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리 & 십자가의 길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거듭난 삶 2024. 4. 21.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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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사와 그 책임

 

마태복음 105-15: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보내시며 명하여 이르시되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6)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7)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

8)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9)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10)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

11) 어떤 성이나 마을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가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12)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13)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14)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참조 : (누가복음 101-12)

 

12사도는 모범적 신자, 또는 모범적 전도사이다.

 

그들은 전문적 종교가가 아니고, 평신도 즉 보통 신자였다.

지식계급의 사람이 아니고, 노동계급의 사람이었다.

그들은 모두 불완전한 사람이었고, 생래의 성인 또는 군자가 아니었다.

 

특히 주의할 것은, 그들이 스스로 택하여 사도로 된 것은 아니라는 일이다.

그들은 오늘날의 이른바 전도 지원자가 아니었다.

 

예수, 산에 올라가 그 뜻(마음)에 맞는 사람을 부르시니 와서 그를 따랐다’(마가복음 3:13)고 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했다’(요한복음 15:16). 그는 분명히 말씀하셨다.

 

사도는 아포스톨로스 apostolos, ‘파송된 자’ (보내심을 입은자)의 뜻이다.

 

바울이 자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종 부르심을 입어 사도로 되었다고 한 것은 이것이다.

 

사도는 부르심을 입은데 대해서는 자기에게 책임이 없었던 것이다.

다만 맡겨진 직책을 다하는 일에 있어서 그들의 책임은 있었던 것이다.

 

이 세상에 있어서 집 맡은 자(관리인)에게 요구되는 것은 그 충신하는 일이다’(고린도전서 4:2)라고 바울이 말한 대로이다.

 

이것을 분별하지 못하고서 사도가 무엇인지, 그리스도교 전도사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전도사는 흠모할 만한 경외할 만한 이상적 인물은 아니다.

또 사람의 만사에 간섭하여 그 지도자일 자는 아니다.

 

전도사의 책임은, 그를 택하여 보내신 하나님께 대하여 있는 것으로,

파송된 사람에 대하여 있는 것 아니다.

전도사의 겸손 또는 용기 또는 안심 또는 권위는 여기에 있다.

 

8너희가, 값없이 받았으니, 값없이 주라. ’

 

전도사는 진리의 수수자이다.

하나님께서 받은 것을 사람에게 주는 자이다.

 

27절에 내가 어두운 데서 너희에게 말한 것을, 밝은 데서 말하라.

귀를 대고 들은 것을 지붕 위에서 퍼치라고 있음은 이것이다.

 

자기의 이상 또는 연구의 결과를 말하여 퍼뜨리는 것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구약의 예언자가 여호와 이렇게 말씀하신다고 한

그 권위로써 사람에게 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이른바 보수라는 것이 있을 리 없다.

복음은 무댓가(無代價) 이다. 전도사의 보수는 하나님 자신이 이것을 지불하신다.

하지만 값없이 준다고 하여, ‘시여(施輿)’ 즉 자선사업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전달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사람을 두려워 않는다.

 

바울이 말한 대로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얻어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탁 받아, 말하는 것이다.

이는 사람을 기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내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것이다’ (데살로니가전서 2:4)라고.

 

전도사는 사람의 친구이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종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비평을 두려워 않는다. 또 그 호의에 맞추려 하지 않는다.

 

9너희는 금 또는 은 또는 동전을 지니지 말라.

여행용 자루, 두 벌 하의, , 지팡이도 또한 그러하다.

그것은 일군이 그 먹을 것을 얻는 것은 적당하기 때문이다

 

의식(衣食)의 준비는 할 것 없고, 이것을 구도자(求道者)에게서 구하라는 것이다.

양식은 이것을 적()에게 구하는 것이 나폴레옹(14229역주)의 군락이었다.

 

앞에서는 값없이 주라 명하시고, 곧 후에는 양식을 징발(requisition)하라고 가르치신다.

모순처럼 보이나 모순이 아니다.

복음을 파는 것은 아니다. 이것을 구하는 자에게 주는 것이다.

 

그리고 기쁘게 전도사를 맞이하지 않는 자는 복음을 구하는 자는 아니다.

구도자에게 있어서는 물자의 제공은 의무일 뿐 아니라, 복음 요구의 증거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사람을 찾아 도를 말할 것이다.

 

만약 보통의 대우를 거절하는 자 있으면, 발의 먼지를 털어내고 그 집을 떠나가라는 것이다.

 

이는 가혹한 듯이 보이나, 실은 가장 현명한 길이다.

이같이 하여, 개에게 거룩한 것을 주고 돼지 앞에 진주를 던져주는 위기를 피할 수가 있는 것이다.

 

예수 자신이 결코 복음의 염매(bargain sale)를 하지 않으셨다.

그를 믿는 자에게는 아낌없이 주셨지만,

믿지 않는 자에게는 삼가 자신을 나타내지 않으셨다.

 

그들이 믿지 않으므로, 많은 기이한 일을 여기(나사렛)서 행치 않으셨다고 있는 대로이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교 전도는 그 처음부터 자급 전도 였다.

나폴레옹(14229역주)이 전쟁을 하여 그것 자신의 대가를 지불케 한 것 같이,

예수는 전도하여 그것 자신의 대가를 지불케 하셨다. 복음은 대세력이다.

 

이것을 전하는데 있어서 필요한 물자의 결핍(부족)을 말함 같은 일이 있을 리 없다.

아버지의 동산(포도원)에서 일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금은 또는 의류 식량을 특별히 준비하여 노동에 종사할 필요는 없다.

 

노동자가 그 식물을 얻는 것은 적당하다’.

 

그리고 하나님은 노동에 관여된 자로 하여금 그 대가를 지불케 하신다.

그리하여 뿌리는 자도 거두는 자도 함께 기뻐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 자신이 이 전도법을 채용하셨다.

사도도 또 이 길에 의해 일했다.

 

그들은 오늘의 전도사가 하듯,

교회에서 기정의 봉급을 받아 이것을 의지로 삼아 전도하지 않았다.

 

그들의 의뢰는 그들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이것 있어 그들은 성령이 인도 하시는 대로 가서, 아무 부자유 없이 전도에 종사했다.

 

오늘의 전도에 실패 많음은, 예수께서 보여주신 이 간단한 길을 취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전도사를 기르신다.

좋은 구도자를 일으켜, 그들로서 그를 기르신다.

 

마치 사렙다 과부로써 예언자 엘리야를 기르신 것 같이,

또 브리스가와 아굴라(11145역주)를 일으켜 바울을 그 집으로 영접한 것 같이 이다.

 

불신자도 또 하나님의 손안(the palm)에 있다. 그는 쉽게 불신자로써 전도사를 붙드신다.

 

복음을 싸게 팔지 말라.

복음을 싸게 사지 말라,

 

진리의 가치는 지불한 대가에 의해 정해진다.

많이 지불한 자는 많이 이것을 존경하고,

적게 지불한 자는 적게 이것을 존경한다.

 

높은(비싼) 대가를 지불하고서 복음을 구해 얻은 자로서, 이것을 버린 자 있음을 듣지 못한다.

 

배교자는 대개가 헐값으로 복음을 사서 구한 자이다.

 

*내촌감삼의 갈릴리의 길을 연재중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