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면피의 고립
철면피는 나쁜 일이다.
철면피는 또는 좋은 것이다.
수치에 대한 철면피,
의와 정에 대한 철면피는 나쁜 일이다.
그러나 불의에 대한 철면피,
특히 권력에 의한 불의와 압제와 포학에 대한 철면피는,
좋은 것으로서, 상찬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과 정의를 위해 진력하려는 자에게 있어서,
이런 종류의 철면피가 없어서는 안 된다.
정의는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나 꽃처럼 애인처럼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정의가 아름다운 것은,
산악이 아름답듯 아름다운 것이다.
이것에 외외(崴嵬)한 데가 있고,
차아(次亞) 한데가 있으므로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므로 그 창도자 된 자에게 있어서도,
역시 기구한바 울굴 한데가 없어서는 안 된다.
그는 소위 팔방미인이어서는 안 된다.
관용을 부르짖으면서 누구나 이를 따르게 하려는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
예언자는 바위(암석)가 아니어서는 안 된다.
무쇠가 아니어서는 안 된다.
여호와께서, 예언자 에스겔에게 말씀하셨다.
‘네 이마로 화석보다 굳은 금강석 같이 하였으니’(에스겔 3:9)라고.
그리고 예언자 예레미야도 또한 만국의 예언자로서
세상에 서는 데 있어서는, 철면석심의 사람으로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너는 네 허리를 동이고 일어나 내가 네게 명한 바를 다 그들에게 고하라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두렵건대 내게 너로 그들 앞에서 두려움을 당하게 할까 하노라. 보라 내가 오늘날 너로 그 온 땅과 유다 왕들과 그 족장들과 그 제사장들과 그 땅 백성 앞에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성벽이 되게 하였은즉 그들이 너를 치나 이기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너를 구원 할 것임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1:17-19)
‘사람의 낮(얼굴)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기필코 분노로써 네게 향하리라.
그들은 낡은 습관(구습)이 타파됨을 좋아하지 않으리라.
그들은 그들의 불의 위선이 지적됨을 기뻐하지 않으리라.
너는 그들 가운데서, 방해물로 취급되리라.
하지만 그들의 얼굴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그들의 얼굴에 보이는 것같이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그들의 얼굴에 보이는 것 같이 두려워 할 자 아니다.
그들의 마음은 그들의 얼굴처럼 두렵지가 않은 것이다.
그들의 양심은 조용한 곳에 있어서,
그들을 책하는 것이다.
그들 역시 때로는 죽음의 공포의 엄습을 받으며,
하나님의 재판을 상상하여 전율하는 것이다.
옳다, 그들의 얼굴을 두려워 말라.
그들의 얼굴에 대하여 그들의 죄악을 말하라.
너는, 밖에서 말로서 그들을 공격하라.
나는, 안에서(속 심령에서) 양심의 소리로써 그들을 책하라.
그들은 다수이고, 너는 한 사람이라.
하지만 나 여호와 하나님은,
너와 힘을 합하여 그들의 배후에서 그들을 책함을 잊지 말라.
‘그들의 낯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러지 않으면, 내가 그들 앞에서 너를 욕되게 하리라’.
네가, 만약 내편이 되어 그들을 책하지 않으면,
나는 네 적이 되어, 그들로 하여금 너를 욕되게 하리라.
네가, 그들을 추격하지 않을 것인가,
그들의 추격을 받게 되리라.
세상이 기뻐하는 일 중에 하나님의 사자를 괴롭히는 일 이상 없도다.
너는 그들의 조롱물이 될 것이다.
사사 삼손같이,
이방인 앞에 끌려 나가, 그 희롱꺼리로 되리라(사사기 16장 참조).
예언자의 책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적으로서 가져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그 온 땅과 유다 왕들과 그 족장들과 그 제사장들과 그 땅 백성’들이다. (1:18 참조).
즉 국왕과, 정치가와, 군인과, 종교가와, 국민전체이다.
그는 즉 전국을 상대로 하여 서야 할 자이다.
그는 물론 왕공귀족의 변호자는 아니다.
부호의 대변자는 아니다.
종교가의 한 사람도 아니다.
그렇다고 세상에서 말하는 소위 평민의 벗(친구)도 아니다.
그는 하나님의 종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대적하는 자에게는,
(즉) 귀족에게고 평민에게도 대적하는 것이다.
그의 속하는 당파란 없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과 함께 서는 자이다.
세상에 만약 그 외에 하나님과 함께 서는 자 있을 것인가,
그러한 사람은 그가 귀족이건, 평민이건, 정치가이건, 군인이건,
종교가이건, 평신자이건, 역시 그의 친구이다.
하지만, 만약 그러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을 것인가,
그는 한 사람으로 서야 할 것이다.
그는 이방의 그리스인 본받아,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 따라,
굳이 동지를 구할 것은 아니다.
그에게 의뢰할 계급은 없다.
그는 귀족도 아니려니와 평민도 아니다.
그에게 속해야 할 당파는 없다.
그는 이집트(애굽) 당도 아니려니와 바벨론 당도 아니다.
그에게 귀의해야 할 교회는 없다.
그는 제사장도 아니려니와 레위족도 아니다.
그는 하나님의 종이다.
그러므로 타락한 그의 재세(在世) 당시의 사회에 있어서는,
하는 수 없이 고독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고독을 슬퍼해서는 안 된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와 함께 있어서 그를 구원하리라는 것이다.
단지 고독 할 뿐만 아니다.
그는 국왕, 정치가, 군인, 종교가, 평민, 즉 전 국민에 대하여,
철면과 금강석의 이마를 향하게 할 것이다.
그들의 죄악은 결코 용서(가차)할 것은 아니다.
음종(淫縱)은 음종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사치는 사치라고 해야 할 것이다.
위선은 위선으로서 책해야 할 것이다.
국왕의 기호라 해서,
죄악을 죄악이외의 이름으로써 불러야 할 것은 아니다.
백성의 세롬이라 해서 세론에 아부할 것 아니다.
흑은 흑, 백은 백, 사실 그대로를 말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여, 그는 이 사회에 있어서,
적지에 진을 폄의 경우에 서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주위에 적을 받을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를 땅의 백성 앞에,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성벽’이 되게 하셨다고.
약하고, 나약한 일청년, 몸에 예기를 지니는 것 아니다.
그에게 계급, 당파, 또는 교회의 보호가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도 여호와의 말씀을 몸에 지니고서,
그는 홀로 서서, 적인요위 중에 금성철벽이어야 할 것이다.
‘그들이 너와 싸우려 해도 네게 이기지 못하리라’(예레미야 1:19 일역)고.
하나님의 예언자인 일 청년은,
국왕, 정치가, 군인 종교가, 평민,
즉 국민전체보다는 강할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그 안에서 (그로 말미암아) 국민 중에 임하실 것이매,
국민 범과해도 그는 범과치 않을 것이다.
원로의 논의는 패한대도 그의 말은 성취될 것이다.
예언자 한 사람은, 전 국민보다도 강하다.
국민은 전부 적국을 멸할 수 있대도,
예언자 한 사람을 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 그를 죽일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의 생명인 그의 말은 생존하여,
사실로 되어 나타나, 결국은 죄악의 백성은 망할 것이다.
화 있을진저, 예언자를 파송 받은 죄악의 백성은!
그들의 운명은 이미 정해졌도다.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할 것임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1;19 참조)고.
세상이 모두 일어나선대도,
예언자에게 이길 수 없음의 설명은, 여기에 있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있어서.
그를 구원하시는 때문이다.
그 자신에게 불발의 정신이 있기 때문이 아니다.
불요의 정력이 있기 때문이 아니다.
여호와께서 그에 의해 말하고,
여호와께서 그로 역사(일) 하시기 때문이다.
세상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변함없는 뜻 따라, 나아가는 것이다.
예언자의 강함은,
그는 이 뜻에 의하는 때문이다.
예언자에게 세상을 이기는 힘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까닭에,
하나님과 함께 세상에 이기는 것이다.
예언자는 세상에 이김의 비결을 아는 자이다.
그의 강함을 인하여, 그를 칭하할 것은 아니다.
그의 거룩한 지혜를 찬탄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 그에게 주어진 신앙을 인하여 그를 부러워 할 것이다.
이렇듯 견고히 되어 예레미야의 생애는 시작되었다.
이제부터 그는,
혹은 국왕에 대하여,
혹은 목백에 대하여,
혹은 제사장에 대하여,
혹은 평민에 대하여,
그의 예언적 공격을 개시했다.
여기서 일대전쟁은,
야곱의 집과 이스라엘집의 모든 무리 가운데 전개되었다.
일대강적은,
백성 중에 나타났다.
국왕, 목백, 제사장, 평민은 모두 그를 압복하려 했다.
그는 반백년 동안, 고독한 생애를 계속했다.
그는 때때로 울었다. 자기의 고독을 슬퍼했다.
그는 때로는 하나님도 원망했다.
그러나 그는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성벽 됨의 그의 본성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성벽 됨의 그의 본성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심하게 국인에게 괴롭힘을 당했지만,
그 이기는 바(제압) 되지는 않았다.
유다왕국 나중의 50년 동안,
그렇다, 유다민족 과거 2500년간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로서 지정하신 것이었다.
그렇다. 유다왕국은 마침내 멸망했다.
하지만 예레미야의 말은 멸절되지 않았다.
예레미야의 말은,
백성의 위자로서 남았다.
그리고 계속하여, 지금도 남아있다.
20세기의 오늘에 이르러서도,
예레미야의 말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든 백성의 위자이며,
힘, 지도이다.
풀은 마르고 그 꽃은 떨어진다.
하지만 주의 말씀은 한 없이 영존하는 것이다. (베드로전서1:24-25)
*내촌감삼의 (1906년 4, 5월 ‘성서지연구’)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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