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후서

스데반은 죽음에 임하여 하늘을 우러러 보면서 말했다

거듭난 삶 2025. 9. 8.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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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연구 2

 

스데반은 죽음에 임하여 하늘을 우러러 보면서 말했다.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사도행전7:59)라고.

 

신약성서를 읽음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고서는, 우리들이 해득하기 어려운 것이 많이 있는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 - 의미 깊은 칭호이다. 삼칭 서로 연결되어, 구주의 성격에 관한 신자의 신앙은 유루없이 그중에 표시되어 있다.

 

예수 - 역사적 인물이다. 요셉의 아들로서 마리아의 태에서 나서, 본디오 빌라도의 때에, 죄인으로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사람이다.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의 이상의 사람, 유대인의 왕으로서,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실 이, 아브라함이 그날을 보기를 원한 것, 예언자가 대망한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예수는 그리스도시라는 것은 그의 제자가 부르짖은 바, 그리고 유대인이 오늘에 이르러도 거부해 마지않는 바이다.

 

예수는 예언자의 한 사람이라는 것은, 유대인이라 해도 승락하는 바이다.

하지만 그가 그리스도 즉 메시야라는 것은, 그들이 열렬히 반대하는 바이다.

 

초대의 신자가 유대인의 극렬한 박해를 받은 까닭은 그들이 판연히,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창도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란, 신자가 유대인에 대하여 발한 신앙적 전쟁의 선고였다.

 

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칭호이다.

 

예수는 다윗의 후손인 요셉의 아들이시고, 그리스도는 유대인의 왕으로서 그 구원자이신데 대하여,

 

는 인류의 왕으로서 그 구주이시다.

 

예수는 한 사람의 인간이다. 그리스도는 일국의 왕이시다. 주는 인류의 머리(으뜸)이시다.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불러, 신자는 예수를 선민의 이상, 만민의 구주로서 아는 것이다.

 

역사적인 예수는 보통 사람과 다름없이, 사람에게서 나서 사람같이 죽으셨다.

이상의 그리스도는 유대인의 이상으로서, 세계 만민의 빛은 아니었다.

 

그러나 영이신 주는 지금 계셔서, 모든 사람을 비추는 세상의 빛이시다. 그러므로 말한다.

 

주는 영이시라(고린도후서3:17).

 

또 말한다.

 

이제는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후에도 계시는 전능하신 자(묵시록1:8)라고.

 

옛날 있었던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 있고, 영원 후까지 계시는 전능자이시다.

주는 부활하신 예수, 지금은 성부의 우편에 앉아. 세계 만민위해 중보 하시며, 그들을 비추시고, 그들에게 참 생명을 주시며, 마침내 그들을 심판하시는 분이시다.

그리하여 예수는 그리스도이심에 그치지 않고, 인류의 산 구주이시다.

 

바울은 그렇게 믿었다.

우리들 오늘의 신자도 그렇게 믿어야 할 것이다.

단지 역사적인 예수를 믿는 것은 아니다. 또는 유대인의 이상을 우리들의 이상으로서 앙모하는 것은 아니다.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 지금도 살아계셔서 사람 사이에 역사()하시는 영이신 그를 믿는 것이다.

 

살아계셔서 만민을 통치하시는 주 - 그는 이러하신 이다.

 

그리스도 신자는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다(빌립보서2:11)고 나타내 말하는 자이다.

 

우리들은, 불교도가 나무아미타불이라고 부르듯이(염불하듯), 무의미하게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그 중에 있는 영원무량의 의의를 해득하여, 이것을 자기 신앙으로서 입으로 나타내 말해야 할 것이다.

 

신자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회의 회원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의 물음에 답하여, 사도 바울은 말한 것이다.

 

신자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해진 자, 부르심을 받아 성도로 된자, 즉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 즉 그(예수)에 대하여, 하나님께 대해 바치는 숭배를 바치는 자라고.

 

그러한 자가 모여 이룩된 것이 하나님의 에클레시아였다.

 

오늘의 그리스도 교회라는 것은 과연 그러한 것인가?

왈 도덕, 왈 자선, 왈 예수의 인격, 왈 인류의 진보라고.

 

오인은 깊이 성서를 연구하여,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하여 고린도에서 일으키신 하나님의 회, 오늘날 세상에 무수히 존재하는 소위 그리스도 교회라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고는, 아무리해도 생각할 수가 없다.

 

2: 그들의 곳에서도 우리들의 곳에서도, 모든 곳에 있어서 -

 

모든 곳에 있어서, 세계 만국, 복음이 전해진 모든 곳에 있어서라는 뜻이다.

 

바울 전도의 당시는, 신자라는 신자는, 세계 어느 곳에 있대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불렀던 것이다. 즉 예수를 살아계신 영이신 하나님이라 불러, 이를 공경했던 것이다.

 

오늘날 처럼 [예수숭배]를 조소하는 자 같은 것은 그 당시에 있어서는 신자로서 인정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 - 우리들이란 말은 께 관련된 말이지, 에 관련된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즉 개정영역성서에 따라, 다음과 같이 역해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각처(모든 곳)에서 우리들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에게까지 편지를 보낸다. 그는 그들의 주님으로서 또 우리들의 주님이시다라고.

 

즉 바울은 이 서간을 고린도의 신자에게만 보낸 것은 아니다. 동시에 또 만국의 신자에게 보낸 것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우리들의 주라고 하여 예수를 독점하기를 두려워하여, 그는 그들의 주님으로서 또 우리들의 주. 라는 말을 더 써넣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는 만민의 구주시라는 신앙이 여기서 또 중복된 것이다.

 

부르는 자에게 까지라고 있음은, [부르는 자와 함께]로 역할 수가 있다.

 

그 경우에 있어서는, 바울은 세계 만국의 신자를 대표하여 이 서간을 고린도에 있는 신자에게 써 보낸 것이라 해석해야 할 것이다. 이자 어떤 것으로 해석한대도, 전체의 의의에 있어서 틀리는 곳은 없다.

 

원하기는, 우리들의 아버지이신 하나님 및 주 예수 그리스도로 부터의 은혜와 평강, 너희에게 있기를

 

은혜,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오는 신자에게 과분한 은사이다.

평강, 이 은사를 받는 결과로서 마음에 생기는 안심이다.

 

하나님으로부터의 은혜에 대하여 신자의 마음에 평강 생긴다.

 

사람의 모든 생각하는 바에 지나는 평강(4:7참조)이란 이 평강이다.

 

우리들의 아버지이신 하나님 및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 은혜와 그 결과인 평강은, 아버지에게서 오고 또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온다.

 

은혜의 원천으로서, 아버지이신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는 동체이시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은 또 예수에게서 나온다고 한다. 동일한 은사를 급여하는 분으로서, 예수는 하나님의 지위에 서는 분이시다.

 

신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라 하고, 또 주 예수는 하나님과 함께 은혜를 주신다고 한다. 그리하여 초대 신자의 예수 숭배는 의심할 바도 없다. 지금 사람이 그를 미신가라고 부르는 것은 임의이다.

 

하지만, 신약성서의 기록하는바 초대 그리스도교라는 것이, 예수 숭배위에 선 것임은, 공평한 연구자가 부정하려 해도 할 수 없는 바이다.

 

(예수 숭배) 바울의 그리스도교였다. 이것을 도외시하고, 그의 서간은 알지 못한다.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4회나, 세절 사이에 예수의 칭호가 형태를 바꾸어 되풀이 되고 있는 것이다.

 

9절 끝까지에 9, 거의 귀찮을 정도로까지 이 이름이 중복되어 있다.

특히 그 안에 5회까지,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전칭호가 되풀이 되어 있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 아니어서는 안 된다.

 

예수는 다만 과거에 있었던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 또 다시 그리스도, 즉 유대인의 왕이 아니라, 이방인 및 세계 만민의 구주시라는 것은, 바울이 거듭하고, 거듭하고, 고조에 고조를 더하여, 말하고자 하는 바였으리라고 생각한다. 실로 바울의 신앙을 일언으로 축소시켜 말한다면 이 칭호로 귀결 되었던 것이다.

 

마치 호-넹의 신앙은 나미아부타불로서 다 되고, 니찌텡의 신앙은 나무묘호렝게꼬우에 귀결되는 것과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예수의 신성을 주창하고, 동시에 또 그리스도의 인성을 주창한다.

 

예수의 신성을 부인하는 것은 이단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말했다.

 

사람이, 성령에 의하지 않고서는 예수를 주라 할 수 없다.

즉 하나님의 영은, 예수를 주, 즉 지금 살아계시는 편재의 주로서 사람에게 나타내 보이신다는 것이다. 바울의 이 말과 상대하여, 사도 요한은 말했다.

 

무릇 예수 그리스도가 육체로 되어 오셨다는 것을 고백하는 영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무릇 예수 그리스도가 육체로 되어 오셨다는 것을 시인하지 않는 영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다. 즉 그리스도에게 대적하는 영이다라고.

 

즉 하나님의 영은, 예수가 주 곧 하나님이시라고 증거하고, 또 그는 사람이라고 증거하는 것이다. 동시에 또 예수는 사람이 아니라고 함도 이교이다. 참된 신앙은, 예수는 하나님이시라 하고 또 사람이라고 한다. 예수는 신인(神人)이시다.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복음의 진수는 여기에 있다.

 

베드로가 예수에 대하여,

 

주는 그리스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태복음16:16)고 한 때에, 복음의 기초는 놓여졌던 것이다.

 

하나님의 에클레시아는 이 신앙의 바위(반석)위에 세워졌던 것이다.

이것은, 알기에 어려운 오이이다. 하지만도 그리스도교는 드디어 이에 귀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 - 우리가 의거하여 구원받을 이름은, 천상천하 이것을 제외하고는 달리 없는 것이다.

 

(사도행전 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