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거듭난 삶 2023. 10. 14.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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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사유와 침례

 

사도행전 238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사도행전 238절에, 오순절 날에 베드로가 예루살렘의 공중에게 한 말로서 다음과 같은 것이 실려 있다.

 

너희가 각각 회개하여 죄의 용서를 얻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라. 그러면 너희도 성령의 은사를 받을 것이다라고(38, 일본역 성서)

 

이에 의해 보면, 밥티스마(침례)는 회개하여 죄의 용서를 얻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서,

또 이것을 받음으로서만 사람은 성령의 은사를 받을 수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베드로는 과연 그러한 것을 말한 것일까?

지금 이 일절을 원어대로 직역하면 다음과 같이 되는 것이다.

 

개심하라. 그리고 또 침례를 받으라. 너희 각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근저 위에

죄의 용서를 목적으로 하여, 그러면 너희들 받을 것이다. 성령의 은사를

 

이에 의해 보면 이 일절의 주제는 밥티스마가 아니라 죄의 용서(사죄)이다.

여기에 밥티스마는 죄의 용서를 얻기 위한 한 수단으로서 제시된 것이다.

 

그리고 또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밥티스마 뿐으로는 족하지 못한 것이다.

 

여기에 또 개심(改心)이 필요한 것이다.

 

개심하고, 그리고 침례 받아,

죄의 용서에 참여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개심은 다만 회개로서 그치는 것 아니다.

 

개심은

사람의 내적 상태 전부의 개환(改換)이다.

그 행위와 사상과의 개경이다.

신생이다. 인격의 개축이다.

 

이에 함께 하는데 밥티스마로서 하여, 사람은 그 죄를 사함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죄의 사람을 얻기 위한 개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위에

행해지는 것이 아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밥티스마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리스도를 기초하여서의 개심과 밥티스마에 의한 것이 아니어서는

죄의 사유(용서)는 얻어지지 못하는 것이다.

 

이름은 단순히 명칭은 아니다. 이름은 성격의 행위로 되어 나타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그의 아름다운(위대한) 생애이다.

그 의미 깊은 수난이다.

부활이다. 승천이다.

 

그리고 사람은 이러한 사실을 근저로 하여, 그 전 생애에 혁신을 일으켜,

하나님에게서 죄의 용서를 입을 수가 있는 것이다.

 

단지 과거를 뉘우치는 회개로는 족하지 못하다.

단지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으로서 베풀어지는 밥티스마로는 족하지 못하다.

 

그리스도의 공적을 기초로 하여 행해지는 개심과 밥티스마에 의해,

사람은 죄의 용서(사죄)를 입을 수가 있는 것이다.

 

침례를 받으라’ - 받아 제자가 되라는 뜻이다.

 

그 표로서 물을 쓰거나, 아니 하거나는 쇄세(瑣細)한 문제이다.

물에 영혼을 구원함의 힘은 없다.

구원은 의지와 행위의 일이다.

의문과 예법의 일은 아니다.

 

너희가 만약 입으로 주 예수를 고백하고, 또 마음으로 그를 믿으면, 구원 받을 것이다’(로마서 10:9)라고 있다.

 

 

그리고 밥티스마는 이것이다.

 

예수의 이름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그와 영욕을 함께 하며, 그의 제자로서 자임하고,

사람 앞에 그를 고백하여 주저하지 않는 일이다.

이는 그 일면이다.

 

 

밥티스마는 또 제자로서 예수께 받아들여지는 일이다.

 

내가 그에게 이르고,

그가 나를 받아주시어(그에게 밥티스마를 받아),

나는 내 죄를 용서받고,

구원의 문에 들어갈 수가 있는 것이다.

 

죄의 용서를 얻기 위해, 예수의 이름으로 개심하라. 또 침례를 받으라. 그러면 너희가... 라는

것이다.

 

그러면이란 반드시 그 결과로서의 뜻은 아니다.

이에 맞추어서(합쳐서)라든가, 또는 이것과 동시에라는 의미로 이것을 해석할 수가 있다.

 

성령의 선물은 죄의 용서의 결과로서 임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과 동시에 임하는 것이다.

용서 그것이 이미 성령의 은사이다.

 

사람은 개심하여 예수의 제자로 될 수 있어,

그 죄의 용서를 얻음과 동시에 성령의 은사(선물)를 받는 것이다.

 

성령의 은사(선물)을 받을 것이다성령을 선물로서 받을 것이란 뜻이다.

 

고린도전서 12장에 보여 있는

성령의 주시는 선물(은혜의 선)을 받도록 하라는 것은 아니다.

 

그리하여 베드로는 여기서 밥티스마의 효능을 말한 것은 아니다.

죄의 용서와 성령의 선물을 받기 위한 길로서,

개심과 밥티스마를 권한 것이다.

 

밥티스마 뿐으로 족하지 못하다.

 

여기에 개심을 동반할 필요가 있다.

사람이 자진(自進) 회개하여,

하나님께 침례 받고(아들로서 또는 제자로서 받아들여져),

그는 죄 사함 받을 수 있도록,

또는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라는 것이다.

 

사도행전의 이 한 절을 밥티스마 장려의 말씀으로 해석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그리고 사람에게 이 잘못을 가지게끔 하는데 있어서,

역문(譯文)의 불완전이 크게 작용력 있음은,

이 또한 의심 할 바 없는 일이다.

 

 

(‘내촌성서지 연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