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engol 2

내가 다윗 왕만 쳐 죽이고 모든 백성으로 왕께 돌아오게 하리니

거듭난 삶 2021. 10. 29.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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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히도벨의 전략

 

성 경: [삼하 17:1-4] 아히도벨이 또 압살롬에게 이르되 이제 나로 하여금 사람 일만 이천을 택하게 하소서 오늘 밤에 내가 일어나서 다윗의 뒤를 따라

2) 저가 곤하고 약할 때에 엄습하여 저를 무섭게 한즉 저와 함께 있는 모든 백성이 도망하리니 내가 다윗 왕만 쳐 죽이고

3) 모든 백성으로 왕께 돌아오게 하리니 무리의 돌아오기는 왕의 찾는 이 사람에게 달렸음이라 그리하면 모든 백성이 평안하리이다

4) 압살롬과 이스라엘 장로들이 다 그 말을 옳게 여기더라.

 

 

 

[삼하 17:1] 아히도벨이 또 압살롬에게 이르되 이제 나로 하여금 사람 일만 이천을 택하게 하소서 오늘 밤에 내가 일어나서 다윗의 뒤를 따라

 

오늘 밤에 내가 일어나서 다윗의 뒤를 따라 - 여기서 '오늘 밤'

다윗 왕이 예루살렘에서 급히 도망가고,

 

(15:14-16 다윗이 자기와 함께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신하에게 이르되, 일어나 우리가 도망하자.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가 압살롬에게서 피하지 못하리라. 빨리 떠나가자. 그가 갑자기 우리를 따라잡고 우리에게 해를 가져오며 칼날로 도시를 칠까 염려하노라, 하니

15) 왕의 신하들이 왕께 이르되, 보소서, 내 주 왕께서 무엇을 정하시든지 왕의 종들은 행할 각오가 되었나이다, 하더라.

16) 왕이 가매 그의 온 집안이 그를 따르더라. 왕이 열 명의 여인 곧 첩들을 남겨 두어 집을 지키게 하니라)

 

압살롬이 예루살렘에 입성한 바로 그날 밤을 가르킨다.

(Keil and Delitzsch Commentary, Vol,2. p.429).

 

(15:37 이에 다윗의 친구 후새가 도시로 들어가고 압살롬은 예루살렘으로 들어갔더라;

 

16:15 압살롬과 온 백성 곧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렀고 아히도벨이 그와 함께하니라)

 

따라서 아히도벨(Ahithophel)의 이와 같은 모략(謀略)

다윗에게 약간의 쉴 겨를도 주지 말고 바로 뒤따라가 다윗을

처치하자는 계략이었다.

 

사실 이러한 아히도벨의 상황 판단은 아주 정확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당시 다윗은 피곤한 몸으로

바후림(또는 아예핌) 부근에서 쉬고 있었는데.

그곳은 예루살렘에서 밤사이에 충분히 도착하고도 남는 요단강 근처였기 때문이다.

 

(16:14 왕과 그와 함께 있던 온 백성이 피곤하였으므로 거기서 기운을 차리니라).

 

그러므로 만일 압살롬이 아히도벨의 모략대로 정예군을 급파 하였더라면

다윗은 꼼짝 못하고 칼에 죽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Wycliffe).

 

 

 

[삼하 17:2] 저가 곤하고 약할 때에 엄습하여 저를 무섭게 한즉 저와 함께 있는 모든 백성이 도망하리니 내가 다윗 왕만 쳐 죽이고

 

약할 때에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르페 야딤''손들이 무력해질 때' 란 뜻이다.

그런데 여기서 '손들'이란 말은 성경의 용례들을 살펴볼 때

대개 ''을 상징하는 말이다.

 

(12:8 그 여인이 어린양을 가져올 능력이 없거든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가져다가 하나는 번제 헌물로 다른 하나는 죄 헌물로 삼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녀를 위해 속죄할지니 그리하면 그녀가 정결하게 되리라;

 

14:21 만일 그가 가난하여 그만큼을 구할 수 없으면 그는 흔들어서 자기를 속죄할 범법 헌물로 어린양 한 마리와 음식 헌물로 고운 밀가루 십분의 일 에바에 기름을 섞은 것과 기름 일 로그를 취하고,

 

32 나병을 지닌 자로서 자기를 정결하게 하는 것과 관련된 것을 자기 손으로 구할 수 없는 자에 관한 법이 이러하니라;

 

6:21 이것은 서원한 나사르 사람에 관한 법이요, 또 그가 자기를 구별한 것으로 인해 주께 드리는 헌물에 관한 법이니라. 이 외에도 그는 자기 손이 얻는 대로 드리려니와 자기가 서원한 서원에 따라 자기를 구별하는 법대로 반드시 그리할 것이니라;

 

3:24 오 주 하나님이여, 주께서 주의 크심과 주의 강한 손을 주의 종에게 보여 주기 시작하셨사오니 하늘이나 땅의 어떤 신이 능히 주께서 행하신 일과 주의 크신 능력과 같이 행할 수 있사오리이까?;

 

16:10 주 네 하나님께 칠칠절을 지키되 주 네 하나님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주 네 하나님께 바치는 네 손의 자원 헌물을 공물로 드려서 지키고;

 

89:48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않을 자가 누구니이까? 그가 무덤의 손에서 자기 혼을 건질 수 있으리이까? 셀라;

 

8:1 제육년 유월 곧 그 달 오일에 나는 내 집에 앉아 있고 유다의 장로들은 내 앞에 앉아 있었는데 주 하나님의 손이 거기서 내려와 내 위에 임하시니라).

 

 

저와 함께 있는 모든 백성이 도망하리니 -이와 같은 아히도벨의 예견(豫見) 또한

아주 정확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지금 다윗을 따르고 있는 무리들은

소수의 시위병들과 육백인의 용사들을 제외하고는

 

(15:18 그의 모든 신하들이 그의 옆으로 지나가고 모든 그렛 족속과 모든 블렛 족속과 왕을 따라 가드에서 온 육백 명의 가드 사람들이 왕 앞으로 지나가니라)

 

모두 다 무장하지 아니한 오합지졸(烏合之卒)이거나

선량한 백성들뿐이었기 때문이다.

 

(15:17 왕이 나가매 온 백성이 그의 뒤를 따르고 멀리 떨어진 곳에서 머무니).

 

따라서 압살롬의 정예부대가 엄습(掩襲)할 경우 아히도벨의 예견대로

이들은 모두 혼비 백산(魂飛魄散)하여 흩어질 것이 분명하였다.

우리는 여기서 아히도벨의 놀라운 통찰력을 보게 된다.

 

 

다윗왕만 쳐 죽이고 - 다윗 왕만을 쳐 죽이겠다는 아히도벨의 이같은 모략은

치밀한 계략에서 나온 것이었다.

,

아히도벨은 지금 이스라엘 백성의 대다수가 압살롬을 지지하고 있으며,

 

(15:12 압살롬이 희생물을 드릴 때에 사람을 보내어 다윗의 조언자인 길로 사람 아히도벨을 그의 도시 곧 길로에서 청하여 오니라. 압살롬과 함께하는 백성이 계속해서 불어났으므로 그 음모가 커졌더라),

 

현실적으로 실제적인 왕위 계승권자였기 때문에,

 

(대상 3:1-9 이제 헤브론에서 다윗에게 태어난 그의 아들들은 이러하니라. 맏아들은 예스르엘 여인 아히노암에게서 난 암논이요, 둘째는 갈멜 여인 아비가일에게서 난 다니엘이요,

2) 셋째는 그술 왕 달매의 딸 마아가에게서 난 압살롬이요, 넷째는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요,

3) 다섯째는 아비달에게서 난 스바댜요, 여섯째는 다윗의 아내 에글라에게서 난 이드르암이더라.

4) 이 여섯이 헤브론에서 다윗에게 태어났더라. 다윗이 거기서 칠 년 육 개월 동안 통치하고 또 예루살렘에서 삼십삼 년 동안 통치하였더라.

5) 예루살렘에서 그에게 태어난 아들들은 이러하니라. 시므아와 소밥과 나단과 솔로몬 이 네 사람은 암미엘의 딸 밧수아에게서 났으며

6) 또한 입할과 엘리사마와 엘리블렛과

7) 노가와 네벡과 야비야와

8) 엘리사마와 엘리아다와 엘리블렛 이 아홉 사람이더라.

9) 이들은 다 다윗의 아들들이요, 이 외에 첩들의 아들들이 있었으며 그들의 누이는 다말이더라)

 

무의미한 살인을 감행할 필요가 없다고 계산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단지 다윗 왕만 처치하면 백성들은 자연스럽게

압살름의 지휘하로 몰려들게 될 것이라는 것이 아히도벨의 치밀한 계산이었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번 이사도벨의 무서울 정도로 치밀한 지략(智略)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실상 이것은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침해로서

하나님의 진노를 자극하는 것이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아히도벨이 제거하려한 다윗은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이스라엘의 왕이었기 때문이다.

 

(삼상 16:1-13 주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을 통치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어느 때까지 그를 위하여 애곡하려느냐? 기름을 네 뿔에 채우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내가 나를 위해 그의 아들들 가운데서 한 왕을 예비하였느니라, 하시니라.

2) 사무엘이 이르되, 내가 어찌 갈 수 있으리이까? 사울이 그것을 들으면 나를 죽이리이다, 하매 주께서 이르시되, 암송아지를 끌고 가서 말하기를, 내가 주께 희생물을 드리러 왔다, 하고

3) 이새를 희생물 드리는 일에 청하라. 네가 행할 일을 내가 네게 보여 주리니 너는 내가 네게 지명하는 자에게 나를 위해 기름을 부을지니라, 하시니라.

4) 사무엘이 주께서 말씀하신 바를 행하여 베들레헴에 이르매 그 고을의 장로들이 그가 오는 것을 보고 떨며 이르되, 당신이 평화롭게 오시나이까? 하니

5) 그가 이르되, 평화롭게 오느니라. 내가 주께 희생물을 드리러 왔은즉 너희 자신을 거룩히 구별하고 나와 함께 희생물을 드리러 가자, 하고는 그가 이새와 그의 아들들을 거룩히 구별하고 그들을 희생물 드리는 일에 청하니라.

6) 그들이 오매 그가 엘리압을 보고 이르기를, 주의 기름 부음 받을 자가 참으로 그분 앞에 있도다, 하였으나

7) 주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나 키의 크기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주는 사람이 보는 것처럼 보지 아니하나니 사람은 겉모습을 보나 주는 마음을 보느니라.

8) 이에 이새가 아비나답을 불러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매 그가 이르되, 이 사람도 주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니라.

9) 그때에 이새가 삼마를 지나가게 하매 사무엘이 이르되, 이 사람도 주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니라.

10) 다시 이새가 자기의 일곱 아들을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니라.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주께서 이들을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고

11) 또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이들이 다 여기 있느냐? 하니 이새가 이르되,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보소서, 그가 양들을 지키나이다, 하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에 오기 전까지 우리가 앉지 아니하리라, 하니

12) 그가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왔는데 이제 그는 혈색이 좋으며 아름다운 용모를 지녔고 보기에 잘생겼더라. 주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이 그니 일어나 그에게 기름을 부으라, 하시니라.

13) 이에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의 형제들 가운데서 그에게 기름을 부으니 그 날 이후로 주의 영께서 다윗에게 임하시니라. 이에 사무엘이 일어나서 라마로 가니라).

 

 

 

[삼하 17:3] 모든 백성으로 왕께 돌아오게 하리니 무리의 돌아오기는 왕의 찾는 이 사람에게 달렸음이라 그리하면 모든 백성이 평안하리이다

 

모든 백성으로 왕께 돌아오게 하리니 - 여기서 '모든 백성'이란

온 이스라엘 백성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라

당시 다윗 왕을 추종하던 세력들을 의미하는 말이다.

 

(16:15 압살롬과 온 백성 곧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렀고 아히도벨이 그와 함께하니라).

 

따라서 본절로 보아 아히도벨은 다윗이 사망한 이후에는

다윗 왕을 추종하던 자들일 지라도 이미 사망한 왕을

더 이상 따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여기서 아히도벨은 '돌아오게 하다'는 말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곧 그가 다윗의 추종자들을 국가의 반란자들로

그리고 압살롬의 정권(政權)을 정통성 있는 정권으로

인정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시사해 준다.

 

즉 아히도벨은 이같은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압살롬에게 은연 중 아부하고 있었던 것이다(Keil,Lange)

 

한편, 70인역(LXX)에서는 본절 다음에

'마치 신부가 자기 남편에게로 돌아옴과 같이'이란 구절을 첨가하고 있다.

 

이와 같은 말은

압살롬을 신랑에다,

국가 또는 백성들을 신부에다 비유한 것으로

곧 압살롬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아히도벨의

낯간지러운 아첨이라고 볼 수 있다(Ewald,Thenius,Pyne)

 

그러나 이 구절이 원문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아서

정말로 아히도벨이 이러한 말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Keil,Lange).

 

 

왕의 채는 이 사람에게 달렸음이라 - 이는 다윗 추종자들이

압살롬에게로 돌아오느냐 오지 않느냐 하는 문제는

순전히 다윗의 생사(生死) 여부에 달린 문제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다윗이 죽기만 하면 백성들은

지금 당장이라도 압살름에게로 오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Pulpit Commentary, keil).

 

 

 

[삼하 17:4] 압살롬과 이스라엘 장로들이 다 그 말을 옳게 여기더라.

 

그 말을 옳게 여기더라 - '옳게 여기더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솨르'

'좋아하다', '기뻐하다', '바르게 여기다'는 뜻인데,

 

(14:3 그때에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에게 이르되, 네 형제들의 딸들 중에나 혹은 내 온 백성 중에 여자가 없어서 네가 가서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들에게서 아내를 취하려 하느냐? 하매 삼손이 자기 아버지에게 이르되, 그 여자가 나를 매우 기쁘게 하니 나를 위하여 그녀를 데려오소서, 하였더라,

 

7 그가 내려가서 그 여자와 이야기하니 그 여자가 그를 매우 기쁘게 하니라.

 

23:27 발락이 발람에게 또 이르되, 오라, 원하건대 내가 너를 다른 곳으로 데려가리니 네가 거기서 나를 위해 그들을 저주하는 것을 혹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리라, 하고;

 

삼상 18:26 사울의 신하들이 이 말들을 다윗에게 고하매 다윗이 왕의 사위가 되는 것을 매우 기쁘게 여기니라. 날들이 차지 아니하였으므로;

 

119:128 그러므로 내가 모든 것에 관한 주의 모든 훈계들을 바르게 여기며 모든 거짓된 길을 미워하나이다)

 

이 단어의 형용사형 '요쉐르''마땅히 행해야 하는'이란 뜻을 내포하고 있다.

 

(33:23 만일 천명 가운데 하나 곧 해석하는 자요 그와 함께하는 사자(使者)가 있어서 사람에게 그의 곧바른 길을 보일진대;

 

14:2 곧바르게 걷는 자는 주를 두려워하나 자기 길들이 비뚤어진 자는 그분을 멸시하느니라).

 

따라서 본절이 의미하는 바는 압살롬과 이스라엘 장로 모두가

아히도벨의 말을 기뻐하면서 마땅히 행해야 할 것으로 여겼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죄로 인해 부패해진 인간들의 이성적 판단이

얼마나 그릇된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절감(切感)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자기의 친아버지 다윗을 죽이자는 제안에

스스럼없이 '옳게 여긴' 압살롬이나,

 

지금껏 섬겨오던 자신들의 왕 다윗을 쳐 죽이자는 제안에

동조한 이스라엘 장로들이나

 

모두 다 건전한 이성(理性)을 지녔다고는 도저히 볼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