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말리고 싶다

거듭난 삶 2009. 12. 29.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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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도 여전한 '의(醫)·치(齒)·한(韓)' 쏠림

입력 : 2009.12.29

 

병원들 경영난에 줄줄이 폐업하는데…

올해 서울의 한 한방병원이 폐업했고, 문 닫는 한의원은 셀 수 없을 정도로 요즘 한의업계 업황이 좋지 않다. 이 때문에 올해 한의대 졸업생 상당수는 개업은 꿈도 못 꾸고 아직 취업을 못한 경우도 많다. 의사들도 "(의료 환경이) 날로 열악해져 수많은 병·의원이 폐업했고, 많은 의사들이 경영난에 허덕이다 자살에 이르기까지 했다(의사협회 성명)"고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올해 대학입시에서 한의대를 포함한 '의·치·한(의대, 치대, 한의대)' 초강세 현상은 여전했다. 정시 모집에서 의·치·한은 1549명 모집에 1만3275명이 지원해 8.57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지난해 경쟁률 7.45대 1보다 오히려 경쟁률이 높아진 것이다.

가장 경쟁률이 높은 곳은 한의예과였다. 한의예과는 전국적으로 518명 모집에 5937명이 지원해 11.46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원광대 한의예과 다군의 경우 27명 모집에 1149명이 지원해 가장 높은 경쟁률(42.6대 1)을 보였다. 경기침체로 한의사들이 힘든 한 해를 보냈는데 대학입시에는 정반대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치의예과도 7.73대 1의 경쟁률을 보여 지난해 5.79대1보다 상승했고, 의예과는 지난해와 비슷한 7.02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진학교사들의 모임인 전국진학지도협의회 조효완 공동대표는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의학계열 등 전문직 관련 학과의 경쟁률이 높아져, 교차지원이 가능한 한의대에는 문과 학생들도 많이 몰렸다"고 말했다.

경쟁률만 높은 것이 아니다. 사설 학원들이 만든 대입 배치표를 보면, 서울대 의예과를 시작으로 전국 의·치·한을 한 바퀴 돈 다음 서울대 일반 학과가 나오고 있다. 일반 학과도 생명과학부, 화학생물공학부처럼 '의학전문대학원' 준비에 유리한 학과들이 상위 서열을 차지하고 있다. '의대 쏠림' 현상이 몇 년째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삼수생 박모(21)씨는 이번 대학입시에서 서울 Y대 자연과학계열, 지방 K대 의예과, 지방 D대 한의대에 나란히 지원했다. 박군은 "모두 합격하면 지방에 있는 K대 의대와 D대 한의대 순으로 선택할 것"이라고 했다.

입시 전문가들은 서울대 공대와 지방 의대를 동시 합격하면 지방 의대를 가는 추세가 올해도 여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만기 유웨이중앙교육 이사는 "의·치·한에 가면 취업이 잘되고, 잘 안되더라도 일반 학과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직에 있는 의사, 한의사들의 반응은 다르다. 의·치·한에 들어가면 돈 잘 벌고 사회적 지위가 높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는 환상이라는 것이다. 의사협회 좌훈정 대변인은 "10~20년 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돈이나 사회적 지위에 대한 기대를 갖고 의대에 지원하는 학생들이 있다면 말리고 싶다"며 "내가 10년 전 개원해 일 년에 이틀만 쉬면서 일했는데 아직도 개원할 때 대출받은 빚을 갚지 못하고 있다. 나 같은 사람이 허다하고 망하는 의사도 수두룩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