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골

[스크랩] 빌라도 법정에서 골고타까지 (Via Dolorosa) / 십자가의 길

거듭난 삶 2010. 2. 2.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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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도 법정에서 골고타까지(Via Dolorosa)/십자가의 길 | †해외聖地순례

십자가의 길 - 빌라도 법정에서 골고타까지(Via Dolorosa)
 
예수가 로마 총독 빌라도의 법정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후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갈바리아 언덕)까지 걸어간 길이다.
라이온문을 들어서면 성 안나 교회가 있고,
 바로 앞에 십자가의 길(비아 돌로로사)의 출발점인 '채찍질의 교회'가 있다.
매를 맞으며 걸어가던 예수가 수난을 당한 곳에는
모두 14곳에, 십자가의 길이 설치되어 있고,
그 중 10~14번째는 거룩한 무덤 교회 안에 있다.
 매주 금요일에는 십자가를 짊어진 수사들이 행진을 하고
그 뒤를 많은 사람들이 뒤따른다. 
 
제 1 처:예수님께서 사형 선고받으심을 묵상합시다.

제 2 처: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심을 묵상합시다.

제 3 처:예수님께서 첫 번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제 4 처:예수님께서 성모님을 만나심을 묵상합시다.

제 5 처:예수님께서 시몬의 도움을 받으심을 묵상합시다.

제 6 처:예수님께서 베로니까의 수건에 당신의 얼굴을 닦아 주심을 묵상합시다.

제 7 처:예수님께서 두 번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제 8 처:예수님께서 예루살렘 부인들을 위로하심을 묵상합시다.

제 9 처:예수님께서 세 번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제 10 처:예수님께서 옷 벗김을 당하시고, 초와 쓸개를 맛보심을 묵상합시다.

제 11 처: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어 높이 들리심을 묵상합시다.

제 12 처: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을 묵상합시다.

제 13 처: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내리어져 성모님 품에 안기심을 묵상합시다.

제 14 처:예수님께서 무덤에 묻히심을 묵상합시다. 

 

 

 

 

 

 

 

대제사장 가야파는 예수님을 심문한 후 장로들과 의논하여
결국 죽이기로 결정하고 사형 선고의 권한이 있는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끌고 갔고
(마 27:1-2), 빌라도는 망설이다가 군중들의 함성에 못이겨
사형 선고를 내리게 되었다.
 
빌라도의 법정이 어느 곳이었는가에 대해서는 몇 가지 상반된 주장들이 있다.
그 중 당시 헤로데의 궁에 빌라도가 머물고 있었을 것이라 추정하여
법정도 그 안에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과
당시 총독관저로 사용하던 하스모니아 궁전에 법정이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학자들에겐 더 많은 지지를 받고 있지만,
의외로 공식적인 순례지로 정해진 곳은 예루살렘 성전 북서쪽 모퉁이 외곽에
위치해 있던 로마군 주둔지인 안토니오 요새이다. 
이것은 1540년경 프란치스코 수도회에 의해 정해진 것으로서
안토니오 요새로부터 골고다까지 약 340m의 거리를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
'(Via Dolorosa - '슬픔의 길'이란 뜻)로 정하여 성지로 삼은 것이
오늘날까지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채찍을 맞으며 가셨던 그 길을 기념하기 위해 지금도
 매주 금요일 오후 3시가 되면 빌라도 법정 자리였던 엘 오마리오 학교 마당에서부터 십자가 행진이 시작된다.
프란치스코 수도회 사제들이 주관하여 진행되는 이 행진 가운데는 종종 큰 십자가를
손수 메고 따라가는 순례자들도 눈에 띄인다. 
십자가의 길에는 모두 14곳의 장소가 정해져 있는데 각 장소에 이를 때마다
잠시 머물러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한다.  
제1, 2 장소는 츨발점인 빌라도 법정에 있고, 제10~14 장소는 골고다에 있는데
이곳엔 현재 거룩한 무덤 교회가 위치해 있다
 
 

 

 

제 1 처:예수님께서 사형 선고받으심을 묵상합시다.

죽음에 붙여진 사람들을 살리시고자 이 세상에 오신 구세주이신 당신을, 사람들은 사형 판결을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는 빌라도 총독 앞으로 끌고 갔습니다.

빌라도가 “네가 유다인의 왕인가?”(요한 18:34-37) 하고 물었을 때에

당신은 “그것은 네 말이냐? 아니면, 나에 관해서 다른 사람이 들려 준 말을 듣고 하는 말이냐?” 하고 반문하셨습니다.

그러자 빌라도는 “내가 유다인인 줄로 아느냐? 너를 내게 넘겨 준 자들은 너희 동족과 대사제들인데 도대체 너는 무슨 일을 했느냐?” 하고 물었고, 당신은 “내 왕국은 이 세상 것이 아니다. 만일 내 왕국이 이 세상 것이라면 내 부하들이 싸워서 나를 유다인들의 손에 넘어가지 않게 했을 것이다. 내 왕국은 결코 이 세상 것이 아니다.”

“아무튼 네가 왕이냐?” 하고 빌라도가 묻자, 당신께서 “내가 왕이라고 네가 말했다.

나는 오직 진리를 증언하려고 났으며 그 때문에 세상에 왔다.

진리 편에 선 사람은 내 말을 귀담아 듣는다” 하고 대답하시자,

빌라도는 마지막으로 “진리가 무엇인가?” 하고 물었습니다.


진리를 증언하려고 이 세상에 오신 주님! 진리가 무엇인지 알게 하여 주십시오.

저도 당신과 함께 진리 편에 서고 싶습니다.

그러나 아직 빌라도와 같이 진리가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있으며,

어떻게 해야 진리 편에 설 수 있는지조차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지금껏

제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라 나서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무런 잘못도 없으신 당신께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하느님을 모독한 죄인이 되시어 서 계신데, 저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남 앞에 제 잘못이나 부족함이 드러날까 봐 전전긍긍하며 애를 쓰고 있는 꼴이라니요. 혹여 남이 제 잘못을 들추어내기라도 할라치면, 즉시 그를 원수로 대하고 마는 제게

당신께서는 ‘죄인이 되어 사형 선고를 받으라.’고 하시니,

그런 일을 어떻게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을 모독하였다’는 죄목으로 사형 선고를 받으신 주님!

당신께서 언제 하느님을 모독하셨습니까? 당신이 바로 하느님의 아들이신데.....
하느님의 아들이신 당신께서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다.” 하고 말씀하신 것이 어찌

하느님을 모독한 것이 되겠습니까? 그 말씀은 바로 진리 그 자체입니다.
빛이시며 사랑 자체이신 주님!

당신은 언제나 십자가에 높이 달려 계신 채 저를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얼마나 당신을 바라보며 당신의 사랑을

보답해 드리려 했습니까? 그저 땅만 바라보며 그 안에 있는 것들을 탐내고,

그것들을 가지려고 애를 쓰는 일에만 바빴습니다.

결국에는 다 버리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 앞에 빈손으로 불러 갈 것을.....
그러는 동안에 사랑이신 당신 마음을 얼마나 많이 상해 드렸겠습니까?

그런데도 저는 지금까지 제가 죄인이 아닌 줄 알고 살아왔습니다.

빛이시며 사랑 자체이신 당신과 비겨 생각하지 않고, 잘못을 쉽게 저지르는 

눈에 보이는 세상 사람들과만 비교하였기에 언제나 제가 착하고 잘난 듯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아무런 죄가 없으심에도 불구하고, 저의 죄를 기워 갚기 위해 저를 대신하여

죄인이 되시어 사형 선고를 받으신 주님!

이제는 더 이상 저의 죄로 인하여 당신께서 그 자리에 서 계시지는 마십시오!

당신께서 지금까지 저로 인하여 고통을 받으시며 저를 살려내 이만큼 키워주셨으니,

이제는 저 스스로 저의 죄에 대한 책임을 질 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하느님을 모독한 죄인입니다. 저에게 사형 선고를 내려 주십시오.

이제까지 당신께서 저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죄인이 되시었으니,

이제부터는 제가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죄인이 되겠습니다.

사랑이신 주님! 부족하고 약하기만 한 저에게 끝까지 당신을 따라갈 수 있는

힘과 용기를 내려 주십시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빌라도 법정이 있던 안토니오 요새를
1/50로 축소해서 만든 모형(예루살렘 홀리랜드 호텔)
 
 
 
헤로데 시대 예루살렘의 북쪽의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예루살렘 성의 동북쪽에 요새를 건축하였는데 로마에 의하여
성전 북편을 감시하던 곳으로 사용되었다.
총독들이 명절 때가 되면 가이사리아로부터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이곳에 있었는데
예수님을 심문할 때 빌라도도 이곳에 거처하고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심문을 당하셨던 장소이다.
지금은 아랍국민학교로 사용되고 있다
 
 
'리토스 트로토스'(Lithos Trotos)란 '돌 판'이란 뜻으로 로마시대에 도로나 광장을
조성하기 위해 바닥에 깔았던 큰 돌 판을 말한다.  
요한복음 19장 13절에 보면 빌라도가 예수님을 재판할 때 재판석
(히브리 말로 '가빠타')에 앉았다고 했는데 이 재판석이 곧 리토스 트로토스이다.  
오늘날 빌라도 법정 자리에 위치해 있는 시온 수녀원 지하에는 발굴된 돌판 바닥의
일부가 잘 보존되어 있으며, 사람이나 말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홈을 파놓은 것과
로마군인들이 장난으로 새겨놓은 장기판 등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제 2 처: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심을 묵상합시다.
요한복음 19장 17절에 ‘예수께서는 마침내 그들의 손에 넘어 가
몸소 십자가를 지시고 성밖을 나가 히브리말로 골고타라는 곳으로 향하셨다.’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몸소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타라는 곳을 향하여 걸어가신 주님!
당신께서 지고 가신 그 십자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모든 것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하셨는데,

제가 지고 가야 할 십자가의 의미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들은 ‘일상생활 안에서 자신들에게 고통을 주는 무수한 요소들’을

 “십자가”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당신께서는 수도 없이 많은 어려움을 일상생활 안에서 다 겪으셨음에도

불구하고 구약 시대로부터 계속해서 많은 예언자들을 통하여 예언하시고,

당신 친히 세 번이나 예고하시고,

만반의 준비를 다 갖추신 후에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러기에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의 고통”이라고 여기는 일상에서 오는 잡다한 고통들을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는 어쩐지 제가 겪어야 할 “십자가의 고통”을 다 겪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주님! 가르쳐 주십시오.

‘제가 져야 할 십자가’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제가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할 해골산’은 도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당신은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실 때에

그 고통을 당하시기를 얼마나 기다리셨던지 제자들보다도 훨씬 빠른 걸음으로

앞장서서 가셨기에, 그것을 본 제자들은 어리둥절하였고,

그 뒤를 따라 가는 사람들은 불안에 싸여 있었다(마르10:32)고 하였습니다.

도대체 그 일이 무엇이 좋다고 그리도 빨리 가셨습니까?

십자가를 지고 가신 주님! 저도 알게 하여 주십시오.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져야 하는 “제 십자가”가 무엇인지,

그 십자가를 지기 위해 버려야 할 ‘제가 가진 모든 것’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를

알게 하여 주십시오.

그래서 마침내 저도 “제 십자가”를 지고 당신의 뒤를 따르게 하여 주십시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에케호모 교회 (The Church fo Ecce Homo)
 
이 곳은 빌라도가 가시면류관과 자색옷을 입고 나오신 예수님을 군중들에게 보이며
"보라 이 사람이로다"(요 19:5)고 외친 곳이다.
현재의 교회는 1868년에 건축된 것으로 입구에 있는
아치는 AD 2세기경의 로마 개선문이다. 교회 안쪽에 나머지 아치가 남아 있다
 
 
이 곳에서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사형을 선고받는다.
(루 23:24-25) 이 교회는 1904년에 재건된 비잔틴식 교회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계단을 내려오는 성화가 그려져 있다.
 예수님 뒤로 자기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손을 씻고 있는 빌라도가 보인다
 
 
십자가의 길
 
 
제 3 처:예수님께서 첫 번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세상 모든 것을 만드시고 다스리시며 섭리하시는 절대자이신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길에서 넘어지셨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당신을 따르던 많은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겨 주신 주님!

당신은 왜 넘어지셔야만 하셨습니까? 좀더 보기 좋은 방법이 그렇게도 없으셨나요?

저는 그런 당신의 방법을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넘어지는 것이 정말 싫습니다.

당신을 따라 이 길로 가게 되면, 저도 남 앞에서 넘어져야만 한단 말입니까?

‘넘어진다는 것’은 ‘힘이 없음을 남에게 보이는 것’입니다.

저는 당신이 다른 그 어떤 신들보다도 더 힘이 있다고 여겨서 당신을 따르고자

한 것이지, 힘이 없는 분이라고 여겼다면 절대로 당신을 따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도 무참히 넘어지시다니 이건 정말 안 될 말씀입니다.

저는 남 앞에서 목을 꼿꼿이 세우고 가슴을 펴고 서 있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노력해 왔는데

넘어져야 한단 말씀입니까?
당신은 시작부터 이토록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하시니

누가 당신을 따라가려 하겠습니까?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사람 밑에서 일하기를 원했던

 ‘그리스도폴’의 어깨를 내리 눌렀던 당신의 그 힘은 다 어디로 갔습니까?

어떻게 그렇게 힘없이 넘어지실 수가 있습니까?

그러나 주님!

지금 이 순간 당신의 크고 깊으신 뜻을 미처 알아듣지 못하는

저의 어리석음을 너무 탓하지 마시고, 당신의 깊은 뜻을 깨닫게 하여 주시어,

 저도 언젠가는 당신을 따라 많은 사람들 앞에 힘없이 넘어질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예수께서 첫번째로 쓰러지신 곳
 
 
 
이곳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다 첫번째로 쓰러지신 곳이다.
이 곳은 기념하여 1948년에 작은 예배처소를 지었다.
교회 입구 윗쪽에 십자가를 지시고 쓰러지신 조각이 있다.
 
 
 
제3처 기념 교회의 내부이다.
밤새 심문을 당하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시고 쓰러지실 때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는 천사들의 모습의 성화가 교회 정면에 그려져 있다.
십자가의 무게보다 더 무거운 것은 우리들의 죄로 인한 무게였으리라.
 
                                  
 
제 4 처:예수님께서 성모님을 만나심을 묵상합시다.

죄인에게 내려지는 형벌 중에서도 ‘가장 큰 죄인’에게 내려졌던 ‘십자가형’에 처한 아들을

보기 위하여 ‘어머니’께서 나타나셨습니다. 그 어머니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당신은 어머니의 가슴에 비수를 꽂은 불효자입니다.

 세상에 그 어떤 어머니가 자식이 사형 선고를 받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을 보고 싶어 하겠습니까?

어머니라면 누구라도 자신의 살과 피가 섞여 있는 자기의 자식이 고통당하는 것을 보느니

차라리 자신이 그런 고통을 겪게 되기를 더 바랄 것입니다.

극악무도한 죄인이 되시어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를 향하여 걸어가시는 길에서

어머니를 만나신 주님!

당신의 마음은 또 어떠하셨습니까?

당신은 사람들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면서 당신을 낳은 어머니에게는

왜 그런 고통을 안겨 드리는 것입니까?

저는 그렇게 못하겠습니다.

제 어머니가 지금까지 저를 키우느라 얼마나 많은 애를 태우며 수고하였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그런 어머니에게 당신처럼 실망과 고통을 안겨 드릴 수가 있겠습니까?
심장이 예리한 칼로 찔리는 듯한 극심한 고통을 겪고 계신 어머니 마리아를 뒤로하고

묵묵히 골고타를 향하여 걸어가신 당신을 따라 십자가를 지고 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머니에게 못할 일을 하는 것인지를 주님이신 당신께서 더 잘 알고 계시오니,

저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더 이상 말씀하시지 마십시오.

저는 아직 그렇게 매정하게 어머니의 사랑을 거절할 용기가 나질 않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보다도 더 큰사랑을 위해 당신이 그렇게 하시었을 테니까,

그 큰사랑이 무엇인지 밝히 깨달을 수 있는 은총을 먼저 내려 주십시오.

그것을 밝히 깨닫게 되면 저도 당신처럼 제게 온갖 사랑을 쏟아 부어 주신

제 어머니를 뒤로한 채 당신을 따라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이 곳은 인류의 죄를 속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님께서 어머니 마리아를 만난 것을 기념하기 위
1881년에 교회를 만들었고 입구에 예수님과 마리아의 만남을 조각해 놓았다.
                
 

제 5 처:예수님께서 시몬의 도움을 받으심을 묵상합시다.

힘의 원천이신 주님! 당신은 많은 기적을 행하시고,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는 힘을 가지고 계시며, 무엇이든지 다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하온데, 당신께서 만드신 사람의 도움을 받으시다니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저는 남의 도움을 받는 것보다 더 나은 위치에서 남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더 좋습니다.

저 자신의 부족함을 남에게 내 보이는 것은 정말 싫고,

남이 저보다 더 나은 위치에서 제게 도움을 주는 것은 더 더욱 싫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도움을 줄 마음조차도 없는 시몬의 억지 도움을 받아들이셨으니,

남의 도움을 받기 싫어하는 제게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기만 합니다.

당신은 가면 갈수록 어쩌면 그렇게도 점점 더 이해할 수 없는 행동만을 하실 수 있으십니까?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 키레네 사람 시몬(마르 15, 21)에게 당신께서 지고 가시던 십자가를 내어주신 주님! 당신께서는 힘없는 사람이 되시어 시몬의 억지 도움을 받아들이시므로 당신의 힘을 믿고 따르던 많은 사람들 앞에서 얼마나 체면이 깎이셨습니까?

당신의 기적을 보고, 당신의 가르침을 듣고, 당신을 구세주라고 생각하며 따라다니던

많은 사람들 앞에 체면이 말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거지는 남의 도움으로 근근이 살아갑니다.

그런 거지에게는 재산뿐만 아니라, 체면이나 명예까지도 다 없어졌지만,

모든 영예와 영광을 다 누리고 계신 하늘의 임금이신 당신께서 보잘것없는

시골 사람으로부터 억지의 도움을 받으시다니! 그것은 이해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그것이 당신만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기에 더 더욱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제가 당신을 따르고자 한다면 얼마나 저 자신을 낮추어야 한단 말씀입니까?

바로 그것이 문제입니다.

저는 지금 이 순간 가진 것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건강도 있고, 물건도 있고, 배운 지식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제 앞에 놓인 많은 날에 지금까지 배워 익힌 것들로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힘도, 가진 것도 없는 사람이 되어

전적으로 남의 도움을 받아 들여야 한단 말씀입니까?

시몬의 억지 도움을 받아들이신 높고 높으신 임금이신 주님!

당신께서는 이 세상 그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는 전능하신 분이심에도 불구하고

저를 위하여 보잘것없는 사람의 도움을 받아들이셨으니,

이제부터 저도 ‘오로지 저를 살려주시고자 그렇게 하신 당신’을 닮기 위하여

제가 가진 것을 하나씩 하나씩 없애어,

제가 가지고 있다고 여기는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당신처럼 힘없는 사람이 되어,

시몬의 도움을 받아들이신 당신처럼 남의 도움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주님! 남보다 나아지려는 욕심을 버리고,

 더욱 더 겸손되이 남 앞에 자신을 낮출 수 있는 사람이 되게 도와주십시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이곳은 골고다를 향해 올라가는 시작지점이다.
 이 지점에서 키레네 사람 시몬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간다
(마 27:32, 루 23:26). 이 교회는 1895년 가톨릭에 의해 지어졌다.
 
 
 
시몬에게 십자가를 지운 곳
 
 
 
교회내부에는 키레네 사람 시몬이 예수님을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고있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우리의 죄는 이미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므로 다 속량을 받았다.
이젠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우리도 하느님의 나라를 위해 기쁨으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쫒아야할 것이다
 
 

제 6 처:예수님께서 베로니까의 수건에 당신의 얼굴을 닦아 주심을 묵상합시다.

주님!

 당신은 한 남자로서 많은 여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최고의 신랑감이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많은 여자들이 목숨을 걸고 당신을 따라다니며

뒷바라지를 해드린 것이 아니겠습니까?
여기에도 또 불쌍한 한 여자가 있습니다.

당신을 얼마나 많이 사랑했으면 창과 방패를 들고 막아서는 병사들을 헤치고

사형수가 된 당신께로 다가왔겠습니까?

 베로니까는 얼마나 애를 태우며 당신께서 그 길로 가지 않으시기를 바랐겠습니까?

당신께서 하느님의 아들로써 세상 모든 사람을 살려 주시기 위해 가야 할 그 길로 가시지

않고, 자기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 편안하게 사랑을 나누고 싶어 하는 베로니까의 마음을

그 누구보다도 당신께서 더 잘 알고 계셨을텐데도,

당신께서는 가던 길을 잠시 멈추어 베로니까가 닦아주는 대로 얼굴을 내밀어 그 수건에

고통당하시는 당신의 얼굴을 박아주셨을 뿐,

십자가를 내던지고 베로니까를 따라 집으로 돌아가시지는 않았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당신을 바라보는 모든 사람을 살려 주시기 위해서 당신께서

그 길을 가시는 동안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나셨습니까?

당신은 당신께 사랑을 보였던 베로니까는 물론이고,

당신과 함께 직접 그 십자가를 지고 가지 않은 많은 사람들을 살려 주셨습니다

.사랑이신 주님!

저도 당신처럼 ‘많은 사람들을 위해 제 목숨을 바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당신처럼 혼자서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는 삶이든, 당신께서 짝지어 주신 사람과 함께 사는

삶이든, 조금도 한 눈 팔지 않고 살아, ‘제 온 몸과 마음을 다 내어주는 행위’를 통해

저 자신을 깨끗이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사랑이신 주님!

제가 깨끗이 만든 그 자리만큼 당신의 크신 사랑으로 채워 주시어,

저도 당신처럼 당신께서 제게 보내주시는 사람들을 하나도 잃지 않고 살려 낼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이 곳은 예수님께서 피와 땀을 흘리며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고 계실 때
성녀 베로니카가 얼굴의 피와 땀을 닦아준 것을 기념하는 자리에
1895년 비잔틴 시대의 수녀원이 세워졌다.
 
 
 
수녀원 안에 모습이다.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준 이 여인에 대해서는 그 이름이 밝혀지지 않지만
열두 해 혈루증을 앓다가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고 나은 여인
(마 5:25-34)이라고 전해져 내려온다.
 
 
제 7 처:예수님께서 두 번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주님! 또 넘어지셨습니까?
남 앞에 한 번 창피를 당하는 것으로는 부족하여 또 넘어지셨나요?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했습니다. 그러기에 한 번 실패하는 것은 그 누구라도
봐 주기가 어렵지 않지만 두 번 넘어진다면 실망하지 않겠습니까?
두 번째 넘어지신 주님!
당신은 제가 남 앞에 자신을 낮추어 땅 바닥에 넘어져 체면 깎이는 일을 당하는 것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잘 알고 계십니다. 런데 그런 일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하라고 하시다니 정말 하셔도 너무하십니다.  
하지만 당신께서 저를 죽음의 세력으로부터 구하시기 위하여 하늘나라의 그 모든
영화도 마다하시고 가난한 어린 아기가 되어 내려오시고,
저를 살리시기 위한 일을 시작하시기 전에 빈들에서 40일을 단식하시고,
마귀의 유혹을 받으셨을 때에도 명예나 체면을 살리는 방법을
한 번도 택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신 앞에서는 온 우주 만물이 복종하며, 하늘의 천사들도 끊임없이 당신의 영광을

찬미하고 있는데, 무슨 방법으로 당신을 더 높여 드릴 수 있겠습니까? 

당신께서 두 번이나 넘어지신 것은 바로 저 자신을 위해서 일터인데 주님!

 깨닫게 하여 주십시오.

제가 넘어지고 또 넘어지면서 꺾어 버려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알게 하여 주십시오.

없애려 거듭 거듭 노력하여도 없어지지 않는 제 안에 가득 차 있는 것들을

깊이 깨달아 십자가 아래 넘어져 계신 당신께로 다가 갈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그래서 마침내 당신 앞에 알몸으로 서게 되었을 때에

하나도 부끄럽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마지막 날에 세상 모든 사람 앞에서 공심판을 받게 될 때에도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그렇게 하여 주시기 위해서 지존하신 하느님이신 당신께서는 당신이 만드신

피조물인 사람들 앞에서 두 번이나 넘어지셨으니, 주님! 감사합니다.
당신께서 저를 사랑하시어 거기에 넘어져 계시니,

 저도 당신을 따라 거기에 그렇게 넘어져 있고 싶습니다.

당신은 언제나 거기 그렇게 넘어져 계시며 저를 기다리고 계셨는데,

저는 너무나도 당신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당신의 사랑을 외면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저도 당신을 사랑합니다!

모든 것 위에 당신만을 사랑하게 하여 주십시오.

당신의 그 크신 사랑에 보답해 드리기 위하여 모든 것 다 버리고 당신을 따라 나서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제게 용기와 힘을 주십시오.

아직은 겁이 나고 그러한 일들을 겪게 되는 것이 그저 무섭기만 합니다.

그러나 제게 힘을 주시고, 저를 당신께서 넘어져 계신 그 곳까지 이끌어 주십시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예수님은 이곳에서 두번때 쓰러지신다.
지금 있는 건물은 1875년에 가톨릭에서 구입하여 Schoolof the Arts and Crafts로 사용하고 있다. 여기가 예수님시대에 예루살렘성의 서쪽 문이 있는 곳이다.
 이곳을 나가면 서쪽 영문밖이 된다. 그 곳에 골고다 언덕이 있었다.
 
 
 
제7처 교회안의 모습이다. 이제 성밖으로 나가게 된다.
여기서 다시 쓰러지심은 예수님을 성밖으로 내치는 상황이었을까?
쓰러지신 예수님이 조각되어 있다.
 

 

제 8 처:예수님께서 예루살렘 부인들을 위로하심을 묵상합시다.

사랑하올 주님! 당신은 이제야 당신이 당하실 고통의 반을 치러 내셨습니다.

 당하실 고통이 얼마나 엄청났으면 하느님의 아들이신 당신께서 게쎄마니 동산에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하시고자만 하시면 무엇이든 다하실 수 있으시니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소서.” 하고 세 번씩이나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셨겠습니까?

왜 그렇게 기도하셨는지 이제 저도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이리 저리 끌려 다니시며 온갖 모욕을 당하시고, 거짓 증언과 모함 소리를 들으시고,

뺨을 맞고 주먹질을 당하며 온몸은 채찍으로 맞아 살점이 떨어지고,

머리는 가시관으로 인해 피투성이가 되어 아픔을 당하신 후에 빌라도 앞에서 당신을

따르던 백성들에 의해 ‘십자가형이라는 사형 선고’를 받으신 당신!

그런 몸으로 무거운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타를 향해 오르시며 넘어지시고,

어머니를 만나 마음의 큰 아픔을 겪으시고, 당신을 따르던 많은 사람 앞에서 힘없고 약한

인간으로 남의 억지 도움을 받으시고, 인간적인 사랑을 보여주는 한 여자의 사랑을 받아 주지 못하는 아픔까지 겪음으로 더욱 더 기진하시어 또 다시 넘어지신 당신!

그런 당신을 보고 뒤따르던 예루살렘 부인들은 당신께서 당하시는 고통이 너무나도 엄청나게 보여 가슴을 치며 통곡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보시고 당신께서는 “예루살렘의 여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와 네 자녀들을 위하여 울어라. ‘

아기를 낳지 못하는 여자들과, 아기를 낳아 보지 못하고 젖을 빨려 보지 못한 여자들이

행복하다’고 말할 때가 이제 올 것이다.

그 때 사람들은 산을 보고 ‘우리 위에 무너져 내려라’ 할 것이며,

언덕을 보고 ‘우리를 가리워 달라’ 할 것이다.

생나무가 이런 일을 당하거든 마른나무야 오죽하겠느냐?

”(루가 23:28-31)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올 주님!

도대체 누가 누구를 위해 걱정을 하는 것입니까?

 지금 당신보다 더한 고통을 겪는 사람이 어디에 또 있단 말입니까?

그런데도 당신은 당신께서 겪는 고통보다도 당신을 보고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여인들을

더 걱정하시며, 그들과 그들의 자녀들을 위하여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아! 이제야 당신이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면 어떤 고통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지를 아시고도 빠른 걸음으로 들어가시고,

 게쎄마니 동산에서 “아버지,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 하고 말씀하시며,

엄청난 고통을 치르시면서도 조금도 굽히지 않고 여기까지

오신 뜻을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당신께서는 이제 그 엄청나게만 보이는 고통의 반을 넘어 서셨습니다.

이제는 지금까지 당한 고통이 아까워서라도 다시 되돌아가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기에

육신적인 고통을 받아들이기가 더 쉬워지셨을 것입니다. 그

러나 당신께 더 가증 되는 큰 고통은 많은 사람들이

당신께서 흘리신 피의 대가를 받아 입지 않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오, 사랑 하올 주님!

저는 당신께서 저로 인하여 또 다시 고통을 당하시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제가 마른나무가 되어 마지막 날 불에 타는 사람이 되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그렇게 되어 당신의 마음을 더 상해 드리는 일이 결코 없기를 바라고 또 바랍니다.

당신께서 그 ‘엄청난 십자가의 고통을 겪으신 것’이 바로 ‘저를 살리시기 위해서’인데,

저는 지금껏 무엇을 하며 살아왔습니까?

어머니 뱃속에서 이 세상으로 나와서 지금까지 얼마나 바삐 움직이며 살았는지 모릅니다.

배우고 또 배우며, 일하고 또 일하며 언제나 바쁘기만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제 자신에 대하여 생각해 볼 여유조차 찾아보지 못한 채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그 엄청난 고통 중에서도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와 네 자녀들을 위하여 울어라” 고 말씀하신 주님!

제가 저 자신을 위하여 울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십시오.

저는 아직 그것을 알아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 “난 문제없어! 난 모든 것을 다 잘해 왔기 때문에 죽음도 두렵지 않고,

영원한 불도 조금도 무서울 것이 없어!” 하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지 못하기에 걱정도 되고, 당신의 그 말씀을 무시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주님! 도와주십시오. 당신께서 엄청난 고통의 대가를 치르시고 흘리신 그 피로 저를

살려 주십시오. 당신께서 당하신 그 고통이 결코 제게 있어서 헛되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이 지점은 돌벽에 라틴 십자가와 희랍어로 "NIKA = 예수님은 승리하셨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께서 슬피울며 따라오는 여인들을 향하여 말씀하신 곳을
기념하는 곳이다. 지금은 희랍 정교회 벽으로 되어있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루 23:28-31)
 
           
제 9 처:예수님께서 세 번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오, 사랑하올 주님! 당신께서 또 넘어지셨습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세 번씩이나...
이제 제가 어찌 생각하기를 원하십니까?
당신을 보고 기대를 걸었던 그 많은 사람들은 어찌되었습니까?
더 이상 당신께 기대나 희망을 걸지 않겠지요. 
온 몸에서 힘이 다 빠져나가 더 이상 한 발자국도 걸을 수 없게 되시어
얼굴을 땅에 대고 넘어져 계신 주님!
높고 높은 하늘의 임금이신 당신의 얼굴이 땅에 닿아 있습니다.

땅은 모든 사람이 밟고 다니는 곳! 온갖 짐승들까지도 오줌을 싸고 똥을 누는 곳!

침을 뱉고 온갖 쓰레기들을 버리는 곳!

그 곳에 당신의 얼굴을 무참하게 내어 던지시다니 당신은 정말 너무하십니다.
저는 제 얼굴을 절대로 그렇게 취급하고 싶지 않습니다.

더 잘 치장하여 남에게 보이고 싶습니다.

그 누가 보더라도 우러러 볼 수 있게 만들고 싶습니다.

그래서 잠도 제대로 자지 않고 공부를 열심히 한 것이고,

일도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왜? 저를 보고 당신을 따라오라고 하시면서 그런 일을 하셨습니까?

당신에게는 체면도 자존심도 없으시단 말씀입니까?
오, 주님! 제발! 저더러 그렇게 하라고 하시지는 마십시오!

당신께서 이미 그렇게 하시었으니, 저는 그냥 좀 넘어가게 하여 주십시오.

당신께서 처음부터 모든 사람의 얼굴을 똑같이 만들어 주셨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랬다면 제 얼굴을 남 앞에 더 잘 보이려 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많은 이들 앞에서 땅에 얼굴을 대고 넘어지더라도 체면 깎이는 일도 없을 테니까

이렇게 두렵거나 걱정스럽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를 너무나도 사랑하시어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길에서 세 번이나 넘어지신 주님!

당신의 그 사랑을 알게 하여 주시어, 지금까지 소중하게 여기고 있던 저의 체면이나

자존심 따위를 훌훌 벗어버리고, 저도 당신과 함께 땅에 얼굴을 대고 넘어질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골고다 언덕의 정상을 바라보는 곳에서 다시 3번째로 쓰러지신다.
지금은 이집트 콥트 정교회가 자리잡고 있다
 
 

제 10 처:예수님께서 옷 벗김을 당하시고, 초와 쓸개를 맛보심을 묵상합시다.

병사들은 기진하여 넘어지신 당신에게 달려들어 옷을 벗겼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옷이 바로 그 사람의 인격인데 감히 당신의 옷을 벗기다니!

피조물인 사람이 창조주이시며 우주만물을 다스리시는 임금이신 당신의 옷을 벗기는데

당신께서는 어찌 그리 가만히 계실 수가 있습니까?

어떻게 반항도 한 번 하지 않으시고 그런 취급을 당하시고만 계십니까?
어린아이는 옷을 입지 않아도 아무런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른이라면 그 누구라도 벌거벗은 모습을 많은 사람 앞에 드러내고 싶어 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당신께서는 당신에게서 기적의 힘을 얻거나 말씀을 듣고서

믿고 따르던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옷 벗김을 당하신 것입니다.

오, 주님! 이런 일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기만 합니다.

이런 행동을 하신 당신께서 어떻게 계속해서 “나를 따르라”고 제게 말씀하실 수 있으십니까?

전 제 몸이 부끄럽습니다. 왠지 모르지만 그저 부끄럽기만 합니다.

제 몸의 부분 부분들이 다 완벽하게 느껴지지 않고,  그저 누가 볼까 봐 두렵습니다.

그래서 제 몸을 싸고 또 싸며,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들을 ‘어떻게 더 좋게 보이게 할까’ 하고 궁리하며, 좋은 옷으로 치장도 합니다.

그런데 당신께서 지금 그 많은 사람 앞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으시고

벌거벗은 채로 서 계시는 것입니다.

전 못합니다. 절대로 그런 일을 당하고 싶지 않습니다.

제 말씀을 좀 들어보십시오. 주님!

태초에 당신께서 직접 ‘가죽옷을 만들어’(창세기 3:21) 아담과 그의 아내에게 입혀 주시지 않았습니까? 입혀 주셨으면 그만이지 왜 그 옷을 벗기려고 하십니까?

입고 있는 것이 더 편한데 말씀입니다.

창세기 3장에 보면, 아담과 그의 아내는 야훼께서 “따먹지 말라” 고 이르신 말씀을 거역하고 금한 열매를 따먹은 후에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알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앞을 가리고 하느님 앞에 알몸을 드러내기가 두려워 숨었습니다.
 주님!

제가 알몸을 드러내기를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저의 잘못 때문입니까? 아니면 원조 아담과 하와의 후손이기 때문입니까?

당신께서 이런 모습을 보여 주시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지금까지 살아 온 대로 아무런 가책도 없이(세상사람 모두가 옷을 입고 사니까)

살아갈 수 있었을 텐데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어쩐지 저 자신을 싸고 또 싸며 산다는 것이 께름칙하기만 합니다.

왜냐하면, 아담이 죄를 지은 후에 알몸을 드러내기를 부끄러워하여 무화과 나뭇잎을 엮어 앞을 가리고, 당신 앞에 서 있기를 두려워하여 나무 뒤에 숨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주님!

지금은 제가 두려워하고 그러기를 싫어하지만 언젠가는 당신을 따라 이 길을 걸어가

마침내 당신처럼 입고 있던 옷을 훨훨 벗어 던지고 어린아이와 같이 알몸이 되어

많은 사람들 앞에 설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앞에 보이는 교회가 거룩한 무덤 교회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고 무덤에 묻히신 곳이다.
정면에서 보면 교회 입구 오른쪽에 계단이 보인다.
 이곳이 제10처인데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기 위해 옷을 벗기고 제비 뽑았던 곳이다. 이곳에서 조롱과 멸시를 받으며 십자가 사형틀로 끌려가신다.
성분묘교회는 132년 하드리안 황제때 예수님의 십자가 자리에는 비너스 신전을,
무덤자리에는 제우스 신전을 세웠다.
그후 콘스탄티누스황제의 어머니 성녀 헬레나의 요청으로 신전들을 허물고
326년 이곳에 교회가 세워졌다.
금의 교회는 십자군 시대에 복원시킨 모습이고
오스만 터키시대에 문 한쪽을 막아서 하나만 사용하고 있다   
 

 

제 11 처: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어 높이 들리심을 묵상합시다.

사랑하올 주님! 당신의 두 손은 이제 못에 박혀 있기에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당신의 두 발은 이제 못에 박혀 있기에 아무 곳에도 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당신의 온 몸은 이제 하늘과 땅 그 사이에 있기에 이 세상에 있는 그 무엇도, 하늘에 있는

그 무엇도 소유할 수 없게 되어, 다만 거기에서 죽을 때만 기다릴 수밖에 없게 되시었습니다.

하늘과 땅의 주인이시며 전능하시고 신령하신 당신께서 그런 처지에 놓이셨는데,

어떻게 저더러 그것을 이해하라고 하십니까?

당신께서 계속 한 처 한 처마다에서 엄청난 행동만을 보여 주시기에 그저 놀랍고,

새록새록 당신이 제게서 너무나도 멀게만 느껴지는 것입니다.

당신은 그런 제게

 “나는 너를 너무나도 사랑하기에 여기에 이렇게 못 박혀 있는 것 이란다” 하고 말씀하시고 싶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 제가 언제 저를 위해 그렇게 해달라고 했습니까?
 무엇이나 다 하실 수 있으신 능하신 분이시라면서 그렇게 하시느니 차라리

제가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할 수 있게 해 주시고,

제가 가고 싶은 곳 어디에라도 갈 수 있는 모든 여건을 마련해 주시고,

제가 갖고 싶어 하는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게 해 주셨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런데 도대체 저더러 어떻게 받아들이라고 이런 행동을 하셨습니까?

눈만 뜨면 어디에나 보이느니 십자가! 십자가뿐입니다.

차라리 제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면 얼마나 속이 편하겠습니까?

당신이 아주 저를 괴롭힐 작정이 아니었다면 이런 행동일랑은 하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십자가에 두 손과 두 발이 못 박혀 높이 들려 계신 주님! 알게 하여 주십시오.

당신의 그 깊은 뜻을 깨닫게 하여 주십시오.

그래서 제가 하지 말아야 할 일과, 제가 가지 말아야 할 곳을 밝히 알아 저 자신을 위해서

꼭 해야 할 일만을 하고 살며, 꼭 가야 할 곳만을 가며,

꼭 가져야 할 것만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다.
망나니에게 사형 집행을 선고하면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망치를
내려친다.
이 지점은 가톨릭 소속이며 제단 오른편 프란치스코 수도회 성당 앞의 성화엔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님을 슬픈 눈으로 내려다 보는 성모 마리아 모자이크가 보인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다.
십자가의 길 제11처에 세워진 성묘교회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장소와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신 장소가 구별되어 있다.
이 성화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장소를 기념,그곳 벽에 그린 작품이다.
원래 이 성화는 초록색이 감도는 은은한 색을 띠고 있다.
작가는 예수님의 몸에 못이 박히는 고통을 지켜보아야 하는 자신의 아픔을 표현하고
싶었는지 예수님의 거룩한 보혈을 상징하는 빨간 색으로 성화 위에 옷을 입혔다.
 

 

제 12 처: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을 묵상합시다.

아래로나 위로나 아무 곳에서도 아무런 위로도 받으실 수 없는 처지에 놓여 극심한 죽음의

고통을 겪고 계신 주님! 당신은 그 고통이 너무나도 엄청나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마태오27:46) 라고 부르짖으셨습니다. 

당신께서는 시작도 마침도 없으신 영원한 분이신 데, 죽음의 고통이 웬 말입니까?
당신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시라면서 어떻게 죽으실 수 있단 말씀입니까?

정말 당신은 하느님을 모독한 죄인이 아니십니까?
그렇지 않다면 왜? 많은 사람들이 기대한 대로 당신의 크신 힘을 보여 주시지 않고 그

렇게도 무참히 죽으실 수가 있으십니까?

제가 만일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당신을 조롱하던 많은 사람들처럼

저도 그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성전을 헐고 사흘이면 다시 짓는다던 자야, 네 목숨이나 건져라.

네가 정말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어서 십자가에서 내려 와 보아라.”,

“남은 살리면서 자기는 못 살리는구나. 저 사람이 이스라엘 왕이래.

십자가에서 한 번 내려 와 보시지. 그러면 우리가 믿고말고. 저 사람이 하느님을 믿고

또 제가 하느님의 아들입네 했으니 하느님이 원하시면 어디 살려 보시라지?”

(마태오 27:40-43) 라고 말씀입니다.

당신께서 정말 하느님의 아들이십니까?

그러나 당신께서 정말 하느님의 아들이시라면 저를 버리지 말아 주십시오.

 “당신께서 왕이 되어 오실 때에 저를 꼭 기억하여 주십시오.”(루가 23:42)

당신께서는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나는 양이 드나드는 문이다.

나보다 먼저 온 사람은 모두 다 도둑이며 강도이다. 그래서 양들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거쳐서 들어오면 안전할 뿐더러 마음대로 드나들며 좋은 풀을 먹을 수 있다. 도둑은 다만 양을 훔쳐다가 죽여서 없애려고 오지만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 얻어

풍성하게 하려고 왔다.”

“나는 착한 목자이다. 착한 목자는 자기 양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

목자가 아닌 삯꾼은 양들이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리가 가까이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도망쳐 버린다. 그러면 이리는 양들을 물어 가고 양떼는 뿔뿔이 흩어져 버린다. 그는 삯꾼이어서 양들을 조금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착한 목자이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도 나를 안다.

이것은 마치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나는 내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

 나에게는 이 우리 안에 들어 있지 않은 다른 양들도 있다. 나는 그 양들도 데려와야 한다.

그러면 그들도 내 음성을 알아듣고 마침내 한 떼가 되어 한 목자 아래 있게 될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바치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

그러나 결국 나는 다시 그 목숨을 얻게 될 것이다.

누가 나에게서 목숨을 빼앗아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바치는 것이다.

나에게는 목숨을 바칠 권리도 있고 다시 얻을 권리도 있다.

이것이 바로 내 아버지에게서 내가 받은 명령이다.”(요한 10:7-18)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 주님!

당신을 믿지 못하고 당신께서 하신 모든 일들을 바로 알아보지 못한 저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당신께서 하느님의 아들이 아니시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이 아니라,

당신께서 진정 하느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가장 최고의 형벌을 받고 거기에서

죽으셨다는 것을 이제야 알겠습니다.

당신께서 목숨을 바치신 것은 당신의 양떼 중에 하나인 제가 생명을 얻고 더 얻어

풍성하게 하려고 하신 것임을 이제야 알겠습니다.

오, 사랑 하올 주님!

당신께서는 그 일을 이루시기 위해 태초에 벌써 예고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시어 4천년이란 오랜 세월을 기다리게 하시고,

2천년 전에 이 세상에 내려오시어 당신의 목숨을 바치셨고,

이제 저를 당신의 양떼 중에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시고자 그렇게 하셨음을 이제야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당신께서 저를 살리시기 위해 저의 죄를 대신하여 그 많은 고통을 겪으시고

마침내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는데,

저는 이제껏 당신께서 저와 그렇도록 가까이 계시다는 것조차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죄 많고 보잘것없는 저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신 주님! 이제부터 제가 당신을 위하여

어찌해야 할 지 가르쳐 주십시오.

당신께서는 언제나 저를 ‘목숨을 바친 그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고 계셨는데,

 저는 그런 당신의 눈을 외면한 채 다른 곳만을 바라보며 살고 있었으니,

저는 당신께 너무나도 많은 빚을 진 것입니다. 그 빚을 어떻게 갚으면 되겠습니까?  

오, 주님! 저도 이제는 당신의 그 사랑을 저의 온 몸으로 살아보고 싶습니다.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께서 온 몸을 바쳐 살리기를 원하시는

이웃을 사랑하여 제 목숨을 바쳐보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당신처럼 그렇게 목숨을 바쳐 사랑할 수 있는지 가르쳐 주십시오.

 

당신께서는 모든 것이 끝났음을 아시고 “목마르다” 고 말씀하셨습니다(요한 19:28).

당신께서 왜 그리도 목말라 하셨는지 이제야 조금 알겠습니다.

주님! 바로 저 때문이 아니었습니까?

당신은 저를 사랑하시어 그리도 애를 태우시며 목숨을 바치시는데,

저는 아무런 감흥도 없이 외면한 채 살고 있었으니 얼마나 가슴이 아프시고

목이 마르셨겠습니까? 저의 그런 메마른 사랑 때문에 당신은

거기서 그렇게 목말라 하며 죽으신 것입니다.

“목마르다, 사랑을 받고 싶어서 탄다. 얼마나 내가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지 네가 안다면 아무 것도 아끼지 않을 것이다.” 라고 말가리다 성녀에게 사랑을 호소하신 주님!

저는 매일 매 순간 당신의 끊임없는 사랑의 눈길 속에서 살면서 당신을 죽인 죄인입니다.

저는 저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 당신을 사랑하기는커녕 당신께서

“그가 바로 나다” 하고 말씀하시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저의 부모, 저의 형제, 저의 배우자,

저의 자녀, 저의 친구, 만나는 가장 가까운 이웃들마저도 미워하며,

사랑하지 않은 적이 얼마나 많습니까?
또한, ‘가장 중요한 저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미워한 적은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러는 동안, 저는 매일 매 순간 당신을 죽였습니다.

그러면서도 2천년 전에 당신을 죽인 사람들을 ‘악당들’이라 하며 손가락질하고 비난하며

저 스스로를 그들보다 나은 줄 착각하며 살아 왔습니다. 

주님! 용서하여 주십시오.

너그럽게 용서하여 주시고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에

그 모든 죄악을 기워 갚을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그래서 마침내 당신께서 살아나시어 영광스럽게 되는 날

저도 그 옆에서 당신과 함께 기뻐하며 즐기게 하여 주십시오.
당신은 저를 살려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시어 극심한 고통 중에 숨을 거두셨습니다.

루가 복음 23:44-47에 보면

‘낮 열 두 시쯤 되자 어둠이 온 땅을 덮어 오후 세 시까지 계속되었다.

 태양마저 빛을 잃었던 것이다. 그 때 성전 휘장 한가운데가 찢어지며 두 폭으로 갈라졌다.

예수께서는 큰 소리로 “아버지, 제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하시고 숨을 거두셨다.’ 고 하였습니다.


원조 아담의 범죄로 갈라진 하늘과 땅 그 중간에서 못 박혀 죽으시므로

하늘과 땅을 이어주신 주님!

당신은 스스로 하느님께 바쳐지는 속죄의 희생양이 되시어 하느님과 사람 사이에 놓여진

휘장을 찢어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너무나도 멀고 아득하여 도저히 올라갈 수 없었던 우리의 본향인 하늘나라로

누구라도 당신을 통해 올라갈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오, 사랑 지극하신 주님!

당신을 따르게 하여 주십시오.

십자가에 달려 계신 당신을 통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로 올라갈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당신께서 몸 바쳐 마련하신 그 길이 결코 헛되지 않도록, 더 많은 이들을 그 길로 이끌어

주십시오. 그래서 마침내 세상사람 모두가 당신의 몸을 통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로

올라가 거기에서 모두 함께 참 행복을 영원토록 누리게 하여 주십시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운명하신다(27:45-53).
하늘은 빚을 잃고 바위들을 갈라지고 무덤이 열린다.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가상 7언으로 우리를 깨우치시고 마침내 구원을 이루셨다.
이 교회는 그리스 정교회에서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등불들을 달아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금속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씌어 놓았고 바닥에는 십자가를 세웠던 자리에 손을 넣을 수 있도록 제단을 만들어 놓았다
 
 
열두시부터 세시까지 해가 빛을 잃고 성소 휘장이 한 가운데가 찢어졌다.
(루 23:44-45) 그리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였다.
이러한 일련을 사건을 보여주기 위하여 갈라져 있는 바위를 유리로 덮어서
보여주고 있다.
 
 

제 13 처: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내리어져 성모님 품에 안기심을 묵상합시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고요와 적막감만이 감돌뿐입니다. 온 세상은 캄캄하여지고, 당신을 괴롭히던 많은 사람들도 다 집으로 돌아가고,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의 소리 없는 흐느낌만이 그 고요를 깰 뿐입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하시고자 만하시면 무엇이든 다하실 수 있으시니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소서.” 하고 피땀을 흘리며 절규하시던 당신!

십자가 위에서 아무의 위로도 받지 못한 채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고 부르짖으시던 당신!

이제는 심한 폭풍우처럼 휘몰아치던 그 혹독한 고통이 다 사라지고 거짓말처럼

잔잔한 고요와 평화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당신께서는 이제 할 일을 다 마치시고 고요와 평화 속에 머물러 계시지만,

당신께서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시는 어머니의 엄청난 고통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당신께 모든 것을 다 바치고 평생 동정으로 살겠다고 약속했던 마리아에게 당신께서는

어떻게 하시었습니까?

천사 가브리엘을 보내시어 당신의 어머니가 되어 달라고 부탁하시지 않았습니까?

그것은 엄청난 대가를 치르는 일이었습니다.

그 일은 잘못하면 돌에 맞아 죽을 위기에 처할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마리아께서는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가 1:38) 하고 말씀하시므로 그 엄청난 일을 받아들이셨습니다. 
그 때부터 그분의 고통의 세월은 시작되었습니다.

당신께서 태어나시기로 예언된 베틀레헴에서 아기를 낳기 위하여 만삭의 몸으로

머나먼 길을 여행하셔야 했고,

당신을 죽이려 하는 헤로데의 칼을 피하기 위하여 타국으로 피난을 가셔야 했고,

고향에 돌아와서도 당신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사흘 낮 밤을 애를 태우셔야 했습니다.
당신께서는 열두 살 때에

성전에서 내노라 하는 학자들과 열띤 토론을 벌이느라 여념이 없으셨을 때,

어머니께서 피가 마르는 고통을 느끼면서 당신을 찾아 헤매시는 것을 모르셨습니까?

사흘 만에야 당신을 찾아 내,

“얘야, 왜 이렇게 우리를 애태우느냐? 너를 찾느라고 아버지와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고 하시자,

 당신께서는 “왜, 나를 찾으셨습니까?

나는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모르셨습니까?”(루가 2:48) 하고

매정하고도 이해할 수 없는 대답을 하셨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어머니를 홀로 남겨두시고 이리 저리 떠돌아다니시며 노숙자 생활을 하시는 당신을 찾아 물어물어 오신 그분께 당신은 “누가 내 어머니이며 형제들이냐?” 하시고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바로 이 사람들이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다”(마태오 12:48-49) 하고 말씀하셨지요.
그 말씀은 당신을 따르는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는 위안이 되는 말씀일지 모르지만

당신을 낳아 주신 어머니에게는 너무나도 야속하기만 한 말씀이 아니었겠습니까?

그렇게도 애를 태우셨던 당신께서 이제는 더 큰 고통, ‘마음이 예리한 칼에 찔리듯 아픈’

(루가 2:35) 극심한 고통을 안겨 드리고 계십니다.

오, 사랑 많으신 주님!

그토록 큰사랑을 안고 계신 당신께서 유독 어머니에게는 왜 그렇게도 고통만을 안겨

드리셔야만 했습니까? 왜 좀더 편하고 부드러운 방법을 택하시지 않고,

그토록 애를 태우시고 고통을 당하게 하셨습니까?

‘당신의 죽음’은 곧 ‘어머니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아들의 살점이 떨어지면 어머니는 자신의 살점이 떨어지는 아픔을 겪을 수밖에 없음을 당신께서 더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많은 사람들로부터 ‘미쳤다’, ‘마귀 들렸다’는 소리를 들을 때에도 가슴이 아파 달려갔었는데, 이제는 그들을 위하여 어머니 자신마저도 버리고 떠났던 아들이 그들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했으니 얼마나 원통하고 애통한 일이었겠습니까?

그래서 어머니는 통곡하셨습니다.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어 통곡하신 것입니다.

일생을 다 바쳐 사랑한 아들! 자나 깨나 목매어 그리던 아들!...

하느님의 아들이기에 매정하게도 자기를 떠나야 한다던 아들! 그 아들이,

이제 피투성이가 된 채로 무참히 죽어 시체가 되어 자신의 품에 안겨있는 것입니다.

아!

정말 당신의 사랑을 제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진정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계속 매정하게 박절하게 대하시는 당신을 이해하기가

너무나도 힘이 듭니다. 하물며 어머니에게까지....

완전히 실패한 사람인 시체가 되시어 어머니 품에 안겨 계신 주님!

당신은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 평화 속에 머물러 계시지만,

당신을 품에 안은 어머니의 고통을 그 누가 위로해 줄 수 있겠습니까?

일생을 다 바쳐 당신을 낳아 기른 이유 하나만으로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신 단 말씀입니까?!

오, 주님!

어서 일어나시어 애통하게 울고 계시는 어머니를 좀 위로하여 주십시오!

당신은 괜찮다고 어서 말씀하여 주십시오!

두 눈을 꼭 감고 입을 다물고 계신 당신이 너무나도 야속하게만 느껴집니다.

사랑하올 주님!

당신이 그런 수많은 고통을 겪게 하신 어머니에게 그 수고의 값을 치러 주시지 않으신다면

건 너무한 처사이십니다. 당신의 크신 사랑으로 당신을 품에 안고 통곡하시는

어머니에게 커다란 상급을 내려 주십시오.

그리고 주님!

나중에 제가 혹시라도 당신을 따라 그 길을 걸어가게 된다면,

저도 당신과 마찬가지로 제 어머니에게 그런 고통을 안겨드려야만 할 것입니다.

때에 제 어머니에게도 당신의 어머니에게처럼 커다란 상급을 내려 주십시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십자가에서 운명하신 예수님의 시신을 아리마태아 요셉이 요청하여 달아내린 곳이다.
십자가의 사형은 오랜시간동안 물과 피를 다 쏟고 고통을 당하면서 죽음을 맞이하는
형벌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사형을 당하신 날이 유월절 금요일은 유대인들의
큰 명절이다. 이 명절이 오면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아직 숨을 거두지 않은
 사형수는 그 뼈를 부러뜨려 목숨을 끊어 놓는다. 빨리 장례식을 치루기 위함이다.
그러나 이미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운명하셨다.
이는 성경을 이루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신다.
"이런 일들이 일어난 것은 "그의 뼈가 상하지 않으리라" 고 한
성경말씀이 이루어지게 하려는 것이었다." (요 19:36)
 
 
예수님의 시신을 내려서 세마포로 싸고 향료를 바르고 무덤으로 안치시키는
성화 모자이크이다
 
 

제 14 처:예수님께서 무덤에 묻히심을 묵상합시다.

이제 당신의 모습은 아무 곳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아마포에 둘러 쌓여 캄캄한 땅 속에 묻혀 계신 당신!

그 누가 당신을 하늘과 땅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느님이시라고 여길 수가 있겠습니까?

당신의 몸은 이제 조금만 지나면 썩어 버릴 흙덩이에 지나지 않는 시체가 되어 더 이상

사람들과 함께 있을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시체는 썩으면 심한 악취를 풍기기에 그 어떤 더러운 쓰레기보다도

더 사람을 역겹게 만듭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땅을 파고 그 안에 묻어 둡니다.

그리고는 그 위를 밟고 다닙니다.

땅은 온갖 더러운 것들을 다 받아들여 새롭게 만들어 새 생명을 키워 내는 곳입니다.

시체는 아무도 모르게 땅 속에서 썩어 거름이 되고,

그 거름은 전혀 새로운 생명을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할 것입니다. 

땅 속 그 어두운 곳에 홀로 묻혀 계신 사랑 하올 주님! 그

 곳에서 당신께서 세상을 새롭게 변화시킬 엄청난 일을 준비하시지 않았다면,

제가 어떻게 오늘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겠습니까?

어떻게 감히 당신을 주님이라 부를 수 있으며,

어떻게 감히 영원히 살 꿈이라도 꿀 수 있겠습니까?

태초부터 준비하신 일!

당신은 그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시고,

백성들에게 고대하게 하셨던 구원의 일을 이제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신께서 보통 사람인 저와 같이 되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감히 제가 당신을 따라나설 수 있겠습니까?

당신께서 언제까지나 절대자이신 하느님으로서 하늘에만 계시며

 “이렇게 해라”,“저렇게 해라” 하고 저에게 지시를 내리셨다면,

어떻게 제가 당신의 말씀을 따를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당신은 저와 똑같은 사람이 되시어, 저와 똑같은 고민을 안고,

제가 걸어가지 않으면 안 될 길을 따라 먼저 걸어가시었기에 이제 저는

감히 당신을 따라 나서겠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오 사랑하올 주님! 당신을 따르게 하여 주십시오.

 당신께서 마련하신 사랑의 길,

십자가의 길로 저의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라 나서게 하여 주십시오.

 

당신께서 이전의 모든 사람들처럼 무덤에 묻혀서 썩는 것으로 일을 끝내셨다면,

 저는 절대로 당신을 따라 나서지 않습니다.

당신의 죽음이 바로 새로운 참 생명을 위한 준비 작업이었기에 새로운 삶의 대한 희망으로

당신을 따라 나서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 희망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주님! 저는 굳게 믿고 있습니다.

당신께서 하느님의 아들이 아니시라면 절대로 이런 일을 하실 수 없음을 저는 이 길을 통하여 깨닫게 되었습니다.

마치도 한 알의 밀알이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하여 땅 속에 들어가 다 썩어 싹을 틔울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당신은 그렇게 무덤 속에서 때를 기다리고 계시는 것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겠습니다.

부족하기만 하고 보잘것없는 저를 살려주시기 위해 그 모진 고통을 겪어 오신 주님!

 당신께서 저를 위해 그토록 고통을 당하셨으니,

이제부터는 제가 당신 사랑을 기워 갚기 위해 고통을 당하겠습니다.

이제 그 십자가를 제게 넘겨주십시오. 제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당신의 사랑을 몰랐을 때 저질렀던 온갖 죄악을 다 기워 갚아 하느님의 의노를 풀어

드리기 위해 제 십자가를 지고 당신의 뒤를 따르겠습니다.

 저를 어머니 뱃속에 생기게 하여 주신 주님!

당신처럼 완전한 사람이 되라고 제게 가장 알맞은 자리에 넣어 주신 제 자리에서 제게 주어진 몫을 다하는 삶을 살고 싶사오니 저를 도와주십시오.

이제부터는 제가 서 있는 가장 좋은 제 자리에서 제가 해야 할 몫을 다하는 삶을 살고자

최선을 다하렵니다.

 제가 저에게 주어진 제 몫을 다하고 당신 앞에 나설 때에 당신께서 두 팔을 벌리시고

저를 안아주실 것이며, 당신께서 가지고 계신 모든 것을 다 제게 주실 것임을 굳게 믿습니다.

오! 사랑하올 주님!

당신께서 무덤을 헤치고 부활하신 후에 당신의 살과 피를 우리의 먹이인 생명의 빵으로

내어 주시어 당신을 먹는 모든 사람을 살려 내셨듯이,

저도 제 십자가를 지고 당신의 뒤를 따라 십자가 위에서 죽어 무덤에 묻힌 후에 당신처럼 부활하게 되면 저의 살과 피를 만나는 모든 이웃에게 나누어주어 그들 모두를 살려내

영원한 아버지의 집으로 함께 갈 수 있게 하여주십시오. 

사랑하올 주님!

이제 저를 십자가에 못 박혀 계신 당신께로 이끌어 주시어 올곧게 당신을 따르게 하여

주십시오. 오늘 이렇게 당신 십자가의 의미를 깨닫게 하여 주심에도 감사드리며,

당신께서 지금 이 순간까지 제게 베풀어주신 모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제게 모든 것을 다 주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언제나 제 안에 살아 계시며 이끌어 주시는 성령께서 십자가에

달려 계신 당신으로 인해 세세 영원히 찬미와 영광을 받으시옵기를 비나이다. 아멘.

 
 
 
거룩한 무덤 교회 안에 세워진 그리스 정교회 소속의 자리이다.
예수님께서는 아리마태아 요셉의 무덤에 묻히셨다.
이 교회는 336년 성녀 헬레나에 의해서 세워졌으며 페르시아와 회교인들에 의해
파괴되었다가 십자군 때에 재건되었다.
 
 
 
 
예수님께서 운명하시고 무덤에 묻히신 후
막달라 마리아와 마리아가 새벽에 향료를 가지고 무덤을 찾았다. 그
러나 이미 무덤을 열려있었고 그 바위에 천사가 앉아 있었다.
그 바위가 무덤 교회안에 들어 가면 첫째방 가운데 자리잡고 있다.
 
 
 
작은 방을 지나서 좁은 문을 통하여 안으로 들어가면 대리석 반석이 나온다.
이곳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누워 계셨던 자리이다.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이 예수님께서는 무덤속에 계셨다.
그를 따르던 제자들도 낙심하여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그러나 주님은 무덤에 머물러 계시지 아니하셨다.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다. 이 무덤은 더 이상 예수님의 무덤이 아니고 빈 무덤이다.
그리스도교는 무덤 속에 머물러 있는 신앙이 아니고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부활의 신앙을 가진 종교인 것이다.
 
 
거룩한 무덤 교회 (The Holy Sepulchre)
 
매년 수백만의 순례자들이 방문하고 있는 이곳 골고타의 거룩한 무덤 교회는
십자가의 길의 마지막 장소로서 예수께서 십자가에 처형당하신 곳에 세워져 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힌 골고타 언덕(갈바리아 언덕)에 서 있는 교회이다.
독실한 그리스도교 신자였던 성녀 헬레나(로마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가 지은 것이다. 그녀는 예수가 책형을 당한 십자가의 조각을 이곳에서 발견했다고 한다.
 십자가의 길(비아 돌로로사- 슬픔의 길)의 끝이기도 하고,
예수의 무덤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자파문을 지나 상점이 줄지어 있는 다윗 거리에 있다. 입구 오른쪽의 계단을 올라가면 골고타 언덕이다.
십자가가 세워졌던 자리는 제단 밑에 은테로 표시를 해놓았다.
입구 정면에는 죽은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내려 올리브유를 발랐다는 석판이 있고,
왼쪽으로 가면 '예수의 무덤'이 있다. 무덤 앞 예배소에는
'세계의 중심'이라는 술잔이 놓여 있다. 교회 위에는 콥트 정교회 수도사들이 살고 있는
 촌락이 있고, 에티오피아 교회를 통하여 올라가게 되어 있다.
 
 
 
예수님의 시신을 안치한 석판
 
 
거룩한 무덤 교회 무덤 입구
 
 
 
 
거룩한 무덤 교회 내부
 
 
 
예수님의 무덤

출처 : 요한네스 블로그
글쓴이 : 요한네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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