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engol 2

다시스의 선척(船隻)들아 너희는 슬피 부르짖으라 너희 견고한 성이 파괴되었느니라

거듭난 삶 2022. 3. 31.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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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로의 멸망에 대한 예언 2

 

성 경: [23:7-14] 이것이 고대에 건설된 너희 희락의 성 곧 그 백성이 자기 발로 먼 지방까지 가서 유하던 성이냐

8) 면류관을 씌우던 자요 그 상고들은 방백이요 그 무역자들은 세상에 존귀한 자이던 두로에 대하여 누가 이 일을 정하였느뇨

9) 만군의 여호와의 정하신 것이라 모든 영광의 교만을 욕되게 하시며 세상의 모든 존귀한 자로 멸시를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10) 딸 다시스여 나일 같이 너희 땅에 넘칠지어다 너를 속박함이 다시는 없으리라

11) 여호와께서 바다 위에 손을 펴사 열방을 흔드시며 여호와께서 가나안에 대하여 명을 내려 그 견고한 성을 훼파하게 하시고

12) 가라사대 너 학대 받은 처녀 딸 시돈아 네게 다시는 희락이 없으리니 일어나 깃딤으로 건너가라 거기서도 네가 평안을 얻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13) 갈대아 사람의 땅을 보라 그 백성이 없어졌나니 곧 앗수르 사람이 들짐승의 거하는 곳이 되게 하였으되 그들이 망대를 세우고 궁전을 헐어 황무케 하였느니라

14) 다시스의 선척(船隻)들아 너희는 슬피 부르짖으라 너희 견고한 성이 파괴되었느니라.

 

 

[23:7] 이것이 고대에 건설된 너희 희락의 성 곧 그 백성이 자기 발로 먼 지방까지 가서 유하던 성이냐 -

 

두로의 어제와 오늘이 대비된다.

 

(14:16-17 너를 보는 자들이 너를 자세히 살펴보고 너에 대해 깊이 생각하여 이르기를, 이 자는 땅을 떨게 하고 왕국들을 흔들며

17) 세상을 광야같이 만들고 거기의 도시들을 멸망시키며 자기 죄수들의 집을 열지 아니한 자가 아니냐? 하리로다;

 

2:15 지나가는 자들이 다 너를 향하여 손뼉을 치며 예루살렘의 딸을 향하여 비웃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기를, 이것이 사람들이 아름다움의 극치요, 온 땅의 기쁨이라 부르던 도시냐? 하고).

 

 

선지자는 이것을 놀람이 함의된 의문문의 형태로 표현한다.

두로와 관련된 세 가지 요인이 이 놀람을 더욱 증폭시킨다.

 

첫째, 두로의 유구한 역사이다.

역사가 헤로도투스(Herodotus)는 두로의 도성이

2,700년의 역사를 가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둘째, 두로의 활력성이다.

이 활력성은 모험성과 진취성이 충만한 상업적 활동에서 기인된 것이며,

두로의 사치와 교만을 반영해주는 것이다.

 

셋째, 두로의 끝없는 개척 정신이다.

그들은 넘쳐나는 활력으로 먼 데까지 나아가 시장을 개척하는 한편,

카르타고, 다시스 등과 같은 식민지들을 건설하기에 바빴다(Oswalt).

 

 

 

[23:8] 면류관을 씌우던 자요 그 상고들은 방백이요 그 무역자들은 세상에 존귀한 자이던 두로에 대하여 누가 이 일을 정하였느뇨

 

두로에 대하여 누가 이 일을 정하였느뇨 - 히브리어 원문에 이 물음이 문두에 나온다.

실상 이 물음이 8-14절의 주조를 이룬다.

 

두로처럼 역사성이 깊고, 활력이 충만하며,

개척 정신이 강한 나라가 몰락한 데는

역사의 우연 이상의 더 큰 무엇이 개입되어 있음에 틀림없다.

 

이에 대해 답변하기 전에, 선지자는 두로의 몰락이 주는 충격을 더하기 위해

과거 두로가 국제 사회에서 점했던 위치를 상기시킨다.

 

 

 

[23:9] 만군의 여호와의 정하신 것이라 모든 영광의 교만을 욕되게 하시며 세상의 모든 존귀한 자로 멸시를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세상의 모든 존귀한 자로 멸시를 받게하려 하심이니라 - 직역하면

'땅의 모든 존귀한 자들(-니크바데-아레츠)을 가볍게 하기 위해서 (레하켈)'이다.

어원적인 면에서

'니크바딤''하켈''무겁다''가볍다'는 대조적인 의미를 갖는다.

 

 

 

[23:10] 딸 다시스여 나일 같이 너희 땅에 넘칠지어다 너를 속박함이 다시는 없으리라 -

 

두로의 패망은 곧 그 밑에서 속박당해 온 속국들의 해방과 독립의 계기가 된다.

다시스는 그 한 예로서 본문에 언급된다.

구속된 상태에서의 두로와 그 식민지 다시스와의 관계는

어머니와 딸의 관계로 비유된다.

 

그러나 해방의 그날,

다시스는 어머니의 품을 떠나 어떤 간섭도 받음이 없이

마치 나일 강이 넘쳐서 제멋대로 흐름과 같이 그렇게 자유를 만끽할 것이다(Delitzsch)

 

 

 

[23:11] 여호와께서 바다 위에 손을 펴사 열방을 흔드시며 여호와께서 가나안에 대하여 명을 내려 그 견고한 성을 훼파하게 하시고

 

여호와께서 바다 위에 손을 펴사 열방을 흔드시며 - 두로의 파멸이

전적으로 여호와의 손에 의한 것임을 선지자는 다시 강조하고 있다.

 

손을 펴시는 여호와의 모습은 선지자 이사야에게 친숙한 이미지이다.

 

(5:25 그러므로 주의 분노가 자신의 백성을 향해 타오르매 그분께서 그들을 향해 자신의 손을 내미사 그들을 치시니 작은 산들이 떨며 그들의 사체가 거리 한가운데서 찢겼도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분노는 돌아서지 아니하며 그분의 손은 여전히 펼쳐져 있느니라;

 

9:12 앞에는 시리아 사람들이요, 뒤에는 블레셋 사람들이라. 그들이 입을 벌려 이스라엘을 삼키리라.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분노는 돌아서지 아니하며 그분의 손은 여전히 펼쳐져 있느니라,

 

17 그러므로 주께서 그들의 젊은이들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그들 중의 아버지 없는 자들과 과부들에게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시리니 이는 모든 사람이 위선을 행하는 자요, 악을 행하는 자이기 때문이며 또 모든 입이 어리석음을 말하기 때문이라.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분노는 돌아서지 아니하며 그분의 손은 여전히 펼쳐져 있느니라,

 

21 므낫세는 에브라임을, 에브라임은 므낫세를 먹을 것이요, 또 그들이 함께 유다를 치리라.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분노는 돌아서지 아니하며 그분의 손은 여전히 펼쳐져 있느니라;

 

10:4 나 없이는 그들이 갇힌 자들 밑에서 몸을 구부리며 죽임 당한 자들 밑에서 쓰러지리로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분노는 돌아서지 아니하며 그분의 손은 여전히 펼쳐져 있느니라;

 

14:26 이것이 온 땅을 향하여 계획한 계획이며 이것이 모든 민족들을 향하여 펼친 손이라, 하셨나니;

 

31:3 이제 이집트 사람들은 사람이요, 하나님이 아니며 그들의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니라. 주께서 자신의 손을 뻗치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고 도움을 받는 자도 쓰러져서 그들이 함께 멸망하리라).

 

그가 바다에 손을 펼치심으로 바다에 의존하던 열방들,

곧 독자적으로 자신들의 왕을 섬기고 있던

페니키아의 여러 나라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힌다(Gray).

 

 

 

[23:12] 가라사대 너 학대 받은 처녀 딸 시돈아 네게 다시는 희락이 없으리니 일어나 깃딤으로 건너가라 거기서도 네가 평안을 얻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

 

본문의 전체적인 의미는 6절과 유사하다.

한때 순결한 처녀와도 같이 그 부()와 명예를 자랑하던 시돈 곧 페니키아가

능욕당하여 모든 즐거움울 상실한 여인의 모습으로 비유된다.

 

그에게 깃딤으로 도피하라는 권유가 주어진다.

그러나 어디로 가든지 바라는 안식은 찾지 못할 것이다.

 

 

 

[23:13] 갈대아 사람의 땅을 보라 그 백성이 없어졌나니 곧 앗수르 사람이 들짐승의 거하는 곳이 되게 하였으되 그들이 망대를 세우고 궁전을 헐어 황무케 하였느니라 -

 

두로를 멸망시킬 도구가 제시된다.

그러나 이 도구가 누구를 가리키는가에 대해

크게 두 가지 견해로 나뉜다.

 

두로의 파멸이 앗수르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본문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가나안 땅(페니키아)을 보라. 이 나라는 더 이상 존재치 않는다.

앗수르가 그것을 광야로 바꾸어 버렸다.

그들(페니키아인들)은 망대를 세우고 궁전을 건설했으나

(앗수르)가 그것을 황무케 하였다'(Ewald).

 

그러나 이것은 과도한 본문 수정을 요구한다.

 

때문에 대부분의 학자들은 갈대아 사람이 여기서 언급되고 있다는 견해를 취한다.

이때 그 해석은 다음과 같다:

 

'갈대아 사람(바벨론)의 땅을 보라. 이 백성(지금 거주하고 있는 바벨론인들)

존재하지 않았다(, 원주민이 아니었다).

앗수르가 그것을 광야의 거주자들(전에 유목 생활을 하던 갈대아인들)을 위해 건설하였다.

이 백성(갈대아인)이 망대를 세우고 그녀(두로)의 궁전을 헐었으며

그것을 황무케 하였다'(Alexander, Delitzsch).

 

언급된 '망대'는 고대 사회에서 포위 공격할 때 사용된 것이다.

 

후대의 역사가들에 따르면,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은

이토발 왕 치하의 두로를 13년간이나 포위했으며(요세푸스, [고대사])

부왕(父王)의 사망 소식을 듣고 고국 바벨론으로 귀환할 때

수많은 페니키아의 포로들을 끌고 갔다고 한다(Berosus).

 

 

 

[23:14] 다시스의 선척(船隻)들아 너희는 슬피 부르짖으라 너희 견고한 성이 파괴되었느니라.

 

다시스의 선척들아 너희는 슬피 부르짖으라 - 1절의 반복이다.

슬피 부르짖는 이유도 앞과 유사하다.

 

, '너희 견고한 성'이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4절과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두로가 견고한 요새(마우즈)로 묘사된다.

이로써 두로에 대한 비극적인 예언은 종결된다.

 

이하에서 선지자는 두로의 회복을 노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