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engol 2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거듭난 삶 2022. 1. 6. 00:21
728x90

회개의 촉구

 

성 경: [1:18-20]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19)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20)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1: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

 

평행으로 이루어진 이 두 구절은 크게 두 가지로 해석된다.

 

(1) '너희 죄가 주홍 같고 진홍 같다면,

그것이 어떻게 눈이나 양털처럼 희어질 수 있겠느냐?'(Kaiser, Marti, Michaelis ).

 

이 해석에 따르면

하나님은 제사 행위를 통해서 그들의 죄를 중화시킬 수 있다는

환상과 착각에 빠져 있는 백성들을 조롱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그러나 히브리어 원문에는 이것을 의문문으로 해석해야 할 어떤 근거도 없다.

또 전후 문맥을 고려하더라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따라서 전통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다음 해석을 취한다.

 

(2) '너희 죄가 주홍 같고 진홍 같을지라도,

눈이나 양털처럼 희어지리라'(Alexander, Delitzsch ).

 

죄가 여기서 붉은색으로 표현된 것은

직접적으로는 피로 물든 손과의 연관성 때문이지만,

 

(15절 너희가 손을 내밀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 숨기겠으며 참으로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너희 손에는 피가 가득하니라),

 

종말론적인 표상과도 무관하지 않은 듯이 보인다.

 

일반적으로 흰색의 반대는 검은색이지만

종말론에서 흰색의 반대는 붉은색이다.

 

흰색은 세마포를 입은 성도의 색이며 성결의 색으로 간주된다.

 

(9:8 네 옷을 항상 희게 하고 네 머리에 향유가 부족하지 아니하게 할지어다;

 

7:9 그 왕좌들이 무너져 내릴 때까지 내가 보매 옛적부터 계신 이가 앉아 계시는데 그분의 옷은 눈같이 희고 그분의 머리털은 순결한 양털 같으며 그분의 왕좌는 맹렬한 불꽃 같고 그분의 바퀴들은 타오르는 불 같더라;

 

17:2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시매 그분의 얼굴이 해같이 빛나고 그분의 옷이 빛같이 희게 되었더라;

 

1:14 그분의 머리와 머리털은 양털같이 희고 눈같이 희며 그분의 두 눈은 불꽃 같고;

 

3:4 사데에도 자기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몇 이름이 네게 있어 그들이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걸으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들이니라;

 

7: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보라,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 곧 모든 민족과 족속과 백성과 언어에서 나온 큰 무리가 흰 예복을 입고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왕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서;

 

19:8 또 그녀가 깨끗하고 희고 고운 아마포 옷을 차려입도록 허락하셨는데 그 고운 아마포는 성도들의 의니라, 하더라).

 

 

반면에 붉은색은

바벨론의 색이며 지상 나라의 색이며 마귀의 고유한 색이다.

 

(12:3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나타나니라. 보라,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큰 붉은 용이 있는데 그의 머리들 위에 일곱 개의 관이 있으며,

 

9 그 큰 용 즉 저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세상을 속이는 자가 내쫓기더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천사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17:4 그 여자는 자주색 옷과 주홍색 옷을 차려입었고 금과 보석들과 진주들로 꾸몄으며 가증한 것들과 자기의 음행으로 인한 더러운 것으로 가득한 금잔을 손에 가졌더라).

 

본문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로 더럽혀진 이스라엘 사이에

변론을 가능케 하는 근거를 제시한다.

 

그것은 ' 에도 불구하고'로 집약되는 하나님의 자유이며 사랑이다.

 

공의대로만 보자면 이스라엘은 사형을 언도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응보적 상벌의 법칙에 얽매이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의 주권적 자유로써 이스라엘을 변화시키시며

그들에게 새로운 미래를 주려고 하신다.

이러한 가능성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유는 진실로 새로운 삶으로 결실한다.

 

 

 

[1:19-20]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20)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수능과 거역에 따른 축복과 저주의 주제는 율법이 선언된 이래

불변의 주제로서 끊이지 않고 등장한다.

 

*참조 : (26; 28).

 

본문은 그 내용의 대조와 발음의 유사가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19절의 '먹다'(토켈루)20절의 '삼키우다'(테우클루)는 언어유희의 대표적인 예다.

19절과 20절은 두운법(頭韻法)으로 이루어졌다.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 아담이 범죄 했을 때,

그는 '땅이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리라'(3:18)는 저주의 말씀을 들어야 했다.

 

가인이 그 아우를 죽였을 때

그는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주지 아니할 것이라'(4:12)

저주의 말씀을 들어야 했다.

 

이 모든 것은 땅의 소산을 먹는 것과

인간의 행사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음을 보여준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의 축복이 종종 물질적인 형태로 제시되었는데,

이는 참 것의 그림자인 현재의 복락을 맛봄으로써

하늘의 영원한 행복을 찾도록 하시려는 의도에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