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engol 2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거듭난 삶 2022. 5. 23.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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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례 요한에 관한 예언

 

성 경: [40:3-11]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4)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5)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대저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6) 말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가로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7)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

9)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을 보라 하라

10)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으며

11) 그는 목자 같이 양무리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40:3]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외치는 자의 소리여 - 히브리어 원문 '콜 코레'

서술적 용법('한 음성이 외친다'),

형용적 용법('외치는 음성'),

명사적 용법('외치는 자의 음성') 등으로 해석될 수 있는데

 

본 구절을 인용한 마 3:3과 본서에서의 용례를 고려할 때

명사적 용법의 번역이 좋다.

 

(3:3 이 사람은 곧 주께서 대언자 이사야를 통해 말씀하신 자니라. 이르시되,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기를,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분의 행로들을 곧게 하라, 하였느니라)

 

그렇다면 '외치는 자'가 누구이냐 라는 문제가 생기는데

동일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6:4에 근거할 때

천상적 존재, 곧 천사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겠다.

 

(6:4 그 외치는 자의 음성으로 인해 문기둥들이 흔들리며 그 집이 연기로 가득하게 되니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 많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여기 '사막'을 단지 바벨론과 팔레스틴 사이에 있는

지리상의 광야로만 생각함으로써 본 구절을

바벨론 포로 귀환에 대한 언급으로 국한시킨다.

 

그러나 이 같은 견해는 본서가 지향하는 하나님의 구원을 너무 축소시킨 견해이다.

가깝게는 2절에서 분명히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이 암시된 사실 하나만으로도

본문은 우주적 구원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사막'은 죽음의 땅, 심판의 땅이며 그 같은 땅에 하나님이 오신다는 것은

저주 아래 있는 세상에 하나님이 찾아오신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9:1-7 그러할지라도 그 흑암은 그 땅이 괴로움을 당하던 때의 흑암과 같지 아니하리니 그때에는 그분께서 처음에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을 가볍게 괴롭히시고 나중에 요르단 건너편 바닷길 옆 민족들이 거하는 갈릴리에 있는 그 땅을 더욱 심하게 괴롭히셨느니라.

2) 어둠 속에 다니던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는 자들 곧 그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3) 주께서 민족을 번성하게 하시되 기쁨을 더하지는 아니하셨으나 그들이 수확 때에 기뻐하며 사람들이 노략한 물건을 나눌 때에 기뻐하는 것 같이 주 앞에서 기뻐하오니

4) 주께서 미디안의 날에 행하신 것 같이 그의 짐을 멘 멍에와 그의 어깨의 지팡이와 그를 학대하는 자의 막대기를 꺾으셨나이다.

5) 용사의 모든 싸움에는 어지러운 소리와 피에 젖은 옷이 있으나 이 싸움에는 불을 지피는 땔감과 불사르는 일이 있으리라.

6) 이는 한 아이가 우리에게 태어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권이 놓이고 그의 이름은 놀라우신 이, 조언자, 강하신 하나님, 영존하는 아버지, 평화의 통치자라 할 것이기 때문이라.

7) 그의 정권과 화평이 번창하여 끝이 없으며 그가 다윗의 왕좌와 그의 왕국 위에 군림하여 그것을 정비하고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공의와 정의로 그것을 굳게 세우리라. 만군의 주의 열심이 이것을 이루리라).

 

 

 

[40:4]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본절은 동방의 군주들이 여행에 앞서 선발대를 보내어

골짜기에 길을 만들고 언덕을 평평하게 함으로써

여행에 장애를 주는 요소들을 제거하던 관행을 연산케 한다.

 

한편 본절은 침례 요한에게 적용될 수 있는데,

침례 요한의 임무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율법에서 떠난 것, 자기 확신, 민족적 특권에 대한 자만심,

위선 그리고 비종교성을 제거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꺼이 준비케 하는 일이었다.

 

(4:6 내가 또한 너희의 모든 도시에서 너희 이를 깨끗하게 하며 너희의 모든 처소에서 빵이 부족하게 하였느니라. 그럼에도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주가 말하노라;

 

1:17 그가 또 엘리야의 영과 권능으로 그분보다 앞서 가서 아버지들의 마음을 자녀들에게로 돌아오게 하고 불순종하는 자를 의인의 지혜로 돌아오게 하며 주를 위하여 예비된 한 백성을 준비하리라, 하니라).

 

 

 

[40:5]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대저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 여기 '모든 육체',

인간의 본성 혹은 일반적인 의미의 인류를 가리키는데

 

(6:12 하나님께서 땅을 보시니, 보라, 그것이 부패하였더라. 이는 땅 위에서 모든 육체가 자기의 길을 부패시켰기 때문이라;

 

145:21 내 입이 주의 찬양을 말하며 모든 육체가 그분의 거룩하신 이름을 영원무궁토록 찬송할지로다).

 

본절에서는 후자가 옳다.

 

한편 '보리라'에 해당하는 '라우''몸소 체험하다'는 뜻으로서,

여기서는 출애굽 시대 때 이스라엘 백성에게 익숙했던

여호와의 현현보다는

 

(6:3 하나가 다른 하나에게 크게 외쳐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주여, 그분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33:18-23 모세가 이르되, 간청하오니 주의 영광을 내게 보여 주소서, 하매

19) 그분께서 이르시되, 내가 내 모든 선함을 네 앞에 지나가게 하고 주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할 것이요, 또 내가 은혜를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내가 긍휼을 베풀 자에게 긍휼을 베풀리라, 하시고

20) 또 이르시되,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을 터이므로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21) 주께서 이르시되, 보라, 내 옆에 한 곳이 있으니 너는 반석 위에 설지니라.

22) 내 영광이 지나갈 때에 내가 너를 그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가는 동안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23) 내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뒷부분은 보되 내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성육신하신 하나님 곧 예수의 오심을 암시한다.

 

신약은 이 사실을 이렇게 묘사한다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14).

 

 

 

[40:6] 말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가로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 여기 '아름다움''하스도'인데

그 원형은 '헤세드'이다.

 

이 말이 본문에서 갖는 의미에 대해

두 가지 대표적 견해가 있는데

 

그 하나는 인간 관계에서 당연히 요구되는 예의이며(Gleek),

또 다른 하나는 친절 긍휼이 여김이다.

 

야보고와 베드로는 둘 다 이것을 '돝사',

'영광'으로 번역하였는데

 

(1:10-11 부유한 자는 자기가 낮아진 것을 기뻐할지니 이는 풀의 꽃과 같이 그가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라.

11) 해가 돋아 뜨거운 열기로 풀을 말리면 그것의 꽃이 떨어져 그것의 외형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유한 사람도 자기 길에서 이와 같이 사라지리라;

 

벧전 1:24-25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사람의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라. 풀은 마르고 그것의 꽃은 떨어지되

25) 오직 주의 말씀은 영원토록 지속되나니 복음으로 너희에게 선포된 말씀이 곧 이 말씀이니라)

 

이 영광이란

어떤 사람을 아름답게, 힘있어 보이게 하는

건강, 기력, , 재능, 지혜 등을 뜻한다(Barnes).

 

인간에게 당연히 요구되는 예법,

그것을 지나서 상대방에게 친절, 선을 베푸는 것,

그리고 건강미, 지혜 따위가

들의 꽃과 같이 마르고 시들 것이라고 본문은 강조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 앞에서 인간의 모든 자랑거리와 아름다움이

일시적인 것에 불과함을 뜻한다.

 

 

 

[40:7]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본절의 이미지는 사막의 열풍(sirocco)이 불어올 때

봄에 피어난 꽃들이 갑작스럽게 시들어버리는 현상에서 취해졌다(Whybray).

 

 

 

[40: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 본문의 의미는 말씀의 영원성과

불변성뿐만 아니라 유효성, 곧 반드시 실현된다는 것까지를 포함하고 있다.

 

'서리라'로 번역된 '야쿰'이 바로 '유효성'의 의미까지도 포함하는 용어이다.

 

 

 

[40:9]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을 보라 하라

 

높은 산에 오르라 - 이는 적군의 침입을 알리기 위하여

파수대 따위와 같은 높은 곳에 머물렀던 파수꾼이나

 

(52:8 네 파수꾼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그들이 그 목소리로 함께 노래하리니 이는 주께서 시온을 다시 데려오실 때에 그들이 눈과 눈으로 마주 볼 것이기 때문이라)

 

자기 부대의 도착 사실을 알리기 위하여 앞서 파송되어

높은 지대로 오르곤 하였던 전령의 모습에서 착안한 표현이다.

 

(삼상 31:9 그의 머리를 베고 그의 갑옷을 벗긴 뒤 블레셋 사람들의 땅 사방에 보내어 자기들의 우상들의 집과 백성 가운데서 그것을 알리게 하며;

 

삼하 18:19-21 그때에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가 이르되, 이제 내가 달려가서 주께서 왕의 원수들에게 원수 갚은 소식을 왕에게 전하게 하소서, 하니

20) 요압이 그에게 이르되, 너는 이 날에 소식을 전하지 말고 다른 날에 전할지니라. 왕의 아들이 죽었으므로 이 날에는 네가 소식을 전하지 말지니라, 하고

21) 그때에 구시에게 이르되, 네가 가서 본 것을 왕께 고하라, 하매 구시가 요압에게 절하고 달려가니라)

 

한편, 높은 산에 올라 전할 '아름다운 소식'이란,

1차적으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이스라엘 백성의 귀환 소식이며,

더 나아가서는 성육신하여 오실 하나님 곧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소식이다.

 

 

 

[40:10]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으며

 

상급 그에게 있고 보응 - 상급은 '쉐카로', 보응은 '페울라토'인데

이 용어들은 전투의 승리자가 본국으로 귀환할 때

가져갔던 노획물 혹은 공물 따위를 의미한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강한 능력을 동반하고 오실텐데

그때에는 여호와를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흑암의 세력들이 패퇴당할 것이다.

 

 

 

[40:11] 그는 목자 같이 양무리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본절은 그 내용상 앞절과의 연관성 속에서 이해되어져야 한다.

 

즉 하나님이 강한 세력과의 싸움에서 얻은 대가는

새끼 밴 암양과 양떼 곧 새롭게 회복된 백성이다.

물론 이것은 이스라엘의 포로 귀환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러나 더 나아가 이는

성도의 목자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내다보게 한다.

 

(10:11-15 나는 선한 목자니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자기 생명을 버리거니와

12) 목자가 아닌 삯군 곧 양들이 자기 것이 아닌 자는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리고 도망하나니 이리가 그것들을 붙잡아가고 또 양들을 헤치느니라.

13) 삯군이 도망하는 것은 그가 삯군이므로 양들을 돌보지 아니하기 때문이라.

14) 나는 선한 목자라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도 나를 아노라.

15) 아버지께서 나를 알 듯이 내가 아버지를 아노니 나는 양들을 위해 내 생명을 버리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