핍박하는 대적들에 대한 자세
성 경: [롬 12:14-17]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15)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16)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
17)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롬 12:14]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 어떤 사본에는(P46) 두 번째에 나오는 '축복하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율로게이테'가 빠져 있다.
또한 '너희를'의 헬라어 '휘마스'가 빠진 사본도 있다(P46, B).
'율로게이테'의 원형 '율로게오'는 '좋게 말하다', '칭찬하다'의 뜻이다.
이 말을 신자가 하나님에 대해 쓸 때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되며,
(눅 1:64 이에 그 입이 곧 열리고 혀가 풀리며 말을 하여 하나님을 찬송하니;
2:28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약 3:9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하나님께서 신자들에게 사용하면 복 주신다는 뜻이며,
(마 25:34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행 3:26 하나님이 그 종을 세워 복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셨느니라;
갈 3: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엡 1: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우리가 다른 사람에 대해 사용하면 축복하는 것이 된다.(Murray).
(눅 2:34 시므온이 저희에게 축복하고 그 모친 마리아에게 일러 가로되 보라 이 아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하여 비방을 받는 표적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고;
고전 10:16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히 11:20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오는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본문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영향 받은 것이다.
(마 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눅 6:28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핍박하는 자, 즉 원수를 축복한다는 것에는, 용서와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는 내용도 포함된다. 그런데 인간의 본성 자체로는 이것을 행할 수 없다.
따라서 나로서는 할 수 없는 것을 내가 하기 위해서는 나의 본성의 법이 아닌 성령의 법에 따라 행해야 한다.
(갈 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롬12:15]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 14절과 본절은 자신을 잊어버려야 할 수 있는 일이다.
본절은 우리가 슬픔 중에 있을 때에도 즐거워하는 자들과 즐거워하며, 우리가 즐거울 때에도
슬픔 가운데 있는 자들과 슬퍼하라는 권면이다.
다른 사람의 처지를 동정하는 것, 즉 감정과 처지와 조건을 같이 하는 것은 사랑으로써 가능하며,
(눅 10:27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성령으로 인도받아야,
(갈 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한 마음이 될 수 있다.
(빌 2:2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이와 같은 마음을 품는 것은 신자들 사이에서 뿐 아니라,
(고전 12:26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빌 2:17-18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18)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14절과 관련하여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과의 사이에서도 필요하다(Dunn, Cranfield).
그리스도께서는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우셨다.
(요 11:33-35 예수께서 그의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의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사
34) 가라사대 그를 어디 두었느냐 가로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선한 것을 즐거워하는 자들과 선한 것을 함께 즐거워하며,
(빌 2:18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곤경과 불행으로 우는 자들에 대하여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지체로서 같은 슬픔을 갖는다.
(마 5: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눅 6:21 이제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이제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롬 12:16]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
▶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 '마음을 같이한다'는 표현은 15:5;고후 13:11;빌 2:2;4:2에 나오는데,
(15:5 이제 인내와 안위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고후 13:11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형제들아 기뻐하라 온전케 되며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같이 하며 평안할지어다 또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빌 2:2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4:2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토 아우토 프로네인'은 '같은 마음이 되는 것'이나 '같은 마음을 품는 것'을 뜻한다.
'서로'를 나타내는 헬라어 '에이스 알렐루스'('toward one another')에서 '알렐루스'(one another)는 대개 전치사 '엔'('안에')과 함께 사용된다.
이 차이는 '엔 알렐루스'가 '너희 중에', '너희 가운데'라는 범위의 의미가 강하다면 '에이스 알렐루스'는 '서로를 향하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외부로 나타나는 행동에 강조점이 있다.
또한 14절이나 17-20절로 비추어 보아 저자가 특히 신자들의 행동이 외부에 나타남으로써 미칠 영향을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 안에 같은 목적을 지향하고 같은 생각을 갖는 것은 빛된 선행으로 나타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다.
(마 5:16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 '높은 데'의 헬라어 '타 휴셀라'는 중성 명사이면서 목적격으로 '높은 것들'을 의미한다.
따라서 '높은 데 마음을 두는 것은 인간이 자기의 수준을 망각하고 분에 넘치는 기이한 일에 뜻을 품는 것이다.
(시 131:1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고 내 눈이 높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낮은 데'의 헬라어 '타페이노이스'는
'비천한’
(눅 1:52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약 1:9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겸손한’의 뜻이다.
(마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고후 10:1 너희를 대하여 대면하면 겸비하고 떠나 있으면 담대한 나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친히 너희를 권하고)
따라서 '낮은 데' 처하라는 것은 자신을 생각함에 있어서 겸비(謙卑)하라는 것이며, 3절의 '분에 넘치는 생각을 하지 말고 지혜롭게 생각하며 처신하라'는 권유를 반복하는 것이다.
▶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 - 스스로 지혜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미련한 자들, 즉 지혜 없는 자들의 생각이다.
(잠 3:7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이를 히브리어식으로 표현하면 '높은 것에 대해 심사숙고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남들보다 뛰어나길 원하고 우월 의식을 갖기보다는 다른 사람을 진중(珍重)하게 대하고 온순함을 가져야 할 것을 보여준다(Calvin).
그렇지 않고 스스로 지혜있다 하는 오만함은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롬 12:17]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 이는 인간이 가진 본성을 제한시키는 가르침이다.
일반적으로 악행하는 자에게는 보다 큰 악으로 갚으려고 하는 것이 인간의 심리인데, 이는 이러한 인간의 자연 욕구를 제재하는 것이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눈은 눈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출 21:24, 25)는 공식적인 형벌을 말한 것이며,
(출 21:24-25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25) 데운 것은 데움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
이런 규정을 세운 것도 개인적으로 보복하는 것들을 금하기 위한 것이다.
(잠 20:22 너는 악을 갚겠다 말하지 말고 여호와를 기다리라 그가 너를 구원하시리라;
24:29 너는 그가 내게 행함 같이 나도 그에게 행하여 그 행한 대로 갚겠다 말하지 말지니라).
바울은 인간의 어두워진 마음을 잘 알았으므로,
(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인간에게 이런 교훈이 필요함을 느낀 것이다.
또한 본문과 살전 5:15; 벧전 3:9은 서로 유사한데
(살전 5:15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
벧전 3:9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이는 예수의 가르침을 따라
(마 5:38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일정한 교리가 형성되어 전승되어 왔음을 보여준다.
▶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 본절 전반부의 소극적인 권면에서 발전하여 이제 적극적인 권면으로 나아간다.
'모든 사람'은 '아무에게도'에 대칭되는 말로 신자나 불신자 모두를 가리킨다.
'모든 사람 앞에서'는 또한 '주님 앞에서'와 버금가는 권위를 갖는다.
(고후 8:21 이는 우리가 주 앞에서만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선한 일에 조심하려 함이라)
왜냐하면 주님과의 영적인 관계가 사람들과의 현상적인 관계와 별개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본절에서는 '선한'이라는 말을 7:12에 나오는 헬라어 '아가도스' 대신에 '칼로스'를 사용했다. 이는 일반적인 아름다움, 즉 자연적이고 도덕적인 '선한 일'을 나타낸다(Dunn).
'도모하다'의 헬라어 '프로노에오'가 본문에서는 분사형 '프로노우메노이'로 쓰여 명령을 나타낸다.
'프로노에오'는 '미리 생각하다', '간구하다', '몰두하다'의 뜻을 갖는다.
따라서 어떤 일에 반응하여 선을 행하라는 소극적인 명령이 아니고, 미리 솔선수범하여 선을 행하라는 적극적인 명령이다.
그러므로 이는 '선한 일'에 너희 자신을 몰두하라는 뜻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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