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그 때에 애굽과 가나안 온 땅에 흉년 들어 큰 환난이 있을새 우리 조상들이 양식이 없는지라

거듭난 삶 2023. 10. 30.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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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데반의 설교와 요셉의 교훈

 

성 경: [7:8-16] 할례의 언약을 아브라함에게 주셨더니 그가 이삭을 낳아 여드레만에 할례를 행하고 이삭이 야곱을, 야곱이 우리 열두 조상을 낳으니

9) 여러 조상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았더니 하나님이 저와 함께 계셔

10) 그 모든 환난에서 건져내사 애굽 왕 바로 앞에서 은총과 지혜를 주시매 바로가 저를 애굽과 자기 온 집의 치리자로 세웠느니라

11) 그 때에 애굽과 가나안 온 땅에 흉년 들어 큰 환난이 있을새 우리 조상들이 양식이 없는지라

12) 야곱이 애굽에 곡식 있다는 말을 듣고 먼저 우리 조상들을 보내고

13) 또 재차 보내매 요셉이 자기 형제들에게 알게 되고 또 요셉의 친족이 바로에게 드러나게 되니라

14) 요셉이 보내어 그 부친 야곱과 온 친족 일흔다섯 사람을 청하였더니

15) 야곱이 애굽으로 내려가 자기와 우리 조상들이 거기서 죽고

16) 세겜으로 옮기워 아브라함이 세겜 하몰의 자손에게서 은으로 값주고 산 무덤에 장사되니라.

 

 

 

[7:8] 할례의 언약을 아브라함에게 주셨더니 그가 이삭을 낳아 여드레만에 할례를 행하고 이삭이 야곱을, 야곱이 우리 열두 조상을 낳으니

 

할례의 언약을 아브라함에게 주셨더니 그가 이삭을 낳아 여드레만에 할례를 행하고 - '할례의 언약'은 아브라함을 택하신 하나님께서 그를 거룩하게 하시고 영원히 그의 백성으로 삼으시는 약속의 증표(證標).

 

스데반이 이 언약을 특별히 언급한 것은

 

(1) 이스라엘은 할례를 통해 분명한 약속을 받았다는 사실과

(2) 이 언약은 단순히 의식 거행의 차원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구속사적인 차원에서 재해석될 필요가 있음을 알리기 위함이다.

 

(51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

 

 

 

[7:9] 여러 조상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았더니 하나님이 저와 함께 계셔

 

여러 조상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았더니 - 스데반의 설교는 창 37:11,28에 나타난 야곱의 12아들,

 

12족장들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37:11 그 형들은 시기하되 그 아비는 그 말을 마음에 두었더라, 28 때에 미디안 사람 상고들이 지나는지라 그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 올리고 은 이십 개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매 그 상고들이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

 

여기서 요셉은 우리를 죄 가운데서 구원하실 메시야의 모형이다. 요셉의 형제들이 그를 노예로 팔아버렸지만 그는 자기 형제들의 구세주로 다시 나타났다. 마찬가지로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에 의해 죽음에 팔아 넘기워졌지만 이들을 구원하실 메시야로 다시 오실 것이다.

 

스데반이 이 12족장들의 이야기를 언급하면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애굽'(9-16절 사이에 6번 반복)에 있던 요셉과 그의 형제들을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셨다는 것이다.

 

(9-16절 본문의 성경말씀 참조)

 

 

[7:10] 그 모든 환난에서 건져내사 애굽 왕 바로 앞에서 은총과 지혜를 주시매 바로가 저를 애굽과 자기 온 집의 치리자로 세웠느니라

 

환난에서 건져내사 애굽 왕 바로 앞에서 은총과 지혜를 주시매 바로가 저를 애굽과 자기 온 집의 치리자로 세웠느니라 - 39:21;41:41의 말씀에 근거한 것이기도 하며

 

(39:21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전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41:41 바로가 또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너로 애굽 온 땅을 총리하게 하노라 하고)

 

 

105:21의 말씀과도 연결된다.

 

(105:21 저로 그 집의 주관자를 삼아 그 모든 소유를 관리케 하고)

 

요셉이 애굽의 극한 어려움 가운데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총(恩寵)때문이었으며 그에게 애굽 왕 바로의 꿈을 해몽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신 분도 하나님이셨다.

 

본절에서는 바로가 요셉을 치리자로 세운 것으로 언급되지만 궁극적으로 그를 치리자로 세우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구속(救贖)하기 위하여 오래 전부터 이렇게 예비하시고 섭리하셨다.

 

요셉의 형들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파기하는 방향으로 일을 몰아간 결과를 낳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언약을 요셉을 통하여 계속 이루어 나가셨다.

 

 

 

[7:11] 그 때에 애굽과 가나안 온 땅에 흉년 들어 큰 환난이 있을새 우리 조상들이 양식이 없는지라

 

온 땅에 흉년들어 큰 환난이 있을새 우리 조상들이 양식이 없는지라 - 이 구절은 창 41:54, 56;42:5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41:54 요셉의 말과 같이 일곱 해 흉년이 들기 시작하매 각국에는 기근이 있으나 애굽 온 땅에는 식물이 있더니, 56 온 지면에 기근이 있으매 요셉이 모든 창고를 열고 애굽 백성에게 팔새 애굽 땅에 기근이 심하며;

 

42:5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양식 사러간 자 중에 있으니 가나안 땅에 기근이 있음이라)

 

이 흉년이란 당시 팔레스틴 뿐 아니라 애굽 전 지역을 휩쓴 기근을 말한다.

 

여기서 '양식'의 뜻으로 사용된 '코르타스마타''건초'를 뜻하는 '코르토스'에서 파생된 단어로 70인역(LXX)의 창 24:25, 32에서는 '사료'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24:25 또 가로되 우리에게 짚과 보리가 족하며 유숙할 곳도 있나이다, 32 그 사람이 집으로 들어가매 라반이 약대의 짐을 부리고 짚과 보리를 약대에게 주고 그 사람의 발과 그 종자의 발 씻을 물을 주고)

 

그리고 이 단어는 창 24:25, 32의 개역 성경 번역과 같이 '보리'의 의미보다 '사료'의 의미로 많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 단어가 '먹는 것'이라는 일반적 의미로 사람에게 적용될 때는 '양식'의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흉년'이라는 말은 곧 '양식이 없다'는 말과 연결이 됨으로 본절에서는 '양식'으로 번역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또한 보다 확장된 의미로는 흉년으로 인해 가축의 사료 역시 바닥이 났을 것으로 추정되므로 본절의 '코르타스마타'는 사람의 '양식'과 가축의 '사료'를 동시에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7:12] 야곱이 애굽에 곡식 있다는 말을 듣고 먼저 우리 조상들을 보내고

 

애굽에 곡식 있다는 말을 듣고 - 이는 창 42:1,2와 병행 구절로서 계속되는 기근 가운데 있던 팔레스틴 지역의 사람들에게도 애굽에 양식이 있다는 소문이 퍼지게 되었음을 가리킨다.

 

(42:1-2 때에 야곱이 애굽에 곡식이 있음을 보고 아들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서로 관망 만하느냐

2) 야곱이 또 이르되 내가 들은즉 저 애굽에 곡식이 있다 하니 너희는 그리로 가서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사오라 그리하면 우리가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하매)

 

본래 애굽은 홍수 때 나일 강이 범람하여 주변이 옥토로 변해 곡창 지대가 많았다. 특히 풍부한 나일 강의 물은 애굽의 젖줄 역할을 하여 로마의 통치를 받을 때 로마 양식의 공급자 역할을 했다.

 

그런데 사실 당시 애굽에도 기근이 찾아왔으나 요셉의 해몽을 믿은 애굽 왕에 의해 7년의 심각한 기근 가운데서도 애굽 지역은 양식 걱정을 별로 하지 않았다.

 

 

 

[7:14] 요셉이 보내어 그 부친 야곱과 온 친족 일흔다섯 사람을 청하였더니

 

요셉이 보내어 그 부친 야곱과 온 친족 일흔다섯 사람을 청하였더니 - 개역 성경이 따르고 있는 맛소라 본문(MT)의 창 46:27에는 애굽으로 들어간 야곱의 가족이 모두 70명으로 언급되었다. 그러나 70인역(LXX)75명으로 진술하고 있다.

 

(46:27 애굽에서 요셉에게 낳은 아들이 두 명이니 야곱의 집 사람으로 애굽에 이른 자의 도합이 칠십 명이었더라)

 

이로 보아 스데반은 70인역을 인용한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수자상의 차이에 대해 비평주의 학자들은 두 가지 구전을 전제하기도 하지만 엄격한 의미에서 그 차이는 다음과 같이 해결될 수 있다.

 

즉 맛소라 본문은 요셉과 그의 두 아들만 포함시켰으나 70인역은 그의 다섯 손자까지 포함시켰다.

 

(26:28-37 요셉의 아들들은 그 종족대로 므낫세와 에브라임이요

29) 므낫세의 자손 중 마길에게서 난 것은 마길 가족이라 마길이 길르앗을 낳았고 길르앗에게서 난 것은 길르앗 가족이라

30) 길르앗 자손은 이러하니 이에셀에게서 난 이에셀 가족과 헬렉에게서 난 헬렉 가족과

31) 아스리엘에게서 난 아스리엘 가족과 세겜에게서 난 세겜 가족과

32) 스미다에게서 난 스미다 가족과 헤벨에게서 난 헤벨 가족이며

33) 헤벨의 아들 슬로브핫은 아들이 없고 딸뿐이라 그 딸의 이름은 말라와 노아와 호글라와 밀가와 디르사니

34) 이는 므낫세의 종족들이라 계수함을 입은 자가 오만 이천칠백 명이었더라

35) 에브라임 자손은 그 종족대로 이러하니 수델라에게서 난 수델라 가족과 베겔에게서 난 베겔 가족과 다한에게서 난 다한 가족이며

36) 수델라 자손은 이러하니 에란에게서 난 에란 가족이라

37) 이는 에브라임 자손의 종족들이니 계수함을 입은 자가 삼만 이천오백 명이라 이상은 그 종족을 따른 요셉 자손이었더라;

 

대상 7:14-21 므낫세의 아들들 그 처의 소생은 아스리엘이요 그 첩 아람 여인의 소생은 길르앗의 아비 마길이니

15) 마길은 훕빔과 숩빔의 누이 마아가라 하는 이에게 장가들었더라 므낫세의 둘째 아들의 이름은 슬로브핫이니 슬로브핫은 딸들만 낳았으며

16) 마길의 아내 마아가는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베레스라 하였으며 그 아우는 이름이 세레스며 세레스의 아들은 울람과 라겜이요

17) 울람의 아들은 브단이니 이는 다 길르앗의 자손이라 길르앗은 마길의 아들이요 므낫세의 손자며

18) 그 누이 함몰레겟은 이스훗과 아비에셀과 말라를 낳았고

19) 스미다의 아들은 아히안과 세겜과 릭히와 아니암이더라

20) 에브라임의 아들은 수델라요 그 아들은 베렛이요 그 아들은 다핫이요 그 아들은 엘르아다요 그 아들은 다핫이요

21) 그 아들은 사밧이요 그 아들은 수델라며 저가 또 에셀과 엘르앗을 낳았더니 저희가 가드 토인에게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저희가 내려가서 가드 사람의 짐승을 빼앗고자 하였음이라).

 

70인역은 요셉과 그의 두 아들은 애굽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수에 들어갔으나 손자들이 생략된 것을 고려해서 75명으로 수정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차이는 표현상에 의한 것일 뿐 내용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7:15] 야곱이 애굽으로 내려가 자기와 우리 조상들이 거기서 죽고 -

 

이는 신 10:22과 출 1:6의 내용을 합한 것으로 역사적인 사건에 대한 진술이다.

 

(10:22 애굽에 내려간 네 열조가 겨우 칠십 인이었으나 이제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하늘의 별 같이 많게 하셨느니라:

 

1:6 요셉과 그의 모든 형제와 그 시대 사람은 다 죽었고)

 

여기서 스데반이, 조상들이 애굽에서 죽었다는 사실을 언급한 것은 가나안을 유업으로 주시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그들이 받았으나 그 약속의 성취를 보지 못했음을 강조하기 위함일 것이다.

 

 

 

[7:16] 세겜으로 옮기워 아브라함이 세겜 하몰의 자손에게서 은으로 값주고 산 무덤에 장사되니라. -

 

여기서는 아브라함이 값 주고 산 무덤의 위치에 관하여 해석상 약간의 문제가 발생된다.

 

23:3-20; 49:29-35;50:13에 따르면

 

(23:3-20 그 시체 앞에서 일어나 나가서 헷족속에게 말하여 가로되

4)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우거한 자니 청컨대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지를 주어 소유를 삼아 나로 내 죽은 자를 내어 장사하게 하시오

5) 헷 족속이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6) 내 주여 들으소서 당신은 우리 중 하나님의 방백이시니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우리 중에서 자기 묘실에 당신의 죽은 자 장사함을 금할 자가 없으리이다

7) 아브라함이 일어나 그 땅 거민 헷 족속을 향하여 몸을 굽히고

8) 그들에게 말하여 가로되 나로 나의 죽은 자를 내어 장사하게 하는 일이 당신들의 뜻일진대 내 말을 듣고 나를 위하여 소할의 아들 에브론에게 구하여

9) 그로 그 밭머리에 있는 막벨라 굴을 내게 주게 하되 준가를 받고 그 굴을 내게 주어서 당신들 중에 내 소유 매장지가 되게하기를 원하노라

10) 때에 에브론이 헷 족속 중에 앉았더니 그가 헷 족속 곧 성문에 들어온 모든 자의 듣는데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11) 내 주여 그리 마시고 내 말을 들으소서 내가 그 밭을 당신께 드리고 그 속의 굴도 내가 당신께 드리되 내가 내 동족 앞에서 당신께 드리오니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12) 아브라함이 이에 그 땅 백성을 대하여 몸을 굽히고

13) 그 땅 백성의 듣는데 에브론에게 말하여 가로되 당신이 합당히 여기면 청컨대 내 말을 들으시오 내가 그 밭값을 당신에게 주리니 당신은 내게서 받으시오 내가 나의 죽은 자를 거기 장사하겠노라

14) 에브론이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15) 내 주여 내게 들으소서 땅값은 은 사백 세겔이나 나와 당신 사이에 어찌 교계하리이까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16) 아브라함이 에브론의 말을 좇아 에브론이 헷 족속의 듣는데서 말한 대로 상고의 통용하는 은 사백 세겔을 달아 에브론에게 주었더니

17) 마므레 앞 막벨라에 있는 에브론의 밭을 바꾸어 그 속의 굴과 그 사방에 둘린 수목을 다

18) 성문에 들어온 헷 족속 앞에서 아브라함의 소유로 정한지라

19) 그 후에 아브라함이 그 아내 사라를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더라(마므레는 곧 헤브론이라)

20) 이와 같이 그 밭과 그 속의 굴을 헷 족속이 아브라함 소유 매장지로 정하였더라;

 

49:29-33 그가 그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내가 내 열조에게로 돌아가리니 나를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우리 부여조와 함께 장사하라

30) 이 굴은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에 있는 것이라 아브라함이 헷 사람 에브론에게서 밭과 함께 사서 그 소유 매장지를 삼았으므로

31) 아브라함과 그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었고 이삭과 그 아내 리브가도 거기 장사되었으며 나도 레아를 그곳에 장사하였노라

32) 이 밭과 거기 있는 굴은 헷 사람에게서 산 것이니라

33) 야곱이 아들에게 명하기를 마치고 그 발을 침상에 거두고 기운이 진하여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더라;

 

50:13 그를 가나안 땅으로 메어다가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헷 족속 에브론에게 밭과 함께 사서 소유 매장지를 삼은 곳이더라)

 

야곱은 아브라함이 헷 사람 에브론에게서 산 헤브론의 막벨라 동굴에 묻혔다고 되어 있는 반면에,

 

본 구절에서 스데반은 야곱과 12족장들이 모두 아브라함이 최초로 정착했던 세겜(12:6,7)에 장사되었다고 한다.

 

(12:6-7 아브람이 그 땅을 통과하여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하였더라

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 곳에 단을 쌓고)

 

이는 수 24:32의 진술 곧 야곱이 세겜의 아비 하몰의 자손에게서 값주고 산 무덤이 있어서 그곳에 요셉과 그 자손들이 묻혔다는 것과 혼동된 진술로 여겨질 수 있다.

 

(24:32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이끌어 낸 요셉의 뼈를 세겜에 장사하였으니 이곳은 야곱이 세겜의 아비 하몰의 자손에게 금 일백 개를 주고 산 땅이라 그것이 요셉 자손의 기업이 되었더라)

 

이러한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학자들 간에 각기 조금씩 다른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1) 스데반이 그 당시 긴장된 상황 속에서 잠시 착오를 일으켰다(Calvin, Meyer).

(2) 모든 조상들이 사마리아의 세겜에 묻혔다는 사마리아 전설을 따른 것이다.

(Jerome,Knowling).

(3) 스데반이 그때 죽음 직전의 급박한 압력을 은연 중에 받았으므로 아마 야곱이 세겜 땅을 산 것과 요셉이 그 땅에 장사되어진 비슷한 두 사건을 요약 단축해서 말한 것이다(Bengel).

 

그런데 본 구절은 본서 저자인 누가의 실수일 가능성도 있다.

 

즉 스데반의 설교 내용이 구전으로 전해지던 것을 누가가 다시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창세기의 기록과 여호수아서의 기록을 혼동하여 잘못 기술했을 수 있는 것이다.

 

아무튼 어떤 견해를 취하더라도 본문의 불일치는 해결되기 어려운 난제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