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거듭난 삶 2024. 9. 16.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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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 대한 의무 2

 

성 경: [12:12-13]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13)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12:12]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 '소망'의 헬라어 표현 '엘피스'

일시적으로 더 좋은 것을 바라는 헬라적인 개념보다는

'확실한 소망'을 나타내는 히브리적 개념이다.

 

이는 종말론적 의미를 지닌 것이 분명하다.

 

'소망 중에''종말론적 보류'(eschatological reserve),

'즐거워하며''종말론적 설레임'(eschatological excitement)을 나타낸다(Dunn).

 

죄의 형벌 아래에서 인간은 참된 소망도 즐거움도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소망만이 참된 즐거움을 줄 수 있다.

 

영생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소망의 근거이며 근본이 되시므로

영원한 즐거움을 주시는 자이시다.

 

 

환난 중에 - 환난은 모든 인간이 당하지만 특히 신자에게는

복음으로 인한 환난이 있다.

 

 

참으며 - 이를 나타내는 헬라어 '휘포메노'는 초기 기독교 문헌에는

'참다', '끝까지 견디다', '굽히지 않다'의 뜻으로 나타난다.

 

(고전 13: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딤후 2:10 그러므로 내가 택하신 자를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저희로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얻게 하려 함이로라;

 

10:32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에 참은 것을 생각하라;

 

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이는 단순한 인내를 의미하기 보다는

소망을 바라보고 참는다는 의미로서 종말에 취할 것에 대한

선취(先取)를 근거로 참는 것이다.

 

이러한 종말에 대한 소망과 그 선취로 인한 확신으로

성도는 끝까지 견디는 힘을 공급받는다.

 

(7:19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케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기도에 항상 힘쓰며 - '항상 힘쓰며'의 헬라어 '프로스카르테룬테스'

'전심전력하다', '헌신하다', '견디다'의 뜻이 있다(Dunn).

 

이 단어는 기도를 언급할 때 주로 쓰인다.

 

(1:14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2:42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4:2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종말이 가까워 올수록

하나님과 기도로 그 긴장을 표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또한 본 구절에서 현재 분사형을 사용한 것은 기도에 힘쓰는 것이

계속적이고 반복적으로 행해져야 함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12:13]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성도들의 쓸 것을 - 성도들은 로마에 있거나 예루살렘에 있거나를 막론하고

곳곳에 흩어져 있는 모든 신자들을 일컫는다.

 

(15:25 그러나 지금은 내가 성도들을 섬기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노니)

 

 

공급하며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코이노네오'의 현재 분사형인 '코이노눈테스'이다.

 

'코이노네오'는 물질적이며 재정적인 도움의 의미를 띤

 

'주다', '몫을 기부하다',

 

(15:27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신령한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신의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4:15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예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또는 '참예하다',

 

(4:14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예하였으니 잘하였도다;

 

벧전 4:13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함께 하다'의 뜻을 가진다.

 

(6:6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성도들에게 서로 어려운 성도의 필요와 궁핍을 도와줄 뿐 아니라,

어려움에 함께 동참하라는 권면이다.

 

당시의 로마 제국은 식민지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고 토지를 몰수하는 등

많은 재정적인 압박을 가했다.

 

그래서 일부 귀족층을 제외하고 대부분은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으며

따라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었다.

 

거기다 성도들은 신앙에 대한 박해도 감수해야 하는 형편이었으므로

성도간의 곤경(困境)을 도우며 동참하는 것은

서로에게 용기를 주며 위안과 격려가 되는 것이다.

 

 

손 대접하기를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필롸세니안'

'''크세노스'의 합성어이다.

 

'''사랑하는', '좋아하는'의 뜻이며

'크세노스''손님', '이방인', ''을 뜻한다.

 

따라서 '필롸세니아''손님이나 이방인,

즉 나그네를 사랑하는 것'으로 손님을 환대함을 일컫는다.

 

애굽에서 ''으로 있었던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과거 역사를 생각하면서 '손 대접'하기를 강조하곤 했다.

 

또한 초대 교회 당시 성도들에 대한 핍박이 심했으므로

이곳 저곳 나그네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여행하는 자들(바울과 그의 동료들)과 핍박으로 도망하는 자들,

돈 때문에 심부름 다니는 자들은 곳곳에서 신자들에게 대접을 잘 받았다.

 

신자들은 한 가족이면서,

 

(10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모두 나그네이므로.

 

(11:13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느뇨),

 

서로를 손님으로 여기고 합심하여 서로를 돌본 것이다.

 

 

힘쓰라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원형은 '디오코'인데

'추구하다', '좋다', '노력하다'를 뜻한다.

 

여기서는 현재분사형 '디오콘테스'가 사용되어

계속적으로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는 권면이다.

 

이는 14절에 나오는 '핍박하는 자'를 나타내는 헬라어

'디오콘타스'와 같은 동사에서 파생한 것으로

바울이 의도적으로 문맥상 상반되는 곳에 같은 단어를 사용함으로

'힘쓰라'는 의미가 상대적으로 강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