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의 성소
나의 특애의 예언자는 예레미야이다.
나는 이사야를 존숭하고, 에스겔을 경외하며, 다니엘을 탄상한다.
그러나 예레미야에 이르러서는 나는 그를 친애한다.
예언자라고 하면,
매우 엄격하여 가까이 할 수 없는 것처럼 생각되나,
그러나 예레미야에 이르러서는 그에 대해
조금도 그러한 감각이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나의 친한 친구로서 그에게 가까이 할 수가 있다.
그는 내게 있어서는 예언자라기보다는,
보다 더 시인이다.
하나님의 종이라기보다는 보다 더 인류의 벗이다.
구약 성서 인물 중에서 내가 가장 친근히 한 이는,
이 ‘눈물의 예언자’이다.
그는 제사장(2권 275p 역주 참조)의 아들이었다.
(1:1 베냐민 땅 아나돗의 제사장들 가운데 하나인 힐기야의 아들 예레미야의 말들이라).
그러나 그는 자신이 제사장이 되지 않았다.
그는 죽을 때까지 순연한 평신자였다.
그리고 수없이 제사장(지금의 소위 종교가)을 적으로 가졌다.
그는 어디까지나 백성의 예언자였다.
즉 하나님과 백성과의 사이에 서서,
제사장을 거치지 않고서
곧 하나님의 뜻을 백성에게 전하는 자였다.
예언자 중,
그처럼 매우 정답게 하나님께 가까이 한 이는 없었다.
그는 하나님께 한을 아뢰었다.
몇 번이고, 억지로 그 은혜를 구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몇 번이고 하나님의 존엄을 범했다.
백성의 예언자였던 그는,
스스로 시골(촌락)의 예언자였다.
그는 예루살렘을 상거(거리)하는 3마일,
베냐민의 땅 아나돗에서 태어났다(1:1).
그리고 그는 종생,
거처를 이곳으로 정하려 했다.
(33:7이하 또 내가 유다의 포로들과 이스라엘의 포로들을 돌아오게 하여 그들을 처음과 같이 세우고).
이사야가 도시의 예언자인 것과,
다니엘이 조정의 예언자인 것에 대하여,
예레미야는 어디까지나 시골(산간벽지)의 예언자였다.
그는 특히 지방의 마을마을 위해 변호했다.
그는 한정과 고독을 사랑했다.
도시의 분잡은, 그의 아주 싫어하는 바였다.
그는 또 정의 사람이었다.
그의 이성은 종종 정의 지배하는 바로 되었다.
그는 노했다. 울었다.
그는 이사야 같은, 원만한 사상가는 아니었다.
다니엘 같은 정치가는 아니었다.
또 에스겔 같은 의지의 사람은 아니었다.
그에게 부인의 정성이 있었다.
그와 같은 강한 사람은 없었으나,
또 그것과 동시에 그 같이 약한 사람은 없었다.
그에게 세미한 데가 있었다.
그의 사랑은 부인(여성)의 그것에 흡사했다.
깊고도 섬세했다.
그렇듯 다정한 기사이어서,
나는 수없이 거듭 예레미야서를 읽었다.
나의 낡아진 성서는,
그 예레미야서에 있어서,
붉은 자로서 기입된 감상으로 채워져 있다.
나는 예레미야의 실험(체험)은,
모두 나의 실험(체험) 같이 느낀다.
이제부터 순서를 따라,
내가 이 책(글)에서 감득한 것을 조금 독자 앞에 말하고자 한다.
예레미야서 제 1장은,
예언자의 예언적 취임에 관한 기사이다.
성직취임이라고 하면,
아주 장엄한 의식이라도 집행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찌나,
그러나 그것은 결코 그렇지는 않았다.
평민적 예언자의 취임식이라는 것은 아주 평민적이고.
아주 단순했다.
그의 머리에 기름 붓는 제사장도 없었다.
그를 위해 축복을 비는 레위족도 없었다.
또 그를 위해 증인으로 서는 동지 친구 같은 것도 없었다.
그는 홀로 하나님 앞에 서고,
하나님께서 큰 예언자의 직을 받았다.
여호와의 말씀은 요시야왕의 치세 13년에 처음으로 그에게 임했다는 것이고 보면,
그가 처음으로 대임을 자각한 것은,
그가 19세 때였으리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데 가장 좋은 때(시기)는 청년시대이다.
종교는 노년의 일이라는 등등은,
오인이 오인의 국인의 입에서 종종 귀로하는 일인데,
나는 여기서 한 청년이 스스로 자진하여,
하나님의 예언자임을 떠 맡은 자 있음을 알고서,
크게 나의 청년시대의 확신을 강고히 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예레미야서 1:4-5 한글 역)
여호와의 말씀은 어떻게 하여 그에게 임했을까?
제사장의 입을 통하여서 일까?
아니, 혹은 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로써 할 것인가?
모름지기 그렇지는 않으리라.
이것은 아마도 청년인 예레미야가,
그의 성육지인 아나돗 부근의 교외를 홀로 걷던 때에 있어서,
혹은 오래된 올리브나무 아래서 혼자 조용히 묵도 하는 무렵,
그의 심금에 수없이 닿은(느껴진),
가는 희미한 소리였으리라.
그는 몇 번이고 이를 지워버리려 했으리라.
그러나 그 소리는 그를 떠나지 않았으리라.
그는 결국 그가 예언자로서 하나님께 예정된 자임을 믿지 않을 수 없기에 이르렀으리라.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고.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또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주만물이 조물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에 의해,
만국의 예언자로서 세워졌다고.
만약 그리하다고 하면,
그는 이직을 사퇴(거부)하려 하여,
사퇴할 수가 없다.
또 그의 아버지도,
그의 어머니도,
그의 형제도 자매도,
친구도, 그가 예언자 됨을 막을 수가 없다.
사랑스럽게 여겨야 할 사람은,
하나님께 그 직을 정함을 입은 자이다.
그는 선천적인 하나님의 포로이다.
사업의 선택 같은 것은,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싫든 좋든 간에 그를 위해
정해져 있는 직에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예정의 천직이 명시된 때,
하나님의 자녀의 마음의 상태는,
결코 감사뿐은 아니다.
예레미야에게 있어서도, 아마도 그리했으리라.
그도 그가 품은 많은 하찮은 희욕을 방기함의 고통을 느꼈으리라.
그도 또한 그의 아버지의 직을 계승하여,
제사장이 되기 바라는 아버지의 의지를 거스림의 고통을 느꼈으리라.
그러나 부득한 것이다.
그는 어머니의 태내에 조성되기 이전부터,
하나님께 정해진 예언자이다.
예언자 안 될 것인가,
그는 무나 다름없는 자이다.
예언자 됨은 괴로운 일이다.
그러나 부득하다.
그 직에 나아가거나,
아니 하거나는 그에게 있어서는 사활문제이다.
여호와의 성소의 음성에 접하여 청년인 예레미야는
여호와께 대답하여 말했다.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니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6:1)고.
그는 그의 연령부족의 이유로(구실로써) 예언의 대임을 사퇴하려고 했다.
그는 1로는, 아직 자기를 믿지 못했으리라.
2로는, 사회가 아직 청년(젊은이;어린 사람)을 깔보고,
귀를 그의 말에 기울이지 않을 것을 두려워했으리라.
혹은 그의 친척 친구 중에,
그에게 너무 조기임을 말하고,
수년 더 수양을 권한 자도 있었으리라.
어쨌든, 그는 소심의 청년이었다.
그는 생래의 격투가는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겁쟁이였다.
그는 공적생애를 싫어했다.
만약 그의 뜻 그대로를 말하게 한다면,
그는 유다의 산지에 올리브를 심고,
그 골짜기에 보리를 뿌리고,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면서,
이삭에 여호와의 은혜가 맺기를 보며,
그를 찬미하기를 원했으리라.
그의 이상은 많은 시인의 그것과 한가지로,
‘초가지붕 아래서 소처와 함께 거하는 일’이었으리라.
그러나 그에 대한 여호와의 뜻은 이것과는 정반대였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 지니라 너는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1:7-8)
*내촌감삼의 예레미야 주해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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