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의 성소 2
청년인 예레미야는,
이사야, 아모스, 호세아, 미가 같은 예언자여야 할 것이다.
그는 자기의 나이 어리다는 것으로써 예언의 중직을 사퇴할 것이 아니라,
대저 예언자 됨은,
자기의 지혜로써 하고,
자기의 하는 말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예레미야는 아직 예언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했다.
그가 예언자 되는 것은 하나님의 기계로 되는 일임을 알지 못했다.
‘나의 뜻은 하나님의 뜻을 내 뜻으로 하는데 있다.’는
신앙의 비결이 지금 처음으로 그에게 전해졌다.
그는 어린아이라도 좋다.
그렇다, 만약 하나님의 뜻이라면 무학이라도 좋다.
다만 하나님의 음성을 식별하는 힘만 있으면 족하다.
이 힘마저 하나님께서 주면,
그는 사람을 두려워할 것 없다.
하나님은 그에게 ‘지극히 가까운 도움’(시 46:1 참조)이시다.
그는 이제부터 홀로 서서 만국을 상대로 싸워야할 것이다.
‘여호와께서 그 손을 내 밀어 내 입에 대시며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보라 내가 오늘날 너를 열방 만국위에 세우고 너로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며 건설하며 심게 하였느니라’(1:9-10)
먼저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고,
(1:4 그때에 주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드디어 그 손이,
그의 입에 대신 바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도대체 무엇을 뜻함일까?
말씀으로써 전해진 것을 손으로써 실행하셨다는 것일지?
혹은 손을 펴서 다문 입을 열어,
그에게 웅변의 힘을 주사,
그로 하여금 침묵을 깨치게 하셨다는 것일지?
혹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는 것이고 보면,
대사상을 그의 마음에 주입하여,
그로 하여금 큰 소리로
소리쳐 부르도록(대성질호) 하지 않을 수 없게끔 하셨다는 것일지?
문자의 해석은,
극히 곤란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여호와께 육의 손이 있을 리는 없다.
그렇다. 여호와의 손은 여호와의 능력(힘)이시다.
저 예언자의 입에 두셨다는 것은 힘(능력)이 그에게 임한 것이리라.
그는 이때, 그가 이때까지 알지 못했든 권능이,
그에게 가해진 것을 느꼈으리라.
겁쟁이인 그는, 이제는 용자로 되었으리라.
회의의 그는 지금은 확신의 고로 되었으리라.
그는 지금, 의지할 어떤 확실한 것을 느끼기에 이른 것이리라.
그리고 여호와는 이 새로운 능력을 그에게 가하시어,
다시 그에게 말씀하셨으리라
‘보라, 내가 오늘날 너를..’이라고.
19세의 청년, 그는 만민 위와 만국 위에 두어졌다.
그는 이제는 목백 이상, 제왕이상의 사람으로 되었다.
그는 겨우 유다일국 위에 서서 그 운명을 지배할 것이 아니다.
애굽인과 애굽 위에서고,
바벨론과 바벨국위에 서며,
페니시아인(페니키아인 -2권 195 역주 참조)과 페니시아 위에 서서,
즉 그 재세당시의 모든 국민의 운명을 정하며,
그 죄를 책하고,
그 벌을 선고하며,
그 멸망을 판결해야 할 자가 되었다.
예언자란 그러한 자이다.
그는 글자대로 반드시 미리 말하는 자는 아니다.
즉 선견자일 뿐은 아니다.
히브리어의 나비는 비등비등하는 자의 뜻이라고도 하고,
또는 단순히 고지자의 뜻이라고도 한다.
만약 비등자리면,
분개자, 백성의 죄악을 분개하는 자,
억누르려야 억누를 수 없는 감개 그대로를 분출하는 자이다.
만약 고지자라면,
하나님의 뜻을 백성에게 고하여 알리는 자이다.
하지만 자의를 떠나서 나비(예언자) 그것에 대해 말하면,
그는 선견자요, 비등자요, 고지자이다.
그리고 예레미야 같은 이는,
그 가장 현저한 자요,
가장 열렬한 자였다.
그는 이제부터 국민을 뽑아 버리기도 하고,
파괴도 하며, 멸하기도 하고, 넘어뜨리기도 하며,
세우기도 하고, 심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가 이것을 행한다는 것은,
물론 그는 하나님의 뜻을 말하는 자인 까닭에,
그의 말은 반드시 사리로 되어 나타나리라는 것이다.
저, 임약한 일개 청년이라 해도,
그가 만약 애굽(이집트)에 대해 멸망을 선고하면,
애굽은 마침내 망하리라는 것이다.
그가 만약 유다에 재흥을 약속하면,
유다는 마침내 다시 흥하리라는 것이다.
때(당시)의 강국인 앗수르도 바빌로니아도,
또 제 2등국에 위치한 에돔, 암몬, 엘람등도,
그의 말대로, 혹은 멸(망)하고, 혹은 흥 하리라는 것이다.
위대하도다,
나비-(예언자)의 권능.
대왕 느부갓네살일지라도 이 권능은 가지지 못했다.
하지만 이 권능이 19세의 일청년에게 부여 되었다는 것이다.
그가 만약 암우 하다면,
그는 종교광이 되어 버렸으리라.
예언자로서의 어려움은,
남을 책하는 것보다도 자기를 삼감에 있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이 대임을 맡고서,
그의 상식을 잃지 않았다.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대답하되 내가 살구나무 가지를 보나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네가 잘 보았도다 이는 내가 내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니라’(1:11-12)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대답하되 끓는 가마를 보나이다. 그 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어졌나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재앙이 북방에서 일어나 이 땅의 모든 거민에게 임하리라’(1:13-14)
여호와의 대능, 그에게 임한 후에,
예레미야는 어떤 날, 뜰 앞에서일지,
혹은 교외에서, 살구나무 가지를 보았다.
그의 시적 안은,
곧 이 나뭇가지에서 하나님의 뜻을 읽었다.
유다의 살구나무는 일본의 매화 같은 것이다.
꽃은 시작이라 불리고,
엄동 아직 가기 전에,
그 나뭇가지 끝에 눈 아닌 꽃을 피우는 것이다.
그러므로 히브리어로는 이것을 페코스라 하고,
깨어나는 자라는 뜻이다.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는데 동기의 수면에서 깨어나는 자’,
이것이 살구마누(일역에는 아멘도우)이다.
생각했던 것보다도 빨리 피는 꽃,
아마, 이 나무는 유다국의 운명을 고하여 알려 주는 것이리라.
이 나라에 대한 여호와의 말씀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보다도 빨리 실행되리라.
정의의 재판은, 급히 임하리라.
페코스(살구나무) 꽃이 때 아닌데 피듯이,
하나님의 분노는 때 아닌데 페카스(불의)를 기뻐하는
이 국민 위에 떨어져 오리라.
페코스(살구나무)는 페카스의 뜻이리라.
천연은 잘 이것을 해석하면, 하나님의 말씀이다.
살구나무(혹은 매화)는 조는 백성에게 각성을 고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시골(농촌)의 예언자로서 전원시인이었던 예레미야는,
살구나무(매화)의 한 가지에서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읽었다.
그에게 있어서는, 풀도 조약돌도 유력한 설교였다.
그리고 그에게 임한 최초의 묵시는 살구나무의 한가지로서였다.
그는 실로 워즈워드(1권 105p 역주) 이상의 천연시인이다.
살구나무에서 하나님의 재판이 임할 시기를 읽은 예레미야는,
끓는 가마에서 그 임할 바 방향을 보았다.
가마(남비)란 유대인이 사용하는 보통 가구인데,
마치 우리나라에 있어서의 쇠로 만든 주전자 같은 것이다.
어떤 날 가마가 그 입을 북에서 남으로 향하여 비등증발하고 있음을 보고,
하나님의 분노가 북에서 남으로 향하여, 임해 옴을 알았다.
물이 쇠솥 안에서 끓듯,
정의는 하나님의 심중에 분기하고 있다.
그리고 예언자의 목전에서 가마(남비)가
그 입(아가리)을 북에서 남으로 향하여 뜨거운 증기를 토하고 있듯,
하나님의 의분은,
북방 땅에서 남을 향하여 이 유다국에 임하리라.
때는 뜻하지 않는 중에,
사람의 생각보다도 빠르게,
방향은 북에서 남으로 향하여,
하나님의 재판은 임하고 있다고.
예레미야에게 임한 제 2회 묵시는,
비등하는 가마에 의해서였다.
살구나무와 가마,
매화와 쇠주전자,
자질구레한 이 천연물과 사소한 가구는,
국민의 운명을 이 청년예언자에게 전했다.
하나님은 그 뜻을 그 사랑하는 자녀에게 전하심에 있어서,
반드시 천둥우뢰 소리로써 대산악 위에서 울려 퍼질 것 없다.
매화의 한 가지로써, 혹은 끓는 가마(주전자)로써,
우주의 오의를 사람에게 보이신다.
귀 있는 자는 들을 것이다.
눈 있는 자는 볼 것이다.
하나님의 묵시는 부엌에 있고, 길가에 있다.
꼭 고단 위에서 설교사의 설교를 듣는데 있는 것이 아니고,
산중에 은퇴하여,
인생의 비밀에 대하여 침사묵고할 것 까지는 없다.
예레미야는 실로 전원시인으로서, 가정의 예언자이다.
*내촌감삼의 예레미야 주해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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