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평화의 약속
성 경: [사 54:4-10] 두려워 말라 네가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라 놀라지 말라 네가 부끄러움을을 보지 아니하니라 네가 네 청년 때의 수치를 잊겠고 과부 때의 치욕을 다시 기억함이 없으리니
5) 이는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시라 온 세상의 하나님이라 칭함을 받으실 것이며
6) 여호와께서 너를 부르시되 마치 버림을 입어 마음에 근심하는 아내 곧 소시에 아내 되었다가 버림을 입은 자에게 함 같이 하실 것임이니라 네 하나님의 말씀이니라
7) 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 큰 긍휼로 너를 모을 것이요
8)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리웠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 네 구속자 여호와의 말이니라
9) 이는 노아의 홍수에 비하리로다 내가 다시는 노아의 홍수로 땅 위에 범람치 않게 하리라 맹세한 것 같이 내가 다시는 너를 노하지 아니하며 다시는 너를 책망하지 아니하기로 맹세하였노니
10) 산들은 떠나며 작은 산들은 옮길지라도 나의 인자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화평케 하는 나의 언약은 옮기지 아니하리라 너를 긍휼히 여기는 여호와의 말이니라.
[사 54:4] 두려워 말라 네가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라 놀라지 말라 네가 부끄러움을을 보지 아니하니라 네가 네 청년 때의 수치를 잊겠고 과부 때의 치욕을 다시 기억함이 없으리니
▶ 청년 때의 수치를 잊겠고 - '청년 때의 수치'란,
애굽 치하의 시대 혹은 앗수르 및, 바벨론의 포로 시대와 같은
특정한 시대를 가리킨다기보다는
이스라엘 역사의 시작으로부터 당시에 이르기까지
신실치 못한 아내와 같았던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대한
반역의 역사 전체를 가르킨다고 봄이 나을 것 같다.
장차 이스라엘이 마주할 백성의 중다함과 그 영광의 찬란함은
그 수욕의 역사를 잊을 만한 정도라는 것이 본 구절의 의미이다.
물론 이 구절의 완성은 주의 재림 때 이루어질 것으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후 이스라엘은 그 역사 속에서 몇 차례
외적의 침입 및 그로 인한 영광의 함몰을 재차 겪었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 과부 때의 치욕 -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짐에 따른 결과,
예컨대 이 민족의 침탈과 유린 등을 가리킨다.
*참조 : (렘 3:24-2 수치스런 일이 우리의 어린 시절부터 우리 조상들이 수고하여 얻은 것 즉 그들의 양 떼와 소 떼와 그들의 아들딸들을 삼켰나이다.
25) 우리가 우리의 수치 속에서 눕고 우리의 혼동이 우리를 덮나니 이는 우리 곧 우리와 우리 조상들이 우리의 어린 시절부터 이 날에 이르기까지 주 우리 하나님께 죄를 지어 주 우리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니이다5;
31:19 내가 돌이킨 뒤에 확실히 회개하였고 내가 교훈을 받은 뒤에 내 넓적다리를 쳤나이다. 내가 어린 시절의 치욕을 짊어졌으므로 부끄럽고 참으로 당황하기까지 하였나이다, 하였도다;
호 2:2-5 너희 어머니와 변론하고 변론하라. 그녀는 내 아내가 아니요, 나도 그녀의 남편이 아니니라. 그런즉 그녀가 자기 눈앞에서 행음을 버리게 하고 자기 젖가슴 사이에서 간음을 버리게 할지니라.
3)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그녀를 벌거벗기고 그녀가 태어나던 날에 했던 것 같이 그녀를 볼거리로 세우며 또 그녀를 광야같이 되게 하고 마른 땅같이 되게 하여 목마름으로 그녀를 죽이리라.
4) 또 내가 그녀의 자식들에게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리니 그들은 행음으로 인한 자식들이니라.
5) 그들의 어머니는 창녀 짓을 행하였고 그들을 수태한 여인은 수치스럽게 행하였느니라. 그녀가 이르기를, 내게 내 빵과 내 물과 내 양털과 내 아마와 내 기름과 내 마실 것을 주는 나의 사랑하는 자들을 내가 따라가리라, 하였도다).
[사 54:5] 이는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시라 온 세상의 하나님이라 칭함을 받으실 것이며
? 이는 ... 남편이시라 - 여기 '남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원형 '바알'(*)은 그 문자적인 뜻은 '주인', '제조자', '통치자', '소유자' 등이다. 그러나 이 용어는 흔히 '남편'을 뜻하기도 하는데(신 21:13;24:1;말 2:11), 여기서는 바로 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여기서 하나님을 이스라엘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그처럼 크고 세심하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떠나 우상 숭배에 빠진 이스라엘의 상태는 흔히 간음으로 묘사되며(대하 21:11;겔 6:9;호 4:12), 신약 시대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로 묘사된다(요 3:29;엡 5:23,24;계 21:9).
▶ 온 세상의 하나님이라 칭함을 받으실 것이며 -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제 혈통적 이스라엘뿐 아니라 세상 모든 백성에게도
그들을 통치하는 참 하나님으로 인정받으실 것을 예언하는 말이다.
말할 것도 없이 이 예언은
하나님이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신다는 사실이
본격적으로 전파될 시대를 겨냥한 표현이다 :
"하나님은 홀로 유대인의 하나님뿐이시뇨 또 이방의 하나님은 아니시뇨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롬 3:29).
이 같은 결과가 가능했던 것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었던
메시야의 대속 사역 때문이었다(53장).
[사 54:6] 여호와께서 너를 부르시되 마치 버림을 입어 마음에 근심하는 아내 곧 소시에 아내 되었다가 버림을 입은 자에게 함 같이 하실 것임이니라 네 하나님의 말씀이니라
▶ 부르시되(케라아크) - 시제는 완료형이다. 앞절과의 연관성 속에서 볼 때,
저자는 하나님이 다시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회복하실 사실을
그 신실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일단 남편에게 버림을 받았던 아내가
남편의 용서로 다시 남편에게도 돌아오는 이미지를 사용하여
묘사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아직 시작도 되지 않은 일을 이미 완성된 듯이 완료형으로 묘사한 것은
그 성취될 사실의 확실성을 강조하기 위함인데,
이 같은 표현 방법을 '선지자적 과거'라고 부른다(Fausset).
70인역(LXX)의 경우는 난해하게도
'여호와께서 버려지고 위안을 받지 못한 아내로 그들을 부르지 않으셨다.
그리고 그녀의 젊은 시절부터, 미워해 왔던 아내로 부르지도 않으셨다'로
본절을 번역하고 있다.
이것은 추측컨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인간 사이의 부부 관계로써 묘사하기를 거절하고자 하는
의도 때문인 것으로 보여 지나 문맥에 합당하지 않다.
[사 54:7] 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 큰 긍휼로 너를 모을 것이요
▶ 잠시 - '약간의 분노로'로 번역하는 학자도 있으나(Lowth),
원문은 개역 성경과 동일하다.
이것은 문자 그대로 아주 짧은 시간을 가리키는데,
여기서 이 표현이 등장한 것은 이후 임할 번영 및,
영광의 기간은 영원할 것이라는 사실과 대조를 이루게 하기 위해서이다.
신약 성경에도 동일한 사상이 나타나 있다 :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후 4:17).
▶ 큰 긍휼 - 또 다른 차원의 대조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것은 버림받음이 '적은' 것이었다면
긍휼은 '큰(위대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이 큰 '긍휼'의 내용은
오랫동안의 배역(背逆)을
다 품고 해결할 수 있는 위대한 메시야의 대속사역이다.
[사 54:8]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리웠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 네 구속자 여호와의 말이니라
▶ 넘치는 진노(베쉐체프 케체프) - '분노의 범람'이
그 문자적 뜻이다(a surge of anger, NIV).
그러나 하나님의 징벌과 회복의 은총을 대조시키는 문맥을 중시할 때,
이는 '적은 분노'(a little wrath, KJV),
혹은 '잠시 동안의 격노' 등으로 해석해 볼 수도 있겠다.
▶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리웠으나 - 불쾌감의 표현이다.
(8:17 나는 자신의 얼굴을 야곱의 집에게 숨기시는 주를 바라며 그분을 기다리리라;
욥 13:24 어찌하여 주께서 주의 얼굴을 숨기시고 나를 주의 원수로 여기시나이까?;
34:29 그분께서 고요함을 주실 때에 누가 소란하게 하겠느냐? 그분께서 자신의 얼굴을 숨기실 때에 누가 그분을 쳐다볼 수 있겠느냐? 한 민족에게 그리하시든지 한 사람에게만 그리하시든지 상관이 없나니;
시 30:7 주여, 주께서 주의 은총으로 내 산을 굳게 세우셨사오나 주께서 주의 얼굴을 숨기시니 내가 근심하였나이다).
이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바벨론 포로라는 징벌로
명백히 드러난 하나님의 불쾌감과 노여움을 가리킨다.
▶ 영원한 자비 - 앞의 '넘치는 진노'와 대비를 이룬다.
메시야의 은총 아래 있는 교회와
그 개인이 받을 은총은 엄청나다 :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엡 1:3).
▶ 구속자 여호와 - 계속해서 '구속자'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은
회복될 모든 번영, 영광 등은 메시야의 구속 사역을
근거로 하는 것임을 암시하기 위해서이다.
[사 54:9] 이는 노아의 홍수에 비하리로다 내가 다시는 노아의 홍수로 땅 위에 범람치 않게 하리라 맹세한 것 같이 내가 다시는 너를 노하지 아니하며 다시는 너를 책망하지 아니하기로 맹세하였노니
본절에서 하나님은 노아게게 주신 약속을 상기시키면서
다시는 이스라엘을 징벌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계신다.
그런데 본 약속에 대한 이해의 기초는
노아에게 약속을 주셨던 당시의 문맥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의 생각이 어려서부터 악하기 때문에 물로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하셨다(창 8:21).
노아에게 주셨던 약속은
분명하게 인간의 죄성과 깊은 관계가 있는 것이다.
즉 인간은 나면서부터 죄인인데,
이러한 인생들에 대하여 반복하여 대홍수와 같은 저주를 내린다면
이 땅과 인생들은 잠시도 견디지 못할 것이므로
인류 전체를 향한 물심판은 없으리라는 약속이었다.
따라서 인간의 죄성이란 관점에서 본절의 약속도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셔서 인간의 죄를 결코 용납하지 않으신다.
그런데 본절에서 범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을 징벌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계신데,
그것은 53장에서 메시야께서 온 인류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십자가를 지실 것이기 때문에 그 대속의 은총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에게는
심판을 면제해주시겠다는 약속인 것이다.
[사 54:10] 산들은 떠나며 작은 산들은 옮길지라도 나의 인자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화평케 하는 나의 언약은 옮기지 아니하리라 너를 긍휼히 여기는 여호와의 말이니라.
▶ 인자(헤세드) - 언약 용어로서 기왕에 주신 약속을
끝까지 신실하게 지키시는 하나님의 불변의 사랑을 가리킬 때 사용된다.
▶ 화평케 하는 나의 언약(베리트 쉘로미) - 문자적인 뜻은 '나의 평화의 언약'이다.
동일한 용어가 사용된 유사 구절에 근거할 때,
본 언약은 다윗의 위를 이은 한 왕이 통치할
영원한 하나님 나라 건설에 관한 약속이다.
(겔 37:24-26 내 종 다윗이 그들을 다스리는 왕이 되리니 그들 모두에게 한 목자가 있으리라. 그들이 또한 내 법도 안에서 걸으며 내 법규를 지켜 행하리라.
25) 그들이 내가 내 종 야곱에게 준 땅 곧 너희 조상들이 거하던 땅에 거하되 그들 즉 그들과 그들의 자녀들과 그들의 자녀들의 자녀들이 영원히 그 안에 거할 것이요, 내 종 다윗이 영원히 그들의 통치자가 되리라.
26) 또 내가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맺으리니 그것이 그들과 함께하는 영존하는 언약이 되리라. 또 내가 그들에게 처소를 주고 그들을 번성하게 하며 내 성소를 그들의 한가운데 세워 영원히 있게 하리라).
이 나라는 혈통적 이스라엘만을 구성원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들어올 이방의 택함 받은 자까지도 포함된
하나님 나라의 건설에 대한 약속으로 보아야 정확하다.
이 나라의 건설은 인간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변함없는 하나님 언약의 신실성 때문에 가능하다.
견고성, 불변성을 상징하는 산들은 혹시 움직여질 수 있어도
그 나라를 세우기로 한,
하나님의 약속 계획은 결코 변경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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