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재건
성 경: [사 49:8-16]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 내가 장차 너를 보호하여 너로 백성의 언약을 삼으며 나라를 일으켜 그들로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케 하리라
9) 내가 잡혀 있는 자에게 이르기를 나오라 하며 흑암에 있는 자에게 나타나라 하리라 그들이 길에서 먹겠고 모든 자산에도 그들의 풀밭이 있을 것인즉
10) 그들이 주리거나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며 더위와 볕이 그들을 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자가 그들을 이끌되 샘물 근원으로 인도할 것임이니라
11) 내가 나의 모든 산을 길로 삼고 나의 대로를 돋우리니
12) 혹자는 원방에서, 혹자는 북방과 서방에서, 혹자는 시님 땅에서 오리라
13) 하늘이여 노래하라 땅이여 기뻐하라 산들이여 즐거이 노래하라 여호와가 그 백성을 위로하였은즉 그 고난 당한 자를 긍휼히 여길 것임이니라
14)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15)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16)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사 49:8]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 내가 장차 너를 보호하여 너로 백성의 언약을 삼으며 나라를 일으켜 그들로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케 하리라
▶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 갑자기 시제가 완료형이 되었다.
메시야께서 죄인들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장면이
선행되어 있음을 짐작케 하는 표현이다.
은혜를 구하는 장면이란 다름 아닌 메시야의 대속적 죽음을 가리킨다.
메시야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죽음을 가리킨다.
메시야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근거를 마련하셨다.
이와 같은 메시야의 대속 사역을 하나님이 받으시고
은혜를 베푸실 것을 확신하는 의미에서 저자는 완료형으로 표현하고 있다.
[사 49:9] 내가 잡혀 있는 자에게 이르기를 나오라 하며 흑암에 있는 자에게 나타나라 하리라 그들이 길에서 먹겠고 모든 자산에도 그들의 풀밭이 있을 것인즉
▶ 잡혀 있는 자 - 영적 우매에 사로잡혀 있는 자를 가리킨다.
메시야께서 대속적 죽음을 죽으시고
인간의 죄를 속하신 1차적 이유는
영적 우매에 사로잡혀 있던 자들을 해방하시기 위함이었다.
(42:7 네가 눈먼 자들의 눈을 열어 주며 갇힌 자들을 감옥에서 데리고 나오고 어둠 속에 앉은 자들을 감옥 집에서 나오게 하리라).
▶ 길에서 먹겠고 모든 자산에도 그들의 풀밭이 있을 것인즉 - 여기 '길'이란
광야를, '자산'이란 나무, 풀 한 포기 없는 민둥산을 각각 가리키는데,
그곳에 푸른 초장이 있다는 묘사는
후속절에 나오는 그 양떼를 먹이시는
목자되신 메시야의 이미지와 조화를 이룬다.
비록 메마른 광야를 다닐지라도 참목자되신 그리스도가 있으면
그 양떼들은 목마르거나 굶주리지 않는다는 영적 의미가 숨어 있다.
[사 49:10] 그들이 주리거나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며 더위와 볕이 그들을 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자가 그들을 이끌되 샘물 근원으로 인도할 것임이니라
▶ 더위와 볕이 그들을 상하지 아니하리니 - 이것은 사막을 여행하던 대상(隊商)이
쉴만한 그늘이나 수풀을 만나게 되는 것을 연상케 한다.
(4:6 또 장막이 있어서 낮에는 더위를 피하는 그늘이 되며 폭풍우와 비를 피하는 피난처와 은신처가 되리라;
14:3 그 날에 주께서 네게 안식을 주사 네 슬픔과 네 두려움과 심한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시리니 네가 그 속에서 섬기는 자가 되었느니라;
25:4 무서운 자들의 공격이 성벽을 치는 폭풍 같을 때에 주께서 가난한 자들에게 힘이 되시며 고난에 빠져 궁핍한 자에게 힘이 되시고 폭풍을 피하는 피난처가 되시며 열기를 피하는 그늘이 되셨사오니;
32:2 한 사람이 바람을 피해 숨는 곳 같이 되고 폭우를 피하는 은밀한 곳 같이 되며 마른 곳의 물 있는 강같이, 지친 땅의 큰 바위 그늘 같이 되리라).
목자되신 메시야를 통해 부여되는 보호, 쉼, 기쁨 등을 가리키는데,
신약에서도 동일한 이미지가 나온다:
" ∼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지니"(계 7:16).
[사 49:11] 내가 나의 모든 산을 길로 삼고 나의 대로를 돋우리니
▶ 모든 산을 길로 삼고 - 여기 '산'은 장애물을 상징하는 바,
본문은 그 장애물을 제거한다는 의미이다.
혹자는 여기 '산'을 복음 전파를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역사적으로 로마라는 한 나라에 복속되었던
애굽, 시리아와 같은 큰 나라들로 보기도 한다(Vitringa).
[사 49:12] 혹자는 원방에서, 혹자는 북방과 서방에서, 혹자는 시님 땅에서 오리라
▶ 시님 - 성경에 한 번만 등장하는 용어이므로
이곳이 정확히 어딘지를 규명하기란 불가능하다.
70인역(LXX)은 '페르시아'로, 갈대아역은 '남부'로,
또 다른 학자는 '팔레스틴의 남부'로 각각 보고 있다.
특이할 만한 견해는 오늘날의 '중국'으로 보는 견해인데
이 견해는 당시 아라비아나 시리아 사람들에 의해
오늘날의 중국은 '시님'과 그 음역이 비슷한 '신', '친', '치니' 등으로
불리웠다는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다(Gesenius).
이렇게 견해가 엇갈리지만 분명한 것은
이곳이 팔레스틴으로부터 먼 곳이라는 사실이다.
이방에 흩어졌던 이스라엘 백성 혹은 이방인이 메시야의 복음을 듣고
영적 이스라엘, 곧 교회의 구성원으로 소속될 것이다.
[사 49:13] 하늘이여 노래하라 땅이여 기뻐하라 산들이여 즐거이 노래하라 여호와가 그 백성을 위로하였은즉 그 고난 당한 자를 긍휼히 여길 것임이니라
▶ 하늘이여 노래하라 땅이여 기뻐하라 산들이여 즐거이 노래하라 여호와가 그 백성을 위로하였은즉 -
이것은 하나님께서 무생물인 자연을 그의 성가대로 부르신 이유이다.
그런데 여기 '위로'란
문자 그대로 억울하거나 힘든 경험을 한 사람에게
그 마음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서 베푸는 정도의 선한 말이나 행동이 아니다.
본서의 특징은 동일한 사상을 계속 반복 심화시킨다는 점인데,
이곳과 유사한 사상을 피력하고 있는 44:21-23에 의하면
'위로'란 죄사함이다.
또 본서는 '의'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하고 있는데,
본서에서 '의'란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는 그 무엇이다.
그런데 본서는 동시에 그 '의'가
메시야의 대속적 죽음을 통하여 만족될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런 맥락을 고려할 때 여기 '위로'란
메시야의 대속적 죽음을 통한 죄인들의 죄사함이라 할 수 있다.
바로 이 놀라운 사실 때문에
자연까지도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것을 본문은 가르치고 있다.
하나님께서 죄인인 그 백성을 메시야를 통하여 구속하시는 근거는 그의 언약이다.
'그 백성'이 언약적 용어라는 사실이 그것을 뒷받침한다.
[사 49:14]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 시온 - 이스라엘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포로지에서의 이스라엘 백성이
마치 하나님이 그들을 그곳에 영원히 버려두시고자 한 것처럼
불평할 사실이 기록되고 있다.
본서의 집필 시점은 포로로 잡혀가기 100여 년 전인데,
그 성취의 확실성을 강조하기 위해 완료형이 사용되었다.
[사 49:15]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 그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보다 훨씬 승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표현은, 없는 사실을 일부러 가정한 것이 아니다.
인륜이 땅에 떨어지는 오늘날의 세태에서도 가끔 볼 수 있거니와,
당시 이방 부모들 가운데는
형편상 그의 어린 자녀를 버려서 죽어가게 하는 자들이 있었다고 한다(Barnes).
(롬 1:31 지각이 없는 자요, 언약을 어기는 자요, 본성의 애정이 없는 자요, 화해하기 어려운 자요, 긍휼이 없는 자라)
[사 49:16]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 손바닥에 새겼고 - 손바닥은 자주 들여다볼 수 있게끔
가까이에 있는 것이란 점에 주목해야 한다.
▶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 이 표현도 계속 시선을 떼지 않겠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결국 본절은, 하나님이 이스라엘로부터
멀리 계시거나 무관심하지 않다는 사실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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