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후서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거듭난 삶 2025. 9. 10. 00:04
728x90

인사말

[분열된 교회를 향한 메시지]

 

성 경: [고전 1:1-9]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

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4)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 이는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6)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 되어

7)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8)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9)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고전 1:1]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바울과 - 바울은 하나님이 자신을 친히 부르셨다는 주장이 필수적으로 변화되어야 할 필요를 느꼈다.

 

그 이유는 고린도 교회에 여러 당파들이 있어서, 바울의 사도권을 부정하려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12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

 

9:1-12 내가 자유인이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2)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사도이니 나의 사도 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

3) 나를 비판하는 자들에게 변명할 것이 이것이니

4) 우리가 먹고 마실 권리가 없겠느냐

5)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믿음의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

6)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리가 없겠느냐

7) 누가 자기 비용으로 군 복무를 하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열매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 떼를 기르고 그 양 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8) 내가 사람의 예대로 이것을 말하느냐 율법도 이것을 말하지 아니하느냐

9) 모세의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10) 오로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 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

11)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의 육적인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12)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여기에서 '사도'(πόστολος 아포스톨로스)라는 말은 '보냄을 받은 자'란 의미로, 전권(全權)을 위임받은 특사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사도'라는 직분은 원래 오직 그리스도가 임명을 해서 직접 보낸, 열 두 제자만을 가리켰다.

그러다가 초대 교회에서는 이보다 더 넓은 의미를 갖게 되었다.(Cole).

 

여기에서 바울은 자신이 다메섹 도상에서 직접 예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사실을 근거로 해서,

 

(9:15 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또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

 

자신의 사도됨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을 따라 된 것임을 명백히 한다. 그는 자신이 전하는 복음의 권위를 옹호하기 위하여 자신의 사도직을 변호한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바울이 본서의 첫머리에서 자신의 신분을 사도라고 밝힌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형제 소스데네 - 그가 바울과 함께 본 서신을 집필하였다는 증거는 전혀 찾아볼 수 없으나 고린도 교인들이 소스데네에 대해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여기에서 언급했을 것이다.

 

소스데네는 고린도의 유대인 회당의 회당장이었으며, 유대인들이 총독 갈리오에게 바울을 송사(訟事)했을 때 바울 대신에 그들에게 매를 맞은 사람이었다.

 

(18:12-17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에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법정으로 데리고 가서

13) 말하되 이 사람이 율법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 하거늘

14) 바울이 입을 열고자 할 때에 갈리오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너희 유대인들아 만일 이것이 무슨 부정한 일이나 불량한 행동이었으면 내가 너희 말을 들어 주는 것이 옳거니와

15) 만일 문제가 언어와 명칭과 너희 법에 관한 것이면 너희가 스스로 처리하라 나는 이러한 일에 재판장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고

16) 그들을 법정에서 쫓아내니

17) 모든 사람이 회당장 소스데네를 잡아 법정 앞에서 때리되 갈리오가 이 일을 상관하지 아니하니라)

 

그런데 소스데네라는 이름은 당시에 흔한 이름이었기 때문에 그가 반드시 본절의 인물과 동일하다고 보기는 어렵다.(Hodge, Alford, Morris).

 

 

[고전 1: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고린도에 있는 - 고린도는 기원전 146년에 무미우스(Mummius)에 의해 파괴되었으나 그로부터 80년 후인 기원전 44년에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에 의해 복구되었다.

그 후 고린도는 급속히 재건되어 아우구스토 황제에 이르러 아가야(Achaia)의 수도가 되고 바울 당시에는 인구 60만을 헤아리는 대도시로 발전했다.

당시에 이 도시는 상업의 도시로 번창했으나 반면에 정신적인 측면에서는 극히 암담하고 무질서하였다.

 

그 도시인들은 다신교를 숭배했고(17:16-22) 그들의 생활은 음란했다.

 

(17:16-22 바울이 아덴에서 그들을 기다리다가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하여

17)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장터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

18) 어떤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 하고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전하기 때문이러라

19) 그를 붙들어 아레오바고로 가며 말하기를 네가 말하는 이 새로운 가르침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 수 있겠느냐

20) 네가 어떤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 주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노라 하니

21)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이외에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22)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따라서 '고린도화 하다'라는 말은 '아프로디트(Aphrodite) 여신을 숭배하며 추악한 음행을 행한다'는 의미가 될 정도였다.

 

하나님의 교회 - 바울이 고린도라는 지명과 함께 '하나님의 교회'를 언급한 것은 기독교의 고귀한 이상과 우상 숭배의 허탄함을 극명하게 대조해 주는 역설적인 표현이다.

 

고린도 교회가 하나님에게 속한 교회임을 나타내는 이 표현은,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온전한 주권과 하나님의 교회를 함부로 판단하지 않으려는 바울의 겸손함을 잘 드러내 준다.

바울은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하여 모이는 교회를 헬라 세계의 세속적인 '엑클레시아'와 구별하는 것이 필요했을 것이다(Mare).

 

당시의 세속적인 세상의 총회(엑클레시아)는 공공이익에 관련되는 문제를 토의하고 결정하기 위해, 도시 국가의 시민들이 모이는 집합체였다.

 

(19:39 만일 그 외에 무엇을 원하면 정식으로 민회에서 결정할지라)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연합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고 묘사한다.

 

'거룩하여지고'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었고 그 결과 이루어진 상태가 현재에도 계속 유지됨을 의미한다.(Grosheide).

 

구약에서는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들 등이 하나님의 소유로서 거룩하다고 불리워졌다. 그리고 신약에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들을 지칭하여 거룩한 자들이라고 불렀다.

 

(30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6:11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바울이 여기에서 고린도인들을 '성도''거룩하여진' 자들로 칭했다고 해서, 고린도 교인들 모두가 참 신자였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의심할 바 없이 고린도 시가 부패했던 것처럼, 교회도 교리와 실천에 있어서 상당히 부패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하나님의 교회로 인정하고 있다.(Calvin).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 '각처에서'라는 말은 이 서신이 고린도 교회 이외의 다른 교회에서도 읽혀진 것을 목적으로 기록되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고전 1: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 이 구절은 전형적인 바울의 인사 형식이다. 당시 헬라 세계의 일반적인 인사말은 삼인칭을 사용했지만 바울은 일인칭이나 이인칭을 사용하여 휠씬 가까운 친밀감을 표현하였다.

 

한편 바울이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로 표현하는 것은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사람들을 창조하셨고 우리를 자녀로 삼으셨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수 그리스도로 부터 - '예수 그리스도'란 말은 본장의 1절부터 9절까지 아홉 번이나 반복되었다. 바울의 문체의 독특성 중의 하나는 핵심되는 단어를 계속하여 되풀이하는 것이다.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전하는 복음의 핵심적인 내용이 바로 그리스도이심을 명백히 보여준다.

 

한편 전치사 '부터(아포)는 하늘의 은사들이 그리스도 때문에 신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 이런 형식의 인사말은 바울이 자주 사용하는 문구이다.

 

(1:7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1:3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1: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1: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은혜'란 하나님이 인간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값으로 계산 불가한 것을 대가없이 주시는 선물이다.

 

그리고 '평강'은 히브리인들의 일반적인 인사말 '샬롬'('평화')에서 온 말로, 분쟁과 싸움이 없다는 소극적인 의미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축복이 있어서 풍요로운 영적 상태에 있음을 의미한다(Morris).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을 향하여 '은혜와 평강'을 기원한 것은 그들이 구원을 받은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고

 

(고후 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2:8-9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그리스도께서 그의 구속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평화를 이루셨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