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한 바벨론에 대한 심판
성 경: [사 47:1-5] 처녀 딸 바벨론이여 내려 티끌에 앉으라 딸 갈대아여 보좌가 없어졌으니 땅에 앉으라 네가 다시는 곱고 아리땁다 칭함을 받지 못할 것임이니라
2) 맷돌을 취하여 가루를 갈라 면박을 벗으며 치마를 걷어 다리를 드러내고 강을 건너라
3) 네 살이 드러나고 네 부끄러운 것이 보일 것이라 내가 보수하되 사람을 아끼지 아니하리라
4) (우리의 구속자는 그 이름이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시니라)
5) 딸 갈대아여 잠잠히 앉으라 흑암으로 들어가라 네가 다시는 열국의 주모라 칭함을 받지 못하리라.
[사 47:1] 처녀 딸 바벨론이여 내려 티끌에 앉으라 딸 갈대아여 보좌가 없어졌으니 땅에 앉으라 네가 다시는 곱고 아리땁다 칭함을 받지 못할 것임이니라
▶ 처녀 딸 바벨론 - '처녀 딸'이란 남자와 관계를 갖지 않은
순결한 여인을 가리키는데,
바벨론과 동격으로 사용된 데에 대하여 몇 가지 견해가 있다.
첫째로,
이 용어는 바벨론이 그전에는 외국 군대에 의하여
한 번도 정복을 당한 일이 없다는 사실을 암시한다고 보는 견해이다(Kimchi, Whybray).
두 번째로,
이 용어는 바벨론 자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갈대아와 그 땅 전체를 의인화한 표현일 뿐이라는 견해도 있다(Gesenius).
셋째로,
이 용어는 바벨론 성 자체의 아름다움, 찬란함,
그리고 그 성 여인들의 우아함, 장식품의 풍부 등을 암시한다는 견해가 있다(Barnes).
각각의 견해들이 일리는 있으나
문맥이 난공 불락의 바벨론 성이 외적의 침입으로 인하여
멸망을 당할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으므로
첫 번째 견해를 취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겠다(Herodotus).
▶ 티끌에 앉으라 - 이는 땅 위에 앉아 재를 머리에 뒤집어 쓰는 것을 가리키는데,
성경에서 이 이미지는 극도의 수치나 슬픔의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다.
(욥 2:12 그들이 눈을 들어 멀리서 보되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소리를 높여 울며 그들이 저마다 자기 겉옷을 찢고 하늘을 향해 자기 머리 위에 티끌을 뿌리고;
10:9 간청하오니 기억하옵소서. 주께서 나를 진흙처럼 만드셨거늘 다시 흙으로 데려가려 하시나이까?;
애 3:29 혹시 소망이 있을까 하여 그가 자기 입을 흙 속에 대는도다).
디도(Titus)가 예루살렘을 정복한 일을 기념하기 위하여
주조한 기념 메달에 보면
종려나무 아래 땅 위에 앉아 있는 여인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Barnes).
여기서 이 표현이 사용된 것은
가장 열악한 상황으로 떨어져 버릴,
가장 심한 슬픔을 맛볼 바벨론을 묘사하기 위함이 분명하다.
[사 47:2] 맷돌을 취하여 가루를 갈라 면박을 벗으며 치마를 걷어 다리를 드러내고 강을 건너라
▶ 맷돌을 취하여 가루를 갈라 - 아우구스투스 시이저 시대에
물레방아가 발명되기 전까지 고대 근동 지방에서 사용되었던 맷돌은
아래짝과 위짝 두 둥근 돌로 만들어졌으며
아래짝은 볼록한 모양과, 위짝은 오목한 모양으로 서로 맞물려 있었고
위짝 맷돌 가운데에 난 구멍으로 곡식 따위를 넣어 돌리므로 곡식을 빻았다.
대체로 여인 둘이 마주 않아 돌렸던 이 맷돌은
특히 여자 노예의 전유물이기도 하였다.
(마 24:41 두 여자가 방앗간에서 맷돌을 갈고 있을 터인데 하나는 붙잡혀 가고 다른 하나는 남겨지리라).
미래 바벨론의 노예 생활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 면박을 벗으며 - '면박'에 해당하는 '차마테카'(*)는
구약 성경에서 이곳에서만 나오며,
의미는 '꼬고 땋아 내린 머리',
혹은 문자 그대로 '얼굴을 가리는 얇은 천' 등으로
볼 수 있다.
(고전 11:15 그러나 여자가 긴 머리를 가지면 그것이 그녀에게 영광이 되나니 여자의 머리는 덮는 것으로 주어졌느니라).
땋은 머리든지 면박이든지 그것을 들어올리거나 벗는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큰 수치를 뜻하였다.
▶ 다리를 드러내고 강을 건너라 - 다리를 드러낸다는 표현은
당시 바벨론의 지도층 부녀자들이
자락이 길고 펄럭이는 옷을 입었던 사실을 상기시킨다.
또한 강을 건넌다는 표현은
바벨론 주위에 있었던 많은 강들과 수로들을 건너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아울러 이는 포로로 잡혀가는 것을 암시하는 표현으로 이해해 볼 수도 있겠다.
[사 47:3] 네 살이 드러나고 네 부끄러운 것이 보일 것이라 내가 보수하되 사람을 아끼지 아니하리라
▶ 내가 보수하되 사람을 아끼지 아니하리라 -
본 구절 중
'사람을 아끼지 아니하리라'는 매우 어려운 부분으로 그 해석이 다양하다.
해석에는 '사람이 나를 저항하지 못하리라'(Jerome),
'나는 그 어느 누구도 중재자가 되지 못하게 하리라'(Grotius),
'나는 누구와도 평화하지 않을 것이다'(Noyes) 등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해석의 관건은
'아끼다'로 번역된 '에프가'를 어떻게 번역 하느냐인데,
이 용어는
'누구를 치다', '공격하다', '적대감을 갖고 덮친다', '죽이다', '살육하다' 등의
뜻과 함께
'누구를 치다', '공격하다', '적대감을 갖고 덮치다', '죽이다', '살육하다' 등의
뜻과 함께 '누구를 대신하여 만나다'의 뜻도 가지고 있다.
이 후자의 뜻을 중시하고 전술한 해석 중,
그로티우스(Grotius)의 견해를 존중할 때
우리는 문제의 구절을 이렇게 번역할 수 있겠다:
'바벨론을 대신하여 나선 그 어느 중재자도 만나지 아니하리라'.
(참조, I will not meet thee as a man, KJV).
이 같은 번역은, '내가 보수하되'라는 표현에서도
분명히 읽을 수 있는 하나님의 바벨론에 대한 징벌의 단호한 결심과도 조화를 이룬다.
[사 47:4] (우리의 구속자는 그 이름이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시니라)
본절은 앞뒤 문맥과 잘 조화되지 않는 듯한 독특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은 일종의 찬양 혹은 큰 놀람의 표현이라 할 수 있는데,
아마도 저자는 환상 중에 바벨론의 수치스러운 멸망의 모습을 보면서
갑자기 큰 놀람과 기쁨의 탄성을 터뜨렸던 것 같다.
그 감격의 내용을 좀더 풀어보면 이와 같다:
'오 우리의 구속자이시여!
당신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이시니이다!
당신의 능력은 얼마나 크신지요!
당신은 얼마나 신실하신지요!
당신이 어떤 분이신지 너무도 분명히 드러났나이다.
바벨론이 멸망하나이다.
그들의 우상이 그들을 구원할 수 없나이다.
그들의 멸망은 우리 백성의 구속자이시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이신 당신에 의하여 성취되었나이다'.
예기치 못했던 바벨론의 멸망을 바라보면서
저자는 인간적인 통쾌감을 느끼기보다는
이스라엘의 구원자되시는 하나님께 대한 경외감
및 그분에 대한 감격을 느꼈던 것이다.
[사 47:5] 딸 갈대아여 잠잠히 앉으라 흑암으로 들어가라 네가 다시는 열국의 주모라 칭함을 받지 못하리라
▶ 흑암으로 들어가라 - 동일한 이미지가
이스라엘의 포로 사실과의 연관성 속에서 사용된 바 있는데,
(42:7 네가 눈먼 자들의 눈을 열어 주며 갇힌 자들을 감옥에서 데리고 나오고 어둠 속에 앉은 자들을 감옥 집에서 나오게 하리라),
이제 그 동일한 운명으로 고통당하는
바벨론을 묘사하기 위해 다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본 묘사가 바벨론의 포로 사실을
필연적으로 암시하는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포로와 같은 슬픈 운명을 강조할 뿐이다.
▶ 열국의 주모(主母) - 분자적인 뜻은 '왕국들의 여주인'이다.
이 호칭은 로마에게 붙여졌던 '세계의 여왕'이란 호칭을 연상케 한다.
바벨론은 이 같은 호칭에 걸맞는 권세와 명성을 유지하였고
그 주위의 열국들은 종속자, 종들로 여겨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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