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자와 연약한 자
성 경: [롬 14:1-4]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
2)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연약한 자는 채소를 먹느니라
3)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못하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저를 받으셨음이니라
4) 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뇨 그 섰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제 주인에게 있으매 저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저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니라.
[롬 14:1]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
▶ 믿음이 연약한 자를 - 한글 개역성경에는 생략되어 있는 접속사 '데'('한편')는 12:1-15:13에 이르기까지의 대 문단 내의 새로운 소 단락으로서 새로이 주제가 전환됨을 표시해 준다.
여기서 '믿음이 연약한 자'란 말은 4:19의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라는 말을 상기시켜 준다.
(4: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왜냐하면 헬라어 본문에 의하면 본절의 '연역한 자'(아스데눈타)란 말과 4:19의 믿음이 '약하여 지지'(아스데네사스)란 말이 모두 '약하다'를 의미하는 '아스데네오'의 변화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맥을 통해서 살펴볼 때 즉 4:19의 '약하여지다'는 여기 본문의 구절과는 전혀 다른 의미이다.
4:19에서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의 약화, 다시 말해서 불리한 환경 앞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신뢰하지 못한 행위를 의미하지만, 본절에서 믿음이 연약한 자란 구원의 근본 원리로서의 '믿음'이 연약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고전 8:7, 9, 10; 9:22의 '아스데네스'('약한')나,
(고전 8:7-10 그러나 이 지식은 사람마다 가지지 못하여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악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8) 식물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아니하여도 부족함이 없고 먹어도 풍족함이 없으리라
9) 그런즉 너희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10)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어찌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9:22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
고전 8:11, 12의 '아스데네오'('약하다')를 통해 알 수 있는 성격의 약함이다.
(고전 8:11-12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12)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즉 본절에서 말하는 믿음의 연약성은 기본적인 기독교 신앙의 연약성이 아니라, 어떤 특정한 일을 행하는데 있어 확신이 약하다는 뜻이다(Sanday and Headlam).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볼 때 '믿음이 연약한 자'란, 아직까지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잘 모르거나 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그런데 본절의 경우에 있어서 '믿음이 연약한 자'란, 구체적으로 말하면 무엇을 먹어야 하고 어떤 날을 예배일로 지켜야 되는지에 관한 율법 사항들을 엄격하게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지나치게 세심한 신자들을 가리킨다.
즉 교회 내부의 유대적 요소를 지키기를 주장하는 자들을 말한다.
이런 자들은 그들의 믿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누려야 할 자유를 지각(知覺)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강하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한다(Calvin, Harrison).
▶ 너희가 받되 - 이 단어는 '받아 들이다', '환영하다', '영접하다', '친절하게 대하다'를 가리키는 '프로슬람바노'의 2인칭 복수 현재 명령형으로 '너희들이 받아 들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명령의 대상이 되는 '너희들'은 대체적으로 '강한 자들'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강한 자들은 음식물에 관한 이전의 구약성경의 규례를 문자적으로 지키기를 거부하고, 또한 어떤 특정 음식을 피하는 일에서 자유로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믿음이 강한 자들은 믿음이 약한 자들을 받아들여야 했다.
즉, 자신들의 동아리 안에 그들을 받아 들이고 동시에 그들을 솔직하고 거리낌없이 교제하며 같은 주님을 믿는 형제들로서 따뜻하게 인정해야 했다.
또한 이 단어는 공동체 전체 안에서의 공식적인 인정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교제에서 형제로서의 용납을 의미한다(Kasemann).
그런 의미에서 '프로슬람바노'는 행 18:27과 28:2에서도 같은 용례로 사용되었는데, 모든 일에 있어서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환영을 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을 암시한다(welcome).
(행 18:27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하니 형제들이 저를 장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하여 영접하라 하였더니 저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28:2 토인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여 비가 오고 날이 차매 불을 피워 우리를 다 영접하더라)
▶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 - 바울은 여기서 연약한 자를 받을 때, 특별히 주의할 어떤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는 것이다.
형제를 받아들이는 일은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는 성향이 있는 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연약한 자는 그가 주장하는 대로 그리스도인 형제로서 받아들여져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그의 행동의 기초가 되는 생각을 비판하지 말아야 한다.
판단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일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 된 강한 자들이 해야 할 일은, 연약한 형제로 하여금 자기의 연약함으로 인해 공동체 안에서 열등감이나 결함, 혹은 색다름을 느끼지 않도록 그를 받아들이는 사랑을 베푸는 일뿐이다.
여기서 '비판'을 가리키는 '디아크리세이스'는 '다툼', '구분', '판단', '결정', '논쟁’ 등의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되며 '의심'을 가리키는 '디알로기스몬'은 '추론', '생각', '의견', '거리낌', '주저함' 등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러나 문맥상으로 볼 때 '디아크리세이스'는 '비판', 혹은 '판단'이란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좋고 '디알로기스몬'의 가장 적절한 의미는 '거리낌'인 듯하다(Cranfield).
즉, 약한 형제가 꺼려하는 일들을 비판 내지는 판단함으로써 그 형제를 받아들이는 일을 방해하면 안 된다는 의미에서 이 조건을 도입한 것이다.
아울러 이 구절은 강한 자들이 누리는 내적 자유에 대한 외적 표현을 약한 자들에게 강요하는 것에 대해서는 찬성하지 않는 바울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Sanday and Headlam).
[롬 14:2]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연약한 자는 채소를 먹느니라 -
음식물에 관한 금기(禁忌)가 바울 당시에는 흔히 있었다. 유대적 전통(레 11:1-47)도 있었고,
(레 11:1-47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고하여 그들에게 이르시되
2)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육지 모든 짐승 중 너희의 먹을만한 생물은 이러하니
3) 짐승 중 무릇 굽이 갈라져 쪽발이 되고 새김질하는 것은 너희가 먹되
4) 새김질하는 것이나 굽이 갈라진 짐승 중에도 너희가 먹지 못할 것은 이러하니 약대는 새김질은 하되 굽이 갈라지지 아니하였으므로 너희에게 부정하고
5) 사반도 새김질은 하되 굽이 갈라지지 아니하였으므로 너희에게 부정하고
6) 토끼도 새김질은 하되 굽이 갈라지지 아니하였으므로 너희에게 부정하고
7) 돼지는 굽이 갈라져 쪽발이로되 새김질을 못하므로 너희에게 부정하니
8) 너희는 이 고기를 먹지 말고 그 주검도 만지지 말라 이것들은 너희에게 부정하니라
9) 물에 있는 모든 것 중 너희의 먹을 만한 것은 이것이니 무릇 강과 바다와 다른 물에 있는 것 중에 지느러미와 비늘 있는 것은 너희가 먹되
10) 무릇 물에서 동하는 것과 무릇 물에서 사는 것 곧 무릇 강과 바다에 있는 것으로서 지느러미와 비늘 없는 것은 너희에게 가증한 것이라
11) 이들은 너희에게 가증한 것이니 너희는 그 고기를 먹지 말고 그 주검을 가증히 여기라
12) 수중 생물에 지느러미와 비늘 없는 것은 너희에게 가증하니라
13) 새 중에 너희가 가증히 여길 것은 이것이라 이것들이 가증한즉 먹지 말지니 곧 독수리와 솔개와 어응과
14) 매와 매 종류와
15) 까마귀 종류와
16) 타조와 다호마스와 갈매기와 새매 종류와
17) 올빼미와 노자와 부엉이와
18) 따오기와 당아와 올응과
19) 학과 황새 종류와 대승과 박쥐니라
20) 날개가 있고 네 발로 기어 다니는 곤충은 너희에게 가증하되
21) 오직 날개가 있고 네 발로 기어다니는 모든 곤충 중에 그 발에 뛰는 다리가 있어서 땅에서 뛰는 것은 너희가 먹을지니
22) 곧 그 중에 메뚜기 종류와 베짱이 종류와 귀뚜라미 종류와 팟종이 종류는 너희가 먹으려니와
23) 오직 날개가 있고 기어다니는 곤충은 다 너희에게 가증하니라
24) 이런 유는 너희를 부정케 하나니 누구든지 이것들의 주검을 만지면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며
25) 무릇 그 주검을 옮기는 자는 그 옷을 빨지니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26) 무릇 굽이 갈라진 짐승 중에 쪽발이 아닌 것이나 새김질 아니하는 것의 주검은 다 네게 부정하니 만지는 자는 부정할 것이요
27) 네 발로 다니는 모든 짐승 중 발바닥으로 다니는 것은 다 네게 부정하니 그 주검을 만지는 자는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며
28) 그 주검을 옮기는 자는 그 옷을 빨지니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그것들이 네게 부정하니라
29) 땅에 기는 바 기는 것 중에 네게 부정한 것은 이러하니 곧 쪽제비와 쥐와 도마뱀 종류와
30) 합개와 육지 악어와 수궁과 사막 도마뱀과 칠면석척이라
31) 모든 기는 것 중 이것들은 네게 부정하니 무릇 그 주검을 만지는 자는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며
32) 이런 것 중 어떤 것의 주검이 목기에든지 의복에든지 가죽에든지 부대에든지 무론 무엇에 쓰는 그릇에든지 떨어지면 부정하여지리니 물에 담그라 저녁까지 부정하다가 정할 것이며
33) 그것 중 어떤 것이 어느 질그릇에 떨어지면 그 속에 있는 것이 다 부정하여지나니 너는 그 그릇을 깨뜨리라
34) 먹을 만한 축축한 식물이 거기 담겼으면 부정하여질 것이요 그 같은 그릇의 마실 만한 마실 것도 부정할 것이며
35) 이런 것의 주검이 물건 위에 떨어지면 그것이 모두 부정하여지리니 화덕이든지 질탕관이든지 깨뜨려버리라 이것이 부정하여져서 너희에게 부정한 것이 되리라
36) 샘물이나 방축물 웅덩이는 부정하여지지 아니하되 그 주검에 다닥치는 것만 부정하여질 것이요
37) 이것들의 주검이 심을 종자에 떨어질지라도 그것이 정하거니와
38) 종자에 물을 더할 때에 그것이 그 위에 떨어지면 너희에게 부정하리라
39) 너희의 먹을 만한 짐승이 죽은 때에 그 사체를 만지는 자는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며
40) 그것을 먹는 자는 그 옷을 빨 것이요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며 그 주검을 옮기는 자도 그 옷을 빨 것이요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41) 땅에 기어 다니는 모든 기는 것은 가증한즉 먹지 못할지니
42) 곧 땅에 기어다니는 모든 기는 것 중에 배로 밀어 다니는 것이나 네 발로 걷는 것이나 여러 발을 가진 것이라 너희가 먹지 말지니 이는 가증함이니라
43) 너희는 기는바 기어다니는 것을 인하여 자기로 가증하게 되게 말며 또한 그것을 인하여 스스로 더럽혀 부정하게 되게 말라
44)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바 기어다니는 것으로 인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45)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46) 이는 짐승과 새와 물에서 움직이는 모든 생물과 땅에 기는 모든 기어다니는 것에 대한 규례니
47) 부정하고 정한 것과 먹을 생물과 먹지 못할 생물을 분별한 것이니라)
생명있는 것을 꺼린다는 당시의 통념에 사로잡힌 자들도 있었다.
물론 고대에는 식물도 생명을 가진 존재라는 개념이 아직 발전되지 않았다.
또한 금욕 생활을 하고자 하는 열정에서 음식을 절제하는 자도 있었다.
이런 시대적 경향들에 그리스도인으로서 동조하는 자도 있었고 그렇지 않는 자들도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믿음이 있는'이란 말의 의미는 그 반대말 '연약한 자'란 말에 의해 결정된다.
즉, 연약한 자와는 달리 거리낌 없이 모든 것을 먹을 수 있는 확고한 믿음을 가졌다는 뜻이다(Meyer, Godet).
바울 역시 믿는 자는 모든 것을 먹을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의견을 같이 한다. 이것이 바울의 기본 입장이었다.
(딤전 4:3-4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 할 터이나 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4)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한편 믿음이 연약한 사람은 음식물을 채소로 제한한다.
여기서 '채소를 먹느니라'는 말은 헬라어로 '라카나 에스디에이'로서 육식과 정반대되는 채소만 먹는다는 뜻이다. 즉, 채소 외의 다른 것을 먹지 아니한다는 것이다.(Godet).
(창 9:3 무릇 산 동물은 너희의 식물이 될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잠 15:17 여간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그들이 음식물에 대해 이같은 태도를 취한 데에는 의도적으로 부정한 음식을 피한다는 종교적 이유(레 11장), 고기를 먹지 않으면 보다 건강하게 된다는 건강상의 이유, 그리고 살아있는 것을 먹기를 꺼려하는 의식적인 이유 등이 있다.
그러나 바울은 연약한 자들의 이 같은 자기 제한(먹거나 안 먹거나 하는 문제)에 대해 어떤 판단도 하지 않는다.
이것은 개인이 지닌 신앙의 분량에 관계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12: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롬 14:3]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못하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저를 받으셨음이니라
▶ 업신여기지 말고 - 바울은 믿음이 강한자와 약한 자가 범하기 쉬운 두 가지 위험한 태도를 지적하고 있다.
먼저 믿음이 강한 자는 약한 자에 대해서 '업신여기지 말아야'할 것을 명령한다.
여기서 이 용어는 '경멸함', '얕봄'(despise, KJV)의 의미로 쓰여졌다.
믿음이 강한 자가 연약한 자의 소심한 태도를 멸시하는 눈초리로 대한다면 그리스도의 공동체에서 아름다운 성도의 교제가 단절되고 말 것이다(Godet).
▶ 판단하지 말라 - 바울은 믿음이 연약한 자는 강한 자에 대해서 '판단하지 말라'(메 크리네토)고 경고하고 있다.
여기서 믿음이 연약한 자가 강한 자에게 대하는 태도를 언급하면서 '정죄'(카타크리시스)라는 표현보다 '판단'(크리네인)이란 단어를 쓴 것은 주로 강한 자들의 행위를 비판함으로 반응했기 때문이다(Lenski).
음식을 채소로만 제한하는 연약한 자들은 모든 음식을 무엇이든지 먹을 수 있는 자유를 가진 믿음이 강한 자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그들을 성급하게 판단하였던 것이다.
▶ 하나님이 저를 받으셨음이니라 - 이 말씀은 믿음이 강한 자나 연약한 자, 양쪽 다 언급한 것으로 특별히 믿음이 연약한 자에게 좀 더 강조점을 둔 것이다(Godet).
강한 자나 연약한 자는 결코 서로 멸시하거나 판단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바울은 이들의 잘못을 지적하면서 그 이유를 '하나님께서 저를 받으셨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이 강한 자든 연약한 자든 구별치 않고 양쪽 모두 자신과의 교제 관계에 들어오는 것을 용납(容納)하셨던 것이다(Robertson).
그러므로 바울은 믿음이 강한 자와 연약한 자 사이에 서로 멸시하고 판단하는 일에 계속된다면 그것은 아무 조건 없이 그들 모두를 용납하셨던 하나님을 배척하게 되는 것이라고 역설하고 있다(Calvin).
[롬 14:4] 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뇨 그 섰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제 주인에게 있으매 저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저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니라.
▶ 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뇨 - 바울은 위와 같은 사실을 논증하기 위해 하인과 주인과의 관계를 설명한다.
이 반문의 형식은 믿음이 강한 자나 약한 자, 즉 먹는 자와 먹지 못하는 자를 엄히 질책(質責)하고 있는 것이다.
집 주인을 제쳐두고 서로 멸시하거나 판단하는 하인이 있다면 그 같은 행동은 주인의 영역을 월권(越權)하는 행동이다.
이러한 그들의 행위는 주인 앞에서 정당화 될 수 없다(Harrison).
하인들의 행위는 오직 주인만이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하인들의 행위는 주인이 책임져야 할 부분임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하인'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둘로스'('노예')가 아니라 '오이케텐'('가사를 돌보는 머슴')이다(Bruce).
▶ 저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니라 - 바울은 계속해서 종의 행위에 대한 전적인 책임은 그를 세운 주인에게 달려있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주'(퀴리오스)는 일반적으로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리스도는 진실로 집 주인이다(Godet). 그는 그의 집 하인들을 다스릴 '권능'이 있다.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뒤나테이'는 바울의 서신서에서만 발견되는 동사로,
(고후 9:8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13:3 이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증거를 너희가 구함이니 저가 너희를 향하여 약하지 않고 도리어 너희 안에서 강하시니라)
하인을 다스릴 수 있는 주인의 왕적 능력을 묘사하고 있다(Dunn).
이처럼 믿음이 강한 자나 약한 자에게 있어서 멸시하고 판단하는 행위는 그를 세워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을 판단하는 일이 되기 때문에 바울은 서로를 멸시하고 판단하는 일을 엄격히 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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