하나님께서 보낸 천사는
항상 인간들을 위하여 좋은 일만 한다는 일반적 관념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따라서 이 표현은 다윗의 정직함과 의로움을 강조하는 말임이 분명하다.
▶ 내가 아나 - 여기의 '아나'(야다)는
체험적으로 깨달아 자세히 아는 것을 뜻하는 단어이다.
▶ 그가 우리와 함께 전장에 올라가지 못하리라 - 이것은 블레셋의 집결지
'아벡'으로부터 그들이 진을 칠 곳인 '수넴'까지 진군하는 것을 가리킨다.
(28:4 블레셋 사람들이 함께 모여 수넴에 이르러 진을 치매 사울이 온 이스라엘을 함께 모으고 그들이 길보아에 진을 치니라).
한편 '올라간다'는 말은 북상(北上)한다는 뜻과 아울러
블레셋의 진지인 '수넴'이 '모레 언덕'이라는 고지대(高地帶)에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삼상 29:10] 그런즉 너는 너와 함께 온 네 주의 신하들로 더불어 새벽에 일어나라 너희는 새벽에 일어나서 밝거든 곧 떠나라
▶ 네 주의 신하들 - 이것은 말할 나위 없이 다윗의 휘하 병력들을 가리킨다.
그런데 여기서 이들을 이와 같이 표현한 까닭은,
다윗의 추종 병력들이 원래는 사울의 휘하에 있었으나
이후 다윗에게로 넘어온 자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22:2 고난 중에 있던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불만이 있던 모든 자가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을 다스리는 대장이 되었더라. 거기에는 그와 함께한 사백 명가량의 사람이 있더라;
23:13 이에 다윗과 그의 사람 육백 명가량이 일어나 그일라를 떠나서 갈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갔더니 다윗이 그일라를 떠나 피한 것을 어떤 이가 사울에게 고하매 사울이 가기를 그치니라;
대상 12:19-21 다윗이 전에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가서 사울을 대적하며 싸우려 할 때에 므낫세 중에서 몇 사람이 다윗에게 돌아왔으나 그들이 블레셋 사람들을 돕지 못하였으니 이는 블레셋 사람들의 영주들이 상의하고 그를 내보내며 이르기를, 그가 자기 주인 사울에게 돌아가서 우리의 머리를 위태롭게 하리라, 하였기 때문이더라.
20) 다윗이 시글락으로 갈 때에 므낫세 중에서 그에게 돌아온 자는 아드나와 요사밧과 여디아엘과 미가엘과 요사밧과 엘리후와 실대인데 이들은 므낫세의 천인 대장들이더라.
21) 그들이 다윗을 도와 강도떼를 쳤으니 이는 그들이 다 강한 용사요, 군대에서 대장들이었기 때문이더라).
▶ 새벽에 일어나라 - 이는 블레셋의 방백들이 다윗의 참전(參戰)에 대하여
이의(異議)를 제기한 때가 거의 밤이었음을 암시해 준다.
▶ 밝거든 곧 떠나라 - 이같은 아기스의 명령은 다윗으로 하여금
블레셋의 다른 방백들의 눈에 더 이상 띄지 않도록 하려는
의도에 따른 것이었다.
즉 날이 밝은 그 다음날 아침에도
다윗이 블레셋 방백들에 의하여 발견된다면,
다윗은 또다시 그들의 구설수에 오르게 되고,
급기야는 블레셋 땅에서 완전히 떠나야만 하는
상황에 도달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7절 너는 돌이켜 평안히 가서 블레셋 사람의 장관들에게 거슬려 보이게 말라).
[삼상 29:11] 이에 다윗이 자기 사람들로 더불어 일찍이 아침에 일어나서 떠나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돌아가고 블레셋 사람은 이스르엘로 올라 가니라.
▶ 다윗이 자기 사람들로 더불어 일찍이 아침에 일어나서 떠나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돌아가고 -
다윗이 이처럼 자신의 동족 이스라엘과 싸우지 않고
시글락으로 되돌아가게 된 것은, 블레셋 방백들로 하여금
다윗의 참전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케 하신 하나님의 섭리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역사하심으로써,
(1) 다윗이 장차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르는 데 있어 장애가 없도록 하셨으며,
(2) 또한 때마침 아말렉의 침공에 의하여
납치되었던 자신의 가족 등을 구출하도록 역사하신 것이다.
▶ 일찌기 아침에 일어나서 떠나 - 다윗은 진퇴양난의 위기에서 결국
동족 이스라엘에게도 전혀 죄를 짓지 아니하고,
또한 아기스 왕에게도 전혀 의심받지 않은 상태로
자신의 거처인 시글락으로 떠났다.
한편, 본 구절은
B.C. 1010년에 발발한 길보아 전투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이 전투를 계획했던 블레셋 왕 아기스는
그 당시 다윗을 상당히 신임하고 있었던 터라
다윗을 그 전투에 참가시키려 했던 것이다.
따라서 다윗은 어떠한 행동을 취하든
결과는 반역자가 될 수 밖에 없는 궁지에 몰리고 말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비록 당신의 뜻을 저버리고 이방인의 신하가 되어 있던 다윗이었지만,
그를 들어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사용하시려는 당신의 계획을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표시로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던 다윗에게
그 전투에 참전할 수 없도록 섭리하셨던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같은 사실들을 통해
(1) 인간의 실수와 절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성취해 가신다는 것과
(마 26:14-29 그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수제사장들에게 가서
15)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그를 너희에게 넘겨주면 너희가 얼마를 내게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서른 개로 그와 언약을 맺거늘
16) 그가 그때부터 그분을 배반하여 넘겨줄 기회를 엿보더라.
17) 이제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그분께 이르되, 선생님께서 유월절 어린양을 잡수시도록 우리가 예비하려 하오니 어디에서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하매
18) 그분께서 이르시기를, 도시로 들어가 이런 사람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되,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때가 가까이 왔으니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네 집에서 유월절을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시매
19)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자기들에게 정해 주신 대로 행하여 유월절을 예비하니라.
20) 이제 저녁이 되매 그분께서 그 열둘과 함께 앉으시니라.
21) 그들이 먹을 때에 그분께서 이르시되,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배반하여 넘겨주리라, 하시거늘
22) 그들이 심히 근심하며 저마다 그분께 말하기 시작하여, 주여, 그게 나니이까? 하매
23) 그분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와 함께 대접에 손을 넣는 자 곧 그가 나를 배반하여 넘겨주리라.
24) 사람의 아들은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사람의 아들을 배반하여 넘겨주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기에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하시니라.
25) 그때에 그분을 배반하여 넘긴 유다가 응답하여 이르되, 선생님이여, 그게 나니이까? 하니 그분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
26)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님께서 빵을 집으사 축복하시고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27) 또 잔을 집으사 감사를 드리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는 다 그것을 마시라.
28) 이것은 죄들의 사면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린 나의 피 곧 새 상속 언약의 피니라.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이 포도나무 열매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왕국에서 너희와 함께 새롭게 마시는 그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2) 당신이 택하신 자를 결코(그가 범죄의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버리지 않으실 뿐 아니라
피할 길을 예비해 주신다는 진리를 배울 수 있다.
(고전 10:13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있는 시험 외에는 너희가 어떤 시험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 하나님은 신실하사 너희가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시험 당하는 것을 너희에게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또한 그 시험과 함께 피할 길을 내사 너희가 능히 그것을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 이스르엘 - '이스르엘'(Jezreel)은
'하나님께서 씨를 뿌림'이란 뜻인데,
헬라식 이름으로는 '에스드라엘론'(Esdraelon)이다.
이곳은 길보아 산악 지대의 북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으며
(28:4 블레셋 사람들이 함께 모여 수넴에 이르러 진을 치매 사울이 온 이스라엘을 함께 모으고 그들이 길보아에 진을 치니라),
기손 강의 영향으로 토지는 비옥하고,
길게 평원 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한편 여기의 '샘'(아인)은 '이스르엘' 동남쪽 약 2.8km 지점에 있고,
길보아 산지 북쪽에 수원(水源)을 갖고 있는 우물로서,
오늘날의 '아인 잘루드'(Ain Jalud, '골리앗의 샘'이란 뜻)와
동일 지역으로 인정되고 있다(Robinson).
그런데 이 우물은 화강암 절벽에서 흘러 내려온 물에 의하여
형성된 큰 웅덩이의 모양으로 되어있다고 한다(Con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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