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engol 2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거듭난 삶 2021. 7. 21.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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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조가(弔歌) 2

 

성 경: [삼하 1:21-27] 길보아 산들아 너희 위에 우로가 내리지 아니하며 제물 낼 밭도 없을지어다 거기서 두 용사의 방패가 버린바 됨이라 곧 사울의 방패가 기름 부음을 받지 않음 같이 됨이로다

22) 죽은 자의 피에서, 용사의 기름에서 요나단의 활이 물러가지 아니하였으며 사울의 칼이 헛되이 돌아오지 아니하였도다

23) 사울과 요나단이 생전에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자러니 죽을 때에도 서로 떠나지 아니하였도다 저희는 독수리보다 빠르고 사자보다 강하였도다

24) 이스라엘 딸들아 사울을 슬퍼하여 울지어다 저가 붉은 옷으로 너희에게 화려하게 입혔고 금 노리개를 너희 옷에 채웠도다

25) 오호라 두 용사가 전쟁 중에 엎드러졌도다 요나단이 너의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26)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승하였도다

27)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으며 싸우는 병기가 망하였도다 하였더라.

 

 

 

[삼하 1:21] 길보아 산들아 너희 위에 우로가 내리지 아니하며 제물 낼 밭도 없을지어다 거기서 두 용사의 방패가 버린바 됨이라 곧 사울의 방패가 기름 부음을 받지 않음 같이 됨이로다

 

길보아 산들아 너희 위에 우로가 내리지 아니하며 제물 낼 밭도 없을지어다 -

 

이는 자연에 대한 실제적 저주 라기 보다는

길보아산도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함께 애도해야 한다는 시적 표현이다.

 

 

제물 낼 밭도 없을지어다 - 여기서 '제물'(트루마)은 거제를 의미한다.

 

(7:14 그 전체 봉헌물 중에서 하나를 취하여 주께 거제 헌물로 드릴지니 그것은 화평 헌물의 피를 뿌리는 제사장의 것이 될지니라,

 

32 또 너희는 그 오른쪽 어깨를 제사장에게 주어 너희 화평 헌물의 희생물의 거제 헌물로 삼을지니).

 

그런데 이는 '처음 익은 곡식가루 떡'을 드리는 것이니,

 

(15:20 곧 너희 빵 반죽의 처음 것으로 만든 납작한 빵을 거제 헌물로 드리되 너희가 타작마당의 거제 헌물을 들어 올리는 것 같이 그것을 들어 올릴지니라)

 

'제물 낼 밭'이란 곧,

풍성한 첫 열매를 내는 비옥한 땅을 의미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본 구절에서 다윗은 길보아 산이 메말라 박토가 되어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함께 애도해 주기를 기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울의 방패가 기름 부음을 받지 않음 같이 됨이로다 - 옛날에는 적의 무기가

잘미끄러져 빗나가도록 하기 위해 방패에 기름을 바르는 것이 보통이었다.

(Lan-ge, Wycliffe, Pulpit Commentary).

 

(21:5 상을 예비하고 파수대에서 파수를 보며 먹고 마실지어다. 통치자들아, 너희는 일어나 방패에 기름을 바를지어다)

 

그런데 이제 '사울의 방패가 기름칠도 않은 채 버려졌다'는 것은

, 사울은 전사하고 그의 방패는 피 묻은 채 나뒹구는

비극적 상황을 의미한다(Keil & Delitzsch).

 

이와 관련 랑게(Lange)는 논평하기를

 

"이는 하나님의 영광을 상실한 이스라엘의 현상태를 잘 나타내고 있다"고 하였다.

 

 

 

[삼하 1:22] 죽은 자의 피에서, 용사의 기름에서 요나단의 활이 물러가지 아니하였으며 사울의 칼이 헛되이 돌아오지 아니하였도다

 

 

과거 사울과 요나단의 무용(武勇)을 회상하며 찬양하고 있는 구절이다.

개역 성경의 표현은 다소 그 뜻이 애매모호한데

다음과 같이 공동 번역은

 

"요나단이 한번 활을 쏘면 사람들은 피를 쏟으며 쓰러졌고,

그 살에는 적군 용사들의 기름기가 묻고야 말았는데"라고 표현하여

그 뜻이 비교적 명쾌하다.

 

 

칼이 헛되이 돌아오지 아니하였도다 -

 

'화살은 피에 취하고 칼은 육체를 삼킨다'(32:42)

것과 같은 시적(詩的) 표현이다.

 

즉 이는 과거 사울이 '천천'이나 되는 (삼상 18:7) 많은 적들을

살육하였음을 회상하고 있는 구절이다.

 

 

 

[삼하 1:23] 사울과 요나단이 생전에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자러니 죽을 때에도 서로 떠나지 아니하였도다 저희는 독수리보다 빠르고 사자보다 강하였도다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자 - 이 말은 다윗의 친구 요나단 뿐만 아니라

초기에 유능한 지도자의 미덕을 보여 주어

백성에게 칭송을 받은 사울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삼상 11:12-13 백성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사울이 우리를 통치하겠느냐, 한 자가 누구니이까? 그 사람들을 끌어내소서. 우리가 그들을 죽이겠나이다, 하매

13) 사울이 이르되, 주께서 오늘 이스라엘 안에서 구원을 이루셨으므로 이 날에는 사람을 죽이지 못하리라, 하니라)

 

이처럼 다윗은 자기에게 악을 행한 정적(政敵)

사울의 단점은 숨기고 장점, 곧 존경할 만한 점들만을

이 애가에서 노래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는 성격상 이 노래가 두 용사의 죽음을 애도하는

애가이기 때문이기도 하나 무엇보다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다윗의 성품이 매우 관대한 때문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그의 성품은 장차 신정 국가의 왕으로서의

합당한 자격을 보여 주는 동시에 그의 고귀한 신앙 인격을 드러내 준다.

 

 

죽을 때에도 서로 떠나지 아니하였도다 - 자식으로서 끝까지

아비를 버리지 아니하였을 뿐 아니라

죽기까지 신하로서 충성을 다한 요나단의

효심과 충정을 기억케 해주는 구절이다.

 

즉 과거 요나단은 다윗과의 우정으로 인해

아비 사울로부터 죽음의 위협을 당하기까지 하였다.

 

(삼상 20:30-34 이에 사울의 분노가 요나단을 향해 타오르매 그가 요나단에게 이르되, 너 사악하고 반역하는 여인의 아들아, 네가 이새의 아들을 택하여 네게 혼란을 가져오고 또 네 어머니를 벌거벗기는 혼란을 가져온 줄을 내가 알지 못하랴?

31) 이새의 아들이 땅에 사는 한 너나 네 왕국이 든든히 서지 못하리라. 그런즉 이제 사람을 보내어 그를 내게로 끌어 오라. 그는 반드시 죽어야 하리라, 하니

32) 요나단이 자기 아버지 사울에게 응답하여 이르되, 무슨 이유로 그가 죽어야 하리이까? 그가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하매

33) 사울이 요나단에게 창을 던져 치려 하니 이로써 요나단이 자기 아버지가 다윗을 죽이기로 결심한 줄 알고

34) 이에 맹렬히 분노하여 식탁에서 일어나고 그 달의 둘째 날에는 음식을 먹지 아니

였으니 자기 아버지가 다윗을 모욕하였으므로 그가 다윗으로 인해 근심하였더라).

 

그러나 요나단은 결코 그러한 사울을 배반치 아니하고

조국을 수호하다가 사울과 함께

한 자리에서 전사하고 말았던 것이다.

 

(삼상 31:1-6 이제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웠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여 길보아 산에서 죽임을 당해 쓰러지니라.

2)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과 그의 아들들을 맹렬히 추격하여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멜기수아를 죽이고

3) 싸움이 사울에게 심히 불리하게 되어 활 쏘는 자들이 그를 맞추매 사울이 그 활 쏘는 자들로 인하여 크게 다치니라.

4) 이에 사울이 자기의 병기를 드는 자에게 이르되, 네 칼을 빼어 그것으로 나를 찌르라. 이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이 와서 나를 찌르고 능욕할까 염려하노라, 하였으나 그의 병기를 드는 자가 심히 두려워하여 하려 하지 아니하므로 사울이 칼을 취해 그 위에 쓰러지매

5) 그의 병기를 드는 자가 사울이 죽은 것을 보고 자기도 마찬가지로 자기 칼 위에 쓰러져 그와 함께 죽으니라.

6) 이와 같이 사울과 그의 세 아들과 그의 병기를 드는 자와 그의 모든 사람이 그 날에 함께 죽었더라).

 

 

독수리보다 빠르고 사자보다 강하였도다 - 전쟁에 능하였던

위대한 용사나 영웅들을 가리킬 때 흔히 사용되던 개념이다.

 

,

 

독수리 같은 날쌤과

 

(9:26 그 날들이 빠른 배들처럼 지나갔으며 또 먹이를 향해 치닫는 독수리처럼 지나갔도다;

 

23:5 네가 존재하지 않는 것에 네 눈을 두려 하느냐? 재물은 반드시 스스로 날개를 내어 독수리같이 하늘을 향해 날아가느니라;

 

1:8 그들의 말들은 또한 표범보다 빠르고 저녁때의 이리보다 사나우며 그들의 기병들은 스스로 퍼지고 멀리서 오므로 그들이 마치 급히 먹으려 하는 독수리같이 날아오리라)

 

사자와 같은 힘셈, 용감함은

 

(33:22 단에 관하여는 그가 이르되, 단은 사자 새끼요, 그가 바산에서 뛰어 나오리로다, 하니라;

 

104:21 젊은 사자들이 자기들의 먹이를 쫓아가며 울부짖고 하나님께 자기들의 먹을 것을 구하다가;

 

13:8 내가 새끼 잃은 곰같이 그들을 만나서 그들의 심장 꺼풀을 찢고 거기서 사자같이 그들을 삼키리니 들짐승이 그들을 찢으리라)

 

고대의 용사들에게서 찾아 볼 수 있던 특징이다.

(Lange, Keil & Delitzch Commentary).

 

 

 

[삼하 1:24] 이스라엘 딸들아 사울을 슬퍼하여 울지어다 저가 붉은 옷으로 너희에게 화려하게 입혔고 금 노리개를 너희 옷에 채웠도다

 

 

붉은 옷으로 너희에게 화려하게 입혔고 금 노리개 - 아마 사울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가져온 전리품(戰利品)들일 것이다.

사울 생전에 이스라엘 여인들은 이러한 전리품을 하사받아

자신들을 치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무튼 이는 사울의 통치 기간 중

이스라엘 백성들이 누렸던 안정과 번영을 시사해 준다.

 

 

 

[삼하 1:25] 오호라 두 용사가 전쟁 중에 엎드러졌도다 요나단이 너의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오호라 두 용사가 전쟁 중에 엎드러졌도다 - 25, 27절에서도 반복되고 있는 구절로

본 애가의 후렴구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에 대한 다윗의 슬픔이

얼마나 극심한 것이었는지를 잘 드러내 준다.

 

 

[삼하 1:26]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승하였도다

 

내 형 요나단 - 여기서 ''에 해당하는 원어 '아흐'

단순히 연령적으로 손위에 있는 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대신 이는 마치 친형제와도 같이 친근한 관계에 있는 자를 가리킬 때가 많다.

 

다윗이 요나단을 가리켜 '내 형'이라고

칭하고 있는 것도 바로 후자와 같은 의미에서이다.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 NIV는 이를

'그대는 나에게 매우 친절했다'(youwere very dear to me),

RSV

'그대는 나에게 심히 기쁨이 되었다'(very pleasanthave you been to me)

각기 번역하고 있다.

 

이는 곧 생전에 요나단이 다윗에게 베풀어 주었던 은혜가 지극하였음을 의미한다.

사실 과거에 요나단은 사울의 왕권이 다윗에게로 넘어가게 된 것도

개의치 않고 그를 자기 목숨처럼 위하며 사랑했었다.

 

(삼상 20:12-17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내가 내일 아무 때나 혹은 셋째 날에 내 아버지를 자세히 살필 때에, 보소서, 다윗을 위하여 선한 일이 있는데 그때에 내가 그에게 사람을 보내어 그것을 그에게 알려 주지 아니하면

13) 주께서 요나단에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그러나 만일 내 아버지가 너를 해하는 것을 기뻐하거든 내가 그것을 네게 알려 주고 너를 보내어 평안히 가게 하리라. 주께서 내 아버지와 함께 계셨던 것 같이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니

14) 너는 내가 아직 살아 있는 동안에 주의 친절을 내게 베풀어 내가 죽지 아니하게 할 뿐 아니라

15) 주께서 다윗의 원수들을 지면에서 모두 끊어 버리신 때에도 또한 내 집으로부터 네 친절을 영원히 끊어 버리지 말라, 하고

16) 이와 같이 요나단이 다윗의 집과 언약을 맺고 이르되, 주께서 다윗의 원수들의 손에서도 그것을 요구하실지어다, 하니라.

17) 요나단이 다윗을 사랑하므로 그로 하여금 다시 맹세하게 하였으니 이는 그가 자기 혼을 사랑하는 것 같이 그를 사랑하였기 때문이더라).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 '기이하다'에 해당하는 '파라'

'경이롭다', '불가사의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 말은 주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권능을

표현할 때 사용되었다.

 

(15:11 오 주여, 신들 중에 주와 같으신 이가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 속에서 영화로우시고 찬양 속에서 두려우시며 이적들을 행하시는 이가 누구니이까?;

 

5:9 그분은 크고 헤아릴 수 없는 일들을 행하시며 놀라운 일들을 수도 없이 행하시고;

 

9:10 알아낼 수 없는 큰일들을 행하시며 참으로 수도 없이 이적들을 행하시느니라;

 

17:7 오 주를 신뢰하는 자들을 오른손으로 구원하시는 주여, 그들을 치려고 일어나는 자들로부터 그들을 구원하사 주의 놀라운 인자하심을 보여 주소서;

 

78:4) 우리가 그것들을 그들의 자손들에게 숨기지 아니하고 주를 찬양함과 그분의 능력과 그분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다가올 세대에게 보이리로다;

 

139:14 내가 주를 찬양하리니 내가 두렵고도 놀랍게 만들어졌나이다. 주께서 행하시는 일들이 놀라우니 내 혼이 그것을 매우 잘 아나이다;

 

29:14 그런즉, 보라, 내가 이 백성 가운데서 놀라운 일 행하기를 시작하리니 곧 놀라운 일과 이적이니라. 그들의 지혜로운 자들의 지혜가 없어지고 그들의 분별 있는 자들의 지각이 가려지리라, 하셨느니라;

 

8:6 만군의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이 날들에 그것이 이 백성 중에서 남은 자들의 눈에는 놀랍게 보일지라도 내 눈에야 어찌 그것이 놀랍겠느냐?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그런데 여기서 이러한 표현이 사용된 것은 실제로 다윗에 대한

요나단의 사랑이 경이로울 만치 자기희생적이었으며

영원불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여인의 사랑보다 승하였도다 -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을 최상급으로 표현한 말이다.

남녀의 결혼은 단순히 육체적 결합만이 아니라 영혼의 결합도 의미한다.

 

(2:24-25 그러므로 남자가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자기 아내와 연합하여 그들이 한 육체가 될지니라.

25) 그 남자와 그의 아내가 둘 다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더라;

 

5:22-33 아내들아, 너희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되심과 같기 때문이라. 그분은 그 몸의 구원자시니라.

24)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께 복종하듯 아내들도 모든 일에서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25) 남편들아, 너희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사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것 같이 하라.

26) 이것은 그분께서 말씀을 통해 물로 씻음으로 교회를 거룩히 구별하고 정결하게 하려 하심이요

27) 또 그것을 점이나 주름이나 그런 것이 없는 영광스런 교회로 자기를 위해 제시하려 하심이며 교회가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28) 이와 같이 남자들도 마땅히 자기 아내를 자기 몸같이 사랑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느니라.

29) 지금까지 아무도 자기 육체를 미워한 적이 없고 오히려 그것을 양육하고 소중히 여기기를 주께서 교회에게 하신 것 같이 하나니

30) 우리는 그분의 몸과 그분의 살과 그분의 뼈들에 속한 지체들이니라.

31) 이런 까닭에 남자가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자기 아내와 결합하여 그들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라.

32) 이것은 큰 신비라. 그러나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33)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 모두가 자기를 사랑하듯 개별적으로 자기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도 주의하여 자기 남편을 존경할지니라).

 

따라서 남녀의 영적 결합은 매우 아름다운 것이다.

그런데도 다윗과 요나단의 사랑은 이보다 승하다고 하였으니

이는 저들의 마음이 통하고 그들 사이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는 극찬의 말이 아닐 수 없다.

 

(삼상 18:1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마치매 요나단의 혼이 다윗의 혼과 밀착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혼같이 사랑하니라).

 

 

[삼하 1:27]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으며 싸우는 병기가 망하였도다 하였더라.

 

싸우는 병기가 망하였도다 - 여기서 병기는

칼이나 창, 화살 또는 병거와 같은 실제적 병기를 의미하지 않는다.

대신 이는 '싸우는 군인',

, 사울과 요나단 더 나아가서는 이스라엘 군인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블레셋과의 싸움에 스스로를 병기처럼 내던졌으나

불행히도 패배하고 말았던 것이다.

 

(삼상 31:1-7 이제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웠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여 길보아 산에서 죽임을 당해 쓰러지니라.

2)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과 그의 아들들을 맹렬히 추격하여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멜기수아를 죽이고

3) 싸움이 사울에게 심히 불리하게 되어 활 쏘는 자들이 그를 맞추매 사울이 그 활 쏘는 자들로 인하여 크게 다치니라.

4) 이에 사울이 자기의 병기를 드는 자에게 이르되, 네 칼을 빼어 그것으로 나를 찌르라. 이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이 와서 나를 찌르고 능욕할까 염려하노라, 하였으나 그의 병기를 드는 자가 심히 두려워하여 하려 하지 아니하므로 사울이 칼을 취해 그 위에 쓰러지매

5) 그의 병기를 드는 자가 사울이 죽은 것을 보고 자기도 마찬가지로 자기 칼 위에 쓰러져 그와 함께 죽으니라.

6) 이와 같이 사울과 그의 세 아들과 그의 병기를 드는 자와 그의 모든 사람이 그 날에 함께 죽었더라.

7) 골짜기 저편에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과 요르단 저편에 있던 자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도망한 것과 사울과 그의 아들들이 죽은 것을 보고 도시들을 버리고 도망하매 블레셋 사람들이 와서 그 도시들에 거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