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넷째가 그 대접을 해에 쏟으매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우니

거듭난 삶 2023. 7. 2.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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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대접 재앙 2

 

성 경: [16:8-12] 넷째가 그 대접을 해에 쏟으매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우니

9) 사람들이 크게 태움에 태워진지라 이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하며 또 회개하여 영광을 주께 돌리지 아니하더라

10) 또 다섯째가 그 대접을 짐승의 보좌에 쏟으니 그 나라가 곧 어두워지며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고

11) 아픈 것과 종기로 인하여 하늘의 하나님을 훼방하고 저희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더라

12) 또 여섯째가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으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더라.

 

 

[16:8] 넷째가 그 대접을 해에 쏟으매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우니 -

 

넷째 나팔 재앙에서는 해가 빛을 잃고 천계의 삼분의 일이 어두워진 반면,

 

(8:12 넷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해의 삼분의 일과 달의 삼분의 일과 별들의 삼분의 일이 타격을 입어 그것들의 삼분의 일이 어두워지고 낮이 자기의 삼분의 일 동안 빛을 내지 아니하며 밤도 그러하더라),

 

넷째 대접 재앙은 해가 오히려 뜨거워져서 사람들을 불로 태운다.

이것은 구속받은 성도들이 해가 어떤 뜨거운 기운에

상함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과 대조를 이룬다.

 

(7:16 그들이 다시는 굶주리지 아니하고 다시는 목마르지 아니하며 해나 어떤 열기도 그들 위에 내리쬐지 아니하리니).

 

''은 성경에서 흔히 심판과 깊은 관련을 갖는다.

 

(고전 3:13 각 사람의 일이 드러나리라. 그 날이 그것을 밝히 드러내리니 이는 그것이 불에 의해 드러나고 그 불이 각 사람의 일이 어떤 종류인지 시험할 것이기 때문이라;

 

벧후 3:7 지금 있는 하늘들과 땅은 주께서 같은 말씀으로 보관하사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에 불사르기 위해 예비해 두셨느니라).

 

본절에서 해로 하여금 불을 내어 태우는 심판을 할 수 있도록 권세를 허락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자연을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지배하시고 주관하시는 분이심을

시사한다(Ladd, Mounce).

 

 

 

[16:9] 사람들이 크게 태움에 태워진지라 이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하며 또 회개하여 영광을 주께 돌리지 아니하더라 -

 

본절은 해가 뜨거워서 태움을 당하는 사람들의 반응이다.

그 반응은 회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고 영광을 돌리지 않는

완악하고 교만한 태도 뿐이다.

 

이 사실은 혹자의 지적대로 그들이 자신들이 경배하는 짐승의 본성을

그대로 닮았음을 시사한다(Caird).

이들은 지금이라도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나고 구원을 얻기 위해서

자신들의 죄악된 행위를 회개하고 창조주를 받아들여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계속해서 하나님을 모독, 훼방한다.

 

(52:5 그러므로 이제 주가 말하노라. 내 백성이 아무것도 받지 아니하고 잡혀갔으니 여기서 내게 남은 것이 무엇이냐? 주가 말하노라. 내 백성을 다스리는 자들이 내 백성으로 하여금 울부짖게 하며 날마다 계속해서 내 이름을 모독하는도다;

 

1:25 그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고 창조주보다 창조물을 더 경배하고 섬겼느니라. 그분은 영원히 찬송 받으실 분이시로다. 아멘;

 

2:24 이것은 기록된바,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말미암아 이방인들 가운데서 모독을 받는도다, 함과 같으니라).

 

'이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하며'

짐승의 표를 받고 경배하는 자들이

하나님에 대해 알고 있으면서도 고의적으로 회개치 않고

오히려 거스려 훼방함을 암시한다.

 

하나님을 향해 고의적으로 대적한 짐승을 추종하는 무리들의 최후는

가히 상상할 수 없는 비참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14:10-11 그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즙 곧 그분의 격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즙을 마시리라. 그가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통을 받으리니

11) 그들의 고통의 연기가 영원무궁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형상에게 경배하는 자들과 그의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이나 낮이나 안식을 얻지 못하리라;

 

1:21-23 그들이 하나님을 알되 그분을 하나님으로 영화롭게 하지도 아니하고 감사하지도 아니하며 오히려 자기들의 상상 속에서 허망해지고 또 그들의 어리석은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그들은 스스로 지혜 있다고 선언하나 어리석은 자가 되어

23) 썩지 아니할 하나님의 영광을 썩을 사람이나 새나 네 발 달린 짐승이나 기어 다니는 것들과 같은 형상으로 바꾸었느니라).

 

 

 

[16:10] 또 다섯째가 그 대접을 짐승의 보좌에 쏟으니 그 나라가 곧 어두워지며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고 -

 

여기서 '짐승의 보좌'는 사도 요한 당시 세상 권력이 중심이 되어

우상 숭배를 강요하였던 로마 제국을 언급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Plummer).

 

그러나 그 보좌는 단순히 로마제국을 의미하지 않는다. '보좌'는 시대를 초월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고 세상 권세를 숭배케 한 모든 곳을 가리킨다(Johnson).

 

왜냐하면 본절의 '보좌'에 해당하는 헬라어 '드로논'

버가모 교회의 '사단의 위'(호 드로노스 투사타나)에도 나타나기 때문이다.

 

(2:13 내가 네 행위를 알고 또 네가 거하는 곳을 아노니 즉 사탄의 자리가 있는 곳이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붙잡고 안디바가 나의 신실한 순교자가 되어 너희 가운데서 곧 사탄이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한 그때에도 나의 믿음을 부인하지 아니하였도다).

 

한편 '그 나라가 곧 어두워지며'

애굽이 당했던 아홉번째 재앙을 상기시켜 준다.

 

(10:21-29 주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하늘을 향하여 네 손을 내밀어 이집트 땅 위에 어둠이 있게 하되 감촉으로 느낄 수 있는 어둠이 있게 하라, 하시니

22)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자기 손을 내밀매 캄캄한 어둠이 사흘 동안 온 이집트 땅에 있었으므로

23) 그들이 사흘 동안 서로를 보지 못하며 아무도 자기 처소에서 일어나지 못하되 온 이스라엘 자손이 거하는 곳에는 빛이 있었더라.

24) 파라오가 모세를 불러 이르되, 너희는 가서 주를 섬기되 오직 너희의 양 떼와 소 떼는 두고 너희의 어린것들은 또한 너희와 함께 갈지니라, 하니

25) 모세가 이르되, 우리가 주 우리 하나님께 희생물을 드리도록 왕이 반드시 우리에게 희생물과 번제 헌물도 주셔야 할 터인즉

26) 우리의 가축도 우리와 함께 가고 발굽 하나도 뒤에 남겨 둘 수 없나이다. 우리는 반드시 그 중에서 취해 주 우리 하나님을 섬겨야 하나이다. 우리가 거기에 이르기 전에는 우리가 반드시 어떤 것으로 주를 섬겨야 할지 알지 못하나이다, 하였더라.

27) 그러나 주께서 파라오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시니 그가 그들을 가게 하지 아니하고

28) 모세에게 이르되, 너는 나를 떠나고 스스로 조심하여 다시는 내 얼굴을 보지 말라. 네가 내 얼굴을 보는 날에 죽으리라, 하매

29) 모세가 이르되, 잘 말씀하셨나이다. 내가 다시는 왕의 얼굴을 보지 아니하리이다, 하니라).

 

이 어둠에 대한 견해는 네 가지이다.

 

(1) 9:2을 근거로 하여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온 연기로 인해

어두워졌을 것이라고 추측한다(Charles).

 

(9:2 그가 바닥없는 구덩이를 여니 그 구덩이에서 큰 용광로의 연기 같은 연기가 올라오매 해와 대기가 그 구덩이의 연기로 인해 어두워지며)

 

(2) 국가적인 내전(內戰)을 나타낸다고 주장한다(Kiddle).

(3) 교회를 핍박하는 로마 황제의 파멸을 나타내는 것으로 본다(Caird).

(4) 어두움이 가시적이나 물질적인 것이 아닌 영적이며

도덕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Johnson).

 

네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21:25 거기에는 밤이 없을 터이므로 낮에 그 도시의 문들을 결코 닫지 아니하리라;

 

22:5 거기에는 밤이 없겠고 등잔불이나 햇빛이 그들에게 필요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빛을 주시기 때문이라. 그들이 영원무궁토록 통치하리로다;

 

8:12 그때에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 속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하시니라;

 

12:35-36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은 빛이 너희와 함께 있으니 너희에게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둠이 너희 위에 임하지 않게 하라. 어둠 가운데 다니는 자는 자기가 가는 곳을 알지 못하느니라.

36) 너희에게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빛의 자녀들이 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이것들을 말씀하시고 떠나서 그들로부터 자신을 숨기시니라,

 

46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이것은 누구든지 나를 믿는 자는 어둠에 거하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로다;

 

요일 1;5-7 그런즉 우리가 그분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밝히 드러내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요 그분 안에는 전혀 어둠이 없다는 것이라.

6) 만일 우리가 그분과 교제한다고 말하며 어둠 가운데 걸으면 우리가 거짓말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하느니라.

7) 그러나 그분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만일 우리가 빛 가운데 걸으면 우리가 서로 교제하고 또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모든 죄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2:8-10 또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명령을 쓰노니 그것은 그분 안에서와 너희 안에서 참된 것이니라. 이는 어둠이 지나가고 이제 참 빛이 비치기 때문이니라.

9) 자기가 빛 가운데 있다고 말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도 어둠 가운데 있느니라.

10) 자기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그 속에 걸려 넘어지게 할 것이 전혀 없으나).

 

이러한 어두움 속에서 짐승의 추종자들은 자신의 혀를 깨물며 고통을 참아야할 만큼

혹심한 고난을 겪게 된다.

 

 

 

[16:11] 아픈 것과 종기로 인하여 하늘의 하나님을 훼방하고 저희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더라 -

 

본절은 다섯째 대접 재앙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나타낸다.

'하늘의 하나님'이란 칭호는 단 2:44에 나타나는 것으로

 

(2:44 이 왕들의 시대에 하늘의 하나님께서 한 왕국을 세우실 터인데 그것은 결코 멸망하지 아니하리이다. 그 왕국은 다른 백성에게 남겨지지 아니하며 이 모든 왕국들을 산산조각 내어 소멸시키고 영원히 서리이다)

 

하나님의 권위를 강조하는 표현이다(Morris).

 

다니엘서에서 하나님은 지상의 모든 나라를 멸하시고

영원히 망하지 않는 새로운 한 나라를 세우시는 분으로 묘사되었다.

 

다섯째 대접 재앙을 받은 자들은 온세상의 주권을 소유하신 하나님을 향해

회개하기는커녕 도리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고 교만하게 행한다.

 

 

 

[16:12] 또 여섯째가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으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더라 -

 

여섯번째 재앙은 유브라데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어

온 천하의 임금들이 하나님과 대적하여 싸우려고 아마겟돈이라는 곳에 모이는 것이다.

 

(14절그들은 마귀들의 영들로서 기적들을 행하며 땅과 온 세상의 왕들에게 나아가 하나님 곧 전능자의 저 큰 날에 있을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이 여섯째 대접 재앙과 여섯째 나팔의 재앙은

 

(9:14 나팔을 가진 여섯째 천사에게 말하기를, 큰 강 유프라테스에 묶어 둔 네 천사를 풀어 주라, 하더라)

 

유브라데 강을 중심으로 벌어질 전쟁에 대해서 언급한다는 점에서 서로 유사하다.

 

그러나 두 재앙 사이에 차이를 보이는 면이 있는데

그것은 여섯째 나팔 재앙에서는 유브라데에 결박되어 있던 네 명의 천사가

사람 삼분의 일을 죽이기 위하여 놓여지는 반면

 

(9:14 나팔을 가진 여섯째 천사에게 말하기를, 큰 강 유프라테스에 묶어 둔 네 천사를 풀어 주라, 하더라)

 

여기에서는 동방의 왕들, 즉 지상의 통치자들이 유브라데 강을 건너

하나님을 대적하는 전쟁을 하기 위해 모여든다는 점이다.

 

동방의 왕들이 유브라데 강을 건너온다는 말은 사도 요한 당시 크게 유행하던

소문, 즉 죽은 네로 황제가 다시 살아 파르티아 군대를 거느리고 유브라데 강을 건너

로마로 침공해 올 것이라는 네로 재생설을 그 배경으로하고 있다(Morris).

 

유브라데 강 동쪽에는 우수한 유목 민족인 파르티아인(Parthinans)

거주하고 있었는데 기원 1세기 어간에 이들이

로마를 침공할 것이라는 우려가 항상 있었다.

이러한 우려는 네로의 재생 신화에 의해 더욱 증폭되었는데, 즉 자살했던 네로가

다시 살아나 파르티아 유목민들의 수장이 되어 로마 제국을 다시 쳐들어올 것이라는

소문이 그 당시에 널리퍼져 있었다(Sibylline Oracles 4:115-139).

 

그러나 본절에서 요한이 말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을 뿐 실제적인 그 당시 정치적 상황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Johnson, Minear).

 

이것은 오히려 세상의 종말론적인 상태를 묘사하는 것으로

동방의 왕들, 즉 악의 세력들이

하나님과 더불어 마지막 최후의 결전에 임할 태세가 되어 있음을 나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