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거듭난 삶 2023. 10. 28.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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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스데반

 

사도행전 61-15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한대

2)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3)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4)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

5)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6)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8)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9) 리버디노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이라는 각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으로 더불어 변론할새

10)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저희가 능히 당치 못하여

11) 사람들을 가르쳐 말시키되 이 사람이 모세와 및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게 하고

12)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와서 잡아 가지고 공회에 이르러

13) 거짓 증인들을 세우니 가로되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스려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

14) 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거늘

15)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사도행전은, 4복음서에 계속하여, 성령의 지도에 의한 복음 전파의 실제를 기록한 것이다.

 

그리고 스데반은 최초의 순교자로서, 그의 용감한 행동에 의해 오늘의 그리스도교 있게 되고, 나아가서는 우리의 운명까지가 직접으로 그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다.

 

실로 스데반의 생애는 우리들에게 연(관계) 먼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그는 당시의 사도로서 선택된 것 아니라,

사도들로 하여금 전도에 전력케 하기 위해, 과부에게 시여하는 직분으로 택함 받은

7인 집사 중의 한 사람이었을 뿐이고,

표면에 서서 전도의 책임을 진자는 아니었다.

 

그러한 사람에 의해 그리스도교는 일대 변화를 낳고,

유대적 범위에서 나와 세계적 종교로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일은 언제나 사람의 이외인 것으로서

사사(私事)한 일이 대사(大事)의 씨로 되는 것이다.

 

그가 만약 당시에 스스로 비하하여, 묘묘한 일신, 무어 관여할 것인들 있으랴고 하여,

이해(利害)를 타산하고, 위험을 피하여 안전한데 처하며,

굳이 다투는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어찌했으랴!

 

바울이 생겨나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따라서 오늘의 그리스도교는 없었으리라.

 

당시에 있어서는 아무것도 아닌 속무위해 뽑힌 한 집사 스데반의 몸에서

실로 세계 영원한 운명이 달려 있었던 것이다.

 

전장(戰場)에 있어서 한 병졸의 행동이 왕왕 전군의 승패에 관계하듯,

스데반의 행동은 전 세계의 역사를 일변케 하고,

인류는 이에 의해 영원한 행복을 얻은 것이다.

 

하나의 평신도이기는 하지만, 이에 하나님의 특별한 능력이 가해지자,

전도의 선봉에 서서, 그리스도를 대표하여 위해(危害)한 죽음을 마치었던 것이다.

 

보통 세상의 일이라면, 이 대임무는 물론 사도 위에 임했을 것이나,

하나님의 일에 있어서는 지위직분 같은 것은 묻지 않는다.

이것이 성서를 일관하는 정신이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스데반과 다툰 제회당의 사람은 당시 널리 세계적 공기에 접촉한

그리스(헬라)의 유대인이었던 것이다.

 

* 참조 : (6:1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한대).

 

스데반은 생각했으리라.

진리에 선 내 주장, 이것을 협애한 히브리말의 국인에게 전한대도 아무 공 없을 것,

이것을 널리 세계적 지식에 접촉한 사람에게 호소한다면 용납될 것이라고,

 

하지만 일은 의외에도 아주 반대여서,

믿었던 사람들에게 모독죄로서 고소되었던 것이다.

 

그러한 일은 오늘에 있어서도 항상 보는 현상으로서,

세계적 사상은 반드시 꼭 널리 세계의 공기에 접촉한 자가 얻는 것이 아니라,

가령 국외에 한 발짝을 나가지 못했대도 깊이 세계의 정신에 접촉할 수가 있는 것이다.

 

넓어야 할 것이면서 좁았던 그리스말()의 유대인은,

실로 스데반의 의론(논쟁)의 예봉에 견디지 못하여,

마침내 비겁하게도 불경죄로서 그를 고소하고,

당시의 최고법아인 집의소(공회) 즉 산헤드린에 인치해 갔던 것이다.

 

성서와 율법을 모독했다는 죄,

이는 실로 예수와 같은 죄 인 것으로,

저 스데반의 명예로서 이 이상의 것 없다.

 

집의소에 선 그의 얼굴이 천사와 같았다고 하는 것은, 기자의 간결한 형용인데,

실로 그러했을 것으로, 이로부터 그는 유명한 대연설을 했던 것이다.

 

죽음을 눈앞에 둔 집의소에서의 유양(태연)한 그의 대연설은,

1900년 후의 오늘의 우리들로 하여금 분기케 하는 힘 있는 것이다.

 

이곳에서부터 사도행전의 기사는,

유대적인 데서 일변하여 세계적으로 되어 있다.

 

어떻게 하여 이 어려운 세계에 그리스도교가 퍼졌던가?

 

하나님은 사람의 도를 택하지 않고서 하나님 자신의 길을 취하셨던 것이다.

 

오늘날 교역자라는 이가 그리스도교를 퍼치려 하여 인간의 모든 수단 방법을 다하고 있는데, 사도행전의 가르치는 바는 그 정반대로서, 조금도 인간의 지혜와 수단이 감겨져 있지 않다.

 

스데반이 택한 것도, 인간적으로 생각하는 때는 최상책은 아니었을 것이나,

실로 하나님의 우()는 사람의 지()에 승하는 것으로,

하나님 자신이 역사하시는 때,

로마 정부 아래서도 스데반을 내고 바울을 일으켜, 전 세계에 복음을 전파케 하셨다.

 

당시에 로마에 복음을 전하는 일의 곤란한 상태를 생각하면,

오늘 우리 일본국에 이것을 전하기는 그래도 쉬운 것이다.

 

 

(‘내촌감삼19156월 성서지연구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