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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왕 요시야의 다스린지 십삼 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고

거듭난 삶 2022. 8. 22.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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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명받는 예레미야

 

성 경: [1:1-11] 베냐민 땅 아나돗의 제사장 중 힐기야의 아들 예레미야의 말이라

2) 아몬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야의 다스린지 십삼 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고

3) 요시야의 아들 유다 왕 여호야김 시대부터 요시야의 아들 유다 왕 시드기야의 제십일년 말까지 임하니라 이 해 오 월에 예루살렘이 사로잡히니라

4)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5)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6)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7)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8) 너는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고

9) 여호와께서 그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10) 보라 내가 오늘날 너를 열방 만국 위에 세우고 너를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며 건설하며 심게 하였느니라

11)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대답하되 내가 살구나무 가지를 보나이다.

 

 

 

[1:1] 베냐민 땅 아나돗의 제사장 중 힐기야의 아들 예레미야의 말이라 -

 

'아나돗'은 예레미야의 고향으로서

예루살렘 북동쪽 약 4마일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으며,

오늘날은 '아나타'란 지명으로 불려지고 있다.

 

이곳은 베냐민 지파에 소속되어 있었으나,

기업이 없는 레위 지파 아론 자손 제사장에게 할당되었다.

 

(21:13-19 이와 같이 그들이 제사장 아론의 자손에게 준 것은 살인자를 위한 도피 도시 헤브론과 그것의 주변 지역이요, 또 립나와 그것의 주변 지역이며

14) 얏딜과 그것의 주변 지역과 에스드모아와 그것의 주변 지역과

15) 홀론과 그것의 주변 지역과 드빌과 그것의 주변 지역과

16) 아인과 그것의 주변 지역과 윳다와 그것의 주변 지역과 벧세메스와 그것의 주변 지역이니 그 두 지파에서 아홉 도시를 주었고

17) 또 베냐민 지파에서는 기브온과 그것의 주변 지역과 게바와 그것의 주변 지역과

18) 아나돗과 그것의 주변 지역과 알몬과 그것의 주변 지역으로 네 도시니

19)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이 얻은 도시는 모두 열세 도시요, 또 그것들의 주변 지역이었더라).

 

한편 제사장 엘리 가문의 마지막 대제사장이었던

아비아달은 다윗을 이을 후계자로

아도니야를 왕으로 옹립하려는 음모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솔로몬에 의해 이곳 아나돗으로 추방된 바 있다.

 

(왕상 2:26 왕이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너는 아나돗으로, 네 밭으로 가라. 너는 마땅히 죽어야 하느니라. 그러나 네가 내 아버지 다윗 앞에서 주 하나님의 궤를 메었고 또 내 아버지가 당한 모든 고난 중에서 너도 고난을 당하였은즉 내가 이번에 너를 죽이지 아니하노라, 하고).

 

한편 에레미야는 제사장 사역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아나돗의 제사장'이란 말은

그의 부친 힐기야를 수식하는 말인 것으로 보이며,

만약 예레미야가 제사장이었다면 그의 메시지와 예언에는

어느 정도 그의 제사장 직분의 배경이 반영되었을 것이나 그렇지 않다(Nicholson).

 

 

 

[1:2] 아몬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야의 다스린지 십삼 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고

 

요시야의 다스린지 삽삼 년에 - 이는 B.C.627년을 뜻하며

예레미야가 선지자로 소명을 받은 때를 가리킨다.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고 - 이는 예레미야의 예언이

신적 기원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1:3] 요시야의 아들 유다 왕 여호야김 시대부터 요시야의 아들 유다 왕 시드기야의 제십일년 말까지 임하니라 이 해 오 월에 예루살렘이 사로잡히니라

 

시드기야의 제 십 일 년 말까지 -

 

이는 예루살렘 함락 때인 B.C. 586년까지를 말한다.

그러나 40-44장에 지적되고 있는 바와 같이

예루살렘 함락 이후 몇 년 동안에도 예레미야가 사역 활동을 계속했다는 점에서,

이는 본서의 표제어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구절로 이해된다.

 

 

 

[1:4]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 '말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다바르'

말뿐만 아니라 '행위'도 포함하는 말이다.

 

예레미야는 실제로 설교를 통해서 뿐만 아니라

상징적 행위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였다.

 

*참조 : (13, 18, 19;

 

51:59-64 유다 왕 시드기야의 통치 제사년에 마아세야의 손자요, 네리야의 아들인 스라야가 그 왕과 함께 바빌론으로 갈 때에 대언자 예레미야가 그에게 명령한 말이라. 이 스라야는 평온한 통치자더라.

60) 이와 같이 예레미야가 바빌론에게 닥칠 모든 재앙 곧 바빌론을 향하여 기록된 이 모든 말씀을 책 한 권에 기록하고

61) 스라야에게 말하기를, 네가 바빌론에 이르거든 살펴서 이 모든 말씀을 읽고

62) 그때에 이르되, 오 주여, 주께서 이곳을 끊으시려고 이곳을 대적하여 말씀하시기를 사람이나 짐승이나 아무것도 그 안에 남지 아니하고 그곳이 영원토록 황폐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라.

63) 또 너는 이 책 읽기를 마친 뒤에 그 책에 돌을 묶어 유프라테스 한가운데로 그것을 던지며

64) 말하기를, 바빌론이 이같이 가라앉고 내가 그녀에게 내릴 재앙으로부터 벗어나 일어나지 못하리라. 그들이 지치리라, 하라, 하니라. 예레미야의 말들이 여기까지라).

 

 

 

[1:5]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

 

이는 예레미야가 이스라엘에게 보내어질

하나님의 사자로 선택받은 것이 결코 우연하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 속에 포함되어 있었음을 나타낸다.

 

(8:29-30 그분께서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예정하사 자신의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게 하셨나니 이것은 그분이 많은 형제들 가운데서 처음 난 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뿐만 아니라 그분께서는 예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를 구별하였고 - '구별하였고'의 원어 '카다쉬'

특별한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다른 것들과 구분해서 따로 두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인간, 장소, 시간 등이 하나님을 위해 따로 구별되면

오직 하나님만을 위해서 사용되어야 하며,

하나님의 뜻과 반대로 마음대로 그것을 처분하는 것은 참람한 행위이다.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

 

이는 예레미야의 특별 임무를 암시하는 내용으로서,

그의 예언은 유다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우주적 성격을 띠고 있음을 뜻한다.

 

실제로 본서의 많은 부분이 열방을 상대로 한 예언이다(46-51).

 

 

 

[1:6]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나는 아이라 - '아이'(나아르)

문자 그대로 어린아이를 가리킨다기보다는

경험이 없고 무지한 젊은이라는 정도의 의미로 이해된다.

 

바벨론, 애굽 등과 같은 대제국들을 상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다는 것은

예레미야에게 대단히 두렵고 떨리는 임무였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모압이나 에돔, 다메섹, 블레셋, 암몬과 같은 약소국이라 하더라도

이스라엘과 오랫동안 투쟁해 온 긴 역사를 가진 나라들이었기 때문에,

예레미야에게는 역시 힘겨운 상대로 느껴졌을 것이다.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 그의 이런 주저하는 행동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모세의 반응과 유사하다.

 

모세 역시 처음에는 자신의 무능을 고백하며 고사(苦辭)하는반 응을 보였던 것이다.

 

(3:11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파라오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가리이까? 하매;

 

4:1 모세가 응답하여 이르되, 그러나, 보소서,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리이다. 그들이 말하기를, 주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하매).

 

 

 

[1:7]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

 

사람이 할 수 없는 그 시점이

바로 하나님의 능력의 시작임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예레미야에게는 청중을 선택할 권한이 없었다.

그는 여호와께서 보내는 곳이면

어디나 가서, 누구를 막론하고 전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단순히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전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며,

어떤 상황에서도 여호와의 말씀을 변형시키지 말고 그대로 전해야 하는 것이다.

 

 

 

[1:8] 너는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고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

 

여호와께서 함께하시며 보호하시는 이상

두려워 할게 없다는 뜻이다.

 

예레미야는 출애굽 이야기를 알고 있었을 것이며,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들을 어떻게 애굽에서 구해내셨는지

또한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본문에서 '구원하리라'에 해당하는 원어는

'나찰' 동사의 히필형 부정법인데,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셨다는 말도 이 동사로 기록되었다.

 

(18:8 모세가 주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파라오와 이집트 사람들에게 행하신 모든 일과 길에서 자기들에게 임한 모든 고난과 또 주께서 자기들을 건져 내신 일을 자기 장인에게 고하매).

 

 

 

[1:9] 여호와께서 그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 이 말씀은 신 18:18의 내용을 상기시킨다.

 

(18:18 내가 그들의 형제들 가운데서 너와 같은 대언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들을 그의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할 모든 것을 그가 그들에게 말하리라)

 

이것을 통해 예레미야는 자신이

모세의 후계자로 약속된 바 있는 선지자임을 자각했을 것이며,

더욱 확고한 믿음을 얻게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1:10] 보라 내가 오늘날 너를 열방 만국 위에 세우고 너를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며 건설하며 심게 하였느니라

 

여기서는 예레미야의 특수 임무가 언급되고 있다.

그가 전달할 선포의 내용은 크게

파멸과 회복으로 나누어지고 있다.

 

그는 사역 초기에는 주로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할 심판을

강도 높게 설교하였고, 후기에 가서는 회복에 대해 말하였다.

 

또한 본절은 46-51장에 언급된

이방 민족에게 고하는 심판의 예언을 반영하고 있다.

 

한편 본절에는 모두 여섯 개의 동사가 사용되고 있는데

네 개는 파괴적인 측면을,

두 개는 건설적인 측면을 가진 동사이다.

 

 

 

[1:11]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대답하되 내가 살구나무 가지를 보나이다.

 

네가 무엇을 보느냐 - 본절과 13절에는 두 가지 환상이 기록되고 있는데,

이 사건에 대한 시기가 밝혀져 있지 않지만 소명을 받은 직후인 것 같다.

 

 

내가 살구나무 가지를 보나이다 - 여기서 '살구나무'에 해당하는 원어는

'솨케드'로서 아몬드나 밤, 호두 등의 견과(堅果)나무를 가리킨다.

 

야곱이 애굽 총리가 된 요셉에게 선물로 보내는 품목 중에

이것이 포함되어 있는데 '파단행'으로 번역되었다.

 

(43:11 그들의 아비 이스라엘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러할진대 이렇게 하라 너희는 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그릇에 담아가지고 내려가서 그 사람에게 예물을 삼을지니 곧 유향 조금과 꿀 조금과 향품과 몰약과 비자와 파단행이니라).

 

그리고 '가지'에 해당하는 '마켈'

'막대기', '지팡이'란 뜻으로 주로 쓰인다.

 

이 아몬드나무는 봄이면 가장 먼저 싹을 내고 봉오리를 맺는데,

오늘날에도 아나돗 지방에는

초봄에 수많은 아몬드나무가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