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내 백성이 애굽에서 괴로움 받음을 내가 정녕히 보고 그 탄식하는 소리를 듣고 저희를 구원하려고 내려왔노니

거듭난 삶 2023. 11. 1.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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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데반의 설교와 모세의 교훈 2

 

성 경: [7:30-36] 사십 년이 차매 천사가 시내 산 광야 가시나무 떨기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보이거늘

31) 모세가 이 광경을 보고 기이히 여겨 알아보려고 가까이 가니 주의 소리 있어

32)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대 모세가 무서워 감히 알아보지 못하더라

33) 주께서 가라사대 네 발에 신을 벗으라 너 섰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라

34) 내 백성이 애굽에서 괴로움 받음을 내가 정녕히 보고 그 탄식하는 소리를 듣고 저희를 구원하려고 내려왔노니 시방 내가 너를 애굽으로 보내리라 하시니라

35) 저희 말이 누가 너를 관원과 재판장으로 세웠느냐 하며 거절하던 그 모세를 하나님은 가시나무 떨기 가운데서 보이던 천사의 손을 의탁하여 관원과 속량하는 자로 보내셨으니

36) 이 사람이 백성을 인도하여 나오게 하고 애굽과 홍해와 광야에서 사십 년간 기사와 표적을 행하였느니라.

 

 

[7:30] 사십 년이 차매 천사가 시내 산 광야 가시나무 떨기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보이거늘

 

사십 년이 차매 - 출애굽기는 이스라엘 백성의 부르짖는 소리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나

 

(2:23-25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한지라

24) 하나님이 그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사

25) 이스라엘 자손을 권념하셨더라)

 

본절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특히 본 구절의 표현은 모세의 미디안 생활이 하나님의 섭리에 있었음을 강조한다.

 

천사가 시내 산 광야 가시나무 떨기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보이거늘 - 미디안 광야에서의 40년 생활은 모세를 히브리 민족의 지도자로서 성숙하게 만들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여러 모양으로 단련하신 후 비로소 부르셨다.

 

3:1에서는 하나님께서 나타나신 곳이 '호렙 산'이라고 언급되고 있으나 본 구절에서는 '시내 산'이라 기록하고 있다.

 

(3:1 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무리를 치더니 그 무리를 광야 서편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그렇지만 이를 별개의 장소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아마도 '호렙'은 그 산맥의 이름이고 '시내'는 그 산맥 중 어느 특정한 산꼭대기의 명칭이었을 것이다.

 

물론 학자에 따라서는 그 반대로 '호렙''시내'를 바꾸어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그 두 산이 별개가 아니라는 점에서 아무런 차이가 없다.

 

한편 '가시 나무떨기 불꽃'으로 약간 달리 번역되어 있으나 70인역과 본절의 표현은 같다. 그렇기 때문에 의미상 차이는 없다. 이 나무는 땔감으로나 목재로서 별로 소용이 없는 나무로 당시 학대받던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것 같다.

 

 

 

[7:31] 모세가 이 광경을 보고 기이히 여겨 알아보려고 가까이 가니 주의 소리 있어 - 3:2에서는

 

'여호와의 사자'로 묘사되었고 30절에서는 단순히 '천사'로만 언급되었으나

본절에서는 ''로 표현되고 있다.

 

(3:2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사실 모세에게 나타나신 분은 하나님 자신이지만 히브리인들은 하나님을 대면하면 죽는 것으로 생각했으므로 단순히 '사자' '천사'라는 표현을 사용했을 것이다.

 

18:1-21에서 이와 유사한 장면이 나온다.

 

(18:1-21 여호와께서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오정 즈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았다가

2)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섰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3) 가로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컨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옵시고

4)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서 쉬소서

5) 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쾌활케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당신들이 종에게 오셨음이니이다 그들이 가로되 네 말대로 그리하라

6) 아브라함이 급히 장막에 들어가 사라에게 이르러 이르되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 하고

7) 아브라함이 또 짐승 떼에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취하여 하인에게 주니 그가 급히 요리한지라

8) 아브라함이 뻐터와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들의 앞에 진설하고 나무아래 모셔 서매 그들이 먹으니라

9)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대답하되 장막에 있나이다

10) 그가 가라사대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정녕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11) 아브라함과 사라가 나이 많아 늙었고 사라의 경수는 끊어졌는지라

12)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어찌 낙이 있으리요

13)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14)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15) 사라가 두려워서 승인치 아니하여 가로되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가라사대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16) 그 사람들이 거기서 일어나서 소돔으로 향하고 아브라함은 그들을 전송하러 함께 나가니라

17)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18)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를 인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19)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20)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중하니

21)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하노라)

 

 

 

[7:32]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대 모세가 무서워 감히 알아보지 못하더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 3:6의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

 

(3:6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우매)

 

본 구절의 말씀은 두 가지로 설명될 수 있다.

 

(1) 하나님 자신은 과거와 같이 현재에도 변함없는 분이라는 사실이다.

즉 아브라함과 맺은 약속은 지금까지 신실하게 지켜오셨고 지금도 그 약속을 시행하고

계신다는 뜻이다.

 

(102:27 주는 여상하시고 주의 년대는 무궁하리이다;

 

3:6 나 여호와는 변역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

 

(2) 하나님은 영원토록 불변하시리라는 뜻이다.

조상들과 맺은 언약을 반드시 이루실 것이며 모세가 죽더라도 그 하나님의 신실성은 변함없으리라는 뜻이다.

 

(1:12 의복처럼 갈아 입을 것이요 그것들이 옷과 같이 변할 것이나 주는 여전하여 연대가 다함이 없으리라 하였으나;

 

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1:17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7:33] 주께서 가라사대 네 발에 신을 벗으라 너 섰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라

 

거룩한 땅 - 3:5을 인용한 구절이다. 본 구절은 시내 산 자체가 거룩한 땅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3:5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오히려 하나님께서 시내 산 광야에 나타나셨기 때문에 그곳을 거룩한 땅이라고 지칭한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나타나시는 곳이면 어디든 그 장소는 거룩한 곳이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생활 중 하나님과 만나는 장소로 구분한 성막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었다.

 

 

 

[7:34] 내 백성이 애굽에서 괴로움 받음을 내가 정녕히 보고 그 탄식하는 소리를 듣고 저희를 구원하려고 내려왔노니 시방 내가 너를 애굽으로 보내리라 하시니라

 

저희를 구원하려고 내려왔노니 시방 내가 너를 애굽으로 보내리라 - 모세가 미디안으로 도망한지 4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하나님의 부르심이 그에게 임했다.

 

이 부르심은 40년 전 모세가 스스로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생각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이 부르심에 의해 모세는 자신이 이스라엘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이끄심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특히 여기서 '구원하려''직접 끌어내기 위하여'라는 뜻으로 애굽에서 고통받고 압박받는 백성들을 해방시키겠다는 하나님 자신의 의지적인 표현이다.

 

이 말은 출애굽 사건에 대한 주도권을 하나님 자신이 가지고 있으며 모든것을 이루어 가실 것임을 가리킨다.

 

 

 

[7:35] 저희 말이 누가 너를 관원과 재판장으로 세웠느냐 하며 거절하던 그 모세를 하나님은 가시나무 떨기 가운데서 보이던 천사의 손을 의탁하여 관원과 속량하는 자로 보내셨으니

 

관원과 재판장으로 세웠느냐 하며 거절하던 그 모세를 하나님은 가시나무 떨기 가운데서 보이던 천사의 손을 의탁하여 관원과 속량하는 자로 - 여기서부터는 문체가 전환되고 있다. 평온하게 사실적인 설명처럼 이어지던 설교는 이제 그의 청중들을 향한 논박(論駁)으로 바뀌었다.

 

이 설교의 요지는 모세에 대한 유대인들의 태도와 예수에 대한 유대인들의 태도가 동일했다는 것이다. 즉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보낸 구속자인 모세를 거부했듯이 구세주이시며 생명주로 보내심을 받은 메시야 예수도 거부했다.

 

 

 

[7:36] 이 사람이 백성을 인도하여 나오게 하고 애굽과 홍해와 광야에서 사십 년간 기사와 표적을 행하였느니라.

 

백성을 인도하여 나오게 하고 애굽과 홍해와 광야에서 사십 년간 기사와 표적을 - 스데반은 출 7:3'나의 표징과 나의 이적을 애굽 땅에 많이 행하리라'는 말씀이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생활에서 성취되었음을 강조한다.

 

(7:3 내가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고 나의 표징과 나의 이적을 애굽 땅에 많이 행하리라마는)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그의 백성을 해방시키기 위해서 애굽의 바로 앞에서 많은 표적과 이적을 행하셨으며 출애굽한 이스라엘의 광야 방랑 때에도 그 백성 가운데 임하셔서 수많은 능력을 행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