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engol 2

그들의 우상들은 짐승과 가축에게 실리웠으니 너희가 떠메고 다니던 그것은 피곤한 짐승의 무거운 짐이 되었도다

거듭난 삶 2022. 6. 12.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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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론 우상의 파멸

 

성 경: [46:1-7] 벨은 엎드러졌고 느보는 구부러졌도다 그들의 우상들은 짐승과 가축에게 실리웠으니 너희가 떠메고 다니던 그것은 피곤한 짐승의 무거운 짐이 되었도다

2) 그들은 구부러졌고 그들은 일제히 엎드러졌으므로 그 짐을 구하여 내지 못하고 자기도 잡혀 갔느니라

3) 야곱 집이여 이스라엘 집의 남은 모든 자여 나를 들을지어다 배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품기운 너희여

4)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안을 것이요 품을 것이요 구하여 내리라

5) 너희가 나를 누구에 비기며 누구와 짝하며 누구와 비교하여 서로 같다 하겠느냐

6) 사람들이 주머니에서 금을 쏟아 내며 은을 저울에 달아 장색에게 주고 그것으로 신을 만들게 하고 그것에게 엎드려 경배하고

7) 그것을 들어 어깨에 메어다가 그의 처소에 두면 그것이 서서 있고 거기서 능히 움직이지 못하며 그에게 부르짖어도 능히 응답지 못하며 고난에서 구하여 내지도 못하느니라.

 

 

 

[46:1] 벨은 엎드러졌고 느보는 구부러졌도다 그들의 우상들은 짐승과 가축에게 실리웠으니 너희가 떠메고 다니던 그것은 피곤한 짐승의 무거운 짐이 되었도다

 

- 바벨론의 수호신들 중의 우두머리이며,

그 수도의 신인 말둑(Marduk)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이는 아람 방언이며, 히브리어로는 ''라는 뜻의 '바알'이다.

 

(50:2 너희는 민족들 가운데 밝히 알리고 널리 알리며 군기를 세우라. 널리 알리고 숨기지 말며 말하기를, 바빌론이 탈취를 당하고 벨이 당황하며 므로닥(Marduk)이 산산조각 부서졌고 그녀의 우상들은 당황하며 그녀의 형상들은 산산조각 부서졌다, 하라;

 

51:44 내가 바빌론에서 벨을 벌하고 그가 삼킨 것을 그의 입에서 꺼내리니 민족들이 다시는 그에게로 다 같이 흘러가지 아니할 것이요, 참으로 바빌론 성벽이 무너지리라).

 

느보 - '나부'라 불리기도 한 이 우상은

바벨론 당시 벨 못지않게 중요하게 여겨졌다.

 

말둑의 아들이며 운명의 서판들을 보관하는 문학과 지혜의 신이다.

그러나 느부갓네살, 나보니두스와 같은 왕들의 이름이

이 신의 이름과 유사한 것을 볼 때 바벨론 왕조가 섬겼던 신,

곧 왕가의 수호신이었을 가능성이 유력하다(Whybray).

 

그런데 본절은 이들을 포함한 다른 우상들이

그들을 숭배하는 자들의 짐이 되었다고 말한다.

아이러니컬한 이 표현을 통해

그 대조를 이룰 참신이신 하나님의 특성이 더욱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3절 오 야곱의 집이여, 이스라엘의 집의 남은 모든 자여, 내게 귀를 기울일지어다. 너희는 배에서부터 내게 안겼고 모태에서부터 내게 업혔나니).

 

 

 

[46:2] 그들은 구부러졌고 그들은 일제히 엎드러졌으므로 그 짐을 구하여 내지 못하고 자기도 잡혀 갔느니라

 

그 짐을 구하여 내지 못하고 - 여기 ''이란 금속, 목재,

혹은 돌 등으로 구성되었던 바벨론의 신상 그 자체를 의미한다.

 

바벨론 사람들이 숭배했었던 이 신들은

그들 자신을 상징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던 형상조차도 지킬 힘이 없었기에,

더군다나 그들을 신뢰하는 자들을 구하고 보호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하다.

 

 

 

[46:3] 야곱 집이여 이스라엘 집의 남은 모든 자여 나를 들을지어다 배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품기운 너희여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품기운 너희 - 문자적인 뜻은 '태중에서부터 운반된 자'이다.

 

말하자면 이스라엘이 처음부터 하나님께 짐이었음을 의미한다.

여기 ''이란

다름 아닌 이스라엘의 심판과 비참의 근원이 된 '죄의 짐'을 가리킨다.

 

본절에서 죄의 짐을 지고 죄를 사하는 분으로 계시된 하나님은

그 섬기는 자에게 도리어 짐이 된 이방의 신과 대조를 이룬다.

 

하나님은 짐을 지우는 분이 아니라 짐을 지는 분이셨다.

바리새인들이 구약 성경을 제대로 깨달았다면

왜 그리스도께서 그와 같이 사시고 그와 같이 죽으셨는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46:4]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안을 것이요 품을 것이요 구하여 내리라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 하나님은 동일한 자상함, 애정,

보살핌을 계속 유지하실 분이라는 뜻이다.

 

곧 하나님의 분별성이 그 핵심이다.

이 예언은 혈통적 유대인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의 영적 이스라엘

곧 교회에 포함될 성도 모두들에게까지도 연관된다고 볼 수 있다(Fausset).

 

 

 

[46:5] 너희가 나를 누구에 비기며 누구와 짝하며 누구와 비교하여 서로 같다 하겠느냐

 

너희가 나를 누구에 비기며 - 본절의 의도는 하나님과 대조가 되는

우상 숭배의 어리석음, 우상 신뢰의 헛됨을 보이는 것이다.

 

이것은 본서 저자가 흔히 강조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이 같은 주장의 근거는,

바벨론의 우상들은 그 도성을 보호하지 못할뿐더러

그 자신도 돌아보지 못한다는 사실에 두고 있다.

 

(1-2 벨은 쓰러지고 느보는 몸을 구부리는도다. 그들의 우상들이 짐승과 가축 위에 실렸으며 너희 수레들이 무겁게 짐을 실었은즉 그것들이 피곤한 짐승에게 짐이 되었도다.

2) 그들이 몸을 구부리고 함께 숙이므로 그 짐을 건져 내지 못하고 도리어 자신들이 포로가 되어 갔느니라).

 

그렇다면 그것들을 의존하는 일은 얼마나 헛된 일인가!

그리고 그 무력하고 허망한 우상들과

살아계시고 진실하신 하나님을 비교하는 일은

또한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Barnes)

 

 

 

[46:6] 사람들이 주머니에서 금을 쏟아 내며 은을 저울에 달아 장색에게 주고 그것으로 신을 만들게 하고 그것에게 엎드려 경배하고

 

금을 쏟아 내며 - 여기 사용된 동사 ''의 문자적인 뜻은

'흔들다', '풍부하게 붓다' 등이지만

'탕진하다'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21:20 자기 도시의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우리의 이 아들은 고집이 세고 반항하며 우리의 음성에 순종하려 하지 아니하고 음식을 탐하는 자요 술주정뱅이라, 하거든;

 

23:21 술주정뱅이나 음식을 탐하는 자는 가난하게 되며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는 누더기를 입으리로다;

 

28:7 누구든지 법을 지키는 자는 지혜로운 아들이거니와 방탕한 자들의 벗이 되는 자는 자기 아버지를 부끄럽게 하느니라).

 

말하자면, 우상 숭배자들은 천하고 무치한 신상을 만들기 위하여

아낌없이 금전을 사용한다는 것이다(Fausset).

 

 

은을 저울에 달아 - 저울에 무게를 다는 행위는

대체로 신중하고 사려깊은 정서를 반영한다.

 

그러나 낭비하듯 값비싼 금을 사용하는

우상 숭배자의 모습을 연상케 한 바로 앞 구절을 중시할 때,

 

본문은

 

'그들은 정확히 그 눈금을 보지도 않고 값싼 금속을 취급하듯 되는 대로 양을 달았다'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장색(匠色)에게 주고 - 정확한 원문 지역은 '대장장이를 고용하고'이다.

 

 

 

[46:7] 그것을 들어 어깨에 메어다가 그의 처소에 두면 그것이 서서 있고 거기서 능히 움직이지 못하며 그에게 부르짖어도 능히 응답지 못하며 고난에서 구하여 내지도 못하느니라.

 

그것을 들어 어깨에 메어다가 - 우상 숭배자들은 고용한 대장장이가 제작한

우상을 그들의 어깨에 메어 신전 혹은 그것을 고정시켜 둘 자리로 옮겨간다.

 

이 같은 묘사의 목적은 의심할 나위 없이

인간의 어깨에 메여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신에게 복종을 표하는 일이

얼마나 우스꽝스럽고 어리석은 것인가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그의 처소에 두면 - 본절의 궁극적인 목적은 여호와와 대조시키는 것이다.

즉 여호와께서는 피조물이 아니므로

영원하시며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신 반면,

 

인간에 의해 만들어져 그 처소를 따라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우상은

누가 옮겨가기 전까지는 전혀 움직일 수도 없이

한 곳에 머물러 있으며 그를 예배하는 자들을 구하거나

그들의 소원을 들을 능력이 전혀 없음을 나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