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거듭난 삶 2023. 10. 13.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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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강림과 역사(役事) 2

 

성 경: [2:42-47]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2:42]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 여기에서 '사도의 가르침'은 헬라어 본문에 따르면

문자적으로 '사도들의 가르침'으로 번역된다. 이것은 사도들이 주께서 허락하신

권위를 가지고 각기 주어진 바 임무대로 가르침에 전력했지만 그 교훈의

통일성(統一性)을 유지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들이 가르친 내용은 예수님의 말씀들(20:35)과 행하신 일들이었다.

 

(20:35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여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 여기에서 '교제'

'떡을 떼며 기도하기' 사이에 '그리고'란 접속사가 생략되었으므로 이는 떡을 떼며

기도하는 것이 교제와 동격인 것을 보여준다.

 

교제(코이노니아)에 있어서 희생적인 사랑의 정신으로 이웃에게 봉사하며 물질적으로

도와주는 것과 영혼의 교통 곧 기도하는 일은 필수적이라 하겠다.

 

또한 떡을 뗀다는 것은 성찬과 애찬을 동시에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20:7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저희에게 강론할 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고전 10:16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고전 11:23-25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24)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5)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그런데 46절에서 '떡을 떼는 것''음식을 먹는 것"이 서로 구분되어 언급되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 본 구절에서 떡을 떼는 것은 예수께서 제정하시고

제자들로 하여 기념하라고 명령하신 '성찬'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22:19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한편 '전혀 힘쓰니라"는 어떤 행동 방침에 전심전력을 다하여 지속적(持續的)으로

교제했음을 의미한다.

 

(1:14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6:4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

 

8:13 시몬도 믿고 침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

 

12:12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13:6 너희가 공세를 바치는 것도 이를 인함이라 저희가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4:2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그리고 이 말은 제자들이 '교제'를 매우 중요시했음을 암시한다.

 

 

 

[2: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 '사람마다"44절의 '믿는 사람'과 대비되는데 여기서는

예루살렘의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 대한 수사법상 과장된 표현이다.

 

본 구절의 직접적인 의미는 '모든 혼에게 두려움이 되고 있더라'로 공포가 아니라

존경심과 경외심에서 비롯된 두려움을 의미한다.

 

(4:41 저희가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고 하였더라;

 

벧전 1:17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 기사와 표적들은 그들이 사도라는 것을

확실히 증명해 보였다.

 

(고후 12:12 사도의 표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

 

2:3-5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4)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가지 능력과 및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의 나눠 주신 것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하셨느니라

5) 하나님이 우리의 말한 바 장차 오는 세상을 천사들에게는 복종케 하심이 아니라).

 

이러한 증명을 위해 사도들은 성령을 통하여 표적과 기사들을 많이 행했다.

 

(4:30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5:12 사도들의 손으로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6:8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8:6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일심으로 그의 말하는 것을 좇더라, 13 시몬도 믿고 침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

 

14:3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저희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거하시니;

 

15:12 온 무리가 가만히 있어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이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 고하는 것을 듣더니).

 

그것들은 예수께서 지상에 있을 때 행하신 기적들이 하나님 나라의

표적들이었던 것과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다.

 

 

 

[2: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 그들이 각자의 가정을 버리고 한 공동체 생활을

구성한 것은 아니었다. 여기에서 '있어'란 미완료 과거형으로 신자들이 늘 함께

모이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들은 이전에는 구약의 규례를 준수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모였지만 이제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때문에 함께 모이게 되었다.

 

이처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은 여러 가지 외적인 요인들을 극복하고 그들을

하나의 몸으로 결속(結束)시켰던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영적 백성으로 참된

교제를 했음을 의미한다.

 

구약시대에 '언약' 즉 언약을 맺는 당사자 곧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결속을 의미했다.

예수를 통한 신약의 공동체도 그 언약에 기초하여 예수 안에 있음으로써 하나님과

결속될 뿐 아니라 공동체간에 또한 공동체를 구성하는 각 개인간에 영적 결속이

이루어졌다.

 

한편 여기에 언급된 사람들이 오순절 성령이 강림했을 때 성령을 체험했던 사람들만을

가리키는지 성도의 수에 가입된 3,000명도 포함되는지 분명하지 않다.

아마 오순절 성령 강림을 체험한 사람외에 예루살렘에 거주하면서 예수를 믿게 된

자들이 교제에 참여하게 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외국에서 온 디아스포라 유대인들과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은

오순절 절기 행사가 끝난 후 자기들이 거주하던 나라로 돌아갔을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 예루살렘의 그리스도인들 상호간에 이루어진

영적인 일치는 서로 필요한 물건을 공유하는 생활의 형태로 표출되었다.

 

'물건을 서로 통용했다'는 것은 공산주의와 같은 방식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물건을 서로 통용하려고 했고, 모든 재산을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공동의 유익을 위하여 내어놓을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 공동체는 또한 토마스 모어(Thomas More)와 캄파넬라(Campanella)가 꿈꾸던

이상향과도 다르다.

이들에게는 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는 성령이 빠져 있으며 사랑도 강조되지 않는다.

이들의 이상향은 원시 시대의 공동체 생활과 유사한 반면,

 

성령에 의한 공동체는 철저히 사랑이라는 원리와 언약이라는 결속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유지된다는 점에서 뚜렷이 구별된다.

 

 

 

[2: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

 

여기서 묘사된 유무상통(有無相通)의 현상은 오직 성령의 하나 되심을 따라 이루어진

특이한 현상을 보여주는 일례라 하겠다.

 

이러한 현상은 성령께서 초자연적으로 역사하신 예루살렘 교회에 한정되었고

그외 다른 지역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다. 따라서 이것은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오순절에 임하신 성령의 역사가 얼마나 큰 일을 하도록 하셨는가 를 보여주는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특이한 현상이라 하겠다.

 

특히 예루살렘 공동체는 바울을 통해 이루어진 이방인 공동체와 이 점에서 구별된다.

이방인 공동체에서는 결코 유무상통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고 오히려 사유 재산이

인정되었다.

 

(고전 11:21-22 이는 먹을 때에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어떤 이는 시장하고 어떤 이는 취함이라

22) 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랴 너희를 칭찬하랴 이것으로 칭찬하지 않노라).

 

 

 

[2: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 성령을 받은 초기 예루살렘

성도들은 날마다 성전에 모이는 유대 전통과 관습에 따라 행동함으로 그들의 신앙을

표현하였다. 이는 아직까지 그리스도인들과 유대인들 사이에 아무 불화도

일어나지 않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초대 교회의 신자들이 자주 모이는 장소는 성전과 성전 바깥뜰 동편에 있는

솔로몬 행각이었다.

 

(3:11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칭하는 행각에 모이거늘;

 

5:12 사도들의 손으로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그들은 거기서 서로 마음을 같이하여 예배와 찬양을 드린 것이다. 그러면서 또한

성전에 오는 유대인들을 전도하기 위해서도 제자들은 성전에서 모임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비록 그들이 계속해서 모이기를 힘썼지만 전적으로 유대인들의 방식과는 달랐다.

유대인 들은 대부분 율법의 형식과 그에 따른 관습에 의해 모였으며 제사를 드렸으나

초대 교회 성도들은 성령에 의해 자발적(自發的)이요, 기쁨으로 충만한 상태에서 모였다.

 

(5:41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8:8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11:23 저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 권하니;

 

12:14 베드로의 음성인 줄 알고 기뻐하여 문을 미처 열지 못하고 달려 들어가 말하되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섰더라 하니;

 

13:48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52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14:17 그러나 자기를 증거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너희에게 하늘로서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너희 마음에 만족케 하셨느니라 하고;

 

15:3 저희가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녀가며 이방인들의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31 읽고 그 위로한 말을 기뻐하더라;

 

16:34 저희를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저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21:17 예루살렘에 이르니 형제들이 우리를 기꺼이 영접하거늘).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 여기서 누가는 성전에서의

모임과 집에서의 모임이 구분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떡을 떼는 것은 각 가정에서 음식을 먹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성찬과 애찬의 의미를 동시에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성도들은 넓은 공간이 있는 집을 택해서 하루씩 돌아가면서 모였음이 분명하다.

그들은 기쁨이 넘쳐 이집 저집을 돌아다니며 모임을 갖고 음식을 나누면서

교제를 나누었다.

 

 

 

[2: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하나님을 찬미하며 - 이미 성령의 선물을 통하여 최고의 축복을 발견했으므로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찬미는 자발적인 마음의 표현이었다.

 

'하나님을 찬미한다'는 표현은 누가가 즐겨 사용한 표현으로서 신약 성경에서

9번 언급된 중에 누가가 7번 사용했다.

 

(본절 ;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3:8-9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

9)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및 하나님을 찬미함을 보고;

 

2:13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20 목자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19:37 이미 감람 산에서 내려가는 편까지 가까이 오시매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의 본 바 모든 능한 일을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24:53 늘 성전에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15:11 또 모든 열방들아 주를 찬양하며 모든 백성들아 저를 찬송하라 하였으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 이와 같은 초대 교회의 분위기는 총독이었던

플리니우스(Plinius)가 트랴안(Trajan)황제에게 보낸 서신에서 잘 나타나 있다.

 

즉 그는 박해로 인해 비밀리에 모이는 기독교 공동체를 은밀히 조사해 본 후

 

'그들은 법 이상을 실천하는 사람들'이라고 보고함으로써 초대 교회 기독교인들의

영적, 윤리적 삶이 칭송받을 만했음을 로마의 정치가로서 입증시켜주었다.

 

이처럼 성령 충만한 성도는 세상의 법을 초월해서 살게 되므로 온 백성의

칭송(稱頌)을 받을 수 있다. 반면에 이름뿐인 그리스도인은 오히려 백성에게 욕을 당한다.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 이 구절에서 '주께서'란 말이

헬라어 본문에서 첫머리에 나타나는데 이것은 단순히 문법상의 이유 때문이 아니라

구원받는 사람을 더하게 하시는 분이 예수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또한 '구원받는 사람을'이란 말도 반복을 나타내는 수동태 분사로서

구원의 주체가 예수인 것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더하게 하시니라'는 미완료 과거형으로 '계속 더하게 하셨다'는 의미이다.

 

누가는 지금까지 예루살렘 초대 교회의 생성을 기록하면서 그것이 성공적이었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누가의 이러한 강조는 단지 성령 강림의 역사에 대한 첫 전주곡에

불과한 것임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후로 계속되어질 누가의 기록은 성령께서 역사하심으로 복음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확장되는 승리의 찬가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