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골

나의 인생길

거듭난 삶 2010. 1. 9.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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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인생길은?                         


(전 1:2~11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2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3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4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5 해는 떴다가 지며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6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불 던 곳으로 돌아가고 7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8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 9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 10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오래 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11 이전 세대를 기억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가 기억함이 없으리라.  

 

딤후 4:6~8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7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1. 들어가는 말


  오늘 읽은 두 군데의 성경본문에서 우리는 두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솔로몬 왕과 사도 바울, 이 두 사람 중에서 누가 더 행복하고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다고 생각하십니까? 두 사람은 각자 다른 시대에 다른 인생을 걸어왔지만, 각자 인생 노년에 이르러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진심이 담긴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달려가야 할 올바른 길을 찾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내가 먼저 하나님께 인정함을 받고, 내 가정과, 직장, 사업이 복을 받으시는 복된 2010년 새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2. 솔로몬 왕의 삶


  (1) 세상의 모든 것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솔로몬이 다윗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자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렸습니다. 솔로몬이 일천 번제 드리기를 마쳤을 때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찾아 오셔서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대하1:7)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 솔로몬은

“내게 지혜와 지식을 주사 이 백성을 잘 다스릴 수 있도록 하여 주옵소서”(대하1:10)고 대답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말을 들으시고 기뻐하시며 축복하셨습니다.


   역대하1:11~12절을 (P656).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이르시되, 이런 마음이 네게 있어서 부나 재물이나 존영이나 원수의 생명 멸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장수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내가 너를 치리하게 한 내 백성을 재판하기 위하여 지혜와 지식을 구하였으니 그러므로 내가 네게 지혜와 지식을 주고 부와 재물과 존영도 주리니 너의 전의 왕들이 이같음이 없었거니와 너의 후에도 이같음이 없으리라”


   하나님이 축복하신 대로 솔로몬은 지혜와 지식으로 백성들을 잘 다스렸고, 많은 부와 재물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 축복에 대하여 솔로몬은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전도서 1장 12절에

“나 전도자는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라고 했습니다. 그는 왕으로서 최고의 권력을 누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16절에

“내가 마음 가운데 말하여 이르기를 내가 큰 지혜를 많이 얻었으므로 나 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자보다 낫다하는 말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2장 2절에 자신을 즐겁게 하기 위하여 웃음 희락에 대하여 논의하였고,

 3절에는 에 취하여 육신을 즐겁게 만들어 보았고,

 4절에 사업을 크게 벌여보기도 했고, 5절에 좋은 정원연못을 만들어 집을 아름답게 꾸며보기도 하였고,

 8절에 은금 보배를 쌓았고, 또 노래하는 남녀을 많이 두었다고 했습니다.

 10절에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 정도의 인생이라면 가장 복받고 성공한 사람이 아닙니까?

여러분 솔직히 이런 솔로몬의 삶이 부럽지 않습니까? 이 말씀을 듣고 있는 분 중에서

‘나도 내일 죽더라도 오늘 하루만이라도 그렇게 살아 보았으면 원이 없겠다’라고 생각하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어떤 주일학교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부자와 거지 나사로’에 대한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그리고는 학생들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여러분은 부자와 거지 나사로 중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세요?” 그 때 학생 중 하나가 손을 번쩍 들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네, 선생님. 세상에 살았을 때에는 부자와 같이 되고요, 죽으면 나사로와 같이 되고 싶어요”라고 대답했답니다.


   여러분도 솔로몬처럼 부귀와 영화를 누리며 살고 싶으시겠지요? 솔직히 저도 그렇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보시고 이런 모든 축복을 주셨습니다. 솔로몬의 지혜와 富貴榮華는 분명히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이 시간 하나님께서 우리 모든 성도님들에게도 솔로몬에게 허락하셨던 복을 내려주시게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이 여기까지에만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요한3서 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하였습니다.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복을 받기 전에 네 영혼이 잘되는 축복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혼이 잘되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령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기를 사모하여야 합니다. 믿음의 그릇을 크게 해야 합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여야 합니다.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솔로몬이 자신을 위하여 구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직분, 이스라엘의 왕으로의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한 지혜와 지식을 구하였을 때 부와 재물과 존영을 보너스로 받았던 것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2) 자신의 삶이 헛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솔로몬 왕이 이런 삶을 살았다면 마땅히 이렇게 고백해야 할 것입니다.

 “나는 가장 행복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그의 고백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본문 1장 2절에 보면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라고 했습니다. 짧은 한 절 말씀 속에 '헛되다'는 표현을 5차례나 반복 사용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헛되고 헛된 육신의 안일을 위하여 자신의 인생을 허비하며, 잠시 세상의 낙을 즐기기 위하여 자신의 영혼이 영원한 지옥의 저주에 떨어지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눈을 들어 세상을 보십시오! 소가 도살장으로 끌려가듯 무거운 죄의 짐을 지고 죄악과 멸망의 도성으로 가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으십니까? 혹시 그 무리들 속에 여러분의 사랑하는 친구와 이웃의 모습이 보이지가 않습니까? 그들에게 ‘이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는 솔로몬의 고백을 들려주어야 합니다.


   계속하여 솔로몬의 고백을 들어봅니다. 본문 3절부터 8절에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해는 떴다가 지며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


   우리는 탕자의 비유를 잘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로부터 자신의 유산을 미리 받아서 허랑방탕하게 살았던 탕자, 그의 수중에 돈이 있을 동안에는 가장 행복한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 돈이 떨어지자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 조차도 배불리 먹지 못하는 비참한 처지에 빠졌습니다. 그제서야 탕자는 아버지와 함께 있는 동안이 가장 행복한 시기임을 뒤늦게 깨닫고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세상의 즐거움과 쾌락은 잠깐이요,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거하는 것이 참된 행복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또 한 어리석은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 부자는 자기 밭에서 소출이 풍성하자 창고를 크게 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눅12:19)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눅12:20)


   그렇습니다. 솔로몬 왕이 세상에서 많은 것을 소유하고, 누렸으나 그의 인생 노년에 이르러 내린 결론은 “헛되고 헛된 것”뿐 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솔로몬 왕은 다음과 같은 말로 자신의 생각을 맺고 있습니다. 전도서 12장 13절과 14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



   이제 솔로몬과는 다른 삶을 살았던 사도 바울을 만나보십시다.


3. 사도 바울의 삶


  (1) 사도 바울의 일생은 주님만을 위한 삶이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많은 것을 구비하였던 사람이었습니다. 빌립보서 3장5-6절에 보면

“내가 팔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포기하였습니다. 빌립보서 3장7-9절에서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처음부터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교회를 크게 핍박하고 훼방하던 자였습니다. 그는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는 현장에 있었습니다. 그는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살기가 등등하여 예수 믿는 사람을 모조리 잡아들이기 위하여 다메섹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주여, 뉘시니오니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 예수님을 만난 이후로 교회의 핍박자였던 그는 새롭게 변화되어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귀한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후일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 13-14절을 보면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핍박하여 잔해하고,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유전에 대하여 더욱 열심히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은 죄인의 괴수와 같은 자신을 하나님께서 충성된 종으로 부르셔서 귀한 직분을 맡겨주신 것을 감사하였습니다. 디모데전서 1장 12-13절을 찾아 읽어보겠습니다.(신약성경 337페이지입니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고백입니까.


   여러분!

  우리는 사도 바울만큼 많이 배우지도 못하였거나, 믿음도 부족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충성되이 여겨 주님의 귀한 백성으로 불러주셨습니다.

 나를 부르시고, 직분을 맡기신 분은 우리 주님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맡겨주신 사명과 직분에 충성을 다하시기를 바랍니다.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가 한 사람도 없기를 바랍니다. 롯의 처가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된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부르시고, 사명을 맡겨주신 주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18-20) 그리고,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고전4:2)이며,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2:10)


   사도 바울의 가는 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을 들고 나아가는 그의 앞길에는 많은 위험과 고난이 뒤따랐습니다. 그는 자신이 복음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수고를 하였는지에 대하여 고린도후서 11장23절-27절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과 받은 은혜가 너무 크기에 자신을 ‘죄인의 괴수’ 라는 가장 낮은 자리까지 내려갔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존귀히 여김을 받기를 원하였던 것입니다. 솔로몬의 삶에 비하여 사도 바울의 삶은 너무 힘들고, 어렵고, 그 십자가가 너무도 무거워 보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환경에 처하게 되었다면 어떻게 하였을까요? 예수를 믿으면 만사형통일 줄 알았는데 내 인생에 풍파가 여전히 있고, 핍박과 환난이 있는 것에 대하여 원망하였을 것입니다. 마치 엘리야가 악한 이세벨의 위협에 놀라 도망하던 엘리야가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여호와여 이제는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지금 나의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 나는 내 조상보다 조금도 더 나을 것이 없습니다”(왕상19:4)라고 한 것처럼 깊은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지지는 않았을까요.


  여러분들에게 물어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사도 바울과 같이 살기를 원하십니까?

 ‘나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길에 고난과 핍박이 다가온다 하여도 사도 바울처럼 예수님만 바라보고 믿음으로 살아가리라’ 고 할 수 있는 믿음의 소유자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찬송가 355장)

        부름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라

        괴로우나 즐거우나 주만 따라 가오리니

        어느 누가 막으리까 죽음인들 막으리까

        어느 누가 막으리까 죽음인들 막으리까


  (2) 사도 바울의 마지막 고백은 승리의 함성이었습니다.


   디모데후서를 기록하고 있는 사도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로마의 어둡고 축축하고 추운 지하 감옥에 갇혀있습니다. 그 동안 자신을 따르던 사람들도 다 떠나 인간적으로 외로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이제 자신이 죽을 날이 멀지 않았음을 깨닫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6-8절입니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사도 바울은 그가 처해있는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그의 고백 속에는 기쁨과 감사가 넘치고 있습니다. 조금도 어두움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도대체 이런 기쁨과 감사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하얀 파도가 밀려오는 바다의 백사장을 두 어린아이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으면서  예쁜 조개껍질을 줍고 있었습니다. 예쁜 조개껍질을 보면 서로 먼저 차지하려고 다투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한 아이가 아름다운 진주가 들어있는 조개를 줍게 되었습니다. 그 아이는 진주조개를 소중하게 자기의 호주머니에 넣었습니다. 값진 보화를 가진 이 아이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조개껍질에 대하여 더 이상 욕심을 부리지 않았습니다. 열심히 주운 조개껍질을 친구에게 나누어주었지만, 조금도 아깝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조개껍질을 먼저 차지하겠다고 다투지도 않았습니다. 그 아이의 마음에는 기쁨이 충만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신 사람들에게는 항상 기쁨이 충만합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8:35)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가 없으리라”(롬8:38-39)


   예수님께서는 양으로 생명을 얻게하고, 더 풍성히 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롬5:8)

 예수님께서는 여러분과 나의 모든 죄와 저주를 연약한 두 어깨에 지시고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생명까지 아낌없이 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기만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충성된 종으로 택하셔서 귀한 직분을 맡겨주셨습니다. 우리가 우리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하나님의 그 은혜를 만분의 1이라도 갚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수고와 봉사를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우리의 행한대로 갚아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4. 맺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새로운 2010년도를 맞이하였습니다. 나를 구원하시고, 충성된 종으로 여기시어 직분을 맡기신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성도들이 되십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인간의 결심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스가랴 4장 6절에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도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도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금년에 더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하여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기도합시다.


   우리들의 살아온 날을 돌아봅시다. 우리는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왔으나 잠시 있다가 없어질 세상의 것을 위하여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주는 것은 슬픔과 고통과 눈물뿐이었습니다.  참된 기쁨과 안식을 주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들에게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죽음은 내가 초청하지 않아도 찾아옵니다. 우리가 결코 피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 50년 뒤에 여기에 있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육신의 죽음과 동시에 이 세상의 것은 하나도 볼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죽었다가 다시 눈을 뜨게 될 때 우리가 주님의 품에 안겨 있지 않고 뜨거운 지옥 불 가운데 처해 있다면 얼마나 슬픈 일이겠습니까? 이 시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세상에 살 동안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영원한 생명과 상급이 결정된다는 사실입니다.


   지나가 버린 시간은 결코 다시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새롭게 맞이한 2010년, 지금 이 시간도 곧 순식간에 지나가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과거에 내가 어떤 삶을 살았든지 상관없이

오늘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아가며, 앞으로 어떤 길을 달려갈 것인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만났던 두 사람 중에서 솔로몬은 세상 사람들이 행복의 기준으로 삼는 부와 재물과 쾌락을 다 누렸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의 고백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는 후회였습니다. 


   반면 사도 바울은 복음을 위하여 세상에서 가장 적게 누리고 살았습니다. 넓은 길로 가지않고 좁은 길을 택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고백은 큰 기쁨과 소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나의 달려갈 길을 다 마쳤다. 선한 싸움을 싸웠다. 이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구나” 라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사람은 우리 인생을 ‘매일매일 새롭게 시작되는 드라마’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主演으로 활동한 인생 드라마가 끝나는 순간 내가 심은대로 하늘나라의 상급이 결정될 것입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주리라”(계22:12)고 하셨습니다.


   육신만을 위해 살다보면 타락으로 떨어집니다. 그러나 주님을 위하여 희생한 만큼 땅에서도 축복을 받고, 하늘나라에서 받을 상급이 쌓여갑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을 예비하고 기다리십니다. 여러분은 어느 길로 달려가고 있습니까? 지혜 없는 자가 되지 말고 지혜 있는 자가 되어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함으로 큰 은혜를 누리는 생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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