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제구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거듭난 삶 2023. 10. 16.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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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은뱅이를 고쳐주다

 

성 경: [3:1-5] 제구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2)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3)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4) 베드로가 요한으로 더불어 주목하여 가로되 우리를 보라 하니

5) 그가 저희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3:1] 제구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제 구시 기도 시간에 - 3시를 가리킨다. 6:11; 9: 21에 의하면 경건한

유대인들은 하루에 제 삼 시(오전 9), 제 육시(12), 그리고 본문에 나타난

제 구 시 (오후3)를 정해놓고 세 번의 기도를 하였다.

 

(6:11 그 무리들이 모여서 다니엘이 자기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간구하는 것을 발견하고;

 

9: 21 곧 내가 말하여 기도할 때에 이전 이상 중에 본 그 사람 가브리엘이 빨리 날아서 저녁 제사를 드릴 때 즈음에 내게 이르더니)

 

물론 이것은 구속력있는 율법 규례가 아니라 하나의 종교적 관습이었다.

그리고 유대인들의 하루 구분법에 의하면 제 구 시는 해가 기울기 시작하여

저녁시간이 되어가는 오후 예배 시간을 의미한다.

 

(29:39 한 어린 양은 아침에 드리고 한 어린 양은 저녁 때에 드릴지며).

 

요세푸스(Josephus)에 의하면 유대인들의 공식적 기도시간은

 

(1) 이른 아침.

(2) 제 구 시, 즉 오후 예배 시간인 이 때공중 기도를 드리는 순서가 있어서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고 한다.

(3) 해질 황혼 무렵에 또 한 번의 기도시간이 있었다.

 

오늘날도 기도시간을 정해놓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은 인간 나약함을

극복하기 위해 권장할 만한 방법이라 하겠다.

 

 

베드로와 요한 그들 두 제자들은

 

(1) 함께 어업에 종사한 동업자였다.

 

(4:18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21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이 그 부친 세베대와 한가지로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5:10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일러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2) 침례요한의 때부터 메시야를 고대하던 자들이었다.

 

(1:37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거늘, 42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가라사대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3) 개심 후 함께 사도직을 받은 동료 였다.

 

(10:2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4) 특별히 예수께 인정받고 사랑을 입은 자들이었다.

 

(26:37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8:51 집에 이르러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와 및 아이의 부모 외에는 함께 들어가기를 허하지 아니하시니라;

 

9:28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시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5) 예수께서 수난 받으실 때에 행동을 같이하던 친밀한 친구였다.

 

(22:8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가라사대 가서 우리를 위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여 우리로 먹게 하라;

 

18:16 베드로는 문 밖에 섰는지라 대제사장과 아는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문지키는 여자에게 말하여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왔더니)

 

(6)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증거한 동역자였다.

 

(8:14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성질이 급하고 정열적인 베드로와 조용하고 차분한 요한은 성격적으로 많은

차이가 있었지만 이 두사람은 모든 면에서 함께 행동하였다.

 

(22:8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가라사대 가서 우리를 위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여 우리로 먹게 하라;

 

13:24-25 시몬 베드로가 머릿짓을 하여 말하되 말씀하신 자가 누구인지 말하라 한대

25) 그가 예수의 가슴에 그대로 의지하여 말하되 주여 누구오니이까;

 

18:16-17 베드로는 문 밖에 섰는지라 대제사장과 아는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문지키는 여자에게 말하여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왔더니

17) 문 지키는 여종이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하니 그가 말하되 나는 아니라 하고;

 

20:2 시몬 베드로와 예수의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이 주를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

 

따라서 이들은 12제자의 선봉장(先鋒將)으로 가장 중심 역할을 했으며 지도자로

부각된 인물들이었다.

 

성전에 올라갈새 - '그들이 올라가고 있었다'라는 뜻이다. 이것은 현재 진행중인

어떤 동작 및 과정을 아주 시각적으로 인상깊게 그리고 생생하게 묘사하는 장면이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유대인의 관습을 따라 기도 시간에 성전에 올라 갔을까?

 

여기서 칼빈(Calvin)은 말하기를

'유대인의 율법 의식을 따라 기도하기 위해 성전에 올라갔다기 보다는

그 시간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이므로 복음을 전파하기에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여서 올라갔다'는 표현으로 근본적으로 종교상의 경건한 측면에서

비롯되어 나온 말이다

 

(11:2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자들이 힐난하여;

 

18: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7:14 이미 명절의 중간이 되어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사 가르치시니).

 

 

아울러 사도들이 예수의 승천직후 예루살렘에 거주하고 있었다는 것은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24:49)고 하신

예수님의 명령과

 

또 그들의 사명이

 

'예루살렘에서 부터 시작되리라'(1:8)는 말씀과도 일치 되는 것이다.

 

 

 

[3:2]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 - 이를 문자적으로 직역하면

'그리고 그의 어머니 태에서 부터 앉은뱅이였던 사람 하나' 가 된다.

 

이것은 그가 중간에 사고로 다친 것이 아니고 태어날 때부터 40(4:22)가 되는

지금까지 하체가 마비된 고통을 지닌 것을 보여줌으로써 나을 희망이

전혀 없는 사람임을 시사한다.

 

(4:22 이 표적으로 병 나은 사람은 사십여 세나 되었더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 그는 일하여

생계를 유지할 수 없으므로 동냥을 하며 살아가야 했다. 더욱이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이므로 매번 다른 사람에 의해 운반되어져야 하는

불쌍하고 비참한 걸인(乞人)이었다.

 

한편 운반하는 사람들이 그를 구태여 성전 문 앞에 둔 이유는 무엇일까?

유대교에서는 남을 구제하는 일이 매우 큰 덕목으로 여겨졌다. 이 때문이

성전에 올라오는 사람들은 그 거지들에게 동전을 던져줌으로써

하나님의 상을 얻고자 하였다. 그래서 이것을 잘 아는 걸인들이

성전이나 전각 입구에 앉아 구걸하는 일이 많았다.

 

따라서 걸인들에게는 하나님께 예배하러 나아가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성전 문 앞이야말로 동냥을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장소였고 또한 유대인들은

남을 구제하여 하나님의 상을 얻기 위해 성전 문에 걸인이 있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던 것이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 미문(the Beautiful Gate) 이라는 이름은 외관상으로

장엄함과 화려함을 지녔기 때문에 붙여진 듯하다. 그런데 이 미문이

예루살렘 성전의 어느 문을 가리키는지는 학자들 간에 의견이 분분하다.

 

이방인의 뜰로 들어가는 성전 동편의 바깔 문인 슈산 문(Meyer, Alfird),

또는 이방인의 뜰에서 여인의 뜰로 통하는 니가노르 문(Knowling, Alexander)

양설이 주로 언급되고 있다.

 

두는 자라 - 매일 매일 반복되어 앉혀지는 습관적인 동작을 가리킨다.

 

 

 

[3:3]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구걸하거늘 - 구걸의 행위가 다 끝나지 않고 계속되는 가운데 손을 내밀고

무엇을 받으려는 그때의 정황을 잘 묘사해 주는 누가의 표현법이다.

그리고 또한 이것은 간절하고도 정중하게 한 푼 도와줄 것을 요청하는 표현이다.

 

 

 

[3:4] 베드로가 요한으로 더불어 주목하여 가로되 우리를 보라 하니

 

베드로가 요한으로 더불어 - 본문에 있는 그대로 요한은 베드로와 함께 행동을

취한 것이며 이 기적 행함에도 똑같이 주님의 종으로서 성령의 능력 따라

행한 것이다. 단지 여기서 베드로가 말한 것은 행동파적인 기질이 있어

그의 적극적인 성격을 반영한다.

 

지난날 12제자와 함께 있을 때도 베드로는 언제나 제자들의 대변자(代辯者)

역할을 서슴없이 하였었다.

 

(16:1316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14) 가로되 더러는 침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15)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누가 앞에 나서서 직접적으로 활동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며,

주님께서 크신 능력으로 당신의 종들을 통해 놀라운 이적을 베푸신 사실에

초점이 있을진대, 요한 역시 베드로와 똑같이 이 기적의 사건에

참여한 것이다(J. Calvin, Lenski).

 

동시에 행동파 베드로와 사색가 요한이 함께 보조를 맞추는 모습이야말로

참으로 아름다운 동역의 모습이다.

 

주목하여 가로되 - 원문상으로는 '주목(注目)하여'는 걸인이 마흔살이 되는

지금까지 성전 문 앞에서 구걸하였어도 여태껏 경험하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일이 전개됨을 보여 준다.

 

 

그렇다면 왜 주목하여 보았을까?

 

주님이 그들 두 제자들을 감동시켰을 때에 그들은 이 동냥하는 걸인에게

눈을 고정시킴으로 그 걸인이 베드로와 요한을 쳐다보게 유도한 것이었다.

 

우리를 보라 - 이는 병들거나 아픈 것이 없이 영원히 사는 천국 복음에 대해

전파하는 사도들에게 단지 한 푼의 돈을 동냥하는 걸인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하여 단호하고 권위있는 그러나 긍휼히 여기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명령하는 말이다.

 

따라서 이는 이제 앉은뱅이가 돈 몇 푼을 구하는 상태에서 떠나 하나님의 은혜를

소원(訴願)하도록 요구한 말이고 신기하고도 이례적(異例的)인 하늘의 축복을

소망하도록 촉구한 것이다.

 

 

 

[3:5] 그가 저희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바라보거늘 - 단순히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그의 주의를 사도들에게 집중하는

것을 생동감있게 묘사한 말이다.

 

몇 푼을 던져주고 가는 보통 사람들과는 달리 유별나게 '우리를 보라'고까지

말한 그들에게 이제 이 걸인은 '평상시보다도 더 많은,

뭔가 대단한 것을 얻는가 보다'라고 생각하여 주의를 집중하여 쳐다본 것이다

(Lens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