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engol 2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거듭난 삶 2022. 6. 22.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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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의 사랑

 

이사야서 49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이사야 49:15)

 

 

아버지의 사랑은 깊다.

어머니의 사랑은 강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의 심도에 대해서는

이것을 아버지의 사랑에 비교해 말할 것이고,

 

그 강도에 대해서는,

이것을 어머니의 사랑에 비교하여 전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아버지시며,

또 어머니시다.

 

그는 아버지처럼 깊이 사랑하고,

또 어머니처럼 강하게 사랑하신다.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이라고 있음은,

그의 여성적 반면을 발한 것이다.

 

다윗이 요나단을 애석히 여겨 노래한 말에,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보통이 아니어서-일역)

여인의 사랑보다 승하였다’(사무엘 하 1:26)고 있음은,

 

이런 종류의 사랑을 가리켜 한 말이다.

 

실로 여호와는 아버지로서 의뢰할 수 있고,

또 어머니로서 가까이 할 수가 있다.

 

아버지가 그 아들을 긍휼히 여김 같을 뿐 아니라,

또 어머니가 그 젖 먹는 자식을 긍휼히 여기는 것 같다고 한다.

 

성서가 보여주는 하나님은, 정의의 하나님이시고,

자비의 하나님은 아니라는 등은,

아직 성서를 모르는 자이다.

 

성서가 보여 주는 신은, 강한 신이신 동시에,

또 인자한 신이시다.

 

‘(!)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마태복음 23:37 한글 개역)고 하는 것은,

 

이는 확실히 부인의 소리이다.

 

하나님의 대표자로서

 

예언자 예레미야를 보라.

예언자 호세아를 보라.

그들은 여성적 예언자로서,

하나님의 여성적 반면을 잘 나타내는 것이다.

 

옳다,

여호와는 부인의 정열로써, 우리들을 사랑하신다.

여인이 그 복중의 자식을 사랑하는 사랑도,

하나님의 사랑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하신 하나님이 어찌 사람의 멸망을 좋아하실 수 있으랴!

 

사람인 어머니께 물어보라,

그 마음을 아프게 하는 가장 심한 경우가 무엇인지를.

 

그 자식이 병들어 앓는 때이다.

그 자식이 죽음에 임박한 때이다.

그 자식이 타락의 심연에 빠져,

구제의 희망이 끊기려는 때이다.

 

비탄의 극점, 통한의 끝이란, 그러한 경우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이상의 비통으로써 사람의 타락을 보시고 있는 것이다.

 

아아,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모른다.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마음을 모른다.

어머니이신 하나님의 마음을 모른다.

그는 언제나 소리를 높여 부르신다.

 

내 아들아, 돌아오라, 돌아오라.

 

그리고 음성 중에는,

남성의 베이스가 울려 퍼짐과 함께,

여성의 소프라노가 울려 퍼지는 것이다.

 

그리고 삼가 여호와께서 보여주신 그의 성격을 해부하여 볼 때,

그에게 있어서도 여성은 훨씬 남성보다 승한 것을 보는 것이다.

 

여호와는 자비하시고 은혜로우신 하나님(여성이다),

노하기를 더디하시고(약간 남성이다),

자애와 진실로 부하시고(여성이다),

자애(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여성이다).

악과, 허물(과실), 죄를 용서하시는 자(여성이다),

벌할 자를 벌하고 용서치 않는(비로소 남성이다).’(출애굽기 34:6 이하 참조)

 

만약 성서 전체가 보여주는 하나님의 성격에 따라,

그에게 이름을 붙여야 한다면,

그는 부르는데 있어서

 

하늘에 계시는 우리의 어머니!’라고 하는 것이,

아버지여하는 것보다는 훨씬 진리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내촌감삼의 (19138성서지연구’)를 참조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