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종교(사이비 종교)
이사야서 1장 10-17절 : 너희 소돔의 치리자들아, 주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들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11) 주가 말하노라. 너희가 내게 바치는 수많은 희생물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나는 숫양의 번제 헌물과 살진 짐승의 기름으로 배가 부르며 수소나 어린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올 때에 누가 너희 손에서 이것을 요구하였느냐? 단지 내 뜰을 밟을 뿐이니라.
13) 다시는 헛된 봉헌물을 가져오지 말라. 분향하는 것은 내게 가증한 것이요, 월삭과 안식일과 집회로 모이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니 곧 엄숙한 모임 그 자체가 불법이니라.
14) 내 혼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명절들을 미워하나니 그것들이 내게는 괴로움이니라. 그것들을 감당하기에 내가 지쳤느니라.
15) 너희가 손을 내밀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 숨기겠으며 참으로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너희 손에는 피가 가득하니라.
16) 너희를 씻고 너희를 깨끗하게 하라. 내 눈앞에서 너희의 악한 행위를 버리고 악을 행하기를 그치며
17) 선을 행하기를 배우고 공의를 추구하며 학대받는 자들을 구제하고 아버지 없는 자들을 위해 재판하며 과부를 위해 변호하라.(한글 KJV)
죄는 하나님에 대한 불효라는 예언자의 힐책에 대하여,
이스라엘은 대답하여 말했다.
'우리들은 여호와를 잊지 않는다.
열심히 이를 섬긴다.
우리는 제사를 게을리 않는다.
제물은 모두 이를 바치고,
지회는 빠짐없이 이를 개최하며 기도도 또한 그친 일없다'고.
그런데 여호와는 백성의 이 변해(변소)에 대답하여 말씀하셨다.
'나는 너희의 제물을 기뻐하지 않는다.
집회도 역시 내게 짐(중하)이로다.
나는 너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너희들은 내 아름을 욕되게 하고(더럽히며),
제사를 희롱거리로 삼는도다'라고.
제사는 하나님께 쓰이는 길이 아니고,
정의를 행하고, 은혜를 베푸는 일,
이것이 하나님께 쓰임의 유일한 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다만 이사야의 주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예언자 전체의 주장이었다.
이것을 더 단적 명쾌하게 진술한 것이,
아모스의 말이다.
'너희가 내게 번제와 소제를 드린대도, 나는 이것을 받지 않으리라.
너희의 살진 송아지의 감사제는, 내 이것을 거들떠보지도 않으리라.
너희 노랫소리를 내 앞에서 그쳐버리라.
너희의 거문고 소리는 내 이것을 듣지 않으리라.
공도를 물 같이 정의를 강같이 흘러가게 하라'(아모스 5:22-24 일역)고.
오늘의 말로써 한다면,
'나는 예배를 거들떠보지 않고, 찬미 소리를 듣지 않는다.
공도를 걷고 정의를 행하여, 너희가 내 예배자임을 증거하라'고 함이다.
아모스의 이 말과 아울러 인용되는 것은,
선지자(예언자) 미가의 말이다.
미가는 이사야와 동시대의 사람으로써,
동일한 주장으로써 이스라엘의 허물을 책했던 것이다.
'내가 여호와 앞에 무엇을 가지고 가서 높으신 하나님을 경배할까
번제물 및 그 해(일년생)의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는 수천의 수양, 만곡의 기름을 기뻐하실 것인가
내 허물을 위해 내 맏아들을 드릴 것인가.
내 영혼의 죄를 위해 내 몸의 소산을 드릴 것인가.
사람아, 그가(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인지를 네게 보이셨도다.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다만 이것이라.
즉 정의를 행하고,
인자(긍휼)을 사랑하며,
겸비하여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로다'(미가서 6:6-8 일역)
그리고 이상 2인의 말보다도 더 심각 철저한 것은
예레미야의 말이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이렇게 말씀하시는도다.
내가 너희 선조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번제와 희생(제사)에 대하여 말한 일 없도다 또 명한 일 없도다.
다만 내가 이것을 그들에게 명하였도다.
즉, 너희가 내 소리를 들으면,
내가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또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길을 행함으로써 복을 얻으리라'고,
(예레미야서 7:21-23 일역)
만약 예레미야의 이 말이 문자대로라면,
레위기에 기록된 제사 같은 것,
이는 사람이 만든 것으로써,
하나님께서 모세로써 명하셨다는 것은 잘못이라고 하게 된다.
혹은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령 그렇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목전에는 제사는 작은 일인 것으로서,
생략해도 가한 것이다.
필요불가결의 것은 정의이다. 인도이다.
정의를 게을리 하는 때,
제사는 도리어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더럽히는 일)이라 함이
예언자 전체의 주장이다.
그리고 예수는
예언자의 흐름을 따라(예언자의 정신을 이어 받아),
제사를 경히 여기고 정의를 중히 여기셨다.
그러므로 제사장 계급의 증오하는바 되어,
그 죽이는바 되셨다.
이스라엘에 처음부터 제사장계급과 예언자(선지자)계급이 있었다.
그리고 전자는 언제나 후자를 박해하고,
후자는 언제나 전자를 책했다.
아모스에 대하여,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가 있었다. (왕상 12:25-33; 암 7:10-역자).
예레미야에 대한 제사장 임멀의 아들 바스훌이 있었다. (렘 20:1-6).
그처럼 예언자 예수에 대하여 제사장 가야바가 있었다.
예수는 예언자로서 성전을 경시하여 말씀하셨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 2:19-역자)고,
그(예수)는 일찍이 한 번도 제사에 관여하지 않으셨다.
그의 주장으로서 그가 거듭하여 쓴 것은,
선지자 호세아의 말이었다.
즉,
‘나는 인애를 좋아하고 제사를 좋아하지 않는다’(호세아 6:6;마태복음 9:13, 동 12:7)고.
즉 ‘제사를 말고, 공평하게 고아를 재판하며, 과부위해 변호하라’는
이사야의 주장이다.
이러므로 인하여,
예수를 공경하는데 의식으로써 하는 것 같은 모순은 없다.
예수께서 무엇보다 싫어하신 것은 사원이다.
승려이다. 감독제도, 기도문, 성찬, 밥티스마 같은 장엄한 의식,
예수는 이에 견딜 수 없었다고 믿는다.
그의 충실한 올리버 크롬웰(재촌 5권 59, 183p 역주 크롬웰 참조)이
일찍이 영국국교회(영국 성공회)의 집회에 출석하여
그 무의미한 의식에 견디지 못하여,
발을 문질러(비벼) 반대를 표시하고,
단상의 교직에 향하여
‘당신, 고단(高壇)에서 내려오시오’했다는 것은
예수의 이 정신을 나타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제 13절에 이르기를
‘너희는 성희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이라고.
이는 격렬한 말이다.
그러나 없는 것은 아니다.
종교의 집회에, 명백한 악한 짓(일)이 행해짐은,
결코 희귀한 것은 아니다.
그 실례를 종종 오늘의 교회에서 본다.
프로테스탄트 교회에 있어서,
신자간의 세력다툼 위해 격렬한 경쟁이 행해지고,
매리잡언(3권 139주) 다함없는 것은 우리들이 수 없이 목격한 바이다.
성서낭독 있고, 찬송가 있고, 기도 있은 뒤,
그런 후 곧 통매, 면책이 시작된다.
자비(인자)를 사랑하고,
겸비하여 그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것이
참된 종교라면,
이러한 종교의 집회에는 종교는 없다고 해도 무관하다.
‘성회에 악한 일’,
옛 있고,
지금도 있는 것이다.
*내촌감삼의(1928년 2월 ‘성서지연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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