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engol 2

여호와의 손에서 그 분노의 잔을 마신 예루살렘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일어설지어다

거듭난 삶 2022. 6. 30.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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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각성을 촉구

 

성 경: [51:17-23] 여호와의 손에서 그 분노의 잔을 마신 예루살렘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일어설지어다 네가 이미 비틀걸음 치게 하는 큰 잔을 마셔 다하였도다

18) 네가 낳은 모든 아들 중에 너를 인도할 자가 없고 너의 양육한 모든 아들 중에 그 손으로 너를 이끌 자도 없도다

19) 이 두 가지 일이 네게 당하였으니 누가 너를 위하여 슬퍼하랴 곧 황폐와 멸망이요 기근과 칼이라 내가 어떻게 너를 위로하랴

20) 네 아들들이 곤비하여 그물에 걸린 영양 같이 온 거리 모퉁이에 누웠으니 그들에게 여호와의 분노와 네 하나님의 견책이 가득하였도다

21) 그러므로 너 곤고하며 포도주가 아니라도 취한 자여 이 말을 들으라

22) 네 주 여호와, 그 백성을 신원하시는 네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비틀걸음 치게 하는 잔 곧 나의 분노의 큰 잔을 네 손에서 거두어서 너로 다시는 마시지 않게 하고

23) 그 잔을 너를 곤고케 하던 자들의 손에 두리라 그들은 일찍이 네게 이르기를 엎드리라 우리가 넘어가리라 하던 자들이라 너를 넘어가려는 그들의 앞에 네가 네 허리를 펴서 땅 같게, 거리 같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51:17] 여호와의 손에서 그 분노의 잔을 마신 예루살렘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일어설지어다 네가 이미 비틀걸음 치게 하는 큰 잔을 마셔 다하였도다

 

분노의 잔을 마신 예루살렘 - 당시 바벨론의 포로로 생활하고 있던

이스라엘의 상태를 분노의 잔을 마신 자에 빗대어 묘사하고 있다.

 

하나님의 진노로 가득 담긴 잔을 마신 자는 전적으로 파멸당할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비유는 그리스도에 대속적 죽음과 관련해서도 사용된바 있다.

 

(10:3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나를 잠기게 한 그 침례로 너희가 침례를 받을 수 있느냐? 하시니).

 

한편 9절에서 사용된 '히트오레리' '깰지어다'

여기서도 두 번 사용되고 있는데,

이것은 1차적으로 진정 깨어나야 할 존재는

하나님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는 사실을 암시하기 위함인 것 같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나아가서는

이스라엘이 포로에서 회복될 것을 강력히 암시하고 있다.

 

 

 

[51:18] 네가 낳은 모든 아들 중에 너를 인도할 자가 없고 너의 양육한 모든 아들 중에 그 손으로 너를 이끌 자도 없도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는 포로 상태의 이스라엘을 회복할 존재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실제로 바벨론으로부터의 귀환은 바사 왕 고레스의 개입에 의해 실현되었다.

 

아울러 본문은 영적 이스라엘이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신적 존재

곧 메시야를 통해 회복될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51:19] 이 두 가지 일이 네게 당하였으니 누가 너를 위하여 슬퍼하랴 곧 황폐와 멸망이요 기근과 칼이라 내가 어떻게 너를 위로하랴

 

이 두가지 일 - 정확히는 '이 두 가지 일들'이다.

 

말하자면 두 쌍,

곧 네 가지 일들을 가리키는데,

 

먼저 한 쌍은 땅의 관점에서 본 것으로

황폐와 멸망이며,

또 다른 한 쌍은 사람의 관점에서 본 것으로

기근과 칼, 곧 전쟁이다.

 

한편, 이를 내적 사건과 외적 사건으로

구분하는 견해(Aben Ezra, Kimchi),

 

혹은 기근으로 인한 황폐

그리고 전쟁으로 인한 멸망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Clark).

 

 

 

[51:20] 네 아들들이 곤비하여 그물에 걸린 영양 같이 온 거리 모퉁이에 누웠으니 그들에게 여호와의 분노와 네 하나님의 견책이 가득하였도다

 

그물에 걸린 영양같이 온 거리 모퉁이에 누웠으니 - 여기 '모퉁이'(로쉬)

그 문자적인 뜻이 '머리', '꼭대기'인데

거리의 '머리'(꼭대기)란 당시 한 도시의 모든 거리와 도로의

출발점이자 중심지였던 성문을 가리킨다.

 

당시 성문은 밤이 되면 폐쇄되었는데 문 안으로 들어오고자 했던 자로서

밤이 되어 그 문이 폐쇄되면 그 문 앞에 모여 밤을 지새울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 모습 곧 여럿이 성문 앞에 모여있는 모습을

저자는 그물에 걸린 영양 떼에 비유하고 있다.

 

어쩔 도리 없이 그 발이 묶인 나그네와 같이 이스라엘은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 있다.

 

 

 

[51:21] 그러므로 너 곤고하며 포도주가 아니라도 취한 자여 이 말을 들으라

 

포도주가 아니라도 취한 자 - '포도주 없이 취한 자'이다.

 

포도주 때문이 아니라 외적의 침입으로 비틀거리고 쓰러진

이스라엘의 형편을 지적으로 표현이다.

 

(29:9 너희는 스스로 멈추며 놀랄지어다. 너희는 부르짖고 부르짖을지어다. 그들이 취하되 포도주로 취하지 아니하였으며 비틀거리되 독주로 인해 비틀거리지 아니하나니;

 

3:15 그분께서 나를 쓴 것으로 배불리시고 쑥으로 취하게 하셨으며).

 

 

 

[51:22] 네 주 여호와, 그 백성을 신원하시는 네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비틀걸음 치게 하는 잔 곧 나의 분노의 큰 잔을 네 손에서 거두어서 너로 다시는 마시지 않게 하고

 

너로 다시는 마시지 않게 하고 - 문자 그대로는,

다시는 바벨론 포로와 같은 시련과 재난을 허락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그러나 문자 그대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은 바벨론 포로로부터의 귀환 후에도

로마의 침공으로 동일한 시련과 재난을 당하였기 때문이다.

 

이 약속은 종말론적인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이제 경건한 참 이스라엘 백성,

곧 남은 자들은 세상에서는 시련과 재난을 겪으나

결국 하나님 나라에 가서는 결코 동일한 고통을 겪지 않고 살게 될 것이다.

 

 

 

[51:23] 그 잔을 너를 곤고케 하던 자들의 손에 두리라 그들은 일찍이 네게 이르기를 엎드리라 우리가 넘어가리라 하던 자들이라 너를 넘어가려는 그들의 앞에 네가 네 허리를 펴서 땅 같게, 거리 같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그들의 앞에 네가 네 허리를 펴서 땅 같게, 거리 같게 하였느니라 -

 

정복자가 피정복자를 잔혹하게 대하였던 사실에 대한 생생한 묘사이다.

정복자들이 문자 그대로 그 피정복 국가 왕의 목을 밟았던 관습은

성경에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10:24 그들이 그 왕들을 여호수아에게로 끌어내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을 부르고 자기와 함께 갔던 군사들의 대장들에게 이르되, 가까이 와서 이 왕들의 목을 발로 밟으라, 하니 그들이 가까이 와서 그들의 목을 밟으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