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골

내게로 끌고 오너라

거듭난 삶 2010. 1. 27.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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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어 내게로 끌고 오너라.

 

 

 마21:1-11 저희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두 제자를 보내시며 2 이르시되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너라 3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 4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5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6 제자들이 가서 예수의 명하신대로 하여 7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8 무리의 대부분은 그 겉옷을 길에 펴며 다른이는 나무 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질러 가로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10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가로되 이는 누구뇨 하거늘 11 무리가 가로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

 

미국의 대통령을 지냈던 아이젠하워는 지독한 골초였다고 합니다. 하루에 담배 세 갑을 태웠다니 그의 코에서는 옹기점 굴뚝처럼 거의 쉴새없이 연기를 뿜어대는 형편이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건강했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맥박이 빨라지고 호흡이 이상해져서 병원에 갔습니다. 진찰을 하고 난 의사는 담배를 끊어야 한다며 금연을 명령했습니다. 그는 의사의 지시대로 즉시 담배를 끊었고 점점 건강이 회복되고 정상이 되었답니다.

 

쉴 새 없이 피워대던 담배를 완전히 끊고 난 후 어떤 친구가 말하기를 담배를 피우지 않는 당신 사무실에서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면 기분이 나쁘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아이젠하워는 웃으면서 대답하기를

 

"천만에 나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을 보면서 도덕적 우월감을 느낀다네"라고 대답을 했답니다. 즉 그 말의 의미는 나는 담배를 끊을 수 있는 의지력이 있으나 그 사람들은 그런 의지력이 부족하다는 것에서 기분이 좋다는 말입니다.

 

사람이 오래된 버릇과 익숙한 습관을 버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나의 습관이 영적으로나 건강상으로 나에게 해를 끼치거나 건강 등을 약하게 하는 요인이 된다면 아무리 어려워도 끊어야 합니다.

 

 

매여 사는 인생들.

 

오늘 읽은 본문 말씀을 보면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명령하시기를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너라"(2절) 하셨습니다.

 

지시하신대로 마을로 가 보니 역시 나귀가 매여 있었습니다. 매여 있는 나귀를 보게 되니 매여서 사는 인생을 생각하게 됩니다.

 

나귀는 사람의 필요에 의해 쓰여지기 위해 사람이 키우고 있는 가축입니다. 나귀가 매여 있듯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무엇인가에 매여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축은 고삐에 매여 있고 사람들은 고정관념이나 오랜 습관에 매여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질병에, 어떤 이는 사치나 투기성 오락 등의 악한 습관에 빠져서 사는데 이것은 본인도 모르는 악한 영에 매여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이 이처럼 시시한 것들에게 매여 있으면 더 크게 발전하지를 못하고 앉은뱅이처럼 주저앉아 하늘도 못보고 땅에 것들에 매여서 그것이 힘들고 고통인줄도 모르고 조물주께서 주신 귀한 일생을 펴보지도 못하고 쓸모없게 아까운 인생을 낭비하다가 생애를 마감하고 맙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눅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느 날 모험을 좋아하는 소년이 산에서 독수리 알 하나를 주어다가 암탉이 품고 있는 알속에 살며시 집어넣었습니다. 20여일이 지나서 알속에서 병아리와 독수리가 나왔습니다. 독수리 새끼는 병아리들과 똑같은 환경에서 병아리들이 하는 짓을 하면서 병아리처럼 자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독수리 한 마리가 지붕 위에서 원을 그리며 날아오자 모든 닭들이 놀라서 달아나고 여기저기 구석진 곳을 찾아 숨느라고 야단들이었습니다. 참으로 위협적이고 멋있는 독수리의 비행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린 독수리가 보니까 자기가 공중에 나는 독수리를 닮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독수리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자기는 닭이 아니라 독수리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자랄 만큼 다 자란 독수리는 이제 날개를 움직여 허공으로 힘껏 날아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 자신이 공중으로 떠오르는 것입니다. 공중을 날게 된 그 독수리가 닭의 땅 만보고 흙만 파고 헤메이던 삶의 세계에서 벗어났습니다.

 

지금까지 자기가 닭인 줄 알고 닭처럼 살아온 젊은 독수리는 하늘로 치솟아 올랐습니다.

사람이 고정관념의 틀에 매여 있는 한, 그가 제 아무리 자기만의 고유한 달란트를 가지고 있어도 그 재능을 써보지도 못하고 인생은 끝나게 될 것입니다.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코끼리는 코에 대단한 힘이 있답니다. 1톤 정도의 무게를 들어 올릴 수 있는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동물이랍니다.

그런데 써커스단의 작은 말뚝에 매여 놓은 가느다란 쇠사슬에 묶여 있어서 주인이 시키는 대로 따르고 얌전히 앉아 주는 것이나 먹고 있는 순한 코끼리를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어려서부터 코끼리를 묶여서 살도록 훈련을 시켜 놓았기 때문입니다.

 

크고 힘센 코끼리가 작은 말뚝에 메어서 붙잡여 살아가듯이 아담의 후손된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그 죄성으로 말미암아 공중권세 잡은 사탄의 올무로 묶여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 본인은 사단의 올무에 메어있는 생인지도 모르는 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머니 모태에서 태어 나오자마자 앙앙앙...하고,

우는 것으로부터 인생을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두려움을 배우고, 외로움, 미움, 싸움, 거짓말, 이기심, 시기심, 외로움, 더 나아가 자살에 대한 충동, 힘든 고역(苦役) 등 등의 마귀적 삶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힘든 일이 생기거나하면

 

‘아이고 힘들어 죽겠다, 배고파 죽겠다, 미치겠다, 못살겠다... 등등의 사망으로 이르는 메여 사는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삶이 바로 인생에게 주어진 운명이구나 하고 그것은 인생에서 피할 수 없는 숙명인것 처럼 알고 사단의 올무에 묶인 채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 원인은 인류의 조상 아담의 범죄로 에덴에서 쫓겨난 결과로 된 것입니다.

 

 (롬5: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그런데 그 사망에이르는 매어있는 인생들을 해방시켜 주려고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신 것입니다.

 

 (요1:9-13)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우리 인생들도 써커스단의 코끼리 같이 살아가는 굴레적 운명을 벗어나야 합니다. 거기에서 내가 벗어날 뿐 아니라 그렇게 매어 있는 줄도 모르고 운명처럼 살아가고 있는 인생들을 그 굴레에서 벗어 날수 있고 자유 할 수 있는 운명으로 바꾸어 줄 수 있는 인생으로 변화시켜 주어야 합니다.

 

 (롬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계 21:3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5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 없이 주리니 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 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죄와 사망의 사슬에 얽매인 사람들, 구원받을 수 없는 종교에 얽매인 사람 들, 이 세상 오락과 향락에 매여 있는 사람들을 풀어서 예수님을 만나게 해 주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잘못 된 이념과 오랜 습관에 매여 있는 사람들을 풀어 주는 것이 크리스챤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묶여 있어서는 안 될 것들에게 결박되어 있는 사람들을 풀어 주고 그들을 주님께 인도하시기 바랍니다.

 

 (눅4:33)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크게 소리질러 가로되 34 아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35 예수께서 꾸짖어 가라사대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귀신이 그 사람을 무리 중에 넘어뜨리고 나오되 그 사람은 상하지 아니한지라.

 

 (요11:43)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44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귀신이 사람을 붙잡고 불에도 물에도 쓰러뜨리고 있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들을 결박하고 있는 악령에서 해방시켜야 합니다. 세상에 매여 있는 자를 찾아 구원하려고 세상에 오신 예수님 앞으로 매인 자를 풀어 이끌어 오시기 바랍니다.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요10:10) 도적(사단)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사람)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7:37)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요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예수님에게만 매여있는 인생들을 풀어서 자유하게하는 능력이 잇습니다.

 

 (요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주께서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산 벳바게 맞은 편 마을에 가서 매여 있는 나귀를 풀어 오라고 하셨습니다.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들어가실 때 나귀를 타고 들어가고 싶어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귀가 필요하셨습니다.

똑같은 나귀라도 누구에게 쓰이느냐,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서 그 가치는 달라집니다. 보통 나귀는 짐을 나르는데 쓰입니다. 사람을 태우는 교통수단으로 쓰인다면 더 값지게 쓰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나귀는 예수님을 태우고 예루살렘 성에 들어갔습니다. 나귀의 영광입니다.

 

 사울을 이스라엘 왕으로 세웠으나 그의 불순종과 죄악으로 그를 대신할 새로운 왕을 하나님이 찾고 계셨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를 이새의 집에 보내어 그 아들들 중에서 이스라엘의 왕이 될 사람이 있으니 찾으라고 하셨습니다.

이새에게는 아들이 여덟이나 되었습니다.

사무엘은 이새의 큰아들 엘리압을 보고 그가 하나님이 쓰실 사람인가 생각 했습니다. 잘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

 

 하나님은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본다고 하셨습니다.

 

 일곱 아들들을 다 보고 난 사무엘은 아들이 더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들에서 양을 치고 있는 막내가 하나 더 있다고 했습니다. 사무엘은 그 아들을 데려오라고 하여 다윗이 들에서 돌아 왔습니다. 다윗이 돌아오자 사무엘은 그 소년 다윗의 머리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부모나 형제들에게는 아직도 어리고 미숙하게만 보여 졌던 다윗은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쓰시고자 찾으시고 점찍어 둔 쓸만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들에서 양이나 염소 등의 짐승들이나 먹이는 목동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중심을 보시고 다윗에게 기름을 붓게 하셨고, 기름부음을 받은 다윗은 하나님의 신에 크게 감동 되었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아서는 어리고 부족했던 다윗을 하나님이 선택하여 쓰셨습니다(삼상16:13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하나님의 기준으로는 가장 쓸 만한 재목이었습니다. 여러분들도 하나님의 기준에 쓰임 받을 수 있는 다윗같은 믿음의 소유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한편 다메섹에 사는 아나니아라고 하는 주님의 제자가 기도하는 중에 예수님의 부르시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직가라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 머물고 있는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자가 기도하고 있으니 그를 찾으라 는 음성이었습니다. 그때 아나니아는 대답하기를

 

 "제가 듣기로는 그 사람은 성도들에게 많은 해를 끼친다고 들었고 다메섹에 온 것도 믿는 사람을 결박할 권세를 가지고 왔다고 하던대요"라고 말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나니아는 사울을 찾아 나섰고 그를 만나서 안수하면서

 

 (행9:15-18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16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가로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침례를 받고)

 

 주님이 그 바울을 크게 쓰셨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볼 때는 악질적인 기독교 박해자요, 핍박자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를 택하셨고, 다듬어서 쓰임받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똑같은 일들을 반복하고 계십니다. 쓸모없을 것 같은 여러분과 나를 쓰시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은 나를 택해서 쓰고 싶어 하십니다.

 

 여러분, 어떻게서 든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인물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하나님을 모르고 있는 불신자일 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쓰고 싶어 하십니다. 매인 것에서 풀려서 주님께로 부터 인도함을 받으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명하신 대로 끌고 온 제자들.

 

 제자들은 매인 나귀를 끌어오라는 말씀을 듣고 예수의 지시하신 대로 했습니다. 나귀와 새끼를 끌어 온 것입니다.

제자의 임무는 배우는 사람입니다. 배우는 사람은 가르치는 스승의 말을 잘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명령은 누구의 소유인지도 모르는 남의 나귀를 무조건 끌고 오라 하신 것입니다. 선 듯 나서기 곤란한 일입니다. 조금은 어렵고 당혹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불만 없이 순종했습니다. 이것이 제자로서 주님을 섬기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가까운 벳바게까지 걸어 오셨습니다. 이제는 나귀를 빌려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갈 생각이십니다.

그는 부요 하신 자로서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고후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제자들이 끌고 온 나귀는 안장도 없는 아직 사람을 태워보지 않은 나귀였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모시기 위해서 나귀등에 자기들의 옷을 벗어 편안한 안장용으로 쓰이게 해드렸습니다. 이것은 주님께 대한 존경과 사랑의 표현입니다.

 

 자기는 벗으면서 예수님의 자리를 마련해 드리는 제자들에게서 스승을 존경하는 제자의 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비록 보잘것없고 땀내 나는 옷이었지만 거기에는 주님을 존경하는 마음과 순종심이 진하게 배어 있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한 여자가 자동차를 몰고 가는데 갑자기 엔진이 꺼졌습니다. 겨우 차를 도로변에 세우고 지나가는 차를 향해 손을 흔들었으나 모두들 그냥 지나갑니다.

한참 후 트럭 한 대가 오더니 차를 멈추고 한 남자가 내리면서 도움이 필요하냐고 물었습니다. 그 남자는 자동차 뚜껑을 열고 2-3분 동안 어디에 이상이 있는지를 살피더니 무엇이 문제인지를 찾아냈다고 하면서 자기 차에 가서 검은 테이프를 가지고 왔습니다.

 

 고장 난 차의 여자는 맥이 빠졌습니다. 잘 달리던 차가 엔진이 멈춘 차를 검은 테이프로 고치겠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아서입니다. 그러나 남자는 그 검은 테이프로 기적이라도 일으키겠다는 듯이 자동차 엔진에 머리를 처박고 테이프를 붙인 후에 엔진 시동을 걸어 보라고 했습니다.

 

여자는 설마하고 시동을 걸어 보았더니 이게 웬일입니까? 시동이 걸렸습니다. 너무나도 고마워서 감사의 인사를 여러 번 하였습니다.

남자는 여자 운전자에게 지금 내가 손을 본 것은 정비소까지만 갈 수 있으니 정비소에 가서 수리를 해야 한다고 일러주었습니다.

남자는 여자가 차를 몰고 가는 뒤를 계속 따라 오다가 정비소까지 무사히 도착하는 것을 보고는 손을 흔들며 자기 갈 길을 갔습니다.

 

 "친절한 그 남자" 잊지 못할 고마운 사람입니다. 그 여자는 자기 차를 고쳐준 이름 모르는 그 남자를 잊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도 그 남자처럼 주님을 위해 그리고 우리 주변의 이웃들을 위해 그렇게 쓰여지는 삶들이 되어 지시기를 바랍니다.

 

 사망의 올무에 걸린 채로 이것이 내 운명인가보다 하고 체념하는 삶, 길을 잃고 방황하며 살아가는 이웃에게 구원의 길을 찾아주어서 함께 가는 잊지 못할 은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 거의 죽게 된 사람을 발견하고 가지고 있던 물품으로 응급 처치를 하고 주막에 데려다 주어 치료를 부탁하여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준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던 예수님은

 

  너희도 가서 그와 같이 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라는 대로했던 제자들처럼 여러분과 나도 그렇게 살아가는 인생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은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 가셨습니다. 소문을 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9절)하고 예수님을 환영했습니다.

]

 "호산나"란 이제 구하소서! 우리가 기도하오니 구원하소서!라는 뜻입니다.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구원은 가장 높은 곳 하나님께로서 옵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였습니다.

온 성이 뒤흔들렸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예수께서 명하시는 대로하면 우리의 지역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소동케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제자들처럼 옷을 벗고 나서면 안 될 일이 없습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명령에 순종하여 매인 자들을 풀려서 주님과 더부러 호산나로 찬양할 수 있는 이웃들이 많아지도록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십시다.

 

 안드레가 예수님께 데려온 시몬 베드로는 주님의 큰 일꾼으로 쓰임 받았습니다.

나도 예수님께 데려 올 사람이 있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나보다 더 귀하고 크게 쓰임 받을 수 있는 인물이 되게 합시다.

 

 (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계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우리가 하는 일들이 많은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그들도 그 기쁨에 겨워 모두들 함께 주님을 높이 찬양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