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의 노래
성 경: [사 49:1-7] 섬들아 나를 들으라 원방 백성들아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내가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나를 부르셨고 내가 어미 복중에서 나옴으로부터 내 이름을 말씀하셨으며
2) 내 입을 날카로운 칼 같이 만드시고 나를 그 손 그늘에 숨기시며 나로 마광한 살을 만드사 그 전통에 감추시고
3)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나의 종이요 내 영광을 나타낼 이스라엘이라 하셨느니라
4) 그러나 나는 말하기를 내가 헛되이 수고하였으며 무익히 공연히 내 힘을 다하였다 하였도다 정녕히 나의 신원이 여호와께 있고 나의 보응이 나의 하나님께 있느니라
5) 나는 여호와의 보시기에 존귀한 자라 나의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셨도다 다시 야곱을 자기에게로 돌아오게 하시며 이스라엘을 자기에게로 모이게 하시려고 나를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자기 종을 삼으신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6) 그가 가라사대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오히려 경한 일이라 내가 또 너로 이방의 빛을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7) 이스라엘의 구속자,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이신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멸시를 당하는 자, 백성에게 미움을 받는 자, 관원들에게 종이 된 자에게 이같이 이르시되 너를 보고 열왕이 일어서며 방백들이 경배하리니 이는 너를 택한 바 신실한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인함이니라.
[사 49:1] 섬들아 나를 들으라 원방 백성들아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내가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나를 부르셨고 내가 어미 복중에서 나옴으로부터 내 이름을 말씀하셨으며
▶ 여호와께서 내가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나를 부르셨고 내가 어미 복중에서 나옴으로부터 내 이름을 말씀하셨으며 -
본문의 화자(話者)를 누구로 보느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누인다.
먼저 이스라엘 혹은 고레스로 보는 견해가 있는데
그 근거는
본절에 나오는 '부르셨고', '이름' 따위의 표현이
분명히 이스라엘이나 고레스를 가리키는
43:1;45:3과 연관성을 나타낸다는 점이다(Whybray).
반면에 메시야로 보는 견해가 있는데,
그 근거로는 43:1;45:3과는 달리
본 문맥이 종으로 오신 메시야를
요청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들고 있다(Barnes, Fausset, Clark).
우리는 후자의 견해를 따르고자 한다.
신약은 예수께서 그의 출생 전부터 메시야의 사역을 부여받았을 뿐 아니라
출생 전 하나님으로부터 그 이름을 부여받았던 사실을 증거하고 있다.
(마 1:21 그녀가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들에서 구원할 것이기 때문이라, 하니라;
눅 1:31 보라, 네가 네 태에 수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리라).
42장 이후 일반적인 용어들로
그 특성과 사역이 암시되었던 메시야는
본장에서부터는 하나의 인격체로서 그가 감당할 사역을 선포하고 있는데,
그 선포의 내용은 이스라엘을 넘어
이방 나라에도 구원 사역이 확장된다는 것이다.
[사 49:2] 내 입을 날카로운 칼 같이 만드시고 나를 그 손 그늘에 숨기시며 나로 마광한 살을 만드사 그 전통에 감추시고
▶ 내 입을 날카로운 칼같이 만드시고 – 성경에서는
하나님 말씀의 설득력과 능력을 나타낼 때
'찌르는 것', '검' 따위에 비유한다.
(전 12:11 지혜로운 자들의 말씀들은 가시 채들 같고 집회의 스승들이 굳게 박은 못들 같나니 이것들은 한 목자께서 주신 것이니라;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권능이 있으며 양날 달린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둘로 나누기까지 하고 또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분별하는 분이시니).
한편, 계 1:16;19:15 등에서
요한은 본문을 인용하여 구세주를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는 분으로 묘사하고 있다.
(계 1:16 그분의 오른손에는 일곱 별이 있으며 그분의 입에서는 양날 달린 날카로운 칼이 나오고 그분의 용모는 해가 세차게 빛나는 것 같더라;
19:15 그분의 입에서 예리한 칼이 나오는데 그분께서 그 칼로 민족들을 치시고 또 철장으로 그들을 다스리시리라. 또 그분께서는 전능자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즙 틀을 밟으시며)
▶ 나를 그 손 그늘에 숨기시며 - 바로 앞 구절과의 연관성 속에서 이해할 때
'나'는 칼과 같은 능력있는 말씀으로 볼 수 있겠다.
하나님은 망토에 칼을 숨기듯
메시야의 칼과 같은 말씀을 숨기셨다가
적절한 때 그 말씀을 내실 것이다(Hengstenberg).
[사 49:3]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나의 종이요 내 영광을 나타낼 이스라엘이라 하셨느니라
▶ 너는 나의 종이요 내 영광을 나타낼 이스라엘이라 - 여기 '종'이 누구냐라는
질문에 대한 견해는 다양하다.
(1) 여호와의 종으로서의 '유대인'으로 보는 견해인데,
(41:8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친구 아브라함의 씨야)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것이라는 선포에 근거를 둔다(Rosenmuller).
(44:23 오 하늘들아, 너희는 노래할지어다. 주가 그 일을 행하였느니라. 땅의 더 낮은 부분들아, 너희는 외칠지어다. 오 산들아, 숲과 그 안에 있는 모든 나무들아, 너희는 소리 내어 노래할지어다. 주가 야곱을 구속하고 이스라엘 안에서 자신을 영화롭게 하였느니라)
이 견해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이 종에 대한 언급으로 나오는
후속절의 내용이 결코 유대인에게 적용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2) 본서 저자인 이사야로 보는 견해이다(Grotius, Dathe).
이 견해는 '이스라엘'이란 호칭을 이사야에게 붙여줄 근거가
희박하다는 점에서 쉽게 반박된다.
(3) 메시야로 보는 견해이다.
사실 후속절들에 나오는 이 인물에 대한 묘사와 신약에 나오는 설명은
(마 13:57 그분으로 인해 실족하니라.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대언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받지 못하는 일이 없느니라, 하시고;
눅 2:32 이방인들을 밝히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매)
메시야와 일치하고 있는 특히 7절에 열방의 왕들이
그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언급은
메시야 외의 다른 인물을 적용시키기 힘들다는 점을 확정짓는다.
문제는 '메시야'에게 '이스라엘'이란 호칭이 붙여진 점인데,
한 개인인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란 민족의 호칭이 부여되었듯이,
사탄과의 싸움에서의 승리를 통하여
새로운 영적 이스라엘, 곧 교회의 머리가 되신 메시야에게
영적 의미의 이스라엘이란 호칭을 부여하는 것은 충분히 납득될 만하다 하겠다.
[사 49:4] 그러나 나는 말하기를 내가 헛되이 수고하였으며 무익히 공연히 내 힘을 다하였다 하였도다 정녕히 나의 신원이 여호와께 있고 나의 보응이 나의 하나님께 있느니라
▶ 내가 헛되이 수고하였으며 - 메시야 당시
팔레스틴 땅의 인구 수에 비해
결국 그의 사역을 통해 믿게 된 자의 수가 너무 적은
사실을 내다보는 언급으로 이해된다.
성경은 메시야의 부활을 믿는 수준에 이르렀던 자의 수가
대략 500여 명에 불과했던 것으로 추측케 한다.
(고전 15:6 그 뒤에 그분께서 오백여 형제에게 한 번에 보이셨는데 그 중의 대다수는 지금까지 남아 있고 어떤 사람들은 잠들었느니라).
▶ 나의 신원이 여호와께 있고 나의 보응이 나의 하나님께 있느니라 -
'나의 심판이 여호와와 함께 있고 나의 상급이 하나님과 함께 있다'가
원문 직역이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은
메시야의 사역을 공의로 판단하시고 상급을 내리신다는 의미인데,
이것은 메시야의 수고와 고통이
결국에는 목적할 만큼의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그는 결코 낙심하거나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42:4 그는 쇠하지 아니하고 낙담하지 아니하며 마침내 땅에 공의를 세우리니 섬들이 그의 법을 바라리라;
50:7-9 주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실 터인즉 내가 당황하지 아니하리라. 그러므로 내가 내 얼굴을 부싯돌같이 세웠나니 내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할 줄 아노라.
8) 나를 의롭다 하시는 이가 가까이 계시니 누가 나와 다투겠느냐? 우리가 함께 일어서자. 내 대적이 누구냐? 그는 내게로 가까이 나아올지어다.
9) 보라, 주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시리니 나를 정죄할 자가 누구냐? 보라, 그들은 다 옷같이 해어질 것이요, 좀이 그들을 먹으리라).
메시야의 고난과 십자가 사역은 실패하지 않았다.
그의 사역을 통하여 얻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게 되었다.
(53:10-12 그러나 주께서 그를 상하게 하는 것을 기뻐하사 그에게 고통을 두셨은즉 주께서 그의 혼을 죄로 인한 헌물로 삼으실 때에 그가 자기 씨를 보고 자기 날들을 길게 하며 또 주의 기뻐하시는 일이 그의 손에서 번영하리이다.
11) 그가 자기 혼이 해산의 고통을 치른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기리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리니 그가 그들의 불법들을 담당하리라.
12) 그러므로 내가 그로 하여금 위대한 자들과 몫을 나누게 하리니 그가 강한 자들과 노략한 것을 나누리라. 이는 그가 자기 혼을 쏟아 부어 죽기까지 하며 범죄자들과 함께 계수되었기 때문이니라. 그는 많은 사람들의 죄를 담당하였으며 범죄자들을 위해 중보하였느니라;
벧전 2:23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며 오직 의롭게 심판하시는 분에게 자신을 맡기시고).
[사 49:5] 나는 여호와의 보시기에 존귀한 자라 나의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셨도다 다시 야곱을 자기에게로 돌아오게 하시며 이스라엘을 자기에게로 모이게 하시려고 나를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자기 종을 삼으신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 다시 야곱을 자기에게로 돌아오게 하시며 이스라엘을 자기에게로 모이게 하시려고 -
양치기가 그의 흩어진 양들을,
혹은 암탉이 그의 병아리들을 다시 모으는 장면에서 따온 비유이다:
"예루살렘아 예루사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깨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마 23:37).
메시야 예수께서 땅에 오신 목적 중의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시기 위함이었다.
[사 49:6] 그가 가라사대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오히려 경한 일이라 내가 또 너로 이방의 빛을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오히려 경한 일이라 내가 또 너로 이방의 빛을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
혈통적 이스라엘을 회개시키는 일은 메시야가
궁극적으로 이루실 과업에 비해서는 너무 작은 일이라는 뜻이다.
이스라엘의 거듭된 반역으로
한 혈통적 민족으로서의 이스라엘의 구원은 막을 내렸고,
이제 그 사역은 이스라엘을 포함한 온 세계를 대상으로 하되
메시야를 구세주로 믿는
개개인들을 받아들이는 식으로 구원 사역은 이어질 것이다.
[사 49:7] 이스라엘의 구속자,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이신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멸시를 당하는 자, 백성에게 미움을 받는 자, 관원들에게 종이 된 자에게 이같이 이르시되 너를 보고 열왕이 일어서며 방백들이 경배하리니 이는 너를 택한 바 신실한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인함이니라.
▶ 사람에게 멸시를 당하는 자 - 종으로 오실 메시야의 특징을
한마디로 잘 요약하고 있는 구절인데, 좀더 자세한 묘사는 53장에 나온다.
▶ 너를 보고 열왕이 일어서며 - 메시야를 통해 이루어질
하나님 약속의 성취를 보고 모든 이방 권세자들이
그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을 가리킨다.
종말론적 성격을 지닌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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